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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아이들을 보내고.. 청소기를 돌리고 커피한잔 마시며 티브를 켰다..세월호.. 멍 했다... 진도 앞바다..어 고기 물쌀 쎈대.. 사람들 빨리구해야 될텐데..구명조끼도 있고 머 배가 저정도면 거의 나왔겠지... 그런데.. 오보란다... 오보..그렇게 방송으로 송출되는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대부분 배안에...아니 배가 저정도로 기울어질때까지.. 머한거지..구먕조끼입고 나가라는 명령도없었나? 주위 어선도 있을텐디...진삼.. 아무것도 못하고 아이들 하원 하교후 꼭 끌어 안으며 기도했다... 제발.. 구조되게 해달라고... 아이들도 같이 기도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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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날과 같이 가게에 출근해 포스기 앞에서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포스기 한구석에는 인터넷 브라우져를 키고 새로고침을 누르면서 누구 한사람이라도 더 구조되었나 가슴 졸이며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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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 남편이 출근하기 싫다면서 월차 쓰고 늦게까지 이불속에서 꾸물거리고 있었는데9시 좀 넘어서 9시반쯤인가부터집앞 해군3함대쪽에서 헬기뜨는소리나고 곧 사이렌소리 요란하게 울려처음엔 전쟁났나 싶어서 급히 티비를 켰는데 뉴스속보로 세월호 가라앉고 있는걸 보여 주더라구요.처음에 구조되던 아이들 인터뷰하는걸 보면서 금방 다 구해 내겠지 저것도 지나가면 추억이고 에피소드로 남겠지 이러면서 보고있다가 가라앉고 있는 배안에 사람들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단. 소리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보는내내 얼마나 울었던지...조선소에 다니던 남편은 회사에서 문자로 취부 용접사들 모두 비상걸렸다고 다시 출근할수도 있다면서 하루종일 대기 하고 있었습니다혹시라도 배건져 오거나 하면 배 잘라서 사람들 구해야 한다고그러나 배는 그대로 가라 앉아버렸고 며칠 동안의 비상 대기도 없던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2년 반이 지난 오늘도 나는 그날 아침 일이 생생합니다 .아직도 그날 들었던 사이렌, 헬기 소리와 뉴스장면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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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 집사람과 아침뉴스 자막에 진도에서여객선이 침몰중이라는 글과 함께 세월호가아직은 많이 기울어 있지 않는 모습을 보았습니다.그 화면을 보면서 저 정도면 승객들 전부 다 구하는데는 문제가 없겠구나라고 생각하였습니다.그리고, 얼마 후 단원고 핵생들 포함 전원구조라는 오보가 나왔었죠.그걸 보면서 안도를 하였었는데, 낮부터 뉴스가 이상하게 나오는 겁니다.결국에는 우리가 아는 그대로의 상항이발생되었습니다.저도 자식을 두명이나 키우는 입장에서제 아이들 또래의 학생들이 "가만히 있으라"는정말 말도 안되는 선내방송을 믿고 있다가안타깝께 희생된 사실에 그리고, 사건의 진실마저도 밝히지 않고 숨기는 정부의 작태에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기성세대의 한사람으로써 안타까운 세월호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미안합니다.7시간의 진실이 들어난다면, 관련자 모두를살인죄로 처벌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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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보로 인터넷에서 뜬 것을 보고,그리고 곧 전원 구조라는 소식을 듣고 다행이구나, 에구 애들이 엄청 고생 많았겠구나 싶었습니다.그러고 나서 점심을 먹었죠.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미안합니다.그 춥고 무서웠을 시간에 저는 맘 편하게 웃으면서 맛있는 밥을 먹었으니까요.미안합니다.그리고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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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보도 그리고 7시간. 차마 믿을 수 없은 광경에 우선은 말을 잃었고, 다음 순간에는 현실을 부정했다.어떻게 그럴 수 있나. 그 믿기지 않는 보도를 보면서도 밥을 먹고, 일을 하고, 말을 하는 내가 미웠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미칠 듯이 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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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며칠 안남기고 함 받을 준비를 하느라이모들이랑 거실에서 전부치고 청소하고 있었어요그때 뉴스속보로 배를 실시간으로 중계했고학생들은 전원 구조 되었다고 뉴스에서 이야기하던 기억이 납니다그래서 세상에 큰일날뻔했네~ 하고 안도했는데예비신랑이 함 들고 들어오느라 티비도 끄고 정신없이 하루가 갔어요다음날 아침 정말 끔찍한 뉴스를 접했네요너무 충격적이었던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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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보았습니다.기울어진 배를기대했습니다.모두가 무사하기를너무 놀랐습니다.어떻게 그런일이 일어났는지저리고 아픕니다.놀란가슴이 아직도 아직도생생하게 기억합니다.