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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둘째 아이와 함께 창밖을 보며 놀고 있었어요. 뉴스에서 배가 물에 빠지고 있다고 했고, 다 구했다는 말이 나왔는데 아니었대요.. 그래도 이 상황을 생중계로 보고 있는데 다 구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뉴스를 봤던 기억이 나요. 슬픈 소식을 듣고 있는데 베란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너무 따뜻해서 더욱 슬펐던 그날.. 잊을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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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집에 TV가 없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그해 그날 아침 일찍부터 온종일 알바를 하는라 집 밖에 있었습니다. 알바를 하다가 마트에 갔는데 배가 침몰하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저의 기억으로는 그날 박근혜 부정선거 결과 발표일이었습니다. 뇌리에 스치던 불길한 생각을 애써 지웠습니다. 그것만은 아니기를 제발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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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근무중 우연히 본 티비에서 세월호 소식을 접했고 전원 구조에 안도하고 다시 일을 했습니다 . 그리고 잠시후 전원 구조가 오보였다는 동료의 말에 다시 뉴스를 보고 그리고 뉴스가 저의 생활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뉴스를 보고 생존자가 있는지 얼마나 많은 분들은 가족 곁으로 보내드렸는지 확인하기를 몇달을 했습니다 . 지금도 저는 그날이 생생합니다 . 제가 무슨일을 하다가 그 소식을 접했는지조차 세세히 기억합니다 .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생을 놓아야 했을지도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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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날이라 늦잠을 잤어요.인터넷으로 아이들이 수학여행가는 배가 사고가 났는데 전원 구조되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그래서 그냥 무심히 넘겼어요. 사람 다 구했다니까요.오후에 마사지 받으러 갔는데 마사지사분이 뉴스가 오보였다고 사람 전혀 못 구했다고 알려주셨어요. 그 안에 아이들이 그냥 있고 배가 계속 가라앉고 있다고...집에 와서 그때부터 계속 인터넷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날은 잠도 못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 때 이후로 인터넷 뉴스를 시시각각 확인하는 버릇이 들었어요.그날을 왜 기억 못한다는 건가요? 아무 연관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2년이 지나도록 기억이 생생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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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를 하고 있던 마을 한 노부부의 집에서 티비를 보게 되었습니다. 배가 난파되었다는 소식, 전원 구조되었다는 소식, 그리고 오보였다는 소식, 그리고 이어졌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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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tv에서 세월호가 문제가 있다는 걸 보면서도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날씨도 좋고 해가 있을때 육지가 보이는 곳에서 사고가 났는데 304명이 사망할 거라고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었어요다른 날 기억은 다 잊혀도 그날의 기억은 아침부터 점심먹으면서 남편과 함께 나누었던 대화 하나하나도 기억합니다그 날 먹었던 반찬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난 비정상인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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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선생님들과 어렵게 만들어진 점심 약속 그날전복 해물찜을 먹다 핸드폰에 뜬 속보를 봤다. 처음엔 다 구조라는 말에 안심하고 있었다. 식사후 식당을 나서서 수업하러 갔는데 들리는 소식이 차가운 바다속에 무수히 많은 아이들이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고...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빨리 구해줘야 될텐데 왜 저러고 있는지 이해가 안되고 답답했다. 종일 티비를 봤다. 인터넷으로 현지 중계도 찾아보고 그러나 이 정부는 아무것도 안하는 않았다.