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 얘들아 나랑동갑또래인 너내 뉴스를 보고서이름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저 울기만했었지 전원구조속보가 떳을땐 정말 마냥기뻤어다시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거에 너무 많이슬펐고하늘도 많이슬퍼하셨는지 비가많이오더라너희들의 눈물이였을까 되게 많이 슬펐었는데어느순간 너희기사들은 구조그런거보다 정치적인 이야기가 많아지더라 그건 아직도 많이슬퍼너내가원하는건 정치적인 싸움이아니라 위로일텐데말이야 미안해 이런세상에서 너내없이 또 살아가는게 하지만 한번도 잊은적없어 아직도 마음속에 살고있어 너희들은 하늘에서는 꼭 행복하길바라 나중에 보게된다면 그땐 우리 행복한세상에서 살자
-
학교에서 그 소식을 접했습니다.아이들 모두 어떡하냐며 걱정을하였고 대게는 곧 구출되겠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미술 시간, 아이들은 선생님께 뉴스를 틀어달라고 요청했고 다 같이 뉴스를 보았습니다.뉴스에서 본 세월호는 이미 반쯤 기울어져 물에 잠겨있었습니다. 배 주위에 구출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적어보여 의아했던걸로 기억합니다.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가 튼 뉴스에는구출되지 않은 학생들이 많다는 내용이였고 저는 기적이 이루어지길 기도하고 애원했습니다. 가족 모두 비통한 표정으로 안타까워 했고 sns도 난리였습니다. 하지만 기적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왜 기적은 이루어지지 않았을까요. 착잡하고 먹먹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기적을 바라기 이전에 충분히 해결되었을지도 모르는 상황들. 7시간의 기억을 건져 올려 부디 진실을 찾았으면 합니다.
-
?2014년 4월 16일, 나는 단원고 학생들과 동갑이었다. 그때 그 소식을 듣고 학교는 아침부터 야자가 끝날때까지 뒤숭숭했고, 계속해서 친구들과 수시로 뉴스를 확인하며 모두가 구조되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그 날의 7시간을 기억하지 못하는게 아니라 못하는 척하고 싶은게 아닐까.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
학생인 저는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집에 와서 들었어요. 저는 우리나라가 무능하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어요. 그 7시간동안 학생분들이 얼마나 추위에 떨고 얼마나 두려웠을지 감히 상상도 안돼요. 실종자 수 구조자 수는 뉴스 곳곳마다 달랐고, 실종자 수가 늘어갈 때마다 심장이 덜컹했어요. 대통령님 그 7시간동안 뭘 했는지 유가족분들 희생자분들 생존자분들 그리고 국민들은 알 권리가 있습니다.
-
사고가 일어난 지 한달이 지나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보고듣는 것이 뉴스와 인터넷 기사가 전부일 때..누군가 세월호보도에 대한 의혹들을 시간대별로 방송사별로 캡쳐해서 올려둔 내용을 보면서 당일 사고당시에는 방송사들이 책임없는 오보를 내고서도 삭제하거나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정부를 옹호하고 유가족과 진실을 알리려는 사람들을 배제하는 여러 정황들을 보며 분노하던 시간들 아직도 생생합니다.숨기고 옹호한 자들은 더 생생해야지요..
-
2년전, 단원고 친구들과 동갑인 18살의 나는 그날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다.학교에선 휴대폰을 내기 때문에 세월호에 대한 소식을 모르고 있다가 쉬는 시간 옆반 친구가 "빨리 사람들 구하러가야 되는데" 라는 말을 듣고 처음 세월호에 대해 듣게 되었다. 처음엔 단순한 사고인 줄 알았다. 들어보지도 못한 배 사고에 그 심각성을 감히 상상도 못한 것이다. 그냥 좀 기울다 금방 구조되겠지 하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5교시 6교시 수업에 들어오는 선생님들 마다 모두 세월호 뉴스를 전해주셨다. 조금씩 나는 심각성을 느꼈지만 그래도 당연히 다 구조되겠지 라는 생각을 했다. 야자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 휴대폰을 켜보니 뉴스는 심각했다. 깜깜한 밤이 되었는데 구조자는 턱 없이 적은 숫자였다. 그렇게 하루 이틀 일주일 열흘.. 시간은 흘렀고 나는 티비를 틀지도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지도 친구와 떠들며 웃지도 못했다. 웃음이 미안한 날들을 보냈다.
