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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복학생이었습니다. 뉴스속보를 통해 처음 세월호 사고소식을 접했고 계속해서 뉴스에서 보도되는 침몰상황을 지켜봤습니다. 사실은 너무 평범한 날이어서 무엇을 입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학관에서 친구들과 밥을 먹었고 계속해서 tv와 휴대폰을 들여다 보고 있었습니다. 배가 저렇게 천천히 가라앉으니 한명씩 구출하면 모두 빠져나올 수 있으리라 낙관했습니다. 하지만 믿을 수 없게도 아이들은 구조되지 않았습니다. 너무 어이가 없고 가슴이 아파서 말문이 막혔습니다. 내가 이런 곳에 살고있다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습니다. 추가 생존자가 한명이라도, 제발 단 한명만이라도 더 구조되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차가운 바다는 더이상 아이들을 돌려주지 않았습니다.우리에게는 대체 왜 라는 질문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하루이틀이 지난게 아닙니다. 2년하고도 반년이 넘게 지났습니다. 이 배는 왜 침몰했고 아이들은 왜 구조되지 못했나. 사건을 조작한 정황이 여러곳에서 드러나고 있는데 왜 관련자들은 이 의혹들을 덮으려고만 하는가. 진실은 규명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질문들에 답을 구하는건 우리가 반드시 해결해야할 숙제입니다. 이 시스템이 오류를 일으키도록 방조한 사실로부터 우리는 누구도 자유롭지 않습니다. 침묵만을 지킨다면, 우리는 또다른 세월호가 침몰하는 것을 다시 바라만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세월호 7시간. 우리는 그 시간동안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양심을 가진 한명의 인간으로서 그 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지난한 싸움이 될지라도 세월호의 진실규명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힘쓰겠습니다. 저에겐 그 시간을 잊을 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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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일하다 기사를 보고 바로 전원 구출이라는 말을 보고 안심했었어요 점심시간에 회사동료랑 밥먹으면서 그얘길하고 있는데 식당tv에서 배가 거의 침몰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걸로 기억이 나요 그후로 기사를 실시간으로 봤지만 청천벽력같은 소식만.. 첫 전원 구출이라는 오보가 아직도 분통이 터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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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기전 인터넷으로 뉴스를 접하고 충격과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수업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수업중에도 도무지 집중을 할 수가 없어서 계속 핸드폰으로 몰래몰래 뉴스를 보며 눈물 꾹 참았던 기억이 나고요. 그날 하루 종일 한국뉴스만 찾아보며 일주일 넘게 우울했었는데... 외국이라서 더욱 느껴지던 허무함과 슬픔과 분노가 아직도 생생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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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중간고사 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경향신문 앱에서 알림이 왔습니다. 단원고 아이들이 탄 배가 사고가 났다구요. 너무 놀라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엄마도 지금 티비로 뉴스보고 있다고 같이 기도하자고 했어요. 얼마 후 전원 구조됐다는 속보가 보였고 저는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수업에 갔습니다. 그러나 수업이 끝나고 핸드폰을 확인하니 오보였어요. 내 동생이 탄 것처럼 마음이 찢어졌습니다. 그 뒤로 3일 내내 핸드폰으로 뉴스 사이트만 새로고침하며 지냈어요.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하겠습니다 그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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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아이낳고 병원에 누웠있었습니다. 전원 구조라는 뉴스도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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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도 평소와 다름 없이 근무중 이었습니다 스마트폰 네이버 메인에서 침몰중이라는 기사를 처음 보았습니다 구명조끼 입고 대기중이라기에 당연히 다 구할수 있을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그런데..그날 오후 퇴근하며 집에 가는 길 황망하게 횡단보도 앞에 서 있던 것까지 다 기억납니다그때의 기분, 그 거리 전부 다요..관련자 분들도 당연히 그날을 기억하고 있을겁니다 이제는 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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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에서 일어나서 수업가려고 책상앞에서 준비하는 중에 기사를 보았어요. 여객선이 침몰 중이라는 속보를 보고 룸메에게 큰 사고가 아니었음 좋겠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곧 전원 구조라는 뉴스를 보고 다행이라고 말했었구요.. 그날 같은과 친구 생일이라서 다함께 식사하러 나가는 길에 전원구조가 오보였다고, 아직 구조하지 못한 사람들이 수백명이 된다는 뉴스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었어요.. 절대 잊을수 없는 날일거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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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해서 인터넷으로 첫 사고 소식을 접했고 아이들이, 사람들이 차가운 바닷 속으로 빠져들어가는걸 생방송으로 보았습니다. 저 아이들과 같은 아이를 둔 아빠로써 너무나 무기력한 자신과 너무나 무책임한 이 나라의 시스템에 절망과 분노로 점철되었던 하루로 기억합니다. 현재에 이르러서도 반성과 시스템 정비는 커녕 국정농단을 일삼고 온 국민을 상대로 사기극을 펼친 대통령과 그 부역자들에게 분노합니다. 세월호의 비극은 사고가 아닌 그 들로 인해 예고된 것이었습니다.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 날의 참담함과 억울하게 간 이 들에 대한 슬픔,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이들에 대한 분노. 절대로 잊지 않고 기억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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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그 비보를 처음 접한 것은 전원구조되었다는 뉴스속보를 통해서였다.침몰하는 배와 분주한 사람들, 그 하단에 적힌 한 줄의 낭보는 나를 비롯한 동기들를 안심시켰고나는 "참 잘 되었네!" 혼잣말을 남긴 뒤, 이내 먼 바다의 큰일 날뻔한 이야기를 뒤로 한채 당구를 치러가고야만다.나에게 그것은 아직까지도 너무나도 죄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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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랑 자습실에서 노트북으로 뉴스를 처음 접했어요. 