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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 나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일터로 향했지.이제 태어난지 2주된 갓난아이와출산한지 2주밖에 안된 초보엄마.출근하면서부터 시작된 티비시청은 아이 젖주는 시간을 빼고 하루종일 계속됐어.설거지도 빨래도 미뤄놓고밥먹는것도 잊었지.하루종일 울어 부은 눈으로그렇게 집으로 돌아왔어.내 딸 아이도 너희와 같은 열여덟.그립다,미안하다.내 아들, 내 딸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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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기울어 있는 장면 뉴스 속보.당연히 "전원 구조"될 거라 확신했고, 뒤이어 뜬 구조속보도 믿었습니다.2016년 대한민국에서 그 정도 사건이야...저런 대형선이 서서히 기울어가는데 누구든 바다로 뛰어들거나 해경이 안전하게 구조하는 건 별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속보라고 떠들어대는 것이 유난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그런데..모든 국민이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그대로 수장되는 세월호를.. 넋놓고 보게될 줄이야..이게 지금의 대한민국인가 싶어 대단한 착각속에 빠져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트라우마에 빠진 많은 국민들의 아픔에 대한 위로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세월호 유가족과의 약속도 지키지않은 채 벌레보듯 피하는 대통령이란 자와 폭식투쟁으로 맞서는 개념없는 무리들, 그만 좀 하라고 얼마를 더 받으려느냐고 피해의식에 쩔은 일부 대중들 사이에서 아직도 서서히 가라앉고 있는 세월호의 진실. 그 시간 굿을 했다느니, 성형을 했다느니, 잠수함사고니, 일부러 사고를 냈다느니 온갖 루머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형설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지금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믿고 싶은 건 믿을 수 없게 되었고 믿을 수 없는 건 믿게 만드는 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지치지않고 끝까지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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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생각도 하기 싫은 끔찍한 일터에 있었습니다. 아침이었을까 뉴스를 들었습니다. 당시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생각만큼 놀라지 못했습니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될 큰 사건이어서 믿기지 않았는지도 모르겠고, 일터라 정신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더욱 미안하기만 합니다. 제대로 슬퍼하지도 못해서 더 미안합니다. 그 일이 얼마나 큰 일인지 아무것도 모르고 밥을 떠 넘겼을 겁니다. 그래서 너무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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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다 같은 마음 이었을것입니다. 뉴스로 세월호 사고를 접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어떡하나 다들 무사하신지.. 모두 구조가 되었는지.. 그 생각뿐이었고 그러다 전원구조란 말에 한시름 덜었나했더니 오보였단말에 믿을수가 없었다. 그래 지금이라도 다 구하면되지 아직 늦지않았을거야 하는 생각에 기도를 드렸다. 제발 모두 무사하길.. 그러나 어느 한명도 구조하지 못했다. 그러고 뉴스를 볼때마다 생존자가 아니라 사망자 숫자가 늘어날수록 더욱더 참담했던것같다. 그리고 분노했다. 이렇게 무능력한 정부에.. 아직도 그날을 잊을수가 없고 잊어서도 안된다. Remember 0416 진실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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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했습니다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부끄럽고 미안하고 화가 났습니다하루종일 무기력하고 검은 먹구름이머리를...마음을...뒤 덮고 있는 듯 했습니다그 날은 그렇게 슬프고 무겁고 잔인하고안타깝습니다수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이들의 한이 풀리지 않는거 같아여전히 미안하고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고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걸...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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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날 한의원에서 근무중이었고대기실이랑 치료실 오고 가다가 자막으로 뉴스 처음 접하고YTN으로 돌렸어요.전원구조 오보를 보고 내심"와,, 진짜 다행이다" 했었구요.근데 조금 지나니까 집계오류라며 갑자기실종자가 늘어나고.. 이 집계도 확실치 않다고 하고..그 때부터는 정말 한동안 뉴스만 보고 살았던 것 같아요.이거 3년 가까이 되어가지만진짜 생생한 하루인데...잊지 않을겁니다.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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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아침에 보통 때와 다름없이 출근해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일하다가 갑자기 배가 침몰 됐다는 기사, 그리고 바로 나오는 전원구출....아!!다행이네..애들 다 구출됐네..ㅋㅋㅋ..그리고 저녁에 퇴근, 그리고 다시 접한 방송에서의 모습...잊을 수가 없는데...