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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만 세살이 채 안되었었어요. 아이에게 밥을 먹이다가 전화기로 소식을 들었습니다. 왜 자길 봐주지 않느냐고 찡얼거리는 어린애에게 가만히 좀 있어보라고, 반쯤 정신이 나간듯 화를 내다가, 뉴스를 보다가, 뒤집어진 배 안에 내 자식이 갇혀 있다는게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생각에 결국 아이를 안고 엉엉 울던 기억이 나요. 그날의 그 참담한 마음이 아직 생생합니다. 수백명의 목숨이 눈앞에서 사그라져가던 그 끔찍한 순간이 기억 나지 않다는건 그 순간이 자신들에겐 그닥 큰 의미가 없었다는 이야기 겠지요. 세월호는 비단 피해자와 그들의 가족뿐만이 아니라 그 날을 살아내야 했던 우리 모두의 트라우마 입니다. 입에 차마 담지 못할 온갖 막말로 진실을 애원하는 유가족들을 몰아세우는 그들은 우리 모두의 상처에 난도질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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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저는 논문학기의 대학원생이었습니다. 논문 세미나는 매주 수요일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3시간이었죠. 논문세미나 시작 전에는 몰랐던 것 같아요. 세미나 쉬는 시간에 사람들이 세월호 사건에 대해 말해줬지만 구조 중이라고 했죠. 그래서 별 일 아닐 거라 생각했어요 금방 모두 구조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세미나가 끝나고 지친 심신을 이끌고 집에 가며 정류장 앞 횡단보도에 섰어요. 신호를 기다리며 핸드폰 인터넷 창을 켜서 뉴스기사를 봤죠. 그때 처음 알았어요 구조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걸. 횡단보도에 서서 기사를 접했던 순간이 생생해요. 하지만 구조된건 아니지만 온힘을 다해 구조중이라고 하니까 당연히 구조되겠지 생각했어요. 밤을 새서 피곤한 마음에 자고 저녁에 일어나보니 웬걸 구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더군요. 대통령은 뭘하고 있는지 나타나지 않다가 제가 일어난 시점쯤 왔다고 하고요. 자다 깬 저조차도 대통령이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있단 생각이 들었어요. 나처럼 잠이 더 깬 느낌. 그리고 그 후에는... 20140416, 나보다 어린 동생들이 추운 바닷물 속에서 두려움에 떨어야했던 그날, 살아있었음에도 어른들이 구해주지 못했던 그날, 그리고 함께 죽은 많은 사람들. 잊지 않을 겁니다.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 벌을 받게 만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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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고 한숨 돌리면서 뉴스를 검색하다가 기사를 보게되었어요...뒤돌아 다른 직원에게 얘기했어요. 수학여행 배가 침몰해서 못 구하고 있다고... 너무 놀라 얘기하다가... 곧 구했다고... 다행이라고 했는데 오보였다는 기사를 봤죠...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까요....이토록 생생한 날인데...다시 되돌리고 싶은 날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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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렷이 기억합니다~ 아버님 조직검사 하러간 시간에 홀러 기다리다 배가 침몰했고 - 전원 구조 했다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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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모임이 끝나고 자주 가던 식당에서 이른 점심을 먹으면서 뉴스를 봤어요. 봄이지만 제법 추운 날씨였고 그 날 그 시간 식당에는 사장님과 저, 다른 손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처음 들은 소식은 신속히 구조작업에 들어갈 것이니 전원 무사히 생존 가능할 거란 희망적인 얘기였어요. 밥을 먹으면서 무사히 구조될거라니 정말 다행이다 생각했던 스스로가 한심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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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때처럼 임신한몸으로 뒤뚱뒤뚱 아침에 화장실을 갔다가 티비를 켰는데. 가슴이철렁배가 침몰해가는 뉴스의 장면그리고 전원구조.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얼마후 배는 더 점점 가라앉고 생존자, 사망자 숫자가 왔다갔다 하는 뉴스를 보며 임산부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태교에 않좋다고 슬픈영화,드라마도 안봤는데정말 슬픈 날이었다. 아직도 배가 침몰한 사진보면 무섭고 슬프다머리속에 지울수없는 컷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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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고.....