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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 구조되었다는 말을 듣고 안심하는건 잠시...300명이 넘는 아이들이 물속에 있는데 구조를 제대로 하기는 커녕 같은 방송만 무한 반복하고 언론에서 찾아 볼 수 없는 현장 소식을 아프리카TV나 팩트TV, 고발 뉴스에서 찾아보고..허루하루 밤새 구조 소식을 기다리며 밤잠을 설쳐가며 소식을 기다렸던 그날을 기억합니다. 그날의 트라우마로 매일 술이 아니면 잘 수 없었던 그날들.. 반드시 진실을 밝시겠다며 평생 나가지 않았던 집회를 찾아가고 SNS기사를 찾아보고 배에 대한 전문적 기술을 배워가고 천만 서명을 길거리에서 받고..아이들이 편히 잠들 수 있게 진실이 밝혀지는 그날까지 기억하고 행동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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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다가 본 세월호 침몰..기사로만 접했던..일끝나고 집에서 뉴스를 보는데 어찌나 걱정되는지..주변에 배들이 많은 영상을 보고사람들 다 구했겠지..하며 계속 보는데..그 많은 사람들을 구하지 못했다는뉴스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네요..뉴스로만 보던 저도 이렇게 힘든데 가족들은 얼마나 힘들지 감도 잡히 않던..세월호를 계기로 집회라는 것을 처음 가보고 정부의 어이없는 일들을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7시간이 밝혀질때까지잊지않고 행동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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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술을 많이 마셨다. 함께 일하는 팀원들과 우리 이제 더 열심히 살아보자며 내일부터는 다른 하루가 되자고 잔을 부딪혔다. 늦은 아침을 먹었다. 지금은 없어진 상수동 기사식당 에서 육개장을 먹으며 뉴스를 지켜봤다. 커다란 배가 바다위에 기울어져 떠 있었다. 함께 밥을 먹던 친구와 얘기했다. " 빨리 다 구조하면 좋겠다. " 그리고 오후에 수학여행을 위해 배에 올랐던 단원고 학생들은 일단 다 구조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오보였다. 그날 밤부터 악몽은 시작되었다. 하루 하루 죽어 올라오는 아이들의 모습이 밤마다 꿈에 나타났다.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았다. 얼마나 무섭고 서러웠을지를 생각하면 눈물만 났다. 할수있는 것이 없었다.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잊으라" 했다.일상으로 돌아가라 했다.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아니 못했다. 그래서 노래를 만들었다. 죄책감은 가시지 않았다. 늘 아이들이 내게 말을 한다."제대로 살아" 달라고.2014년 4월 16일 이후 내 삶은 달라졌다.미안하다면 잊지않고 행동하며 살아가야 한다."우리는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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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게도.. 그날 저녁까지 사고소식을 하나도 접하지 못했어요. 하필.. 그날은 너무 바빠서 핸드폰을 들여다 볼 시간도 없었기에.. 늦은시간 퇴근을 하면서 그제서야 뉴스를 접하고 뭐지..?? 저게 진짜 일어 난 일이야?? 믿을수가 없었기에 그냥 멍 하던 기억만..그시간... 함께 아파하지 못한 그 미안함이 지금까지 계속 세월호를 지켜보게 만들어주는 것 같네요.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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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정상적으로 출근해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일하면서 몰래 SNS 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다는 속보가 나왔습니다. 마침 내가 살고 있는 안산의 학교가 나와서 더 눈에 띄었습니다. 처음엔 가슴이 철렁했지만 이내 전원 구출되었다는 속보를 보고 "다행이다. 아이고 애기들 무서웠겠네." 라고 웃었습니다. 네, 나는 오보 하나에 안심하고 웃어버렸습니다. 그 후 정정보도가 나오고 그 많은 사람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사실 앞에서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부터는 그 날 동안 뭐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평소처럼 밥을 먹고 일을 하다가 퇴근했을 겁니다. 계속 나오는 속보를 보면서 제발 살아있기를 기도했을 겁니다. SNS에서 나오는 세월호 희생자들의 사연을 보고 울었을 겁니다. 반나절동안 보이지 않았던 대통령을 찾았을 겁니다. 그동안 수많은 희생자들이 나왔다는 현실이 무서워서 사건을 외면했었습니다. 그래도 오보를 보고 안심하고 웃었던 나 자신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이제는 진실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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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구조란 말을 듣고 안심하고 일하러 갔다 와보니 벌어진 황망함. . 공포. .미안함. .평생 가슴에 안고 진실이 밝혀 지도록 노력할께,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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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규명될때까지 절대 잊지않고 기억하겠습니다. 