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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가는 길에 들여다 본 스마트폰에서 수십 개의 속보가 떴습니다. 배가 침몰되었다는 겁니다. 이윽고 전원구조되었다는 소식에 친구와 별일이 다 있다며 점심을 먹었죠.평소처럼 수업을 듣고 하루가 마무리되어가는 4시 5시. 아침에 들은 기사가 오보라는 소식과 함께 급증하는 사망자수 실종자수를 바라보며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못하며 밤잠을 설쳤던 것이 기억납니다.그날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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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생활 중 가장 중요한 졸업작품 프로젝트로 작업에 매진해 전날 밤을 새우고 정오가 다 되어서야 자취방에서 눈을 떴습니다. 오후 두시에 있는 전공 수업에 가야하기 때문에 씻으려다가 포털에 들어가본 저는 메인을 가득 메운 선박 사고 기사들에 침대 위에 앉은 채로 꼬박 한시간을 기사를 찾아 읽다가 결국 수업에 결석을하고 온 하루를 번번히 뒤바뀌는 보도에 혼란스러워하며 보냈습니다. 내가 나가지 않으면 누구와도 만날 일 없는 자취방 한구석에서 저도 마치 침몰하는 것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물이 차오르고 있을 배와는 전혀 다른 편안한 자취방이었지만 불도 켜지 않고 밥도 먹지 않고 구석에 앉아 믿기지 않는 하루를 그렇게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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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8시 20분경 학교에 등교하고 평소대로 티비를 켰습니다.그리고 집안 일을 하던중 우연히 화면에 여객선 침몰 속보가 뜨는 걸 보고 청소를 멈추고 티비를 봤습니다.곧 전원 구조했다는 앵커의 말을 듣고 마음을 쓸어내며 집안일을 계속했죠.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티비는 끄지 않고 있었는데 시시각각으로 들려오는 소리가 달라졌습니다.처음엔 전원구조. ...구조인원 숫자는 점점 작아지고 점점 많은 아이들이 아직 구조가 되지 못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발만 동동 구르며 주변 지인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뉴스 좀 보라고....점심시간이 훌쩍 지난지도 모르고 티비보고 엉엉 울다가 기도 했습니다."하느님 제발....아이들을 구해주세요...제발 .."그날을 물한모금 넘기는 것도 밥한수저 뜨는것도 할수가 없었습니다.저 차가운 바다에 아이들이 갖혀서 엄마아빠를 애타게 부르며 살려달라 버둥거렸을 생각에...왜 이렇게 구조자 집게도 안맞고 뉴스는 찌라시만도 못한가.대체 국민안전처에선 무엇을 하고 있는가.너무 힘들었습니다.몇일전 광화문 집회 참석해서 세월호 유족들이 세워놓은 분양소에 갔을때...차마 고개를 들어 아이들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어여쁘고 어여쁜 우리 아이들에게 어른으로서, 이나라 국민으로서 너무나 미안하고 미안했습니다.우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어른이라 너무 미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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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9시까지 출근을 해서 일을 하다가 11시 30분에 이른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으로 향했었죠tv에서는 세월호 침몰기사와 함께 전원구조라는 자막을 내보내고 있었습니다 그걸보고 "아 다행이다" 많이 놀랐겠지만 전원구조라니 맘을 놓고 있었습니다식사를 마치고 다시 일터로 돌아와 일을하는데 다음텀 식사자들 얘기가 구조자는 일부에 불과했고 아직 배안에 남았다고......이 얘기를 듣는 순간 차가운 물에 있을 아이들이 너무 가여웠고 마음이 아팠습니다그날의 TV 오보는 뇌리에 남아 아직도 안타깝습니다그 자막이 사실이었더라면.......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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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일본에서 마침 비즈니스 미팅 건으로 회사에 찾아온 일본인 분이 있었어요. 저는 회사 회의실에서 간단히 제품에 대한 계획안 논의를 마치고 그분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야기 내용 중 그분이 글쎄 "오늘 아침 뉴스 보니까 한국에서 선박 하나가 사고 났다는데요"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마침 그 소식을 딱 휴대폰으로 확인했는데, 문제는 제가 오보를 봤다는 것이었죠. "그거 다 구조되었다는데요? 다행이네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어요. 