-
나의 큰아이와 동갑인 소중한 아이들.그날을 숨막힐듯 생생히 기억합니다.출근준비로 분주하던나. 기울이져 뒤집히기 일보직전에서 모두 구조되었다고 안도하다 다시 아니다. 그러디 공기층이 있어 구할수있다...그러나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소중하고 안타까운 아이들은 결국 애타게 기다리던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
이렇게 생생히 기억나는 그날 0416의 트라우마!왜 위정자들은 생각이 나질 않는가?나는 당시 해외에서 근무중이었다. 업무보느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한국 뉴스는 꼼꼼히 챙겨보았다.그러다 보게 된 "세월호 사고 승객 전원 구조"...!다행이다. 생각하고 업무를 보고 돌아오니 그 뒷이야기는 모두가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사실.너무 어이가 없고 기분이 처참하여눈물이 멈추지 않아, 업무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아이들 어쩌나.. .어쩌나.. . 당시 내 옆에 해외 교포 중 한분은 나를 한심히보고 면박을 주어 생업으로 의식과 모국애?를 망각한 정치인같은 행동으로 나에게 교포에 대한 나쁜 선입견 또한 가져다주었다.
-
직장을 옮기고 출근을 며칠 앞 둔 어느 날, 집에서 게임하고 있는데 옆동네 사는 남친놈이 밥 먹자고 놀러와서 말했다. "야 배 사고난 거 봤어?" 뭔데 그게?? 바로 티비를 켰다. 전원구조라는 뉴스속보에 "어 다행이다, 아깐 사고 났다더니 다 구했네. 오올!" 남친놈이 감탄하고 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우린 집을 나가서 밥을 먹고 집 근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집에 왔다. 3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집에 오자마자 티비를 켠 우리는 아까 본 건 뭐냐고 욕을 했다. 이 중요한 걸 오보하다니.. 내가 즐겁게 밥 먹고 영화보던 그 3시간 사이에 그 배에 탄 모두가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는 사실에 미안함과, 그 시간 동안 누구보다 자리를 지켜줘야 했을 사람과 정부의 무능력에 분노가 가라앉지 않았다. 비어버린 7시간.. 손도 써보지 않은 한달.. 게으른 정부.. 구하겠다며 몸부림 친 건 민간잠수부들과 국민들 뿐..영원히 잊지 않을 거고, 잊어서도 안 된다.
-
캐나다 교포 입니다2014년 4월 16일엔 보통처럼 일하고 있었습니다.시차도 있어서 조금 늦게 사고를 알았는데처음엔 전원구조라고해서 안심했습니다그러나 거짓인지 오보였는지꽃같은 아이들과 무고한 시민들은차가운바다에서 ...ㅠㅠ지금까지도 해결도 안됬고 선체인양도 안하는 무능한정부는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요?죽을때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
회사 점심시간 다같이 모여 점심을 먹던 중스마트폰을 통해 속보를 알려주던 과장님의 말에정말 다행이라며 한시름 놓았던 기억이 있습니다.정말 그 속보가 오보가 아니었더라면, 그대로 아이들이 모두 구조되었더라면..
-
사고가 났다고?구조 됐대.그러면 그렇지...아무 일 없었네.그런줄로만 알았습니다.기억하겠습니다.
-
시차가 있는 해외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백그라운드 사운드로 24시간 뉴스채널을 틀어놓고 일을 시작합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뉴스를 틀었고, 그안에서는 왠 배가 하나 가라앉고 있더군요. 그날은 펄스널트레이닝 세션이 있는날이라 새벽같이 나가야 했습니다. 방송은 틀어놓은 채로 운동다녀와서 다시 자리에 앉아 천천히 다시 살피고 서둘러 다른 뉴스를 검색해보았습니다. 그 순간 세월호가 가라앉더군요. 그걸 보며 저도 목놓아 울었습니다. 그 후 떨리는 손을 주체하지 못해 술을 마셨던걸로 기억합니다. 거의 두달간 잠을 못자고 방황했습니다.
