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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아이들처럼 하고 싶은 것 많은 18살의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그 당시는 대부분의 많은 학교가 수학여행이며, 체육대회며, 많은 행사들을 앞두고 있거나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저희 학교 역시 그랬고 저와 저의 친구들은 곧 있을 수학여행을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설렘으로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 날 역시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이들은 웃고 떠들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쉬는 시간에 한 친구가 소리쳤습니다. "야, 지금 배 침몰한대!" 하지만 놀라움도 잠시, 저희는 곧 배를 타고 있던 모두가 구조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야간자율학습을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오늘 있었던 뉴스를 보는데, 배에 타고 있던 아이들이 구조되지 못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기억합니다. 그 날 같은 반 친구들의 설렘의 목소리, 행복의 목소리, 그리고 소식을 접한 후의 우려의 목소리, 안도의 목소리 기억합니다. 아마 다른 친구들도 모두 기억할 것 입니다. 그런데 왜 국민들을 위해 일하겠다고 한 저들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까. 그들은 대한민국의 국민이었습니다. 희망이었고 꿈이었습니다. 저들이 기억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그때의 모습들, 대한민국의 모습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진실은 절대 침몰하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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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뜬눈으로 지켜보며 곧 구조되는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주위에 작은 고깃배들 몇척만 보이고 예상과는 다르게 시간만 흘러서 아침을 맞았던 기억이 납니다 . 타이타닉을 봐도 배위에 아수라장처럼 사람들 모습이 보여야 하는데 이상하게 정적만 ㅠㅠ문제는 "가만히 있으라"...... 진실을 밝혀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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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로 외근을 나갔다 동료들과 점심 먹으면서 TV 봤다. 애들이 탄배가 침몰했는데 전원 무사히 구조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게 오보였다고 했다. 뭔가 이상했다.아직도 그 때는 이상한 꿈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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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15살 중학생입니다. 저는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의 철부지 여학생이었습니다. 그 날은 학교에서 소풍을 갔던 날이었어요. 그저 철없이 친구들과 놀면서 집으로 가는 버스의 티비에서 저랑 얼마 차이 나지 않은 언니오빠들이 그 배 안에 갖혔다고 하도군요. 처음 뉴스를 봣을때는 많이 안가라앉았었어요. 집에와서 확인해 보니 더 가라앉아 있었고 그 좋아하던 만화도 보지 않은채 뉴스만 봣었어요. SNS에 올라온 언니 오빠들. 다른 분들의 마지막 문자 보면서 눈물도 많이 흘리기도 했어요.2년이 지났지만 그때 이후로 저는 소풍을 갈 때면 항상 뉴스를 켜보고 책상 위에 노란 리본을 걸어놨습니다.2년 동안 4월 16일이면 기도를 하고 있고, 그 희생자 분들을 떠올리고 있습니다.아직 어린 저도 이렇게 기억이 또렸합니다. 2년이 지나던. 20년이 지나건. 죽고 나서도 기억할 수 있습니다.저는 그날의 기억을 평생 기억할 것입니다.평생 어린 꿈들을 짖밟았던 세월호 침몰이라는 비극을 만들었던 사회를 기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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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학교수업중에 갑자기 수학여행을 가던 배가 침몰했고 학생언니오빠분들이 구조되고있다는 글을 보고, 아무일이 일어나지않고 다같이 집으로 돌아갈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러지 못했어요 정말 너무 안타깝고 기사를 보면서 얼마나무섭고 집이 그립고 어제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보고싶으셨을까 하는 마음에 진짜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힘드셨고 무서운시간을 보내신 언니오빠분들을 잊지않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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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7시간 이게 시작이었습니다 ㅠ 모두 기억해요 ㅠㅠㅜ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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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빠서 회사에서 핸드폰도 못보는데 누가 제주도 가는 배가 침몰했다고 핸드폰으로 기사를 보니 전원구조했다던데 다 거짓말이더군요전 국민이 기억하는데 청와대 관련된 사람들만 기억못하는건 단체로 기억을 지우는 약을 먹었나요?