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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영어듣기평가가 있는 날 이었다. 학교 내신 시험이 2주 앞으로 다가온 시기 이기도 했다. 솔직히 타인의 아픔보단 당장 나의 성적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세월호 침몰"이라는 기사를 봤을 때도 그냥 심각하지 않게 넘겨버렸다. 그냥 다들 구조되기를 바라며 당장 내 앞의 공부에 집중했다. 아무 일 없는 듯 지극히 정상적인 일과였다. 몇시간이 흘렀을까 수업을 위해 킨 포털사이트에 도배된 세월호기사를 보는 순간 든 생각은 뭐였을까? 모르겠다. 그 때부터 나는 수업시간에도 자습시간에도 책상 속 핸드폰만 쥐고 제발 한 명이라도 더 살아주길 기도했다. 나와 똑같은 설렘을 느끼며 배에 올라탔을 단원고 학생들, 나와 똑같이 공부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대학입시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을 그 들.그들과 내가 제발 같은 날 같은 하늘 아래에서 수능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기도했던 것 같다. 하루종일 기사만 새로고침하며 울기를 반복했다. 그 날은 유난히 하루가 길었다. 시간은 느리게 갔고 구조작업 또한 더디게 진행되었다. 나는 여기 편안한 기숙사 책상에서 샤프를 쥐고 있는데 그 친구들은 어둠 속에서 추위와 두려움에 떨고 있을 생각을 하니 공부를 할 수 없었다. 그 날 내가 한 일은 고작 기사를 읽는다거나 응원댓글을 단다거나 하는 지극히 사소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때, 나는 2014년 4월 16일 절대로 잊지 않으리라 계속 날짜를 되내었고 맹새컨데 나는 썩어빠진 사회를 살리는 국민의 얼굴,바른 언론인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아직도 기억한다. 그 날의 그 마음.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내 명찰 옆에 채워져 있던 노란 리본. 그리고 나는 계속 기억할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오만감정이 섞인 표정과 그 날 멀리서 방관하던 비열한 그들의 이름을. 호명하기도 더러운 그들의 웃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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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하루종일 어안이 벙벙했습니다.나와 같은 나이의 아이들이 저 컴컴한 바다 밑에 있었습니다.어리둥절했습니다.이게 사실인 것인지, 몰래 카메라는 아닌지.화가 났습니다. 무능력한 정부가, 너무나도 안일한 정부가.교육청에는 난리가 났고, 학교에는 비상이 걸렸습니다.반의 아이들 몇몇은 훌쩍 거리기 시작했고, 선생님께서는 울음을 참는 듯 보였습니다. 7교시가 끝나고 가방을 챙겼습니다.그 길고 길었던 7교시가 너무나도 짧았습니다.집에 돌아와 뉴스를 보았습니다. 너무나도 거짓말 같은 뉴스에 헛웃음이 나왔습니다.허무했습니다. 그들이, 차가운 저 바다 속에 있는 그들이 고작 나이 열여덟이라는 사실에 눈물이 흘렀습니다.나와 같은 나이. 누군가의 친구, 또 누군가의 가족, 예쁜 아들, 딸 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먹먹했습니다.하지만 정부는 무책임했고, 무능했습니다.유가족들의 슬픔을 달래주기는 잠시뿐.나는 기억합니다. 그 날의 그 허무하고 먹먹한 기분을.이유없이 눈물이 흘렀던 내 모습을.한없이 안타까워했던 우리 부모님 모습을.소중한 아들, 딸을 보내야만 했던 유가족의 얼굴을.나는 똑똑히 기억합니다.2014년 4월 16일.그 날이 지나고 어영부영 시간은 흘렀습니다. 무덤덤해졌습니다.간혹 그 아이들에 대한 자료가 나오면 눈시울이 붉어졌을 뿐, 나는 무덤덤해졌습니다.이런 내가 너무나도 그 아이들에게 미안합니다.나처럼, 꿈이 많고 장난 많던 아이들이 이젠 침묵으로 대답합니다.이렇게 어렸던 나도, 그 날 2014년 4월 16일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당신은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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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교양영어수업 중간고사를 보는 날이었습니다.오전에는 전공수업이 있었고, 전공수업을 들으며 페이스북에서 희안한 뉴스를 보게 되었죠.제주도를 향해 가고 있는 배가 선체가 기울어지고 있다. 그 때까지는 심하게 기울어져있는 사진도 아니었고, 심지어 배 근처에 구조를 할 수 있는 다른 배들도 많았기에 대수롭지않게 여기고 넘어갔습니다.전공 수업이 끝나고, 밥을 빨리 처리하고 교양영어 시험공부를 하고자 했습니다. 이른 시간, 학식에서 밥을 먹는데, 티비에서는 아침에 봤던 뉴스를 속보로 계속 방송하고있었습니다.한두시간새 배는 훨씬 많이 기울어졌고, 안에 사람이 있다면 빠져나오기 힘들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배밖으로 나온 사람들과, 구조하고있는 배들을 보며 다행히 큰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이어 전원구출을 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시험을 보러 들어갔습니다. 시험을 마치고 나오자...저는 이렇게 똑똑히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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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창립기념일 휴가라 제주도로 가려던 중에 세월호 사건을 들었다. 당시 몇백명이 구조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알듯이 그 보도는 잘못된 것이었다. 그 날 게스트하우스의 분위기는 정말 다운이었다. 그런 끔찍한 사건이 없었다면 지금쯤 그 아이들도 제주도에서의 즐거운 밤을 보내고 있었을텐데... 다들 믿기 싫어했다. 벌써 2년이 훌쩍 지났지만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 그들의 7시간은 수백명의 생명이었다. 반드시 밝혀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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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에티오피아 출장을 다녀오던길. 