나는 경상도 사람이지만 청와대 저미친 닭이 한번도 대통령깜이라 여기지 않았다. 그리고 알았다. 인간에 대한 일말에 정도 없는 비정한 닭이라는걸. 이제 진실을 밝혀야한다. 그 일곱시간 당신이 뭘했는지 그리고 처벌 받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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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저는 중학생이였고 평소같이 학교에 가 다른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수업을 들었어요. 그러다 하교하면서 핸드폰을 보니 세월호 사건이 터져 엄청 난리가 났었더라고요. 이게 뭐지 하고 집에 가서 티비를 켜보니 단원고 학생들 및 여러 명이 탄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소식을 그제서야 접했죠. 학교에서 다른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놀 시간에 그 사람들은 차디 찬 바다 속에서, 공포 속에서 누군가가 자신들을 구해주겠지라는 희망을 바라고 있었을거라는 생각에 괜시리 울컥해져 눈물이 났었죠. 이게 제가 기억하는 당시 세월호 7시간의 기억입니다. 비밀들이 언제까지 숨겨질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정말로 당신이 이 나라의 대통령, 국민의 대표시라면 진상규명을 하셔야죠. 그리고 당신의 늦은 대처로 인해 이제는 닿을 수 없는 곳에 잠들어 버린 이들을 위해 진심어린 사과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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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전 중2학생이었고 그땐 도덕시간이었어요. 선생님이 들어오시면서 애들아 뉴스봤니. 배사고가 났다면서 수업은 안하시고 갑자기 뉴스를 틀어줬어요. 허, 어떡해. 싶었지만 일단 공부가 아니었기에 우린 들떠있었어요. 그리고 영상이 틀어진 순간 반은 고요했어요. 아무 누구도 그 어떤 말도 못 했죠. 갑판은 이미 안보였어요 그리고 한 남학생이 말했죠. 선생님 저거 진짜에요? 우린 실시간이었음에도 믿을 수 없었고 그렇게 한시간동안 영상만 봤어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해요 그때 그 빔프로젝터를 통해 비춰지던 바닷물결과 구조 보트 몇몇 그리고 바닥에 앉아 울고 있던 언니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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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쉬는 시간이라 잠시 내려왔습니다. 습관처럼 마시는 커피.. 교무실에서는 모두 모여 뉴스 속보를 보고 있었지요. 쉬는 시간이니 한 9시 40분 쯤이겠네요. 배가 침몰하는데 전원 294명인지 298명인지 구조했다고 뉴스가 나오더라구요. "참 다행이다." 그러고 수업을 하고 점심시간에 난리가 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뉴스의 오보이고, 아직 배 안에 많은 학생들이 갇혀 있다는 사실을.... 도대체 뭐 한 것일까? 왜 구조를 하지 않았을까? 점심시간 내내 뉴스를 본 기억이 있네요. 너무 무기력한 구조체제 한편으로는 에어포켓을 기대하며 빨리 구조되기를 바라며.... 그러나 시간이 갈 수록 생존자보다는 희생자가 더 많아짐에 언론이 싫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언론은 믿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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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2학년 애들 소풍가던 날이었습니다. 소풍을 보내고 전날 예약해둔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인의 소개였던 곳이라 지인이 오셔서 뉴스이야길 전해주었습니다. 수학여행 가던 배가 침몰한다고 그래서 그 뉴스의 대한 제 답이 우리 애들 소풍갔는데... 였습니다.그래도 전원구조라고해서 다행이다고 하고있었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뉴스를 보니 아니였더라고요.우리애들은 소풍갔다가 다 무사히 집으로 왔는데 그많은 애들은 아직도 못오고 있네요.차가운 물속에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한편이 서늘해집니다. 그아이들이 돌아오지 못한다는걸알지만 꼭 진실만을 밝혀서 남아있는 유가족과 상실감에 빠진 국민에게 따뜻한 온기라도 전해주시길 바랍니다.그때까지 꼭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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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여행 중이었어요. 한국에 큰 일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겨우 겨우 신호가 터지는 곳을 찾아뉴스를 틀어놓고 봤던 기억이 생생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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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봄의 냄새가 완연한 아주 좋은 봄날이었습니다. 아침 9시경 ytn뉴스를 보고 있었죠. 제주로 가던 배가 문제를 일으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속보가 떴습니다. "아 곧 다 구조되겠구나."