-
그날은... 평생 저에게 기억 될 것이고..눈물이 날 것이고... 가슴이 먹먹해 질 날입니다..3년을 기다리고 10개월을 배에 품었던 우리 첫 아기를 만나기 위해 분만실에 들어갔던 그날.. 슬프게도 아이러니하게.. 많은 부모들이 그리 품고 십수년을 자신보다 더 사랑으로 키웠을 것이 분명한 아이들이 배에 갖혀 침몰하는 광경을.. 전원 구조 됐단 소식에 가슴쓸어내리다.. 배에 갇혀 속수무책 구조하지못했다는 방송을 듣고.. 아기를 이제 낳으려는 저는 만감이 교체했습니다..우리부부는 그날이 더 없이 기대에 찬 날이었는데... 그 자체로 저는 왜 그 부모님들한테 죄송한 맘이 들었던걸까요... 그 다음날 아가가 태어났습니다.. 저는 평생.. 아이의 생일이 돌아올때면 기억하겠지요 .. 잊지 않고 기도하겠습니다.. 그날 희생된 아이들과 모든 이들을 위해.. 보상받아 좋은거 아니냐는 막말자들에게 확실하게 말합니다.. 억만금을 준대도 내 자식의 목숨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
2014년 4월 16일 전 평생 그날을 잊으려해도 잊을수 없을 것입니다.당시 전 초등학교 6학년이었고 단원고 학생들과 같은 날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수학여행이라는 설렘과 전원구조했다는 새빨간 거짓말로 인해 아주 단순한 사고인줄 알았죠.2박3일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사고의 심각성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뭔가 이상했습니다. 분명 전원구조였는데.. 그랬는데.......처음엔 믿기지 않았고 그 다음엔 믿기 싫었고 그 다음엔 슬픔 그리고 차올랐던 분노는 2년이 지난 지금도 국민들의 마음을 채우고있습니다.300여명의 어린 생명들을 차갑게 침몰시켜버린 이들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 어린 생명들이 침몰되던 그 때 저는 그저 뉴스로 보고만 있었지만 진실마저 침몰될 때까지 지켜보진 않을겁니다. 아니, 그럴 순 없습니다.
-
아이들이 차가운 물속에서 싸울때..전 연수원에서 강의를 듣고 있었네요..첫시간 수업중이었는지.. 수업시간 전이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배가 기울었다는 속보를 봤고..쉬는시간 전원구조라는 뉴스를 봤어요..전원구조 라길래..이후 수업에만 집중했는데..오후가 되서 접한 뉴스에서는..배가 뒤집힌채 가라앉아 가고 있었고..많은 소중한 생명들이 빠져나오지 못한채 였어요..울면서 서로 말없이 티비화면에 집중하던 그날..기억하겠습니다
-
저녁 5시였습니다. 고단한 일상을 마치고 텔레비전을 켰습니다.큰 배가 침몰했답니다. 배는 온데간데없고 뱃머리만 보입니다. 전 평일이고 당연히 그 안에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으리라, 해군과 119가 가서 응당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으리라 생각했습니다.그런데 뉴스 화면이 이상합니다. 저녁 8시 반인데. 아니, 저녁 9시가 다 되어가는데 왜 저렇게 화면은 밝은지. 불꽃을 쏘았다는데, 쏘는 화면은 보이지도 않습니다. 전 너무 어두워서 못 찍고 있는 것이겠거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배 안에 갇힌 사람이 있다고, 아직 못 빠져나온 고등학생들이 있다고 그럽니다. 심장이 멎는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그때 알았습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원 구조라는 오보도 있었다는 말을 듣고 이상했습니다.언론이 아무리 썩었기로서니, 다 밝혀질 사실을 두고 거짓말을 할 리가 없지 않나.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전 세월호가 우연히 일어난 사고라고 믿지 않습니다. 수많은 시민 영웅을 죄인으로 매도하고, 죽음으로 내몰고, 제대로 된 구조도 지시하지 못한 대통령, 정부 용서할 수 없습니다.전 잊지 않을 겁니다. 7시간 동안 뭐 했는지, 정확히 밝히고 죄를 구하십시오. 그래도 평생 용서받지 못하겠지만…
-
초등교사입니다오전에 정신없이 수업하고 동료들과 후다닥 사전답사를 갔습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둘러 보고 여의도 공원을. 살펴보던 중 뉴스 검색을 하던 동료 교사가 배가 침몰됬다구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다 구해냈다고.다 구해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요. 그래서 사전답사를 계속 헀습니다..아직도 그날의 날씨, 그 곳의 나무들..잊히지가 않습니다.제 딸은 95년생.그 아이들과 동갑입니다.대학 새내기가 되어 스무살을 살고 있습니다...