퇴근후에는 골방에 앉아 울었다. 내 지인, 내 아이가 아니지만 흐르는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그렇게 허울뿐인 구조작업이 사실상 실패로 종료되기 까지, 생중계화면을 보면서 계속 울었다. 화면속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무기력한, 절대 잊지 못할 그 때 그 상황과.....7시간 만에 나타난 최고 책임자의 입장표명. 절대로 잊지 않는다. 그 때 흘린 눈물만큼 네 눈에서 피눈물을 볼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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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저는 제주도에 있었습니다. 세월호가 안전하게 도착했었어야 했을 그 섬, 제주도에 말입니다.애인과 함께 가는 첫 여행지로 결정했던 제주도, 그 섬에서 첫날을 보내고 둘째날 아침. 숙소에서 그 날의 관광을 위해 나가려던 저와 애인은 뉴스를 보았습니다.배가 제주도 인근에서 침몰하고 있다고.처음에는 사고네... 하고 생각하다가, 제주도 근교라고 하니 별 걱정 없이 나갔습니다.저는 우리나라를 믿고 있었거든요. 당연히 별 일 없이 구조하겠지, 먼 바다도 아니고 제주도와 내륙 사이라는데... 하면서 나갔습니다.그리고 점심을 먹을즈음, 침몰했던 배에서 승객을 전원 구조했다는 뉴스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오보였습니다. 하루 종일 기분 좋게 관광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저와 애인은, 낮의 뉴스와는 전혀 다른 보도내용을 보게 되었습니다.구조된 사람은 적고, 침몰한 배 안에 갇힌 사람들이 많다고. 전원 구조는 오보였다며...그 뉴스를 보면서, 그 날 즐겁게 돌아다녔던 것들이 갑자기 죄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예정되었던 관광을 모두 마치는 동안 저와 애인은 참 무거운 기분이었습니다. 뉴스에서는 계속해서 좋지 않은 소식을 보도하고 있었으니까요.이게 제가 보냈던, 2014년 4월 16일의 기억입니다. 세월호에 탔던 희생자 분들과 생존자 분들이 안전하게 도착하셨어야 했던, 그 제주도에서의 참 슬픈 기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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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티비 화면에서 전원 구조 속보를 본 뒤, 다행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직장으로 출근했지요.. 제 직업은 과외 선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보였다는 소식과 함께 하루 종일 핸드폰을 잡고 제발 거짓말이길 바라며 간절히 기도했어요. 빨리 사람들이 다 구조 되기를.. 마지막 수업은 밤 10시에 있었는데 까맣게 물들어버린 바다에 마지막 선체 부분이 가라 앉던 장면이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그 과외 학생도 고2였는데.. 수업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제가 본 장면이 진짜인가 싶고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분명히 다 구할 수 있었는데, 아침만 해도 다 구할 수 있었는데! 너무나 큰 충격에 눈물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한 일주일은 멍하게 지냈던 것 같습니다.. 한 명이라도 살아 돌아오리라 믿으면서요. 구조 작업 하고 있다고 그랬으니까요!!!!그 후로 매년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던 그 때가 오면 그냥 눈물이 납니다.. 눈물이 참아지지가 않습니다. 심장이 갈기 갈기 찢어지듯이 괴롭고 고통스러워 통곡합니다. 결코 잊지 않을 겁니다. 세월호 관련자들 모두 천벌 받기를 기도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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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서 인터넷을 뒤적거렸습니다. 배가 가라앉고 있다는 이야기를 봤고, 전원 구출되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현장 소식이 전해지고, 현장의 화면이 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단 한명이라도 구해지기를 기다리면서, 무엇이든 일어나기를 기다리면서 하루종일 멍하니 기사만 뒤적거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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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ytn 뉴스 보도만 맏고 안심했었습니다. 진실을 찾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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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도배가 끝나지 않아 짐들이 엉망진창인 집에 혼자 가서 도배하시는 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오전에 잠시 친정에 갔는데 배가 넘어갔지만 전원구조 소식을 듣고 아, 이제 우리나라도 이 정도 수준은 되는구나. 