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날은 뮤지컬 공연장에서 제가 반딧불이었습니다. 뉴스를 보고, 또봐도 제대로된 구조 소식은 볼 수 없었습니다.미안합니다. 잊지 않겠다고 했는데, 삶에 치이고, 언론에 치여 어느샌가 말을 꺼내는걸 주춤하게 되었습니다.잊지 않겠습니다. 억울함을 풀어줄 그 날까지 하나의 촛불로서 힘내겠습니다.
-
철야근무를 마치고 집에돌아와 티비를 켜두고 보일러를 작동시키려고 안방에들어가는순간 긴박한목소리의 뉴스속보를 듣고 뛰어나와 티비를본순간 그날의 시간이 멈춰버렸습니다. 같은 부서에계시는 여사님의 둘째딸 소진이.. 제주도로 수학여행간다며 새 운동화를 사러 다녀왔다는 얘기를 들은지 며칠되지않을무렵 제 눈앞에서 서서히 가라앉고있었습니다. 그후로 한달남짓 시간이 지나 소진이는 수줍은 미소를 띈 영정사진으로 돌아왔습니다. 소식을듣고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는데 장례식장안 모든 사진들이 교복차림의 단원고학생들이었습니다. 말로 형연할 수 없을 고통에 숨쉬기조차 힘이들었습니다.슬픔... 슬픔... 그것말고는 표현할 글자가 없었습니다. 내생에 그렇게 많이 울어본적이 없던거같습니다.
-
저는 그날 평소와 다름없이 운동을 다녀와서 전날 한 드라마를 다시 보려고 티비 앞에 앉았어요.채널을 돌리다 자막으로 뜨는 세월호 뉴스를 접하곤 곧 전원 구조했다는 문구에 별로 대수롭지 않게넘겼어요. 그러나 다시 정정 뉴스가 나오고 아이를 키우는 부모마음에 ... 정말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를 정도로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
오전에 스마트폰에서 한줄 뉴스를 통해 세월호 소식을 들었습니다. 바로 연이어 단원고 학생 전원구조라는 뉴스를 보고 바로 수업에 들어갔습니다. 오전수업을 끝내고 나오는 길에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세월호 이야기를 하기에 전원구조라고 하던데 라면서 다시 확인해보라고 했습니다. 이후 뉴스를 통해 배가 거꾸로 쳐박혀있는 모습을 저녁이 될떄까지 보아야했습니다. 절대 그 날을 잊을수 없습니다. 노통의 그날도 5월 23일 새벽에 받은 연락에 절대 믿지 않았습니다. 정말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역시 잊혀지지 않고 온 국민이 느끼던 느끼지 않던 모두가 갖게 된 또 하나의 상처입니다. 아이들의 부모님은 물론 온 국민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진상규명입니다. 그리고 책임자를 철저히 처벌해야합니다. 박근혜는 탄핵, 부역자 처벌 그리고 세월호는 진상규명입니다.
-
모든 정보를 인터넷으로 접하는 게 더 익숙해진 몇 년, 지금도 tv를 거의 보지 않는다. 프리랜서인 나는 그날, 웬일로 명 개월만에 tv를 켰다. 무심코 채널을 돌리다 뉴스채널로는 유일하게 열어놓은 ytn에 배가 하나 기우는 영상이 보여 순전히 호기심에 채널을 고정했다.아이들이 탄 배가 기울고 있었다. 그런데 바다에 사람이 떠 있는 게 안 보였다. 앵커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다행히 사람은 다 나온 상태고 배만 가라 앉고 있나보다 했다. 채널을 돌려 드라마 재방을 시청하다 ytn으로 채널을 돌렸다. 어느새 카메라는 단원고 강당에 모여있는 학부모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엄마아빠들은 사색이 돼 있었다. 어차피 무사할 텐데 뭘 저렇게 걱정해....걱정도 팔자다~~생각했다.아이들 전원 구출!역시~~~그럼 그렇지....그런데 아니었다.그날...밥도 못 먹고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물에 빠져 죽을 고비를 넘겼던 경험이 오버랩되면서 숨 막혀할 아이들 생각에 거의 미칠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눈물이 났다.그리고 일주일 넘게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지금도 그 또래 아이들만 보면 눈물이 난다.정말 미안하다...
-
아이가 만 세살이 채 안되었었어요. 아이에게 밥을 먹이다가 전화기로 소식을 들었습니다. 왜 자길 봐주지 않느냐고 찡얼거리는 어린애에게 가만히 좀 있어보라고, 반쯤 정신이 나간듯 화를 내다가, 뉴스를 보다가, 뒤집어진 배 안에 내 자식이 갇혀 있다는게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생각에 결국 아이를 안고 엉엉 울던 기억이 나요. 그날의 그 참담한 마음이 아직 생생합니다. 수백명의 목숨이 눈앞에서 사그라져가던 그 끔찍한 순간이 기억 나지 않다는건 그 순간이 자신들에겐 그닥 큰 의미가 없었다는 이야기 겠지요. 세월호는 비단 피해자와 그들의 가족뿐만이 아니라 그 날을 살아내야 했던 우리 모두의 트라우마 입니다. 입에 차마 담지 못할 온갖 막말로 진실을 애원하는 유가족들을 몰아세우는 그들은 우리 모두의 상처에 난도질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겁니다.