-
친구랑 밥을 먹고 있었어요.식당에서 틀어놓은 뉴스를 보는데,어느 큰 배가 바다에 침몰했다고 하더라구요.모두 구조했다고 그러길래 친구랑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고 밥을 먹었어요.그 친구랑 밥을 수십번 먹었는데 그 뉴스를 보며 먹었던 그 시간과 식당, 메뉴는 절대 잊혀지지 않아요.절대 잊지 않을게요.
-
여느때처럼 대학교 강의실에서 강의를.듣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후배 한 명이 말했습니다. 제주도로 가고 있던 배가 침몰했다고.그리고 그 배엔 수학여행을 가고 있던 고등학생들이 타고 있다고. 경악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곧 전원 구조를 성공했다는 말이 들려왔고, 안도했습니다. 그런데 곧이어 구조된 사람들을 중복해서 카운팅하였고, 아직 몇백명이 배 안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계속 손에서 휴대폰을 놓지 않았습니다. 언론에선 에어포켓이 존재할 가능성을 계속 보도하였고, 밤까지 그러한 보도가 이어졌으나, 학생들을 구조했다는 소식은 좀처럼 들리지 않았습니다. 정말 아직까지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한데, 박근혜씨, 당신은 도대체 무엇을 하셨나요?
-
그 날 저는 학교 수업을 듣는 중 이었습니다.반 아이들과 다같이 같은 모습만 반복이되는 뉴스를 보며 생존자의 수가 더 줄어들지 않기를, 가슴 졸이며 보았습니다. 저는 짧은 기간을 살아왔었지만 그렇게 충격적인 일을 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그 많던 생존자의 수가 사망자의 수로 바뀔지 누가 알았겠습니까?살아 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따듯한 부모님의 품에 안길 수 있었습니다.왜 도움을 거절 했나요? 도움을 거절했으면 왜 구조하지 않았나요?차가운 바다에 있지 않아도 되었습니다.독립 운동가 분들에겐 죄송하지만애국심이 생기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지금의 저는 중학교 3학년이 끝나갑니다. 부디 세월호는 끝나지 않길 바랍니다.
-
한국지리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뉴스를 틀어보라고하셔서 나는 틀어봤다 . 근데 분명 세월호 탑승자"전원구조"라는 문구를 보고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 그런데 두시간이 조금 안됐을 무렵에 다시 티비를 켰는데 배안에 갇혀있다는것이었다.구명보트도 많았고 헬기도 있었던 시점에서 그때정부가 조금이라도 판단을 잘해서 지시를 내렸더라면 그때 같은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나와 같은 나이라 더 기억에 남는것도 있지만세월호는 잊혀져서는 안된다 . 2014.04.16
-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나는 항상 4월 16일을 기억하고 잊지않을 것 이다.
-
스물 셋, 상수역 근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전원 구조 속보를 보고 잠시나마 안심했던 것이 아직도 속상하고 죄스럽다. 연이어 전해오는 충격적인 속보들을 보며 키보드 위의 손은 연신 떨렸고, 마우스 위엔 식은 땀이 묻어났다. 그 날의 7시간은, 나의 세상이 잠시 멈춰버린 시간이었다. 멍한 마음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것이 미안해 감히 다른 일을 손에 잡는 것 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 무기력한 시간이었다.누군가는, 믿기 힘든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그 7시간. 그녀의 마음이 가벼웠던 만큼, 다른 이들의 마음은 얼마나 무거웠는지 알기는 할까.