몹시 흡족해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그날 티비도 인터넷도 안 되던 집에서 나는 내 새끼 데리고 다정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 시간동안 304명의 사람들이, 그것도 대부분이 열일곱 어린 아이들이었던 그 사람들이 차가운 바다속에 허망하게 스러져갔던 것에 아직도 미친듯이 화가 납니다.그동안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노란 리본 붙이고 다니며 잊지 않을게. 언젠가는 이 말도 안 되는 죽음의 진실이 밝혀지도록, 허망하게 간 것만은 아니도록 잊지 않을게. 하는 마음 뿐이었지만이젠 아니죠. 부패가 지나쳐 스스로 썩어넘쳐나 주신 이 나라의 대통령 박근혜씨 덕분에 언젠가가 코 앞으로 다가와주었네요.대통령과 그 부역자들은 얼른 끌어내려져서 진실을 밝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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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백화점에서 엘레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여자친구가 뉴스봤냐고 카톡을 보내서 뉴스를 봤고, 일하던 중에도 전원 구출 오보를 포함해서 세월호 관련 뉴스를 계속해서 확인했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사건이라 주변에서도 계속 그 이야기만 했던 것을 기억 합니다. 기억이 안난다는 진술로 일관하는 범법자들 모두 처벌받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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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타지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는데 점심시간에 같이 일하는 동료 두명과 점심먹으러 간 식당에서 뉴스를 봤습니다. 동료 두명이 누구였는지도 기억나고 메뉴가 뭐였는지도 기억납니다. 처음에는 어쩌다가 저렇게 됐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주변에서 구조작업하고 있는 것 같은 풍경의 보도를 보고 곧 구조되겠네 라고 생각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구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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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이였어요. 오전에는 핸드폰으로 배가 전복됐다는 소식을보고 별일 아니라구고 생각하고 점심을 먹었는데 배가 바닷속으로 들어가고 아직까지 나오질 못해요.. 야자시간 교실티비를 보다 화장실에가 간절히 기도했던 그날..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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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 당일 과학시간이었습니다. 반 수학여행이 이주일 전 즈음이라 아이들은 옷을 무엇을 입을까. 뭐먹을까. 뭐하고 놀까. 하며 들떠있었습니다. 쉬는 시간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던 친구가 말했죠.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가 사고가 났다고. 우리는 걱정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그저 모두 구조된 소식을 기다렸고 기적이 일어난 듯 전원구조 소식은 떴습니다. 소식을 접한 후 다들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고, 그렇게 끝난 줄 알았습니다.오보소식을 들은 후에도 믿었습니다. 구조하고 있겠지. 모두 구조 되겠지. 설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낼 줄은 몰랐습니다. 모두 노란리본을 달고 다닐 줄은. 아무 사이도 아니던 사람들이 평생 기억할 나비들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는데 무슨 세월호냐. 라는 사람이 많습니다. 세월호 희생자는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운 좋게 그 날 그 시간에 배를 타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렇기에 세월호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직 배 안에는 사랑하는 사람들 곁으로 돌아오지 못 한 9명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다 밝혀내지 못한 진상규명과 7시간이 남아있습니다.우리는 또 다시 세월호와 같은 아픈 시간을 겪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7시간, 잊지 않고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우리는 기억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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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이 제법 쌀쌀한 아침이었지만 오후엔 따뜻해서 입고 있던 하얀색 니트가 조금은 덥게 느껴졌다. 특별할 것 없는 사월의 봄이었다. 대학생이었던 나는 강의 시작 바로 전에 사고 소식을 들었고, 옆에 있던 친구와 가벼운 대화를 나눴다. 큰 사고는 아니겠지, 하면서. 