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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을 정부와 새누리당은 덮으려 했습니다. 교통사고에 불가한데 왜 정부에 책임을 묻느냐. 이 사건이 화자되면 경제가 위축된다. 세월호 특조위는 세금도둑이다. 이런 식이었죠. 그런데 이들이 이렇게 덮을 수 있었던건 여론도 그랬기 때문입니다. 자영업자들이 장사가 안된다며 아우성이었고, 이 사건으로 예능프로그램이 결방되자 시청자들은 슬픔을 강요하지 말라며 화를 냈죠. 많은 국민들이 세월호 이야기 하는 것 자체를 싫어했습니다. 만약 여론이 나쁘지 않았더라면 새누리당과 박근혜정부도 덮으려 하지 못 했을겁니다. 바로 우리가 우리의 여론이 저들이 저런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한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우리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미필적 고의"에 의한 공범입니다. 반성해야합니다. 저부터 반성하겠습니다. 세월호 유가족 여러분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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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기념일에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모든 일정을 취소 했습니다라디오에서 들려오던 유채영님의 .가슴아픈 사연이 지금도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네요엄마가. 대문 .열어놀고 기다리고 있을께사랑한다우리딸.....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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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이 구조되었다는둥 말도 안되는 보도를 보면서 다행이라고 메신저에서 이야기 했던 기억이 나는군요.대체 저 날을 어찌 잊을수가 있는지...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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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일을 하다가 친정 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드렸습니다. 엄마가 말씀하시더군요. "수학여행 가던 아이들이 탄 배가 침몰했다"고.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금세 구조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과 함께, 바쁜 일상에 쫓겨서.그러나 하루 종일 일하느라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와서 텔레비전을 켠 순간,"어? 이게 뭐지?"순.간. 가슴이 철렁, 거의 바다에 잠긴 배를 보며"뭔가 크게 잘못 됐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동안 뉴스와 기사에서 시선을 뗄 수없었습니다. 침몰하는 배와 함께, 우리의 희망과 믿음도 침몰했습니다.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그 아이들이 차가운 물 속에서 고통스러울 때, 별일 없겠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 그.날.그. 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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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약국에서 전원구조 되었다는 오보를 보고 안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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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기억이 납니다. 그날의 전 날과 그 다음날은 무엇을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날 은세월호 사건을 티비를 통해 지켜보고 있던 기억이 생생히 떠오릅니다. 왜 구조를 안하고 있는지 정말 너무 어이가 없었습니다. 제가 알던 대한민국은 그렇게 사건 대처에 무능한 정부가 아니었습니다. 구조를 일부러 하지 않은 것이라는 것은 상식적인 국민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난데없이 유병언에 이목을 집중시킨 것에도 분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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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날을 어찌잊으리44일간 현장 팽목항으로 진도체육관으로 봉사갔던기억이 엊그제갔습니다부모님들의 처참한 모습 차마바라보는것도 죄인이였습니다 7시간 진상규명은 인간이라면 투명히밝혀야합니다 태민20주년 수장천도제를했든,마약프로포폴를 맞았든,정윤x 뒹굴었든 근본없이 행동한거 국민들다압니다. 본인입으로 시인하고 대국민앞에 무릎꾾으세요 그리고 퇴근혜 그리고 죄값달게받으세요. 