아직도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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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던 평범한 선박 전복 사고, 그리고 전원 구출되었다는 희소식에 안도...하지만 오보임이 밝혀지고 점차 시간이 지나가면서 그 평범하기 그지 없는 사고는 점점 심각해지고, 뉴스를 지켜보면서 설마 설마 했던 그런 일들이 상상하지도 못 했던 일들이,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얕은 바다 아래에서 우리의 누나, 형, 동생, 아버지, 어머니가 희생 되었습니다.조금씩 물이 차오르면서 그들이 느꼈을 극도의 공포, 그리고 삶에 대한 강한 의지,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 안타까움...잊지 않겠습니다.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언제나 늘 우리 가슴에 남아 촛불이 아닌 환한 희망의 횃불로 자리 잡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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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지도 않던 tv를 켜니 속보가 나옵니다.진도 앞바다에 사고가 났답니다.많은 다른 승객들과 아이들이 타고 있답니다.승객들은 구명조끼를 입고있고 해경이 출동했다고한것 같습니다.얼마간 지켜보니 배도 쑥 들어가는게 아니라 천천히 아주 아주 천천히 기웁니다.에이.. 다 구조되겠네~ 생각했습니다.tv를 보니 전원구조라고 속보에 뜹니다. 그렇지.. 못구할리가 없지..하고 tv를 껐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어떻게 구조했는지 나오겠지 하고 tv를 켰을땐 이미 난리가 났습니다. 전원구조는 거짓이었고..배는 침몰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생각했습니다.배 기울기도 그렇고 해경이며 헬기도 와 있는데 구할수 있겠네...라고속으로 빨리구해!! 시간 충분해!!! 를 외치며 기다렸지만 구조하는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미친거아니야?? 왜저래??? 왜저러지??? 하고있는데 배는 점점 힘든 상황으로 변해갔습니다.정말 미친것처럼 보였습니다.구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서서히 수장되어가는 아이들과 다른 승객들을 생각하면 고구마 백만개를 구겨넣은 기분이 들었습니다.그 안에 사람들이 불쌍하고 내 아이가 내가족이 수장되어가는걸 생중계로 보고있을 가족들 생각에 정말 미칠것 같았습니다.누가봐도 구할시간은 충분했습니다.저도 그렇듯 사람들이 세월호를 잊지 못하고 더 가슴아파하는것은 구하지못한게 아니라 구하지않은일이기 때문입니다..꼭 밝혀내서 큰벌을 받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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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전년도 입시에 실패하고 재수학원을 다니던 중 엄청난 방황을 하고 처음 인생의 좌절과 함께 스스로에게, 부모에게 상처를 주던 그 해 4월.그 가운데 더더욱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던 그 날 4월 16일입니다.직장인으로 다름없이 출근하여 업무를 보면서 목적을 찾지 못해 헤메는 아이에게 어떻게 삶의 가치를 얘기해줘야 하나 고민하던 날..그날 그 무서운 날을 하루 종일 접하며, 명백하게 무기력한 우리 대한민국을 확인하며, 누가 봐도 금방 알 수 있는 어이 없는 무책임한 살인자들을 보며 제 아이에게 얘기해 줄 수 있는 가치를 저 조차 잃어버리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그 이후 유가족에게 쏟아지는 또 다른 살인자들의 만행을 보며 매번 눈물을 흘려야 했던 그 해.그 해 가을 제 아이는 세상의 틀을 깨고 대학이 아닌 자신의 길을 어렵게 찾아가기 시작했지만, 세월호의 우리 아이들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던 유독 잔인했던 그 해.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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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 하는 중에 언론이랑 정부랑 전혀 다른 정보를 동시에 보도하는 추태를 보여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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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무 일도 없을 거란 생각으로 사무실에서 일하며.. 속속 들어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한아이에 부모로써 정말 말도 안되는 사실에 분노하고 또 분노 했습니다.반드시 처벌 받아 이 세상에 정의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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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을 기억합니다. 날짜는 잊을지라도,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 그날을 기억합니다.어느날과 같은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하루.새롭게 투입된 프로젝트로 바쁜 업무를 처리하면서,회사 지하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가는길,세월호 소식을 접했습니다.처음 접한 기사는 대부분 구조가 된다는 기사였기에, 안타까운 마음에 어서 희생자가 없이 구조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후 업무를 시작 했습니다.유독 업무가 바빠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집에 돌아가는 택시에 올라타고 나서야다시 포털 싸이트를 열어본 저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수백명의 희생자들..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그 기사가 사실일까 싶었습니다.그리고 그 시간, 무심히 내 업무만 처리하기 바빴던 저는... 