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넘긴 뉴스는 1시간씩 시간이 흐르며 점점 심각해졌습니다. 어느새 선미만 남기고 가라앉은 배가 전국에 생중계되었습니다. 엄마랑 어뜩하냐 어뜩하냐 사람들 구하겠지 구하겠지 걱정하며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때까지도 흐린 바닷물 속에 보이는 배를 누군가 구해줄 것이라 믿었습니다오후 2시경 임용고시생인 저는 그 날도 독서실로 출근했습니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뉴스를 볼 때까지 생존자는 없었습니다. 꺼멓게 번쩍이는 먹물같은 바다만 화면에 찍히고...저는 내가 뉴스로 무엇을 보았나 믿을 수 없었습니다. 독서실 자리에서 울면서 보던 뉴스화면..그게 제 4월 16일의 마지막 기억입니다.도와줄 수 있었는데 도와주지 못해 너무나 안타깝던 그날은 계속되고 있네요. 미안합니다. 너무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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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이 잊혀지지가 않아요. 학교를 다녀와 컴퓨터를 켜 모든 기사들이 전부 세월호에 관한것을 발견하곤 의아했죠. 이건 무슨일인가 하고요. 근데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었어요. 계속해서 늘어가는 사망자수가 너무나 가슴아팠어요. 저는 그날 기사들을 읽으며 울었어요. 영화나 드라마, 책을 읽으면 눈물을 흘린적은 많지만 기사를 읽으며 눈물을 흘린건 그날이 처음이었어요. 하루종일 기사만 읽고 우울했어요. 학교에서도 세월호 얘기밖에 안했어요. 사건 다음날도 또 그다음날도 계속해서 기사를 찾아읽고 관심을 가졌어요. 특히나 세월호 유가족들을, 피해자들을, 희생자들을 비난하고 욕하는 사람들을 볼때 너무 화가났어요. 세상이 이렇게도 잔인할수가 있구나하고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어느날부터인가 세월호가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어요. 이번에 시끄러워지면서 세월호가 재조명되어 너무 기뻐요. 그리고 이 사건을 잊고있던 제가 못나보였어요. 이 기회에 세월호와 다른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사건들이 모두 해결되기를 바래요. 한국이, 대한민국 정부가 새롭게 태어나기를 빌어요. 온 국민이, 전세계가 가슴 졸이고 아파했던 7시간동안 대통령이라는 분은 도데체 무엇을 하고계셨나요? 그리고 그 분과 함께 일하신 분들은 왜 잘못된 것을 정정하려고 노력하지 않으셨나요? 국민을 위한 정부가 어찌하여 국민의 목소리를 무시하나요? 진실은 언제나 밝혀집니다. 아무리 오래 걸린다하더라도 저희는 꼭 기다릴꺼에요. 모두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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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친 다리 때문에 권고사직 후 집에서 쉬고 있을 때였습니다. 바뀐 밤낮에 멍하니 자취방에 앉아 TV 채널을 돌리고 있었는데 뉴스 속보가 나오더군요. 실시간으로 뉴스를 계속 보고 있는데 가라앉고 있다는 말에 신을 찾았고 전원 구조 소식에 손뼉을 쳤고 그것이 오보라는 것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친 내가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픈 날이었네요... 그저 인터넷에 접속해 있는 돈을 모두 모아 구호물품을 주문해 보내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전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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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 가려고 느즈막히 일어나서 티비 틀었는데뉴스에서 침몰하는 배 화면 나오면서 자막에 여객선 침몰 전원구조 뜬거 보고와 큰일날뻔했다 하고 알바하러 갔는데 그게 아니였음 일하러 가서 애들이랑 계속 그얘기 하고어떤애는 핸드폰으로 뉴스 켜놓고 밥먹고 야구장알바여서 그날부터 한동안 앰프 사용 안하고 집가서 엄마아빠랑 어쩜좋냐고 얘기하고 동생이랑도 얘기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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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저는 초 6이였고 수학여행 출발 당일이였습니다. 저희 학교는 경주로 가기로 했고 중간에 휴게소에 들려서 밥을 먹고 가기로 하였습니다. 휴게소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뉴스에서 세월호 얘기가 나오더군요. 이때까지만 해도 죄송하지만 그렇게 심각한 사고인지 몰랐고 그냥 사고났나보다 하고 넘어갔습니다. 근데 수학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잘 갔다 왔냐며 걱정을 하시더군요.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어떤 끔찍한 일이 일어났는지를. 이건 나중에 알게된 사실인데, 사실 저희 학교가 수학여행을 제주도로 갈지 경주로 갈지 투표를 했었는데 애들 대부분이 제주도에 투표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교장선생님은 경주를 택하셨고 저희는 엄청 교장선생님 욕을 했었습니다. 