그래도 죽은사람들 못돌아옵니다 일말의 용서만하겠다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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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큰 사람들을 차갑게 가라앉는 것을 볼 수 밖에 없었지만, 앞으로는 가만히 앉아만 있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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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휴가 복귀한지 일주일도 않되던 그날 업무적응에 쫓겨 정신없는 날이었어요~ 뉴스 알림이 뜨더군요~탑승자가 대부분 학생들이란 소식에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전원구조란 소식에 가슴 쓸어내렸다가 정정기사 보고 멍해졌던 기억이 납니다.내가 엄마가 되어보니 .. 그 기사를 접할 부모의 마음이 조금 아주 조금은 알것같아 더 마음이 미어졌어요구조소식을 기다리며 바쁜 틈틈히 수십번 인터넷을 열어봤지만 기다리던 소식은 없었어요아무 도움도 줄수없는 저같은 사람도 수십수백번 구조소식을 찾아보고 있었는데 대통령님은 그 시간에 뭘하고 계셨나요? 정말 묻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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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IFC에 근무하는데, 여기 엘리베이터에는 LCD 모니터에서 그날의 주요뉴스들을 화면에 자막으로 뿌려줍니다. 그 날 오전에 세월호 침몰, 전원구조 라는 메세지를 봤던 기억이 납니다. " 오 다행이네" 하고 엘리베이터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날 오후 내가 봤던 그 뉴스는 뭔가 싶더라고요... 너무 나도 슬프고 끔직한 일이 었습니다...티비에서는 아직 배가 좀 기울기는 했지만 그래도 온전히 떠있던 장면들이 나왔는데, 사실 그 시각에 배는 거의 가라앉고있었다는 뉴스도 들었고.. 유가족들이 모여있는 회관에는 유가족이 아닌 감시자도 숨어있었고..위로 하러 왔다던 대통령은 유가족들의 손한번 잡아주지 않았습니다.슬펐습니다. 이런 나라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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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자녀들 조차 애태우며 학생들이 구하기를바라보며 졸린데도 안자며 지켜보고있던 그시간에도 대통령은 얼굴도 안보이고 대책도 없이 무작정 가라앉는 배를보며 기적이 일어나기만슬기다렸던 시간...지금 생각해봐도 이해가 안가고요즘 보여준 방송에서 "구명조끼 입었는데...."하며보여준 화면의 얼굴 표정과 눈을보면 꼭 내가 시술위해 마취후 깨어난후 약간 몽롱했던 내눈과 표정이 오버랩되는 것이다 그얼굴에서 나는 심적으로 판단이 되지만 직접 못봤으니 추정할뿐이다 진실은 박대통령 자신과 청와대 측근들이다 자신을 보호하기위해 아는 그들까지 양심을팔아버리는 그들에게 연민의 정을 느낀다시간은 늦지 않았다 지금도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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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무 중 사무실에서 tv로 실시간 상황을 계속 보며 안타까워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마음아픈 그 날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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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력이 날로 감퇴하고 있지만, 그날은 또렷이 기억합니다. 회사사람들과 칼국수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고, TV 에서 흘러나오는 속보에 깜짝 놀랐다가 전원구조라는 소식에 다행이라며 별 일 아닌 것처럼 넘겼었습니다. 그날 오후는 일산 출장이 있어서 이동시간 내내 라디오를 켜두었는데 구조인원수가 계속 줄어들고, 탑승인원도 왔다갔다 하여 정말 불안하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뉴스에 귀기울였던 기억이 선합니다. 아마 그날부터 한동안 저녁마다 jtbc 뉴스를 켜두고 화면에 비추어지는 아이를 잃은 부모님들과 함께 눈시울을 적시며 가슴아파했던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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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와 함께 회사 교육을 듣던중 네이버 실시간 뉴스로 세월호 사고를 접하였습니다.오전에는 전원구조되었다는 뉴스를 보며 안도감에 점심을 먹으로 갔고 오후에 이르러서야 완전구조는 커녕 수백명이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가고 있다는 것을 접하였습니다. 사고가 발생한 오전 시간에 뉴스 어디에도 대통령은 보이지 않았습니다.어디서 무얼 하고 계셨길래 코빼기도 안보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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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새로 생긴 순대국밥집에서 동네 친구와 국밥을 먹으면서 세월호만 덩그라니 화면에 비춰주던 장면을 기억한다. 