-
2014년 4월 16일, 저는 논문학기의 대학원생이었습니다. 논문 세미나는 매주 수요일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3시간이었죠. 논문세미나 시작 전에는 몰랐던 것 같아요. 세미나 쉬는 시간에 사람들이 세월호 사건에 대해 말해줬지만 구조 중이라고 했죠. 그래서 별 일 아닐 거라 생각했어요 금방 모두 구조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세미나가 끝나고 지친 심신을 이끌고 집에 가며 정류장 앞 횡단보도에 섰어요. 신호를 기다리며 핸드폰 인터넷 창을 켜서 뉴스기사를 봤죠. 그때 처음 알았어요 구조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걸. 횡단보도에 서서 기사를 접했던 순간이 생생해요. 하지만 구조된건 아니지만 온힘을 다해 구조중이라고 하니까 당연히 구조되겠지 생각했어요. 밤을 새서 피곤한 마음에 자고 저녁에 일어나보니 웬걸 구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더군요. 대통령은 뭘하고 있는지 나타나지 않다가 제가 일어난 시점쯤 왔다고 하고요. 자다 깬 저조차도 대통령이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있단 생각이 들었어요. 나처럼 잠이 더 깬 느낌. 그리고 그 후에는... 20140416, 나보다 어린 동생들이 추운 바닷물 속에서 두려움에 떨어야했던 그날, 살아있었음에도 어른들이 구해주지 못했던 그날, 그리고 함께 죽은 많은 사람들. 잊지 않을 겁니다.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 벌을 받게 만들 겁니다.
-
출근하고 한숨 돌리면서 뉴스를 검색하다가 기사를 보게되었어요...뒤돌아 다른 직원에게 얘기했어요. 수학여행 배가 침몰해서 못 구하고 있다고... 너무 놀라 얘기하다가... 곧 구했다고... 다행이라고 했는데 오보였다는 기사를 봤죠...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까요....이토록 생생한 날인데...다시 되돌리고 싶은 날인데...
-
또렷이 기억합니다~ 아버님 조직검사 하러간 시간에 홀러 기다리다 배가 침몰했고 - 전원 구조 했다는 기사..
-
스터디모임이 끝나고 자주 가던 식당에서 이른 점심을 먹으면서 뉴스를 봤어요. 봄이지만 제법 추운 날씨였고 그 날 그 시간 식당에는 사장님과 저, 다른 손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처음 들은 소식은 신속히 구조작업에 들어갈 것이니 전원 무사히 생존 가능할 거란 희망적인 얘기였어요. 밥을 먹으면서 무사히 구조될거라니 정말 다행이다 생각했던 스스로가 한심해지네요.
-
그 어느때처럼 임신한몸으로 뒤뚱뒤뚱 아침에 화장실을 갔다가 티비를 켰는데. 가슴이철렁배가 침몰해가는 뉴스의 장면그리고 전원구조.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얼마후 배는 더 점점 가라앉고 생존자, 사망자 숫자가 왔다갔다 하는 뉴스를 보며 임산부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태교에 않좋다고 슬픈영화,드라마도 안봤는데정말 슬픈 날이었다. 아직도 배가 침몰한 사진보면 무섭고 슬프다머리속에 지울수없는 컷이 되어버렸다
-
뉴스를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고.....퇴근후에는 골방에 앉아 울었다. 내 지인, 내 아이가 아니지만 흐르는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그렇게 허울뿐인 구조작업이 사실상 실패로 종료되기 까지, 생중계화면을 보면서 계속 울었다. 화면속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무기력한, 절대 잊지 못할 그 때 그 상황과.....7시간 만에 나타난 최고 책임자의 입장표명. 절대로 잊지 않는다. 그 때 흘린 눈물만큼 네 눈에서 피눈물을 볼때까지.....