그 때 마침 저희 고등학교도 제주도로 가는 졸업여행이 예정 되어 있었는데 그래서 더 감정이이입이 되고 우리가 저 배에 타고 있었으면 어땠을까 무섭고 아득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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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점심식사를 하며 뉴스를 처음 보았습니다. 식당에서는 항상 뉴스채널을 틀어놓기에 밥 먹으면서 보는데 빨간 속보 자막에 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이 침몰했다며, 전원 구조되었다는 내용이었죠. 화면으로는 멀리서 줌 땡긴, 머리만 조금 남은 배 부분이 보이길래 "어떻게 저렇게 몽땅 침몰해 버린걸까. 그래도 전원 구조했다니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밥 다 먹을 즈음 여객 안내원 한 명이 구조 과정 중 사망했다기에 "에휴 젊은 친구가 안됐네" 생각하며 자리로 복귀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이 뉴스들은 정반대로 바뀌었습니다. 300명이 넘는 아이들이 구조되지 못했다고.... 퇴근 후 집에 와 부모님이랑 뉴스를 보며 절망한 기억이 아직도 나네요. 애들은 다 어떻게 된거냐고 참담한 마음으로 뉴스를 보았지요. 그날 뭘 했는지 저희 어머니도 똑똑히 기억하고 계십니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이 충격적인 소식 들은 날을 잊지 못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기억이 안 난다는 거짓말은 이제 그만 멈춰주세요. 그날의 참담한 심정이 요새 계속 반복되는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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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뉴스를 수업시간 중 선생님께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때가 어느땐데, 모두 구조할 수 있겠지 하며 불안해지려는 마음을 추스렸고, 이후 정말 전원 구조되었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하교 후 TV를 통해 세월호가 점점 가라앉고 있는 모습과 함께 그 뉴스가 오보였다는 사실을 알고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부모님은 같은 자식을 둔 부모로서 가슴이 미어진다며 말을 잇지 못하셨고, 저 역시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어른들 말을 철썩같이 믿고 가만히 있던 그 친구들. 저는 아직 어른이 아니지만 그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직도 그 날, 기울어져가는 세월호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친구들을 생각하면 자려다가도 눈물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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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무언가로 강하게 맞은 것처럼 멍하니 있었다. 내가 보고 있는 게 사실인가 싶기도 했다. 모든 것으로부터 도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무렵 세월호는 나를 더 깊은 심연으로 끌어당겼다. 왜 안 들어가지? 왜 지켜만 보고 있어? 왜? 왜? 왜? 가서 도와주고 싶어. 지금이라도 뉴스 속으로 뛰어들어서 구해주고 싶은데. 여기에서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어린 학생들과 선생님들과 승객들과 선원들, 가슴이 미어졌다. 너희가 기억도 나지 않는 그 시간들, 우리들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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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생 바닷속에서 건져 올리지 못하는 건 무슨 기분일까. 그리고 그 곳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기분은 대체 어떤 아픔일까. 무색 투명한, 어쩌면 깨끗함으로까지 대변되는 물이 그렇게 무서워 보이기 시작하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저는 감히 짐작도 할 수가 없습니다. 재난의 7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명백한 대처와 행동 사유가 밝혀져도 책임을 묻는 미국 사회에 비해 우리네 인식은 얼마나 무뎠으며, 통수권자의 태도는 얼마나 무책임한지를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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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뉴스를 잘 보지 않는 나는 이 소식을 학교 선생님께 수업시간에 들었다. 처음에는 작은 사고이거 잘 해결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학원이 끝난 10시에 알았다. 함께 집에 오던 친구와 소식을 접하자 마자 눈물을 흘렸고 서로가 옆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그 단원고 친구들한테는 정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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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갔다가 집에 와서 평소처럼 있다가 세월호 사건이 뉴스에 보도되면서 계속 뉴스만 보고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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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충격적이라서 말도 안 나왔던 그 날...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분들이었지만 같이 슬퍼하고 같이 울었습니다...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날의 7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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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햇빛이 따뜻했던 날이었다.대학생이었던 나는 공강시간에 오랜만에 잔디밭 근처 벤치에 앉아친구들과 설문조사를 진행하며 재밌게 놀고 있었다. 그러다 그 순간 뉴스를 접했다. 거대한 배가 기울고 있는 뉴스를.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학생들이 구조되고 있다는 것을 접했고 안도하며 동기들과 카톡을 보내며 상황을 공유했다. 그런데 잠시 뒤 구조 인원숫자가 바뀌기 시작했고 나와 친구들은 뭐가 맞는거냐며 여러 곳의 기사나 뉴스를 링크로 퍼나르며 당황했고 혼란스러워했다.......아무것도 할수없어서 발을 동동구르던 그날의 기억은.. 기억하지 않으려고 하면 할 수록 더 선명해지는 그런 날이다. 무기력했던 내가 한심해서 더 사무치는 그런 날이었다. 잊을수가 없는 그런 날이었다..그 날은.. 무심하게도 햇빛이 따뜻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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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이 하루 지난후가 제 생일이라서 또렷하게 기억나요 그때분명 페이스북이나 언론 매체에 바다에 빠진 아이가 힘겹게 숨을 이어붙이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어요 모두들 그 글을보고 정부에게 알리려고 애썼구요 그런데 위에서 내려온 조치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리고 그 아이의 연락은 끊겼죠 얼마나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까요 하루가 지난 후에도 그 일곱시간이 지난 후에도 왜 도대체 수 많은 알림에도 불구하고 구출하지 못 한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