아무것도 아무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저 세월호만 보여주는 화면. 국밥에서도 세월호가 보였다. 반 이상 남기고 그대로 나왔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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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과 연차를 내고, 어린이집 가기싫어하는 3살 아이와 행복하게 에버랜드로 출발했습니다. 도착후, 친구들의 카톡으로 세월호 소식을 접했고, 곧 다시접한 전원구조 소식으로 기분좋게 에버랜드에서 즐기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이후 저녁내내 뉴스속보에 인터넷에 가슴아픈 소식을 들으며 아이와 함께 손을 붙잡고 설명해주고 눈물흘린것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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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보를 회의중에 접하였다.. 하지만 곧 모두 구조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심하였지만, 이내 구조되지 못한 인원이 300명을 넘는다는 엄청난 소식이~~여객선의 허술하고 형식적인 안전검사, 여객선 회사와 직원들의 안전 불감증, 회사의 영리 극대화를 위한 안전장비 노후화, 사고이후 책임떠넘기기에 급급한 정부기관, 모 하나 선진국이라 얘기할 수 없는 창피한 나라~ 우리 국민은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그리 국가에 희생하며 열심히 살아왔던가요? 하나 지켜주지도 못하는 국가를 위해~지금까지도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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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일이 얼마 지나지 않은 수요일이었습니다그 전날의 다소의 숙취에 멍멍한 머리를커피 몇잔으로 가다듬으며제 업무인 테스트를 하고 있었습니다.회의실에 모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업무를 하던 중누군가 배가 침몰했다고 하더군여그때 다른 누군가 말했습니다" 어 ..금방 다 구조 했대" 그래서..속으로 "우와...."했던 기억이 생각납니다그리고.... 어느 시간 뒤 다른 누군가가뉴스를 봐...아까 오보였대하고 메신저를 주었고그 날부터 뉴스룸을 시간맞추어 보면서하루하루 참혹함을 느꼈던 기억이 있습니다.세월호 유가족분들이 가족을 잃은 그 참담함 고통에 다른 여러 시련을 겪으시는 것을 알면서도 보면서도 한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저도 그 아픈 시간 속에 그분들을 방치하는데 조력한 방관의 죄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기억하겠습니다 그 기억을 그 너머 진실을 기억하여 삶들이 더이상 힘없이 침몰되지 않도록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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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4월... 자격증 시험을 둔 당일.. 뉴스를 통해 확인한 당시 사건은 그저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안전하게 모든 인원을 모두 구조 할 것이라 생각하고 시험장에 입장... 다른일과 다르지 않게 시험을 보고.. 친구들과 전화하고... 그러나 그날의 사건을 절대 잊을 수 없는 그날... 특히 같은 안산 시민으로... 어쩌다 보면 지나가면서 만날수도 있었고... 어쩌다보면 정말 만났던 동생들 일수도 있는데..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차디찬 바다에 있는 누군가의 친구이자 누군가의 자식... 누군가의 오빠... 누군가의 가족... 모두 돌아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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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휴가 즈음이었습니다. 저는 임신중이었어요. 저녁에 신랑도 집에 오고 시아버지께서도 집에 놀러오셨습니다. 그리고 기사를 접했어요. 덴마크에도 뉴스에서 한국 사건 소식에 저는 손이 떨려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신랑은 기사에 많은 배들과 헬리콥터가 출동해 구출을 할 거라며 다른 나라에서도 구조를 보냈다는 이야기를 읽고 안심을 시켜주더군요. 시차로 인해 저희는 다 구조 될 거라는 희망을 그래도 가지고 자고 일어나면 괜찮지 않겠냐는 말을 했어요. 꿈에서 바닷속에 들어가 아이들을 구해오고는 잠이 깨서 네이버 기사를 읽고 고인란에서 지인의 이름을 발견하고 그때부터 울었습니다. 믿기지 않아서 트위터와 네이버를 반복했어요. 미국에서 911이 일어났을때도 전세계 많은 사람들이 그날 자신의 그 뉴스를 들은 순간을 기억합니다. 그런데 이날을 기억 못하는 것은 죄입니다. 거짓 증언같은 단순한 잘못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