-
그 날, 저는 제주도에 있었습니다. 세월호가 안전하게 도착했었어야 했을 그 섬, 제주도에 말입니다.애인과 함께 가는 첫 여행지로 결정했던 제주도, 그 섬에서 첫날을 보내고 둘째날 아침. 숙소에서 그 날의 관광을 위해 나가려던 저와 애인은 뉴스를 보았습니다.배가 제주도 인근에서 침몰하고 있다고.처음에는 사고네... 하고 생각하다가, 제주도 근교라고 하니 별 걱정 없이 나갔습니다.저는 우리나라를 믿고 있었거든요. 당연히 별 일 없이 구조하겠지, 먼 바다도 아니고 제주도와 내륙 사이라는데... 하면서 나갔습니다.그리고 점심을 먹을즈음, 침몰했던 배에서 승객을 전원 구조했다는 뉴스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오보였습니다. 하루 종일 기분 좋게 관광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저와 애인은, 낮의 뉴스와는 전혀 다른 보도내용을 보게 되었습니다.구조된 사람은 적고, 침몰한 배 안에 갇힌 사람들이 많다고. 전원 구조는 오보였다며...그 뉴스를 보면서, 그 날 즐겁게 돌아다녔던 것들이 갑자기 죄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예정되었던 관광을 모두 마치는 동안 저와 애인은 참 무거운 기분이었습니다. 뉴스에서는 계속해서 좋지 않은 소식을 보도하고 있었으니까요.이게 제가 보냈던, 2014년 4월 16일의 기억입니다. 세월호에 탔던 희생자 분들과 생존자 분들이 안전하게 도착하셨어야 했던, 그 제주도에서의 참 슬픈 기억입니다.
-
오전에 티비 화면에서 전원 구조 속보를 본 뒤, 다행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직장으로 출근했지요.. 제 직업은 과외 선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보였다는 소식과 함께 하루 종일 핸드폰을 잡고 제발 거짓말이길 바라며 간절히 기도했어요. 빨리 사람들이 다 구조 되기를.. 마지막 수업은 밤 10시에 있었는데 까맣게 물들어버린 바다에 마지막 선체 부분이 가라 앉던 장면이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그 과외 학생도 고2였는데.. 수업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제가 본 장면이 진짜인가 싶고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분명히 다 구할 수 있었는데, 아침만 해도 다 구할 수 있었는데! 너무나 큰 충격에 눈물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한 일주일은 멍하게 지냈던 것 같습니다.. 한 명이라도 살아 돌아오리라 믿으면서요. 구조 작업 하고 있다고 그랬으니까요!!!!그 후로 매년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던 그 때가 오면 그냥 눈물이 납니다.. 눈물이 참아지지가 않습니다. 심장이 갈기 갈기 찢어지듯이 괴롭고 고통스러워 통곡합니다. 결코 잊지 않을 겁니다. 세월호 관련자들 모두 천벌 받기를 기도할겁니다.
-
아침에 일어나서 인터넷을 뒤적거렸습니다. 배가 가라앉고 있다는 이야기를 봤고, 전원 구출되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현장 소식이 전해지고, 현장의 화면이 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단 한명이라도 구해지기를 기다리면서, 무엇이든 일어나기를 기다리면서 하루종일 멍하니 기사만 뒤적거리고 있었습니다.
-
그날 ytn 뉴스 보도만 맏고 안심했었습니다. 진실을 찾고 싶습니다.
-
전날 도배가 끝나지 않아 짐들이 엉망진창인 집에 혼자 가서 도배하시는 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오전에 잠시 친정에 갔는데 배가 넘어갔지만 전원구조 소식을 듣고 아, 이제 우리나라도 이 정도 수준은 되는구나. 몹시 흡족해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그날 티비도 인터넷도 안 되던 집에서 나는 내 새끼 데리고 다정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 시간동안 304명의 사람들이, 그것도 대부분이 열일곱 어린 아이들이었던 그 사람들이 차가운 바다속에 허망하게 스러져갔던 것에 아직도 미친듯이 화가 납니다.그동안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노란 리본 붙이고 다니며 잊지 않을게. 언젠가는 이 말도 안 되는 죽음의 진실이 밝혀지도록, 허망하게 간 것만은 아니도록 잊지 않을게. 하는 마음 뿐이었지만이젠 아니죠. 부패가 지나쳐 스스로 썩어넘쳐나 주신 이 나라의 대통령 박근혜씨 덕분에 언젠가가 코 앞으로 다가와주었네요.대통령과 그 부역자들은 얼른 끌어내려져서 진실을 밝혀주세요.
-
직장인 백화점에서 엘레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여자친구가 뉴스봤냐고 카톡을 보내서 뉴스를 봤고, 일하던 중에도 전원 구출 오보를 포함해서 세월호 관련 뉴스를 계속해서 확인했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사건이라 주변에서도 계속 그 이야기만 했던 것을 기억 합니다. 기억이 안난다는 진술로 일관하는 범법자들 모두 처벌받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
아직 타지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는데 점심시간에 같이 일하는 동료 두명과 점심먹으러 간 식당에서 뉴스를 봤습니다. 동료 두명이 누구였는지도 기억나고 메뉴가 뭐였는지도 기억납니다. 처음에는 어쩌다가 저렇게 됐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주변에서 구조작업하고 있는 것 같은 풍경의 보도를 보고 곧 구조되겠네 라고 생각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구하지 않았어.
-
고3이였어요. 오전에는 핸드폰으로 배가 전복됐다는 소식을보고 별일 아니라구고 생각하고 점심을 먹었는데 배가 바닷속으로 들어가고 아직까지 나오질 못해요.. 야자시간 교실티비를 보다 화장실에가 간절히 기도했던 그날..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