그리고 그날 오후엔 뉴스에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거짓말을 한 것과 같은 미안함이 제게 몰려왔어요. 오보가 현실이길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너무나 안타까웠어요. 이렇게 저는 2014년 4월 16일을 또렷이 기억합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어떡해..."를 속으로 외치던 그 날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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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등교시키고 티비를 보는데 세월호 뉴스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전원 구조라는 뉴스를 접하고 가슴을 쓸어 내렸네요. 날이 맑은 오전에 난 사고라서 다행이다리는 생각을 하고 목욕탕에 갔습니다. 사우나를 하려고 사우나실에 들어갔는데 사우나안 티비에서 오보였다는 사실을 알고 너무 놀란 기억이 납니다. 그날의 기억이 시시각각 너무 선명한데 그날을 전혀 기억못하는 사람이 있다니 너무 신기하네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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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뉴스속보가 올라왔다고등학생들 수학여행 가던 여객선 침몰전원 구조배에 약간 구멍이 났는데안전한 배로 옮겨갔구나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대수롭지 않은 일이어야 했다그런데 그게 그렇지가 않고자꾸만 구조자 숫자가 바뀐다핸드폰을 손에서 뗄 수가 없었다세월호 뉴스 검색과 새로고침을 반복하며오후쯤 대통령이 헛소릴 지껄이고저 사람은 원래 헛소리 전문이지그랬는데그냥 그렇게 넘기면 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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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충북 옥천에서 조그만 제조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 날, 그 시간 저는 청주시 성안길에 있는 "충북중소기업우수제품 전시판매장" 에서 월례행사인, 입점업체 할인행사 중이었지요!.판매장 출입구 밖에 판매대를 설치해 놓고 홍보, 판매중, 옆 매대의 사장님 께서 그런 엄청난 소식을 들려주었어요.온 하루가 다 저물어가도록 뉴스에 귀기울이며 빨리 학생들을 모두 구조해 달라고 조바심치며, 기도했었던 기억이 또렷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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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파서 지울 수만 있다면 아니 그전에 돌릴 수만 있다면 그 날 4월 16일의 베트남 사무실에서 설마 몇십명 아니 몇명만 어찌 잘못되더라도 다 구조되겠지 하고 믿고 기도하고 또 바랬다그렇게 큰 배가 벌건 대낮에 해경과 심지어 언론사 카메라가 생중계하는 그곳에서 그렇게 많은 어린 생명들이 꿈도 못펴보고 그리 갈거라고는 결코 생각지 못했다 지금도 그때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내 스스로가 부작위의 살인동조자같아 한없이 괴롭고 힘들고 아이들 볼 면목이 없다천사같은 아이들 생각만하면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른다 무릎꿇고 그 아이들에게 비는 마지막 전에 모든 진실을 숨김없이 명명백백 밝히는 것만이 살아있는 우리모두의 숙제이다그래야 천사같은 아이들에게 편히 눈감고 쉬라는 마지막 인사를 보낼 수 있고 나도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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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는 트레이너로 헬스장에서 일하고 있었던 때입니다. 런닝머신에 있는 티비들이 일제히 침몰해가는 파란 배를 비추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한가한 시간대였어서 걱정스럽게 바라보았ㅈ만 전원 구조라는 말에 다행이다 하며 뒤돌아서 운동을 가르키고 회원들과 이야기를 하였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되돌아봤을때는 오보였다는 기사가 나왔었죠. 그대로 휴게실에 들어가 기도를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 이렇게나 제 자신이 저의 기도가 무기력하게 느껴졌던 적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하루가 끝날때까지 실종인원의 숫자는 줄어들지 않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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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 무단 결근으로 매장오픈하고 주방이모님과 잠깐 티타임을 갖고있는데 핸드폰으로 사고소식을 접했죠 처음 사상자없이 전부 구조되었다는 소식에 기뻐하다 오보라는 소식에 안타까움에 답답함에 한숨만 쉬고일하던 날 기억합니다 잊지 못합니다. 