그때 같이 아파하지 못하고 철없이 보냈던 하루하루가 지금에 와서야 후회하고 눈물흘리는 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기만 합니다...그 친구들과 그 친구들의 부모형제들을 위해서라도 촛불 더 열심히 들고 외치겠습니다 . 선의의 뜻으로 도움주러오신분들을다 쫓아내버린 무능한 정부 ...내 일 아니라며 무심했던사람들... 절대 용서받을수는 없겠죠... 암쪼록 힘내시고 앞으로는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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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전 우리 아이도 중국으로의 수학여행에 들떠 여권을 가지고 학교에 가던 날이였습니다ᆞᆞ그리고 수학여행에 추억을 가질수 없었습니다ᆞᆞ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그들의 아픔이 넘 크기에 다른 말을 할수 없습니다ᆞᆞ무능한 정부와 안전시스템이 야속할 뿐이고 다시금 되풀이 되서는 안되는 슬픈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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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그 땐 군인이였다.TV에서 고등학생들이 타고 있던 배가 침몰했다고 나왔을때 우리는 당연히 구해질줄 알고 신경쓰지 않았었다. 해군이던 해경이던 모든 병력을 투입하면 모두가 살거라고 생각하고 신경쓰지 않았었다.그 뒤로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전원 구조>라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그래도 난 그때까지 아이들이 살아있고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대한민국이 모든 기술을 동원해서라도 생존자 수색을 할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았었다.그러나 2년이 넘은 지금도 몇명의 사람들은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갇혀있던 아이들도 구해질거라고 믿었고 나도 당연히 구해질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았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그 믿음을 저버렸다. 이제 더이상 신경쓰지 않을수가 없다. 나라에서부터 은폐하고 축소하고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게 많은데 왜그러는지 도저히 궁금해서 신경쓰지 않을수가 없다.우리는 기억해야만한다.내 일이 아니라고 신경쓰지않는다면 언젠가 또다시 되풀이 될 수 있는 일이다.잊지말자 우리 아이들과 선생님들과 도움을 주셨던 많은 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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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한동안 잊고 살았습니다. 배가 기울며 침몰하는데도 천진난만하게 까르르 웃던 아이들의 장면들이 자꾸 떠올라 기억속에서 빨리 지우려고만 했습니다.그러다 우연히 "다이빙벨"을 시청하였습니다. 가슴 속 깊이 가라 앉혔던 울분이 다시금 솟구쳐 나왔습니다.아픔을 함께 하고자 고 김관홍 잠수사의 이야기 "거짓말이다"를 읽었습니다. 읽는 내내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한동안 눈만 감으면 아이들이 제 곁을 맴돌며 떠나질 않았습니다. 이제는 피하지 않겠습니다. 세월호의 진실이 규명될 때까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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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방송중 속보가 떴어요. 하지만 큰일이 아닐거라 생각하고 외출을 했어요. 당연히 전원이 구조 되리라 믿었으니깐. 하지만 그날 오후 저는 제 귀와 눈을 의심했어요. 결과는 너무나도 참담했습니다. 어떻게 이런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기억...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자금도 그 아이들만 생각해도 눈물이 납니다. 너무도 무책임했던 정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죗값을 꼭 받아야 합니다.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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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접한 그날의 첫소식은 전원 구조라는 자막이 나오는 뉴스였다 ..휴우~다행이다 하고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갔는데 잠시후 혼선이 빚어지고 관계자들은 우왕좌왕 ..뭐하는거지? 왜 탈출명령을 안내리는거지? 의혹에 의혹이 더해지더니 결국 우리 아이들을..ㅠㅠ 절대 닭년을 용서할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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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세월호 침몰 지역에 여전히 살고 살아가야하는 주민으로 똑똑히 기억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당시 맹골수도 세월호 침몰 현장에 출동한 구조세력 지역주민들께서 언론보도를 보고 침몰여객선에 탈출하지 못한 구조되지 못한 수백명이 있다고 알려주는데 도 부패하고 무능한 거대 권력에 지배당한 언론이 여전히 국민을 눈뜬 봉사로 만들고 무능한 거대 권력과 정치부역자들은 여전히 그들의 안위만 살피고 있다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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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후 1시경에 출근합니다 그래서 오전에 집안 일하며 TV를 보고 있었는데 배가 기우는 화면을 보고 깜짝 놀라 애아빠를 부르며 큰일 났다고 소리쳤습니다 근데 애아빠가 배가 아주 큰 배이기 때문에 금방 가라앉지 않을거고 그 전에 다 구할테니 걱정 안해도 된다고 해서 안도했는데...