비행기가 한국땅에 내리자마자 배사고가 났대 하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마주했었다. 급히 검색해본 뉴스는 전원구조라고 했고, 그렇게 공항에서 가방을 찾아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할 때 쯤, 이제까지의 뉴스는 오보이고 여전히 구조작업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 가족들과 함께 끝끝내 침몰 소식을 들었을 때, 그리고 그 이후에도 얼마간 신문을 읽다가, 뉴스를 보다가, 몇 번이고 눈물을 쏟아버렸더랬다. 이후, 세월호와 관련해서 수없이 쏟아진 기사와 칼럼들 중, 일상생활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 여전히 후진국이라던 한 칼럼에 무어라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해 깊은 공감을 해버렸던 기억조차 내게는 여전히 너무 생생하다. 세상에는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하는 기억들이 있다. 그리고 역사를 구성하는건, 어쩌면 모두가 공유하는 바로 그 기억들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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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뉴스를 보고 하루종일 인터넷, 티비만 붙들고 있었습니다.당연히 전원구조 될 줄 알고 있었지만, 당연한게. 당연한게 아닌게 되었네요.배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트라우마가 생기겠네...라고 염려하고 있었지만. 그 트라우마는 우리가 겪게 되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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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했죠. 업무시간이었는데 저 정도 사고라면 전원구조는 시간문제라 생각했습니다. 제 자신도 해군이었고 바다에서의 사고는 낯익었으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믿기지 않았습니다. 구조를 못한것이 아니라 안한것입니다. 우리 아이들 미안해서 어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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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제가 운영하던 카페에서 트윗으로 뉴스를 보다 결국 티비를 뉴스 채널에 맞혀두고 손님들과 직원들과 뉴스에만 집중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일반 시민도 그렇게 그 사건에 집중했는데 피의자 박근혜씨는 무엇 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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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길 바랬고 일어나면 안되는 일이 벌어졌던 날이였죠. 왜 사람들이 밖으로 안나올까???왜 구조를 안하지???나에게도 우리에게도 저런일이 생길수있겠다. 국가가 국민을 버린 느낌???그리고 그날이였던것 같아요. 지상파뉴스를 끊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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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달력을 찾아 보지 않아도 그 날이 무슨 요일인었는지도 기억납니다. 평범한 직장인이 탓에 아이들이 탄 배가 기울고 있던 수요일 오전에 전 업무중이었고, 사내에서는 외부 인터넷이 안되는 탓에 스마트폰을 통해 조금 늦게 기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오전만해도 전원구조 되었다는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렸는데, 점심시간에 식사를 하며 보게된 TV속 속보는 정 반대였습니다.아이들이 여전히 저 안에 있는데, 배는 이미 기울었고., 차가운 바다로 잠겨들어가고 있었습니다.그래도 여전히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안전부절하며 오후시간에 계속 뉴스속보를 찾아보았습니다.저렇게 사고현장이 분명한데, 사람들이 저 안에 있는데... 구하러 가겠지, 구하겠지, 구해주겠지....그 희망이 물거품이 되던 순간...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미안하고 미안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미안해서...그런데.... 무엇이라도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박근혜씨는 그 시간에 도대체 그 시간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온 국민이 세월호와 함께 물에 빠져들어가는 마음으로 슬퍼하고 통곡하던 그 시간에... 당신은 누구와 무슨일을 하고 있었나요?우리는 그에 대한 답변을 들을 권리가 있습니다.당신은 그 시간에 무엇을 했는지 답할 의무가 있습니다. 반드시 끝까지 알아내겠습니다.당신이 대통령으로 있는 나라의 국민이라는 이유로 죄없이 죽어간 사람들의 목숨에 대한 죄값을 꼭 치르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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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렷이 기억하는 이유는 일때문에 파주를 갔었습니다. 업체를 방문하고 다시 수원어 있는 사무실로 복귀하기전 통일로 가기전에 물을 사려고 편의점 들렷다 세월호 침몰에 전원구조라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다행이다 생각하고 수원 사무실 도착해서 업무를 보고 퇴근해서 뉴스를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전웨구조라는 뉴스가 개뻥이었기에.....