그날을 어찌 잊을까요 매장에서 한숨만쉬고 아무것도 할수없기에 미안하고 미안한 날이 였는데요......기억합니다 그날의 7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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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 날을 생각하는 건 정말 힘이 듭니다. 짙고 짙은 깊은 바다를 바라만 봐도 아이들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지며 슬픔이 밀려옵니다.2014년 4월 16일 런던에 살 때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원구조"란 뉴스 자막 정확히 보았구요. 그래서 한숨돌렸는데, 그게 아니였다고 소식을 들으면서 분노를 어떻게 삭힐 수가 없었습니다. 내 자식이 소중하면 남의 자식도 소중한 거 아닌가요? 그 예쁜 아이들 구조는 커넝 아무것도 하지 않은 우리 어른들, 무슨 말로 사과가 되겠습니다. 아이들을 잃은 가족분들께 고개 숙여 사과드리고 위로해드리고 싶습니다. 지금은 귀국해서 바다가 쉽게 보이는 곳에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바다를 쳐다보는 것도 아이들 생각에 힘들 때가 많습니다. 오래오래 기억하겠습니다. 기억하는 것으로 유가족분들께 작은 위로가 되셨으면 합니다.아이들아, 너희들이 느꼈을 두려움, 생각만해도 가슴아프고 슬프구나. 우리를 용서하지 말아라. 너무너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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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저문다. 노을이 잠긴다. 저녁 밥상에 애기가 없다. 애가 앉던 방석에 한 쌍의 은수저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한밤중에 바람이 분다. 바람 속에서 애기가 웃는다. 애기는 방 속을 들여다 본다. 들창을 열었다 다시 닫는다. 먼 들길을 애기가 간다. 맨발 벗은 애기가 울면서 간다. 불러도 대답이 없다. 그림자마저 아른거린다. <은수저>, 김광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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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전체가 침체되어있었던 그 날을 기억합니다. 늦게 뉴스를 접한 탓에 황망한 상태로 버스안에서 트위터와 뉴스를 읽으며 누구보다도 빨리 "좋은 소식"을 찾아내려고 애썼습니다. 집에 돌아가는 길 내내 울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을 기억합니다. 좀 더 나은 현실을 만들어가겠다는 목표로 대학원생이 되었음에도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몸을 떨고 눈물을 삼켰던 것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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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 쉬는 시간이었다. 습관처럼 휴대폰을 열어 포털사이트를 들어갔다. 여객선 한 척이 사고가 났다는 기사가 떴다. 배 안에 있던 사람은 전원 구조됐다고 후속 기사가 나왔다. 친구에게 이야기하니, "그래?" "이게 뭔 일이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망망대해도 아니고, 우리나라 바다에 배가 가라앉는 다는 말에 나도 친구들도 설마 그곳에서 사람이 죽을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자조적으로 "이 나라는 답이 없어"라고 말하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내게 위기가 닥쳤을 때 국가가 최선을 다해 나를 구해줄 거라고 믿고있었다. 그리고 그들도 예외는 아닐거라고 생각했겠지. 그 때의 나는 그만큼 어리석고 순진했다.아직 많은 사람이 그 배 안에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건, 처음 기사를 접한 그 쉬는시간 이후로부터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다. 학교는, 우리 교실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무거운 공기만이 감돌았다. 일부는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날, 평소처럼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뉴스를 보며, 오보가 아닌 그 기사가 오보이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그 순간의 긴장과 정적, 나는 아직도 그 모든것이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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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내가 다른 회사에서 파견근무 하는 날이라 우리사무실 일에서 연락오는 일도 처리 해야되서 컴퓨터모니터를. 