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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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지 보름된 둘째아이를 데리고 친정에서 몸조리하고 있을 때였어요, 3살 첫째 아이도 함께 친정에 있었고요,친정부모님과 함께 TV를 보며 간식을 먹고있는데, 자막으로 사고소식을 봤어요.무슨 배가 뒤집어 졌다고 자막도 나오네,,했는데,,아랫집 동생이 아기보러 왔다가 함께 앉아서큰일났다고 지금 안산에 있는 고등학교 아이들이 배사고가 났다고 해서자막을 그제서야 자세히 봤어요.저희 집이 안산이거든요,,,전 하나뿐인 언니를 20살 되던해 잃었습니다.그래서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 가족을 잃은 마음을 알고있어요,,,엄마와 아빠 그리고 조리 중이었던 저 역시뉴스를 빼놓지 않고 채널을 찾아가며 봤습니다.아이들이 모두 살아돌아오길 기도하면서요.그 뉴스를 보며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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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친구와 평소 즐겨가던 칼국수집에서 점심으로 칼국수 먹다가 속보로 뉴스봤습니다. 당시에 앉았던 테이블, 내 자리 다 기억납니다. 전원구조라는 오보를 보며 안도하며 식사를 했는데 뉴스가 계속 바껴서 황당했었고 그 날부터 매일 뉴스와 속보에 집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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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수요일이면 파견 진료를 갔던 의사입니다. 오전에는 근무하느라 뉴스를 보지 못했고 오후 1시반경 파견업체에 도착, 그 곳 직원식당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식당 밥을 먹으며 제 왼쪽으로 큰 티비가 벽에 달려 있었는데 큰 배가 뒤집어져 있는 화면과 속보 자막을 보았습니다. 아직 구조되지 못한 사람들 숫자에 비해 화면 속은 평화로워 보였고 적극적인 구조도 잘 보이지 않아 괴리감이 느껴졌던 기억이 납니다. 속보가 오히려 호들갑스럽게 느껴졌었죠. 금방 구조될거라서 저렇게 평온한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그런데 그 뉴스 보면서 오한이 나서 밥을 잘 못먹었었어요. 거기 직원 식당 밥맛이 좋아서 일부러 본 근무지에서 밥 안먹고 간건데.. 밥이 맛없었어요..그리고 진료가 오후 2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환자 없을때는 계속 인터넷으로 세월호 뉴스를 봤어요. 서서히 가라앉는 배와 죽어가는 생명과 무능하고 사악한 국가권력을 생생하게 봤어요. 트라우마가 이런거구나..아무것도 할 수없는 무력감.. 오한은 점점 심해지더라구요. 설마.. 어떻게 저럴수가..미안해요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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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아침에 식당에서 밥먹으면서 뉴스를 보았어요....분명 전원구조라고 나오길래....당연한거 아냐??? 라고 얘기하면서 밥먹었었는데....조금후엔.......ㅜㅜ 기억하고싶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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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꼭 밝혀야 합니다.가슴이 무너집니다.다시 생각하고 생각해도꼭 잊지 않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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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당시 학원강사라 남들보다 늦은 출근준비를 하고 있었고, 뉴스를 보며 믿기지 않는 현실에 먹먹했습니다. 출근을 해서는 부원장님과 이게 무슨일이냐며 구출 됐다더니 아니어서 정말 슬프다. 어떡하냐는 대화도 나누었습니다. 수업중에는 아이들과도 세월호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찌 그 날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하루종일 먹먹하며 생존자 소식을 기다렸던 그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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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에서 한시간 정도 떨어진 병원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그날도 출근해서 일을 하고 있었고,그날이 마침 구급차 당직까지 서야 했던 날이였구요.한통의 전화를 받고 출동 대길 합니다.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원무과에 다시 전화 해보니 배가 침몰 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괜찮다며 큰일 없을거란 소릴 듣고 "사람들만 옮기면 되겠구나"이런 생각을 하며 차에 올라타 출발을 했습니다.출발해서인터넷 뉴스를 보는데..배는 이미 많이 기울어져 있었고,좋지 않은 소식들만 속보로 계속 올라오고 있더군요.팽목항에 도착 해서 대기하고 있다 구조된 사람들을 태운 배가 도착 합니다.구조된 사람들중세명을 태우고 다시 병원으로 이동하는데 아무말도 여쭤 볼 수 없더군요.그냥 이제 괜찮으니 편히 계시라는 말 뿐이 할 수 가 없더군요.그 후에 뉴스는더 참혹한 소식 뿐이 없더군요.다신 이런 일이 이러나지 않았으면 합니다.그리고 세월호 희생자 분들 좋은 곳으로 가셨을거라 믿고 유족분들도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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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점심을 먹으면서 스마트폰을 켜서 인터넷 CNN을 접속했는데 세월호가 바다위에 떠있는 기울어있는 사진과 기사가 떴었고 차마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팩트로 실렸고 읽으면서도 믿기 싫었던 기억...그날 이후에도 CNN에서 글을 읽었는데우리정부의 초기대응이 미흡했다고 했던 기사 ...