-
그날 평소와 다를거없이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배가 침몰했다는 소리를 듣고 놀랬지만 괜찮아 지겠지하고 넘겼던 내가 너무 한심스럽다그러고 학교마치고 학원갈때쯤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걸 느꼈을때 모두 구출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했는데 실종인원이 늘어나자 불안해지고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내가 너무 한심했다잊지않겠습니다 2014 .04.16
-
고딩이었던 난 학교에있었고 친구한테 배침몰이되었다고 들었고 다 구조가되었다는 소식도 들어서 별 대수롭지않게 여겼는데 밤에 뉴스를 보고 심각성을 깨달았다 인터넷으로 기사를 보고 뉴스를 보는데 눈물이 없던 난데 너무나슬펐고 눈물을 흘렸다 나랑 한살 차이 동생들이 그런 끔찍한 일을 겪었다는게 너무 안타깝고 화나고 그런 하루였던것 같다
-
지금쯤 스무살을 지나 스물한살을 기다리고있을 우리아이들 , 항상 미안하고 미안합니다 절대잊지않겠습니다
-
2년 반정도 지난 일이지만 나는 똑똑히 그 날을 기억한다. 2년 전 다른 일을 떠올리라 한다면 대답할자신이 없지만 그 날일 만큼은 그 상황은 정확히 기억이 난다. 기숙사에서 룸메와 함께 중간고사 공부를 하고 있었다. 함께 기사를 봤고 전원구조 되었다는 말에 안심하고 중간고사를 보러갔다. 갔다와서 다시 뉴스를 봤을 땐 망연자실했다. 그 날 아니 며칠동안은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뉴스만 계속 들여다 봤다.
-
학교에서 수업을 듣던 중 "수학여행가던 학생들의 배에 사고가 났다. 그러나 전원 구조했다고 한다" 선생님의 말씀에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돌리며 수업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오후가 되서 전원구조가 아니라 배는 침몰되고있고 아직 빠져나오지못한 학생들이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얼굴도 모르는 친구들을 위해 모두가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염원했습니다.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살아돌아와달라고,, 평생 한번 마주치지도 못한 친구들이지만 수능이라는 한가지 목표를 가지고 쉼없이 달려왔을 그들의 꿈을 누구보다 공감할 수 있기에 그 모든 아이들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주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저조차도 이렇게 숨이 막히고 가슴이 아픈데...어찌 잊겠습니까 그날의 그 7시간을, 어른들의 무능함으로 죽어간 우리의 친구들을, 차가운 물속에서 시신조차 거두지 못 한 아이들이 많습니다. 누가 감히 이 아이들을 당당히 잊었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루라도 빨리 그 더럽고 어두운 정부의 뒷이야기들이 밝혀지길 바랍니다. 저희는 아직도 잊지않았고 잊지않을것입니다.
-
학교에서 스피치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교수님이 방금 전 "큰 배가 침몰했다는 뉴스가 났다. 다행히 전원 구조되었다고 하더라"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전원 구조됐다고 하니, 뭐 그렇구나 하고 그냥 넘겼는데 뉴스마다 말이 달라지기 시작하더라구요. 친구들이랑 카페가서 과제하면서, 이따금씩 "야 이거 봤어?" 이야기 하며 시간을 보냈어요.조금 걱정이 됐지만, "뭐, 알아서 되겠지. 설마" 라고 생각했던것 같아요. 그리고 다음날부터는 그 믿음이 점점 "어..?"로, 나중엔 절망으로 바뀌었죠.
-
미국에서 있던 우리 가족은 뉴스를 보고 정말 마음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받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하야하라.
-
처음 세월호가 침몰된다는 것을 안건 고등학교에서 2교시인 컴퓨터시간에 알았습니다. 그땐 기사에서 다 구출됐다고 해서 아무런 걱정도 하지않았습니다. 그렇게 학교를 마치고 집에와서 뉴스보니까 사망,실종,구출 이라는게 써있었습니다. 아 기사가 잘못되었었구나 싶었습니다. 내 또래 친구들과 누군가의 엄마,아빠,동생,언니,오빠가 세월호에서 목숨을 잃었다는게 너무 마음이 아프고 더이상 있어서는 안될일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