날씨가 좋아 햇볕이 잘 드는 벤치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었다. 마음 맞는 친구들과 도시락을 먹으며 즐거운 나날을 보내던 때였다. 사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친구가 말했다. 전원 구조 됐다고. 역시 큰 사고는 아니었구나 하는 마음에 안도하며,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즐거운 점심시간을 보냈다. 그날은 학교에서 주관하는 프로젝트 참가 문제로 사람을 모집해야 했다. 중간고사를 며칠 앞둔 때이기도 했다. 오후 5시쯤,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 프로젝트와 중간고사 이야기로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인터넷을 하던 친구가 믿기지 않는 사고소식을 전해주었다. 구조가 아직 진행 중이라고 했다. 뉴스에선 연일 세월호 보도뿐이었다. 그 때만큼 뉴스를 손에서 떼지 않고 봤던 적은 없다. 아이들이 남긴 영상은 몇 번이고 재생해서 보았다. 아무리 봐도 믿기지 않았다. 이렇게 평범한 아이들이 살아있지 않다는 사실. 안전을 위해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방송. 화가 났고, 답답했고, 안타까웠다. 일상을 보내다가도 이따금 터져 나오는 울분과 눈물로 한 동안 이상한 하루를 보냈다. 그들과 전혀 상관없는 나도 이런데 감히 유가족들의 마음은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 더욱 더 마음이 아팠다. 나는 기억한다. 2014년 4월 16일 그날, 어떤 옷을 입었고, 날씨는 어떠했으며, 어떠한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는지. 나는 여전히 평범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내 시간의 일부는 아직 그 때에 멈춰있다. 기억할 것이다. 나처럼 평범한 하루를 살았을 세월호 속 수많은 사람들, 그날이 아니었다면 지금도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을 사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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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기억을 하고 있는거보면... 치매는 안걸리겠어... ㅎㅎㅎ출근후.인터넷 메인글 하나씩 훝어보기를 하던중에배 사고소식을 봤다. 전원구출이란 기사를 접하고 아... 사고났구나... 다 구했구나... 다 구했으면 됐네... 머... 하면서이때까지만해도 신경안썼다.. 그냥 일했다.. 늘상하던 패턴으로....그런데 조금후에 수업을 받고 계시던 수강생과 선생님 사고 어쩌고 저쩌고 얘기나누면서 나한테도 묻더라,, 사고난거 봤냐고... 기사봤는데 ,, 사람들은 다 구했다던데...?? 하니 그게 아니란다.. 머야 하면서 다시 인터넷을 켜보니 진짜 그게 아니더라.. 이게머야... 아깐 다 구했다 했는데.. 이렇지 않았는데,,, 왜 이러는거야... 일을 하는건지 마는건지.. 인터넷뉴스 검색하고.. 일하다 뉴스보다 일하다 뉴스보다 계속 반복했다. 다들 세월호 얘기만했다.. 가라앉고 있는 배만 봤다.. 저녁에는 신당동 떡볶이 먹으러갔다.가게엔 3-4 테이블에 사람들이 있었다..다들 하나같이 뉴스만 보고있었다.먹으면서 얘기를 해도 세월호 얘기뿐이었다. . 떡볶이 집에서 서비스로 칠성사이다 큰캔받았다.떡볶이 맛? 분위기가 그래서 그랬는지 맛이없었다.. 그 후로 그 동네에 떡볶이 먹으러가서 그 가게를 보면 세월호 생각난다.그냥 저절로 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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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약속이 있어 남자친구를 기다리는 와중에 집 컴퓨터로 메인에 떠 있는 기사를 봤습니다. 단순한 사고라고 생각했던 게 시간이 지날 수록 이곳 저곳에서 대서특필 되어 집 밖을 나서고도 뉴스에서 눈을 못뗐었어요...간절히 기도까지 했었고, 계속 내가 신이라면 내 손으로 저 배를 온전히 들어낼 거라고 계속 생각하며 ... 바다 위 작게 떠있던 배의 머리를 보며... 배가 바닥에 고정되어서 저기를 뚫어도 가라앉지 않았으면... 딱 뚫었는데 영화처럼 모두 저기에 생존해 있어서 안도의 울음을 뱉으며 나올 수 있었으면 ... 7시간 .. 하루 이틀... 눈물도 한 모금 삼킬 수 없었던 그 때를 저는 잊지 못하겠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잊어 내고 싶지만 그러면 안되니까요. 진실이 드러나고 세월호 유가족...학생들의 부모님 그리고 형제, 자매들에게 아픔이 치유될 때 쯤에야 저도 고이 보내드리고 잊고 싶습니다.. 너무 아픈 기억이라 떠오를 때 마다 괴롭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던 그 허망함은 세월호처럼 쉬이 가라앉지 않네요. 부디 떠올랐으면 좋겠습니다. 세월호도.... 7시간의 진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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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렷이 기억합니다마트 알바중이었는데 뉴스가 나오는거에요 사람이 없는 오전이라 티비 대신 책을 보고싶었습니다. 별일 아니겠지 구출 하겠지 하며 티비를 꺼버렸습니다. 그게 대한민국이 붕괴하던 실시간 중계였을줄이야..분명히 기억납니다. 그만보자 하며 티비를 끄던 그 순간의 장면.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잊었다는건 거짓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