글쎄요 우리는 여기서 "미흡"이 맞는건지"고의"가 맞는 건지 대통령에게 따져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아무 연고없는 나도 그날을 기억하고 계속 기사를 읽으며 관심을 가졌는데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유지해야할 의무가 있는 이나라 정부의 원수께서는 고의로 기억이 안난다고 거짓말을 하는데 정말 분통이 터져서...그날 의 기억을 말 못할 이유가 있는 사람은 본인발로 스스로 걸어서 팽목항에서ㅓ 바닷속으로 뛰어내렸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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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발병후 항암주사맞을때마다 터져버리는 혈관때문에 가슴에 케모포트 시술을 했었습니다 보통은 2-3년 지나면 제거하는데 저는 재발하면 또 시술하는게 겁나서 이핑게 저핑게 대며 5년을 채우고서야 제거수술 날짜를 잡았습니다 그날이 바로 2014년4월16일...대기실에서 제 이름 불리기만 기다리며 테레비젼보다가 속보로 뜬 세월호 사고..구조속보까지 보고 들어간 수술. 그 수술을 끝내고 나와서 본무섭게 늘어나있는 사망 숫자를 이해 못해 지금까지도 나는 그날 살았는데 꽃같은 아이들이 그렇게 허망하게 떠났다는 미안함에 한동안 아니 지금까지도 참 많이 미안했었습니다.어떻게 그날을 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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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바이올린 제작자이고 저는 그 때 제 공방에서 바이올린 제작을 배우는 수강생들이나 가게를 들르는 손님들과 함께 그 비참한 소식에 무척 안타까워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루 종일 아니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비참하고 허무한 감정으로 슬퍼한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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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집. 회사-집만 반복하며 무기력하게 살던 나조차도 그날은 기억이 납니다. 내가 의지를 갖고 기억했다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기억되고 각인된 불행한 시간이지요. 4월은 업무가 많을 때라 휴대폰 카톡조차 확인할 틈 없이 바쁘게 일을 하고 있었어요. 동료가 회사 메신저로 세월호 사고 소식을 알려줬지만 너무 바쁘고 정신없어서 그런가부다 하고 계속 업무를 했죠. 메신저가 왔을때 잠깐 고개를 들어 맞은편에 있던 동료얼굴을 봤을 때 울먹거리고 있길래 참 감정과잉인 분이시네~ 그렇게 생각을 했었어요. 자세한 내용을 전해들은게 아니라서 단순히 해상교통사고 정도로만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러다 10시30분쯤인가 급한일 대충마무리하고 핸드폰으로 포털사이트 검색을 했는데 전원구조라는 기사를 보고 동료한테 "전원 구조 됐다네요""라고 전하고 정말 다행이라고 서로 대화나눴던 기억이 납니다. 퇴근하고 집에 왔는데 엄마가 티비를 보시며 저 애기들 어떡하냐고 하시길래 전 너무나도 태연하게 "전원 구조 됐다며"라고 엄마한테 말했는데 엄마가 아니라고 하시며 사고내용을 설명해주셨어요. 뉴스에 아이들 카톡내용들이 보도되는 것을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가슴이 너무 아파서 뉴스 잠깐 보다가 저녁도 안먹고 방에 들어와서 트위터며 페이스북만 한참을 들여다봤어요. 공중파나 우리나라 기사는 믿을 수가 없다라구요. 제가 이렇게 구구절절 쓰는 이유는 그날 했던 일뿐만이 아니라 그날 저의 생각과 감정들까지도 고스란히 기억되기 때문입니다. 진실은 절대 침몰하지 않아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밝혀진다는 당연한 절대명제를 증명하는 사회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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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저는 전업주부였지만 가끔 알바를 하고 있던 때였습니다4.16일은 알바를 하게 되어 아홉시에서 여섯시까지 근무를 했고 중간 점심시간이 있었지만 뉴스를 보진 못했습니다.일이 끝나고 셔틀버스를 타며 처음 뉴스를 보게 되었는데 집에 오는 내내 차안에서 울었습니다.친한 사람이 있지도 않은 버스안이었지만 누구도 신경쓸수 없을만큼 충격과 슬픔에 울음을 참을수 없었고 집에 와서도 계속 뉴스만 보며 기적을 바랬습니다.어떻게 그 날을 잊을수 있나요...가슴 아픈 그 날이 잘 기억이 안난다니...분노와 처참함만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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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4일아침 일찍부터 페인트를 칠하고 청소를 하는 일정이었어요. 같이 일하는 친구가 "아까 뉴스에서 봤는데 제주도 가는 배가 침몰했는데 다 구조됐대."라고 해서 다행이라고 했었죠. 그런데 일을 정리하고 돌아가는 길에 다시 보니 구조된 것은 선원들.. 학생들은 여전히 배 안에. 그 때부터 점차 무서워졌습니다. 벌써 몇 시간이나 지났는데 왜 아직도 그대로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TV 로 계속 뉴스를 보고 계셨습니다. 온가족이 잠들기 직전까지 그 반복적인 영상을 계속 봤어요.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는 구조 소식이 들리길 기도하며 잠들었습니다.하지만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본 세월호는 그저 더 가라앉아있을 뿐이었어요.이 날은 제 생일이자 지인의 생일이라 일산에서 만나서 같이 파주에 있는 중국집으로 이동해서 탕수육과 몇몇 요리를 먹었는데, 그 곳에서도 계속 뉴스를 봤어요. 우리 뿐만이 아니라 사장님도, 다른 손님들도 찬식하며 지켜봤지요. 이틀 째 저녁이니 더 가라앉아있었죠. 세 사람이서 정말 배 안에 공기층이 있는 걸까, 아니라면 빨리 배에 구멍을 뚫어서라도 꺼내야 하는게 아닐까, 반복되는 뉴스를 보면서 황망해 했어요. 계속해서 가라앉는 배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그리고 가라앉는 꿈을 종종 꿨어요. 제발 지금이라도 진상이 밝혀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