-
큰 애와 작은 애를 학교와 어린이집 차에 태워보낸 후에 동네 엄마들과 함께 집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뉴스를 보고 있었어요.오전 9시경에 뉴스에서 세월호에 대한 뉴스를 보았죠. 그 때부턴 평소처럼 드라마와 애들 얘기는 할 수가 없었어요. 제발 저 애들이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11시까지 2시간을 안타까운 맘으로 보기만 했습니다. 처음 전원 구조 메시지가 나왔을 때는 너무 안도하고 기뻤어요. 하지만 곧 오보라는 보도가 나오고...그 뒤부터 간혹 오가는 대화는"왜 못 구하고 있지?""곧 구해지겠죠?""빨리 투입이 되어야 할 건데""투입됐다는데 다 구조될 거예요"이런 이야기 뿐...하지만 구조는 지지부진했고11시가 되어 집안일을 해야하니 다들 집으로 돌아갔습니다.집안일을 하면서도 계속 눈은 뉴스를 쫓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학교며 어린이집에 갔덩 우리 아이들이 돌아온 이후에도...이윽고 어둠이 깊어진 후까지...배는 완전히 가라앉았는데도구조소식은 들려오지 않았습니다.평소 잠이 많은 사람인데 새벽까지 뉴스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구조되지 못한 아이들의 부모 마음이 어떨지 생각하는 것만으로 눈물을 그칠 수가 없었어요...하지만 몇 달이 지나고 관제 언론에서"이제 더이상 얘기치 말라는 여론이 지배적입니다." / "세월호 얘기 지겨워요." / "저 사람들 보상 더 받아 먹으려고 저런다. 애들 팔아 돈 벌어먹는 넘들이다." 이런 얘기들이 오가고 저도 더이상 얘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정말 너무나 반성합니다.우리 아이들이 매일 같이 웃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그 시간에 세월호 아이들도 당연히 돌아왔어야 한다는 걸...같은 엄마이면서 왜 당당히 말 못하고 잊어버렸던 걸까요. 너무너무 죄송하고 맘이 아픕니다.이제야 세월호에 대한 얘기를 찾아보고 "다이빙 벨"을 보면서 눈물 흘립니다. 잊지 않겠다고 노란 리본을 달았습니다. 아이들에게 단원고 형 누나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합니다. 얘기하지 못하고 잊었던 시간만큼 세월호 유가족들이 홀로 겪어야 했던 그 고통만큼 이제는 잊지 않고 진실이 규명되는 그 날까지 응원하고 요구할 겁니다.
-
소극적으로 안타까워만 해서 미안합니다.이제는 잊지 않겠다는 말을 넘어서행동으로 실천하겠습니다.
-
아침부터 티비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모두 구조되기를 바랬던... 그런 기억이 있네요.
-
매일 하는 운동을 위해 스포츠센타에 도착해서 배가 침몰 한걸 들었고 11시 30분에 씻고 나왔을때 배는 거의 침몰 했는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남아 있다는 소리에 헐레벌떡 집으로 달려가 티비를 틀었습니다. 게다가 내딸 아이와 같은 고등학생들이 거의 대부분 이라는 소식에 티비에 매달려 어서 빨리 구해내길 바라던 시간들이 하루하루 흘러 가며 내나라 에 대한 실망감은 분노로 바뀌고 벽에 막힌거 같은 일련의 후속 조치들로 인해 너무나 큰 아픔과 절망을 느껴야 했습니다.뉴스화면 한쪽에 마치 수능 디데이처럼 혹은 선거날 카운트다운처럼 숨진채 발견된 아이들의 숫자가 늘어가고 더이상 찾지 못한 인원이 줄어 가는걸 보던 날이 수일 수달이 되어가니 이제 그만 해야 한다는 주변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게 참 가슴 아프더이다. 아직도 뉴스에 그날의 자료화면이 나오기만 해도 명치끝에 뭔가 얹혀 있는듯 숨이 차고 가슴이 아파 채널을 바꾸는 저로선 참 매몰찬 사람들이었습니다.그들은 그날의 진실을 은페하려는 정부의 사람들이 아닌 매일 보는 내주변의 이웃과 지인들이었기에 한번은 그러지 말자 말싸움도 해보았지만 한번 빗나간 시류는 돌아오지 않더이다. 원하지 않던 대통령이었기에 눈을 더 크게 뜨고 지켜 보고 있었는데도 뭐 하나 나아지는 것이 없고 다른게 아닌 틀린 것임에도 그 어떤 것도 밝혀지지 않는 현실에 한동안 뉴스를 멀리하며 정치와 담을 쌓고 살았습니다.그당시 시류에 편승해 그만하라며 이제 그만 됐다며 유가족들에게 상처를 줬던 내이웃과 지인들이 이제 그날의 진실에 관심을 보이네요. 촛불은 들지 않으며 시류를 따라 온갖 말들을 해대는 저들을 보며 또다른 실망감이 몰려 오지만 저들의 관심과 지지가 남아 있는 바로 지금 그아픈 날의 진실을 밝혀야 된다는 조급한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거짓과 불법이 판치는 우리나라가 상식이 통하는 나라, 거짓과 참을 구별 할수 있는 올바른 위정자가 통치하는 나라가 되길 너무나 간절히 원해 광화문에 열심히 나가려고요..이게 꽃다운 나이에 바닷속에서 아프게 죽어간 그아이들의 넋을 조금이라도 위로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