나는 무얼하고 있었던 건가.. 라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쓰렸습니다.그날을 기억합니다.그날을 잊을수가 없습니다.유독 그날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들의 말을 믿을수가 없습니다.어찌 그 날을 잊을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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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티비 앞에서 밥을 먹다가 본 세월호의 실시간 구조 방송에 평소 예능만 보던 남편도 숟가락을 놓고 보았다. 300명의 어린 아이들의 목숨이 눈앞에서 가라앉는걸 보면서 눈물이 자꾸 나와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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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선생님이 되기위해서 임용시험을 공부하고있었습니다. 공부하다가 세월호 사건 뉴스를 보고나서부터는 집중이 잘 안되었습니다. 좀 충격적이기도 했고 마침 공부도 하기싫어서 친한 친구집에가서 아이스크림에 소주나 섞어서 만들어먹자고하고는 티비뉴스를 보며 술 한 잔씩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땐 솔직히 금방 구조될 줄 알고 별로 심각하게 생각 안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냥 티비 뉴스만 틀어놓고 친구랑 수다나 떨었어요..대구지하철참사처럼 그렇게 많은 목숨이 희생될거라는걸 모르고 있었네요. 정말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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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해 대학생이 된 저는 강의실에서 친구들이랑 놀던 중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속보를 봤습니다. 하지만 전원 구조라는 잘못된 기사를 본 후, 전부 구했으니 다행이라 생각하며 강의를 들었고, 그 후엔 우리가 아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아파서 되돌아볼때마다 눈물이 나지만, 잊혀져서는 안 될일이기에 이렇게 다시 한 번 그날의 기억을 되짚어봅니다.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실종자분들의 귀환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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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입사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였습니다근처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뉴스를 봤는데사고가 발생한 날은 조금 멍했지만 단 한명이라도 구조가 안되는 학생은 없을것이라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그 다음날 부터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매일 울며 티비를 봤던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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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의 시작은 평소와 다르지 않던 평일이었습니다. 정신없이 오전근무를 마치고 점심을 먹기위해 직원식당에서 줄을 서는데 그 앞에 있던 티비에서 나오는 뉴스를 보고 처음엔 어느 정도의 사고인지 제대로 파악을 못하였습니다. 기울어진 배를 보고 배가 가라앉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고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데 금방 구출을 가능하겠지, 인명사고가 크지 않겠지 하며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내 학생들이 갇힌 상태에서 배가 가라앉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후에는.. 사실 그 날 세월호 사고 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어릴때부터 안산에서 10년 넘게 자랐고 현재도 부모님이 살고 계십니다. 고향이라고 생각되는 곳에서 더불어 부대끼며 살던 이웃들이 그런 참사를 겪었다는 사실에 오후 내내 일이 손에 잡히질 않고 속보로 뜨는 뉴스를 확인하며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어떻게 나라에서 이렇게밖에 대처를 못하나 분노했던 그 날의 감정들만 기억이 납니다. 한달 넘는 시간동안 유가족분들에게는 비교조차 할 수 없지만 제게 너무나도 무기력하고 아팠던 기억이었고 그 후 세월호 사건이 정치계로 넘어가면서 점점 진흙탕 싸움이 되어가는 것 같아 애써 그 분들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며 살아왔습니다. 진심으로 죄송하고 죄송하고 또 반성합니다.. 지금이라도 그 날의 시간들이, 사건의 전말이 상세히 밝혀지길 바랍니다.. 그리고 앞으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외면하지도 않을겁니다.조금 더 나은 대한민국이 될 수 있도록,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무고하게 희생된 아이들에게 최소한이나마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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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구하겠지..저 큰 배에 안전장치 하나 안되어 있을까..싶은 생각은 크나큰 오산이었습니다.그 큰 배는 너무나 쉽게 넘어졌고 가라앉았습니다.책임자라는 사람은 제일 먼저 탈출하고못다 핀 꽃들은 끝내 꽃을 피우지 못했습니다.소문이 무성하여도 분명히 변하지 않는 사실은 있습니다.우리는 잊지 않을것이며기억하고 또 기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