대통령의 7시간에 나는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구조 했다는 뉴스를 보고 다행이다 생각하구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것에 화가나고 열받았습니다. 인터넷뉴스도 안보고 구조소식만 듣고 열심히 일했는데.....내가 이러려고 열심히 일했나하는 자괴감이 들었으니까요~ 일년뒤 4월16일에 개인사업을 시작 했습니다. 이날로 정한건 우연이지만내 기억속에 영원히 남을 날입니다. 영원히 잊지 못하고 잊어서는 안될날이 된거죠~ 사람들은 잊자고 하기도 합니다. 그때 이렇게 얘기합니다. 세월호에 당신의 자식이~ 당신의 가족이 타고 있었다면 잊을수 있겟냐구요~ 세월호를 둘러싸고 수많은 이야기들이 나옵니다.어찌되엇든지 그건 학살입니다.진실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구요~박ㄹ혜의 7시간이 궁금한게 아니라 대통령으로서 7시간동안 무엇을 했느냐가~ 진실이 궁금하고 밝혀지기를 국민의 한사람으로써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궁금합니다.그리고 분명한건 직무유기에 대한 엄중한 처벌 받기를 원합니다.다신한번 전원구조라는 방송~ 그런 기사가 꿈이 아니었으면~ 과거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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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쯤. 학원 수업 공강시간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고, "큰일이지만 구조됐다니 다행이네... ." 그런데 집에 와서 그 배가 여전히 그대로 있다는 것과 사람들이 갇혀있다는 소식을 듣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제발 제발 구조되기를 얼마나 빌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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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아침 운전면허 봉고 아래서 처음 전원 구조를 했다는 소식에 한도의 숨을 쉬고 있었는데요. 오후가 되자 300명 의 학생이 아직 배 안에 있다는 슬픈 소식에 하루 종일 jtbc 뉴스를 보면서 기도 했어요. 담날 새벽까지 잠도 설치고 마음이 많이 조렸던 그날 이었습니다. 팽덕항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신 어머니의 부은 눈, 피의자 박근혜 손을 부여 잡으며 간곡히 부탁하는 그분들의 간절한 목소리 아직 도 생생합니다. "거짓말" 같던 그 날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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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출근을 했고,사무실에서 여객선 사고가 났다고 큰 소리 치며 놀랬을 때 조차 그냥 단순한 사고 인 줄 알았습니다.전원 구조라는 오보만 믿고 오전을 보내고 점심을 먹고....점심먹으면서 세월호 탑승자의 대부분이 남동생과 같은 나이의 학생인 걸 안 순간부터..오후 부터는 일도 손에 안잡히고 현장 생중계만 보면서 빌고 또 빌었습니다. 한명이라도 더 생존자를 찾길 바라는 마음으로..어떻게 총 탑승자 수도 확인이 안되며 우리의 안전 총 책임자는 털 끝도 안보이는지 화가 났지만한명이라도 더 구출하길 바라는 마음 뿐이었습니다.2년이 지났습니다.저는 아직도 그날의 제 7시간이 생생합니다.여느 날과 같이 평범했던 일상 중에 벌어졌던 끔찍한 사고니까요...그 평범한 수요일, 대통령은 어디서 무얼 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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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16일..저는 당시 건강이 조금 않좋아서 병원에 있었는데 평상시 처럼 TV를 시청하다가 YTN에서 <뉴스특보>를 방송하고 있었습니다..아이들의 구조소식에 빨리빨리 전부다 구조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종일 <뉴스특보>에 집중 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마음 입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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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휴학생이었던 저는 학교 동기와 오전부터 약속이 있어 나가던 와중이었습니다. 아침부터 틀어놓은 TV에서 세월호 침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전원 구조"되었다는 말을 보며, 어떡해, 그래도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집을 나섰더라죠. 동기와 만나 보기로 했던 영화를 보고 카페에 들어가는데,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무심하게 확인하다가 첫 페이지에 뜬 뉴스를 발견할 수 있었어요. "전원 구조는 오보였다"고, 그러며 구조된 사람들의 숫자와 아직 배에 남아있는 이들의 숫자를 말해주는데 그게 자꾸 바뀌더라고요. 어떤 곳에서는 몇 명이었다가, 또 다른 곳에서는 그 숫자가 줄었다가 다시 어느 곳에선 늘어난 숫자로 말을 했죠. 동시에 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동기와 저는 음료를 주문해놓고 한참동안 서로의 휴대폰만 들여다보며 마음을 졸였습니다. 오전에 소식을 듣고, 안일하게 지나쳤다가 다시 그게 잘못된 뉴스였음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얼마나 심장이 덜컥했는지. 그래도 괜찮겠지, 구하러 간 사람들이 있다고 하니까, 구조 소식이 조금씩 들려오니까, 어떻게든 구조되겠지.하지만 제가 정부를, 나라를 너무 믿었네요. 그 이후 줄곧 이어지고 쏟아지는 뉴스를 제대로 보지도 못하다가 언제 한 번 마음을 다잡고 뉴스를 봤을 때 일면식도 없는 이들의 죽음과 여전히 뭍으로 나오지 못한 "실종자"들의 소식에 얼마나 눈물을 쏟았는지 아십니까. 저는 그 날, 그 뉴스를 보았던 날, 그 일이 일어났던 날에 누구와 무엇을 했으며 어떻게 움직였는지까지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그럼에도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그 날의 저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누가 그냥 영화 속일 뿐이라고 말해주었으면 좋겠네요. 