너무 참담한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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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 출근하는 길에 수학여행가는 여객선이 침몰되었다는 헤드라인만 보고 어머 어떡하나 하고 제발 큰 사고 아니기를 기도하며 출근했습니다. 출근해서 동료들이 전원 구조되었다더라고 해서 아 너무 다행이다 하면서 모두 안도했어요. 고등학교 배식하는 아르바이트여서 일하는 분들도 다엄마들이고 했거든요. 그런데 집에 와서 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그날 정말 너무 끔찍하고 아픈 마음으로 울면서 밤뉴스를 보았습니다. 부디 생존자들이 다 구조되길 기도하면서... 하...어떻게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반드시 그 비밀을 다 밝히고 세월호도 인양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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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저는 인터넷으로 속보를 보고선 티비를 켜고 구조상황을 지켜보았었습니다.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뉴스를 보다가 전원 구조속보가 떠서 잠시 안심하였었는데 구조된 분들의 인터뷰를 듣다보니 뭐가 잘못되었다는걸 느꼈었죠..그이후로 몇달동안은 정말 세상 그 무엇도 아름답지 않더군요..자식과 가족을 잃은 분들 앞에서 제가 괴로워보았자이긴 합니다만..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너무나 지켜보기 괴로운 사건이었습니다...세월호 아이들 생각이 날때마다 잊지 않기를 다짐합니다...억울하고도 억울한 그 사건의 전말이 명명백백히 밝혀지기를 빌고 또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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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일찍 눈아 떠졌던 그 날...긴급속보로 전해진 소식, 그리고 한 뉴스채널에서 연결한 승객과의 통화, 배가 기울어진다는데 저 상황에 무슨 전화연결이냐 황당해했던 순간워낙 큰 배니 별일 없으리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마음전원 구조 소식에 안도했던 순간오보라고 수정되었던 뉴스.줄어드는 생존자와 늘어나는 실종자 수그리고 거짓말처럼 가라앉아버린 배그 순간순간을 다 기억합니다.가볍게 여겼던 그 순간에 대한 미안함과뉴스를 보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죄스러움과 안타까움까지...저에겐 하루 전에 수학여행 일정을 마치고 제주도에서 돌아온 제자들과... 제주도로의 수학여행을 앞두고 있었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그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먹먹해지던 그 감정을 기억합니다. 그.아이들의 말간 얼굴에 아무말도 할 수 없었던 그 순간을 기억합니다. 그 날의 7시간을... 아니 2014년 4월 16일을...그리고 그 이후의 모든 시간들을... 그 시간과 감정들을... 저는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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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출근 준비를 하며 뉴스를 보며 애를 태우다 전원구조 속보를 보고 편안한 맘으로 출근. 수업을 하느라 뉴스를 못보고 구조 잘 됐으리라 믿고 뉴스를 켰더니 이런. 그 아이들이 그 사투를 벌이는 동안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니. 그 날 그 시간으로 이렇게 오래 불릴줄은 전혀 몰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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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제 3자였지만 당시 사고소식을 접하고 전원구조라는 뉴스를 듣고 안심하고 뉴스를 시청하고 있었습니다. 오보라는 사실을 알고 어찌나 놀랍고 믿기지않았는지 ..흘러가는 상황과 시간이 안타깝고 답답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너무나도 안타까운 사연에 눈물 흘리며 기적이 일어나지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지켜봤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올림머리에 의료의혹에 식사라니요?! 그것도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 사람입니까? 정말 쓰레기나 다름 없다고 생각합니다 . 박근혜 씨 얼른 그 자리에서 내려오고 처벌 받으세요.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도 모자르고 모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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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기억합니다. 아니, 뼈에 새겨진 기억입니다.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되지만 아직 슬퍼할 때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생각으로 아직까지 4월 16일을 살고 있습니다.슬퍼할 자격을 받고 싶습니다. 아직 우리에게는 슬퍼할 자격이 없습니다.분노해야 합니다. 차가운 분노로 단죄한 후에 그때 차마 바치지 못한 꽃 한송이를 바치고 눈물 흘릴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