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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그때 고3이었습니다. 학교의 규정에 따라 휴대폰은 끈채 하루를 보냈고 야간 자율학습이 끝난 뒤 옆반 친구를 기다리며 인터넷 기사를 훑는 순간 그 순간이 아직도 뚜렷하게 기억납니다200명이 넘는 학생들의 실종 ... 약 12시간전에 벌어진 사건이었지만 12시간이 지나서야 안 제가 너무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그뒤로 매일 뉴스를 보며 눈물을 흘렸던 그 때를 , 수능특강 영어지문에 나온 타이타닉 지문을 보며 눈물을 흘렸던 그 때를 절대 잊지 않았습니다 어느덧 2년하고도 더 긴 시간이 지났지만 잊지 않았습니다 평생 잊지 않을겁니다 대통령의 그날의 7시간... 꼭 밝혀져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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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회식 중이었는데 회사 동료들 모두 충격 받은 나머지 식사도 잊조 다들 뉴스만 보고 있었어요. 전원 구조됏다는 뉴스가 되퓰이 되자 그제서야 한시름 놓고 식사하기 시작했는데..... 진짜 이럴 수는 없습니다.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 원한 풀어줘야 해요. 진실을 밝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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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똑같았어요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버스를 타고 걸어갔죠.. 회사를 가기 위해서죠..정확한 시간은 기억나진 않지만 인터넷에 세월호 침몰 기사를 봤어요..별로 대수롭지 않았어요... 배는 잠겨있지만 곧 구조하러 가겠지...그 당시에는 몇 명의 사람이 타고 있었는지, 그 배가 어느정도 규모 였는지도 짐작을 못했어요점심을 먹으러 1층 식당으로 갔어요.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고등어 김치찜을 먹었어요. 식당에 조그마한 텔레비전에 세월호가 거의 잠겨 있는게 보였어요.. 그 당시 구하러 오겠지.. 구하러.. 아이들이 그렇게 몇날 몇일을 바닷속에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어요...그리고 사무실로 돌아왔죠..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세월호 기사를 보는 것과 업무를 번갈아가며 했어요그랬어요..사람들이 구조될 거라는 확신을 가졌어요..불교도 기독교도 아니지만 구조해 달라고 기도 했어요.하지만 내 기도는 들어주지 않았아요깨달았죠..그 확신과 기도는 아무 쓸모없는 일이라는 것을..행동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내가 바보 같이 기도만 하고 있어서 아이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것을...아이들아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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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이 한 자리에서 지켜보아야만 했던 그 지옥같았던 실제 상황.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가슴이 울컥해 눈물이 나온다. 2년이 넘는 시간동안 참으로 불편하게 살아왔다. 가까운 친지들부터 지나가면서 한 마디씩 던지는 사람들의 말. 말. 말 ...차가운 물속에서 나오지도 못했던 그 분들의 가족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마음이 불편한데 그 유가족의 마음은 그 긴 시간동안 어떠했을까를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진다. 아직도 그날의 기억은 생생하다. 우리나라는 2년여전 그 날 그대로다. 바뀐게 하나도 없고 밝혀진게 하나도 없다. 살려내라~2년전으로 모든걸 돌려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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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전원 구조라는 뉴스를 보고 안심하며 일하다가 저녁에 다시 학생들이 아직 배 안에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때부터 세월호 소식에만 촉각을 세우고 기쁜 소식이 들리길 기다렸었는데... 너무 어린, 죄도 없는 생명들이 죽어가는 걸 보고만 있었다는 죄책감과 무능함에 지금도 눈물이 흐릅니다.지금도 눈물 흘리는 것과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가는 것 밖에 할 수 없지만 끝까지 어린 생명들을 잊지 않고 가슴속에 품고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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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전시회장으로 도착했는데, 조선족 회사분께서 한국에 난리가 났는데 뉴스를 봤냐고 물어보더라구요. 와이파이가 터지니 잽싸게 뉴스를 검색해보니, 전원 구조라고 떠서 안심하고 업무를 시작 했습니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 틈틈히 뉴스를 보고 아주 절망 했었죠. 업무 시간이 종료되고 안마를 받으러 갔는데, 중국 공영방송에서 계속 관련 뉴스를 보도하고 있었던 게 기억납니다. 숙소로 돌아와 잠드는 그 시간까지 실감이 되지 않았습니다. 자꾸 세월호 안에 갇혀있을 아이들 생각에 눈물이 나고, 내일이면 더 희망적인 뉴스를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잠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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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티비에 큰 사고에 대해 보도해줘서 밥먹으면서 지켜봤다. 그때까지는 설마 설마 했다.다시 촛불이 타올라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왜 우리는 300명의 목숨을 잃었을 때 이렇게까지 분연히 들고 일어나지 못했나. 혹시 300명 타인의 목숨보다 대통령이 뭉개버린 우리의 자존심이 더 중요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얘들아 이렇게 못난 어른이라 미안하다. 이게 다 어른들 책임이다. 너희들은 잘못 없다. 가만히 있으라는 통제에 침착하게 잘 따라준 너희는 잘못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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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고등학교 선배들도 그시간 수학여행으로 제주도에 있엇습니다. 