근데 어머니께서 그때 교장선생님께서 제주도를 택하셨으면 저희는 그 배 안에 있었을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당일에 탈수 있는 배가 세월호밖에 없었답니다. 비행기를 타고 갈 여건이 안됬어서 무조건 배를 탈수 밖에 없었거든요. 정말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더욱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아니, 잊으려고 해도 잊혀지지도 않을것 같네요.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날의 7시간을.(서울 ㅇㅅ초 교장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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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함께 일하던 분의 한마디 말씀도 기억납니다.그날 외근이라 충무로역으로 출근했었고뉴스를 접할 환경이 아니라 오전에는 소식을 거의 알지 못했습니다.다만 함께 일하던 다른 분들의 얘기를 들어 선박 사고가 있었다는 것만 알았습니다.충무로역에서 외근할 때 가끔 들르던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사고에 대해 동료들과 이야기할 때만 해도, 아직 구조 중이라고 하니 저녁쯤엔 다들 구조했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했습니다.퇴근하고 집에 들어가 TV 뉴스를 켰을 때 첫 화면이 뒤집어진 채 잠겨가는 세월호의 모습이었습니다.충격으로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뉴스만 봤습니다.우리 국민 중에 그날 4월 16일의 일을 기억 못하는 사람이 정말 있을까요.그날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자들이 있다면 기억이 돌아오기를 바랍니다.그날의 진실이 밝혀지고 그들이 죗값을 치러야만, 아직까지 세월호에서 나오지 못한 분들이 온전하게 가족 품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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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자취방에 있었고 그날은 아침부터 부모님이 다녀가셨습니다. 부모님이 아침일찍 오셨고 그 와중에 네이트앱에서 속보가 떴어요. 세월호가 침몰했으나 전원구조했다고.. 부모님과 안심하며 얘기하고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다시 속보가 떴어요. 전원구조 오보라고... 그리고 하루종일 티비와 핸드폰만 들여다봤습니다. 마침 그즈음 있던 일들이 모두 취소되어서 일주일 내내 집에서 뉴스만 봤던 기억이 납니다.... 전원구조라는 속보와 오보라는 속보는 아직도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아요... 그때 고2였던 제 동생 친구들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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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방과후 ucc 시간이었습니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모르다가 컴퓨터를켜 인터넷을보니 세월호가 실시간검색어에 올라있더라구요. 기사를 봤더니 400여명이 모두 안전하게 구조되었다고...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께서도 다행이라고하며 안도했습니다. 방과후시간이끝난뒤 집에와서 다시 컴퓨터를키니 오보다 뭐다 말이 많더라구요. 궁금해져서 찾아보니 실제로 구조된사람은 아직 40여명남짓.. 나머지는 실종상태라고 다시 기사가 나있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나머지 사람들을 모두 구조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몇시간이 지나고 하루 이틀이지나도 더이상의 구조자소식은 들려오지않고 사망자의 시신을 찾았다는 뉴스만 뜨며 세월호 실시간페이지에는 사망자수만 점점 늘어가더군요.... 유가족분들께서 가슴이 찢어져라 목놓아 우시는 모습을보고 저도 많이울었습니다. 수학여행을 갔다온 딸.아들이 시신으로 돌아오면 얼마나 상처가 깊을지 상상도 되지 않았습니다. 얼마후 광화문 합동분향소에 친구들과 다녀왔는데, 하얀 국화를 놓고 절을하다보니 눈물이 나오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많은 언니오빠들이 죽어가는동안 도대체 정부는 무엇을하였고, 어떤지시를 내렸는지 아직도 알수가 없다는사실이 막막하고 답답합니다. 유가족분들께서 원하는것은 몇억의 돈이 아닙니다. 그저 왜 사랑하는 자녀분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죽었어야하는지, 어째서 구하지 못한건지에대한 진상규명을 원할뿐이십니다. 진상규명은 어려운것이 아닙니다. 그저 그 7시간동안 박근혜 대통령은 한 나라의 수장으로서 어떤일을 하고계셨는지 말씀해주십시오. 국민들이 듣고싶은것은 변명이 아닙니다. 지금도 많은 국민들이 세월호를 회상하며 눈물흘리고있습니다. 양심이 있으시다면 400명의 목숨을 구하지 못하신것에대한 책임, 나라를 이토록 망쳐놓은 책임, 국가의 위상을 낮춘 책임, 국민에대한 믿음을 저버린 책임을 지십시오. 명예를 죽도록 중시하는 대통령님이시라면 탄핵보다는 하야하시는것이 좋을것으로 판단됩니다. 반드시 하야하십시오. 하야하시지 않는다면 기다리고있는것은 탄핵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