누구보다 똑똑한 당신들 부끄럽지 않나요?공무원으로서 의사로서 군인으로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자식들 앞에 부끄러운 부모가 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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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그날 우리 아들이 2박3일 학교에서 단체로 수학여행갔다가 돌아오는 날이었답니다너무나 거짓말같은 일이라 뉴스를 보면서도 꿈처럼 멍하게 있었던 기억이 있네요~한나라의 국민으로서 스스로도 부모인 자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그들에게 향한 우리의 분노도 멈추지않을것입니다~자식에게 부끄럽지않은 부모가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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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지않는 슬픈기간을 어찌그리 지웠다 말할수 있을까요~ 무엇인가를 배우려 다니던중이였고 구조상황에 귀를 기울이며 가슴이 요동치던 그순간을 . 기억합니다. 전원구조라는 오보에 가슴을 쓸어내렸다가 잘못된 보도라는 사실에 텔레비젼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영화처럼 그 며칠동안 어딘가에서 살아돌아올수있기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목이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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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개월 아들을 업고 뉴스를 봤는데 배가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아들을 업고 뉴스를 보며 어쩌노 어쩌노 아이들 어쩌노..부모는 소식을 들었을까 하며 같이 울고 있었습니다.경남사천 살았는데 날씨가 그렇게 맑지 않았던 걸로 기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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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그날 전 아니 저희 가족들은 세월호 사건 시간에 병원에 있었습니다...그날 이른 새벽 친정 아버지께서 119에 실려서 병원으로 들어가셨습니다...그날 모든 가족들이 병원 응급실에서 날을 샜고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들어가셨을때 저희는 중환자실옆 보호자 대기실에서 뉴스를 보고 있었습니다..뉴스를 보면서 모두 구조 했다는 오보를 직접 봤고그 후로도 계속 뉴스를 보고 아버지가 입원하신 병원에 드나들었습니다...세월호의 비극과 친정아버지의 비극이 같은날 벌어졌습니다...내 평생 잊을수 없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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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아들 유치원에 보내고 오전 급하게 기차표 예매하고 서울로 가면서 핸드폰으로 실시간 상황을 다 지켜보았습니다. 바다위에 엎어진 배를 조면서 구조가 되지 않는 답답함에 많이 분노하고 어이없었습니다. 그날. 저는 기억합니다. 아주 또렷히. 그들은 왜 거짓말을 할까요? 누가봐도 거짓말인데. 정말 뻔뻔하기 이를데 없네요. 하루 종일 핸드폰 실시간 뉴스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우리 외할머니 돌아가신날... 그래서 더 슬펐던 날. 저는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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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라 핸드폰을 내는 상황이어 남들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확인을 했습니다. 방과후 수업을 하러 교실로 올라가던 중 한 친구가 수학여행 가던 배가 빠졌다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그 친구의 놀라고 당황스러운 어조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다음 해, 저희 학년이 수학여행을 갈 때, 저희는 그때의 아이들과 같은 제주도에 갔습니다. 제 수학여행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그날도 함께 떠오릅니다. 어떻게, 잊으실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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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앞 큰 티비로 반 아이들과 함께 뉴스를 보았습니다. 가라앉는 배를 보면서 친구들과 함께 울었습니다. 그 날도,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수업 분위기가 침울했고 집중도 안되고 슬퍼지고 마음이 칙잡해졌습니다. 선생님들도 수업에 집중하시기 힘들어하셨습니다. 유가족들이 울면서 팽목항을 지키는 모습, 체육관에서 시신이 발견되길 기다리며 울고있는 가족들의 모습등을 쉬는시간마다 보며 함께 안타까워하고 슬퍼했습니다. 대통령은 그 7시간만이 아닌 지금까지도 세월호에 대해 명확한 발언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왜 죽었어야 했을까요 ? 실제 침몰이 있고 몇시간동안 아무도 구조를 하지 않았고 구조요청까지 취소했습니다.