처음 학교에서 배가 침몰했다는 기사를보고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인터넷으로 뉴스를보았고 전원구조라 하여 안심하고 수업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1시간뒤 잘못된 조사라고 하여 인터넷뉴스로 같이 걱정하며 전원구조 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구조되지 못하였고 함께 7시간을 학교아이들과 걱정하면서 보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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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4학년, 여느때와 같이 집에서 인강과 함께 공부를 하고 있었고 밥을 먹을 겸 TV를 틀었는데 세월호가 침몰되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곧 전원구조 이야기가 나왔고 "와 어쩐일로 이렇게 대응이 빨랐대? 다행이네" 하고 마저 끄고 공부를 하는 도중에 핸드폰이 쉼없이 울리기 시작한다. 뉴스 봤냐고. 대량학살급이라고. 무시하고 공부를 할수도 있었지만 이끌리듯 TV를 켰고 믿을 수 없는 소식과 현장의 모습에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공무원이 되면 저런 사람들을 상사로 모시고 살아야되는건가? 그놈의 정치적중립 때문에 입을 다물고 살아야하는가? 의욕이 뚝 떨어지고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밖에 안나더라. 3년이 흐르기까지 어떻게 책임자 하나 나오지 않고 다들 나몰라라 하고 있는 것인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조직된 것들은 하나같이 국민에게 칼을 겨누고 지금이 민주국가 시대인지 절대왕정인지 당최 알수가 없다! #박근혜는_물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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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 하지마자Tv 에서 나온 뉴스전원구조 ...믿었다 그런데 웬걸몇시간 후 너무나 충격적인그 뒤로 매일매일JTBC 뉴스만 봤다구조되겠지라는 희망이 점점 사라져가는아픔이 더 커져가는지금도 기억한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배에 들어갔고아이는 친구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구명조끼를 수영하지 못하는 친구에게 양보를 하고 배에 들어갔고 이렇듯 그 안에서는 또 다른 이를 구하기 위해자신은 나오지 않고 배에 들어가는데정부는 뭘했는지그렇기에 꼭 밝혀져야 한다 7시간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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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당시 아나운서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입니다. 4시간 전에는 그래,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확실히 구조하겠지. 그런데 왜 장비없이도 할 수 있는 구조조차 안 하고 있는거지? 어느 채널을 틀던 화면속 해경은 밖에 나와있는 사람들만을 데려갈 뿐, 내부로 진입하지 않았습니다.그날 하루종일 TV를 켜놓고 있었지만 내부로 진입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못봤습니다.....그리고 4시간 후, 분명 그 전에도 본격적으로 구조하겠다-라고 했는데 여전히 [본격적인 구조]는 이뤄지지 않고 있고.. TV속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구조하겠다라는 ... 나중에나 하겠다는 말을 되풀이합니다.이 미친놈들이 뭐하는거야?!!!!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그리고... 그 뒤로도 본격적인 구조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마치 아이들이 죽기만을 바란 것 처럼요.국민을 지키지 못한 대통령은 대통령이 아니라던 박근혜 당시 국회의원은 그렇게 300명의 사람이 빠져죽도록 내버려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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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기억은 야자시간 자습시간이었어요휴대폰을 내지 않은 친구들이 인터넷 뉴스를 보고 선박이 가라앉었다고 하더라구요에이 구조되겠지 라는 생각에 저는 무심했었어요구조됬다는 역시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었네요오보라는 사실을 알고 우는 친구들도 있었어요그 당시는 왜 친구들이 우는지 이해가 안됬어요이 나라의 높은신 분들을 믿었던 순진한 학생이었나봐요 시간이 지나고 여전히 구조가 되지 않는다는 보도에 답답했어요 보고만 있어야하는 상황과 대응도 대책도 없는 이 나라가요전 아직도 몇 년 전 그때 감정이 기억납니다당신은 그때 어떤 감정이었나요? 답답했나요? 죄송했나요? 다급했나요?진심을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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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상황실에서 작업중이였습니다.처음에는 사고가 났다. 다음에는 전원 구조다. 그래서 안심했었던 기억이 나네요...그것이 잘못된 보도인 것을 알고나서 매일 같이 뉴스를 봤는데 뉴스에서 말하던 희망이 다 거짓이였다는 것을 6개월 후 전역 후에나 알게 되었네요...아무것도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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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 날 일하고 있었어.뉴스 속보 그런거 못볼 정도로 일하고 있어서 너희들이 빠져서 죽었는지 전원구조 오보가 떴는지도 모르고 일하고 있었어.뒤늦게 퇴근하고 나서야 알았어.너희들은 그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데 나는 무력하게 지하철을 타고 편하게 의자에 앉아서 일하고 있었구나.정말로 미안해 미안해.... 그리고 이제 하나하나씩 밝혀지고 있어. 너희들의 억울한 죽음들 꼭 이대로 묻혀지게 두지 않을게 미안해 어른들이라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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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점심시간 식당에 모인 선생님들과 뉴스 본 이야기를 나누며 "다 구조됐다는데.. 