4월 15일 밤, EBS스페이스 공간 전인권 공연이 있었습니다. 지인과 생생한 라이브공연을 즐기고 파리바게트에서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다 새날을 맞아 상쾌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양재천을 건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침 일찍 두 아이 학교 보내고 피곤해 잠들었다가 10시반 쯤 폰을 켜니 세월호 전원구조 뉴스가 떠있었습니다. 큰일날뻔 했구나하며 안심하고 다시 누웠다가 일어나니 세상이 발칵 뒤집혀져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시간 한가하게 낮잠 잔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남아있습니다.. 전인권씨 이름만 들어도 숨이 턱 막히구요.. 우리가 환호성 속에서 공연을 즐기는 시간에 아이들은 선상 불꽃놀이에"아!예쁘다!"탄성을 지르고 있었더라구요. 비극이 코앞에 다가온것도 모르고 천진하게. . . ..그냥 그 장면들이 교차되면 말할수없는 비애감과 죄책감이 들어 얼른 다른 생각을 하며 피하게 됩니다. 며칠전 광화문에서 전인권씨를 봤을때도 묘한 감정이 일어 가슴이 저려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전인권씨도 저랑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월호의 모든 의문과 박근혜의7시간은 반드시 밝혀져야합니다.대한민국이 부정부패의 고리를 끊고 안전하고 살만한 나라로 다시 태어나는 중심에 세월호가 있습니다. 유가족 여러분! 힘내세요. 큰 도움은 못드리지만 항상 응원하고 있습니다!
-
뱃머리만 보아도 눈물이 난다!바다만 보아도 눈물이 난다.우리는 너희들의 엄 마.아빠다!!어찌잊을수 있겠니!!그날을 우리는 볼것이다~촛불의 정의가 세워지는그.날.을!!!!!
-
같은 날 같은 시간 울산 중학교를 다니는 제 딸도 수학여행중이었습니다. 세월호 뉴스를 접하고 가슴이 철렁.. 딸은 서울로 수학여행을 갔지만 걱정이 되어 급히 통화를 했습니다. 무사하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마음이 찹찹했습니다. 미안하기도 했구요. 우리 딸이 세월호에 타고 있었다면...여러번 생각하니 가슴이 멍멍해서 아무일도 못했습니다 미안하고 미안해서..,
-
너무나도 슬픈 한해였습니다.나도 이런데 유가족, 미수습자 가족들은 어떻게 살까 하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집니다.그날은 오전에 그냥 일반적인 해상사고인줄로만 알고 당연히 구출되려니 하고 생각했어요.바보같지만 배가 금방 가라앉을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저는 그렇겠지만 구조할 분들은 배가 가라앉기때문에 빨리 구조해야 한다는걸 알았을테죠.그런데도 구조를 서두르지 않고 가라앉는걸 온국민이 보게 만들다니 믿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무능한 시스템을 증명하는 일이 그 뒤로도 계속 이어졌죠. 솔직히 세월호를 잊은적은 없습니다. 단지 하도 어이없는 절망적인 일들이 계속되어서 어느것을 먼저 한탄해야할지 선택하지못했을 뿐입니다. 약사라는 직업을 갖고있어서 너무나 뼈저리게 경험한 메르스사태. 의료기관을 병균의 온상으로 만들어버리고 온 국민이 서로를 경계하게 만든 저질스런 정책말곤 내놓지못하는 정부. 소설 페스트를 다시읽고 몇백년전과 비슷한 수준이라 더 어이없었던 기억을 잊을수가 없습니다.우리를 하나되게하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하는 저 나쁜정권. 우리나라의 가장 큰 장점인 할수있다는 긍지를 빼앗는 저들이 세월호를 농락하지 못하도록 지금 또 우리사이에 끼어들지 못하게 하기위해 눈 크게 뜨고 두번 당하지 않으리라 다짐합니다. 힘내요 우리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