한 나라의 대통령이, 사고가 일어났던 당일 7시간의 행적감추기에 급급하며 여전히 나 몰라라하는 세상에서 살고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세월호 유가족들이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설명을, 사과를 듣지 못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요.우리는 기억합니다. 잊을 수조차 없는 날입니다. 그런데 그 날의 당신은 무얼 하고 있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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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학년 담임이였다. 그리고 수학여행이 일주일쯤 뒤였고, 그날도 수학여행을 위한 준비사항을 아이들과 점검하고 잔소리를 할 예정이였다. 2교시 쉬는 시간에 처음 소식을 접했다.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그래도 대한 민국인데... 그러나 시간이 지날 수록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다. 시간이 날때마다 포털을 들락거리며 기쁜소식을 기다렸지만,... 하루 종일 뒤집어진 배를 보며 믿지도 않는 신에게 기도했다. 그리고 우리 나라는 분명히 저들을 구할 것이라고, 기술적으로 잘 모르지만, 그렇게 무한한 신뢰를 가졌다. 그러나 그뿐이였다. 그리고 그 뒤로는 울었다. 이유가 없었다. 화나서 울고 또 아이들과 시민들이 불쌍해서 울고. 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기도하고 분노하고 울기만 했다.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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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 정확히 제가 무얼 하고 있었는지 명확하게 기억나진 않습니다.평소처럼 그냥 회사에 출근해서 일을 하고 있었겠지요. 커피 마시고 웹서핑하고... 어제 그제 했던 일을 반복하고 있었겠지요.하지만 그 흐릿한 배경속에 뚜렷이 남아 있는 기억은 우리의 아이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 정부와 권력 가진 자들의 무관심속에 하염없이 가라앉고 있는 모습입니다.슬픔이 먼저 찾아 왔고 눈물이 흘렀으며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아무것도 해줄 게 없는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사람이면,,적어도 사람이라면 저와 같은 심정이였을텐데.... 도대체 당신은 사람이긴 한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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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오보를 보고 그대로 동아리 활동을 하고 동아리 활동이 끝나고서야 세월호의 심각성을 알게되었습니다. 아직까지도 많은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국민여러분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그당시 안산 학생들은 아직까지도 주변에서 들리는 세월호 얘기에 상당히 민감하며 실제로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이 심각한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잊지 말아주세요. 안산에서는 참사후 오늘 이시간 까지 계속해서 세월호 7시간, 왜 구조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나 진상규명을 요구해왔지만 일부 국민들은 유가족들의 보상금문제, 세월호 인양 비용 등 본질을 흐리는 싸움으로 저희들을 많이 가슴아프게 했습니다. 이제서라도 모든 국민들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의 심각성을 깨닫고 함께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희 안산 학생들은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할 4월의 슬픔입니다. 국민여러분 끝까지 함꼐해주세요.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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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연구실에 있었습니다. 조용하고 아무 일 없는 평일 오전이었습니다. 수학여행 가는 아이들을 실은 배가 기울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서 인터넷 뉴스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기울어진 배가 담긴 사진과 기사들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놀라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연구실에 있던 동료들과 함께 이게 웬일이냐며 이야기할 때까지만 해도 그들이 당연히 구조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그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상했던대로 그들이 전원 구조되었다는 뉴스까지 듣고서 학교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점심 먹는 동안에 배가 기울다니 황당하다, 구조되었다니 다행이다 세상에 이런일이 있냐 애들 진짜 놀랐겠다... 라고 동료들과 이야기하며 웃었습니다. 늘 하던 일들을 그날도 계속 하면서 평소와 같은 하루를 보냈습니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구조되었다는 소식은 오보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잠겨가는 배를 보며 울고 있는 단원고 학생 가족의 모습을 뉴스에서 보았습니다. 나오지 못한 아이들, 그리고 그 가족을 생각하며 아무 생각을 할 수가 없던 그 시간을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