계속보면서 일을 하게 되었다.9시부터 하루종일 모니터로 생중계 되는 그날을 .어떻게 구조자가 그렇게 없을수가 있는지 ? 사람을 구하고자는 행동이 저렇게 없지?시종일관 이상해 ?라고 하며 봤기에 잊을수가 없는 날이다.그래서 더 궁금하고 알아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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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4.16아들학교 음악콩쿨예선이열리던 날예선장소 내부는 공개안하지만드가는거 복도에서 보는 건 괜찮다해서 학교에 가기로 한 아침뉴스는 세월호소식을 전했다 전원구조됐다했고부모들이 진도로 가고있다고했으니맘을 놓았다학교로 가던 버스안에서무심코 인터넷기사를 봤더니전원구조는 오보란다버스에서 내려만난 다른 엄마에게전원구조가 오보였으니 어쩌냐고말했고그래도 어캐되지않을까근데 아님 어쩌냐그런 얘길했다예선이 치러지는 동안아들이 줄을 잘서는지긴장하는건 아닌지보면서도구조는 잘되는지 신경이 쓰였다그애들은 죽어가고있었을텐데나는 고작 학교콩쿨에서아들홧팅을 외쳤다니죄인이된 기분이었다그날일은아침부터 오후까지너무 생생하다하루종일 불안했고입이 바싹말라쇠맛이 났다그런데기억이 안나신단다그 기억을 못하신다면중증치매는 아니라도중증도치매는 되시겠다사무처리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상태로성년후견받으셔야겠고의사같은 전문직을 영위할수는 없으시겠다본인이 전문직이면나머지 사람은 다 바보인줄 아는건가그런 거짓말에 속는댁들이 생각하는그 바보같은 "우민"은 존재하지 않는다최소한 그럴듯하게 해라정말 기억이 안난다면당장 의사 그만두고성년후견신청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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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고라서 유비쿼터스라는 시간이있었는데 1교시부터3교시까지였고 수업중 몰래 인터냇으로 딴짓을 하다가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친구한테도 기사를 보라고 알려서 갑자기 html하다말고 기사를 보았습니다. 전원 구조했다는 속보가 뜬 후에야 다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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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나는 재수학원에 있었다.여느날과 다름없이 새벽에 나와 학원에서 공부하고 있었다.핸드폰을 포함한 모든 전자기기를 냈기에 우리는 누구하나 그 끔찍한 소식을 몰랐다.누구하나 알려주지 않았고, 우리는 저녁시간이 되어서야 알수있었다..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얘기를 해주시던 사감선생님의 얼굴 그시간이후 친구와 나누던 대화까지도 기억이난다...그들은 기억하지않으려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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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또래 친구들처럼 나 또한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가기로 한지 몇주가 채 남지 않았었다 .친구들과의 즐거운 여행으로 계획 되었고 학창 시절 마지막 수학여행이기에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 그날만을 기다렸고 설레어 했다.수학여행 가기 몇 주 전 우리는 중간고사 앞두고 모두 번호 순서대로 일렬로 자리배치를 맞춰 자습을 하고 있었다.스마트폰이 보급화 되고 인터넷 검색을 매일 하는 우리는 그날도 지루한 시험공부에 잠깐 머리 식힌다는 이유로 인터넷에 들어가 당연스럽게 인기검색어를 눌러보았다.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검색어는 단원고, 세월호 침몰, 수학여행을 떠난 내 친구들이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다.그런데 그 소식을 듣고 벌컥 놀라 한 아이가 소리치며 알렸지만 곧 몇 분 뒤엔 다른 언론의 기사로 전원구조라는 속보를 읽었고 모두 안전하게 전원구조가 되었다는 말에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안심했다.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사실이 아니었다.왜 내 친구들은 그 차가운 바다속에 있어야 했을까.처음부터 끝까지 의심이 간다. 배가 침몰,아니 날씨가 안좋은데 오직 세월호만 출항을 한 것 부터 배가 가라 앉는 골든타임. 7시간의 모든 일들.. 뉴스를 보며 맘 졸여 했고 답답해했다.. 왜 아직도 아무것도 변한게 없고 밝혀진게 없는지 지금 현재도 의심 스럽다.7시간동안 무엇을 했길래. 아무런 지시 없이 내 친구들의 살려달라는 외침을 져버리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