일부러가 아니면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고등학교 3학년때 친구들과 학교에서 나눠 단 노란리본을 아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제발 명확하게 해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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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여느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고3의 봄날이었습니다. 언제나처럼 반 아이들 다같이 모여 점심시간에 음악방송을 보려고했을때, 기사를 처음 접했습니다. 반아이들 모두 경악을 금치못했지요, 그러나 전원구조소식에 "와 다행이다..."라며 모두 안도했습니다. 그러나 수업이 모두 끝나고 휴대폰을 받아서 포털사이트에 들어가자, 그것이 오보라는 것을 접했습니다. 야자시간에도, 학원에서도... 제 눈길과 마음은 온통 한살어린 동생들에게 가있었습니다. 학원 선생님은 결국 제게 다 잘될테니 이제 공부하자고 말씀하실정도로 집중하지못한 하루였어요. 저는 고3이었는데, 금요일에 (사설이지만) 모의고사가 있었는데도 아무생각도 들지않았어요. 다음날 모든 수업시간에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언급하셨어요. 상황은 날로 안좋아지고, 그날은 마침 제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가 라디오 DJ를 하던 날이었어요. 저도 용기내 처음 사연을 보내보았습니다. DJ가 제 사연을 읽어주었지만, 저는 아직도 그 사연이 읽히지 않았다면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연이 시간을 되돌려 하루전날로 가고싶다는 사연이었거든요. 생생히 그날의 기억, 감정 모두 살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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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그 날, 아홉살 딸내미가 열이 많이 올랐습니다. 배가 침몰했다는 뉴스를 듣고, 전원 구조를 했다는 보도를 듣고,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제 머릿속은 온통 열나는 딸 걱정뿐이었죠.그날밤...수많은 아이들이 물속에서 나오지 못한 것을 알고는 많이 아팠습니다. 아이가 열만 나도 걱정되는 것이 엄마의 마음인데...어린 딸을 아들을 바다에 묻은 엄마들의 마음이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내 딸 걱정으로 보낸 하루가 너무나 미안했습니다.제가 기억하는 416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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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생생합니다. 교장선생님께서도 TV생중계 보시면서 같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학생들 모두 구조 됐다고! !오전 오보를 믿고 아무생각없이 근무하다 오후에 소식을 듣고 에이 설마설마하다 정신없이 일하고 퇴근해서 제대로 뉴스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그날 아팠던 제 가슴이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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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소식을 접할 때는 전원 구조라는 오보가 잔뜩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교 후 집에서 본 뉴스는 달랐습니다. 나보다 고작 한 살이 많은 수많은 학생의 죽음과 행복한 시간을 꿈꾸며 제주도로 향하던 사람들의 죽음...현실이 믿기지 않아 내가 혹시 꿈을 꾸고 있어? 하고 묻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날 제가 어떤 자리에서 어떤 자세로 티비를 보고 있었는지, 그날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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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뉴스 보면서사고가 났대 애들이.. 어떡하냐... 하면서울먹이는데 나는 대수롭지 않게 우리 엄마감성 폭발이네 라며 방구석에 들어갔다심상치않아 기사를 찾아보니 심각하더라배가 가라앉는다는데왜 갑판이 아니라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야했지구조는왜안하고..전원구조됬다는 오보부터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인거야살면서 그렇게 답답한 적이 없었기에똑똑히 기억한다왜그런거야?대답하라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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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그때에 나는 공시생이었습니다.매일 독서실과 집을 오가는 생활을 하던 때 식사를 하면서 처음 속보를 보았습니다. 전원구출했다는 보도에 ""그래도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전원구출이 아니었습니다.수많은 사람들이 차가운 물 속에 있었습니다.실낱같은 희망이었지만 어서 빨리 구출되기만을 바라고 있었습니다.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희생자의 가족들과 수많은 국민들이 그냥 보고만 있을수밖에 없었습니다.나는 기억합니다.그 때의 놀람, 슬픔, 무력감, 구출에 모든 사력을 다 하지 않은 국민을 버린 대통령, 말바꾸기고 변명하기에 급급한 관계부처들, 누구하나 책임지려 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 2016년 12월 3일 오늘, 나는 아직도 2014년 4월 16일을 기억합니다. 당신의 일곱 시간을 기억하세요. 기억해내세요. 나는 아직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