다행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출구없는 미로속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하는 것 같습니다. 뭔가 억울하고 마음이 아프고 답답해지는 마음은 더해가고 시간이 흘러 1년쯤 지나니 세월호를 입밖으로 말해도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고 찾아보지 않으면 관련 기사는 나오지도 않고..... 혼자서 억울하고 마음아파하기만 했습니다. 이제는 모두 함께 용기를 애서 이 답답함과 억울함을 공감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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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애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막내 아이랑 시간을 보내던 중 티브이에서 뉴스를 통해 소식을 듣고 곧 전원 구조라는 희소식에 기뻐하다 뭔가 심상치 않은 뉴스 흐름에 하루종일 슬프고 우울하고 뉴스만 뉴스만 보았던 기억이 나네요 아가와 함께 보내는 여느날과 같은 일상이었지만 하루종일 세월호에 관심이 쏠렸던 날이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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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평범한 월급쟁이 직장인입니다. 2014년 4월 16일 그 날 오전 9시부터 있었던 아침회의를 마치고 10시가 다 되어서야 사무실 책상으로 돌아와 기사를 보고 사고 소식을 접했습니다. (공교롭게도 국가안보의 수장인 대통령이 처음 보고받았다는 그 시간이랑 같네요..) 1990년대 초반에 제가 초등학생일 때 있었던 서해훼리호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옛날에 그런 큰 참사가 있었으니 이제 같은 실수는 하지 않겠지하고,, 기대를 했고,, 오전에 전원 구조라는 소식을 듣고 역시 이제 시스템적으로 대처를 잘 하는구나하고 안심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말 그대로 기대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오전 근무를 마치고 점심을 먹기전에 매일 헬스장을 가곤 했습니다. 여느 때처럼 헬스복으로 갈아입고 몸을 풀고,, 샤워실과 가장 가까운 쪽의 런닝머신을 택하여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운동을 할 때는 정오뉴스를 보곤했기 때문에 런닝머신 앞에 설치된 TV를 켰더니,,, 뱃머리만 떠있고 수장된 세월호의 참혹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화면의 상단에는 구조자,,,수치가 나왔고, 아직 구조 못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그때 알고 너무도 놀랐습니다. 나와 같은 그 하나하나의 생명과 인생과 세상이 티비 상단에 하나의 수치로 기록되고 있는 것이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제 호습이 멎었을지도 모르는 수몰된 학생들을 생각하면 지금 내 건강을 위해서 땀흘리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오후 근무를 계속해나갔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만 해도 희망의 끈을 놓치는 않았습니다. 세월호 내에 공기가 들어갈만한 공간에 생존자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국가에서 나서서 먼가 해주겠지 하는 기대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기 위해서 있는 국가이니까요. 그런 국가를 믿고 저는 교육도 받고, 군대도 다녀오고, 그렇게 그날도 일하면서 번 돈으로 세금을 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지켜줄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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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날들과 마찬가지로 출근을 하고 근무를 하는중 인터넷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고등학생들이 타고 있는 배 한척이 기울어져 있고 전원구출에 성공 했다는 기사...하지만 얼마 뒤 전원구출이 아닌 생존자와 사망자 수가 보이는 기사를 또 접하게 되었습니다...만약 저 배에 내가 탔더라면 라는 생각과 부모님부터 떠오르게 되더라구요어린학생들이 그 배안에서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을지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잊지못할 4.16 기억이 없다는 우리나라대통령너무나 챙피하고 원망스러운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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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지인과 함께 웹사이트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속보로 뜬 기사를 봤습니다. 화면상의 배는 약간 기운 상태여서, 큰 배니까 그렇게 빨리 가라앉지는 않겠지. 다 구조 되겠네. 하고 가볍게 생각하고 다시 일에 몰두했죠. 오후에야 그 긴 시간동안 아무 구조활동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화가 쏠려서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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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오전 9시가 조금 넘은시간 그날은 연구기관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던 내가 연구조사를 위해 완도 앞바다의 한 전복 양식장 에서 연구조사용 시료채취를 하고있던 시간입니다. 당시 전라남도 소속 연구선이 진도로 구조지원 가던중 우리 근처를 지나가기에 일행중 한분과 연구선의 선원분과 안면이 있어 잠시 정선한 후에 당시 세월호 상황을 들려줬던게 기업납니다. 당시엔 탑승객 전원구조라고 언론에 나왔으며 지원가시던분들도 대수롭지않게 현장 파악을 위해 지원 나간다 하였습니다. 여개선 침몰은 안타깝지만 승객 전원 구조라는 소식에 그래도 다행이다. 라며 대수롭지않게 여기며 본업에 충실했 습니다. 하지만 하루종일 바다위에서 쟉업하고 6시경 육상으로 올라와서 저녁식사하러 들어갔던 식당에서 봤던 뉴스에 경악을 금치 못했 습니다. 전원구조라던 뉴슨 최악의 참사로 보도되고있었습니다. 뉴슬 보던내내 무능력한 정부의 모습에 분노를 삭이지 못했던 그날을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