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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제주도는 바람이 많이 불고 비내리는 우중충한 날씨였다. 사고를 슬퍼하기라도 하듯이...그때 나는 친구들과 비행기를 타고 막 제주도에 도착했는데, 핸드폰을 켜자마자 가족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걱정이 담긴 문자와 전화가 쏟아졌다. 지금 사고났는데 너희는 괜찮냐고. 이후 점심을 먹을때 전원구조라는 속보를 보고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하지만 계속 바뀌는 뉴스내용에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느끼게됐고 친구들과 숙소에서 티비를 켜 뉴스를 보면서 그들이 무사하길 바랬다.그렇게 우리의 수학여행은 조용히 지나갔다.이후에 그들이 무사히 제주도에 도착했다면 우리와 가까운 곳의 숙소에 머물고 같은곳에서 밥을 먹어 한곳에서 만날 것이었으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먼저 난다. 나와 같은 나이의 친구들이 어떤 공포를 느꼈을지 나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만큼 무섭다. 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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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수업에 정신없는 하루 보내고 있었어요 수업도중 속보뉴스를 봤지만 전원구조 소식에 괜찮을꺼라 생각했는데 사실 물위에 떠있던 뱃머리를 보면서도 괜찮을꺼야 했는데 많이울고 뜬눈으로 맞이한 3일째아침 믿을수없는 광경에 가슴이 내려앉았어요 ...미안해 괜찮길 두손모아 바랬어... 왜 아무런 조치가 없었어요? 왜 덮으려는 언론만 터뜨렸던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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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점에서 점심때쯤 뭘 살 때 전원구조됐다는 오 보를 접했어요. 친구들과 몹시 기뻐했었죠 그런데 야자할때쯤 일이 잘못되어감을 깨달았죠. 그리고 그 이후에 많이 울었어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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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조별로 모여 실습을 하던 중 과목 담당 선생님이자 담임 선생님이 잠깐 나갔다 들어 오시면서"애들아 진도에서 배 침몰 하고 있대 너희랑 같은 나이 애들도 있단다 우짜노"이 한마디에 반 애들은 술렁 거렸고 나 또한 친구들 이랑 헐 어떡해 하면서 불쌍해 하고 걱정했다.다행히 몇분이 지나지 않아 담임선생님은"애들아 전원 구조 했대"라고 말씀 하셨고이윽고 또 한번 애들은 다행이다 완전 다행이다 하면서 안심했지만 약 5시간이 지나고 수업이 다 끝나 종례를 마친 후 받은 핸드폰을 켜 네이버 앱을 열자 뉴스 메인엔 속보라고 보란듯이 빨간색 글씨로 쓰여진 글자 옆엔 전원 구조 대신이미 구조자 보다 사망자가 더 있다는걸 알 수 있었고우리랑 동갑인 단원고 학생들이 대부분 탑승했단것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기대와 기도와 달리 끝까지 구조자의 수가 사망자 수를 앞지르지 못 한걸 보았고 여전히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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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이 홍도 흑산도 여행 을 가셨다가 돌아오는 날이라 아침 출근하면서 뉴스를 접하고혹시 여행중 돌아오시는 길이라 더 마음 졸이며 통화하면서 계속 뉴스를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세월호는 아니었지만 1년전 똑같은 코스로 수학여행을 간 큰 아들이 생각나서 마음 졸이며 지켜봤습니다. 너무나 안타깝고 그런 비상상황에 어떤 조치도 없이 침몰해 가는. 배를 지켜보면서 지금도 너무 안타깝고 미안하고 가슴 아픈 일이라 기억이 또렷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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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아침을 먹으려고 집에 가면서 들었다가슴 조이며 보고 있다가 전원구조 라는 말을 듣고 환호하며 밥을 차리는데....구조는 개뿔!! 그날 한끼도 못먹었다그날부터 눈물로 보낸 시간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인간도 아닌것들!!다시 그날들이 떠오르며 죽이고싶은 분노가 치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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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전국동시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후배의 예비후보등록 및 선거관련 준비중 오전 7시 10분전후로 KBS2의 생방송 아침마당(확실치 않지만???)의 하단자막에 여객선 침몰중이란 속보를 보게 되었으며 이후 모든일정 중단하고 전원구조라는 얼토당토 않는 TV오보를 보며 일순 환호하였으나 오후2시가 넘으면서 환호가 절망이 되었습니다. 이후 모든 눈과 귀는 생존을 기다리는 기레기언론의 능멸에 또 한번 분노하게 되며 간절한 바램을 담아 화명촛불과 서면촛불이 밝혀졌으나 모든희망이 사라진 지금까지 꺼지지 않는 진실규명을 위한 저항의 촛불이 되었습니다. 기레기언론과 순실이와 근혜외도 이 사항을 악용 및 폄하한 모든 인종들 단죄에 모두 힘을 모읍시다. 세월호 진실은 꼭 밝혀내야 됩니다. 우리는 또렷이 기억합니다. 2014.04.16 오전 8시54분 이후의 그 추악한 민낯을......3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날의 7시간에 대한 어떠한 행적도 내놓지 못하는 댓통년의 추악한 행실과 부역자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참혹함과 무능함의 극치를 보인 정부의 행태에 분노가 넘쳐 이젠 철저한 사실규명과 그에 합당한 처벌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 갑시다. 진실은 결코, 침몰 되어선 안됩니다.아직도 차가운 진도 앞바다 맹골수로에서 가족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아홉 분 권재근님 혁규부자와 고창석님 이영숙님 양승진님 조은화학생 허다윤학생 남현철학생 박영인학생 얼른 가족품으로 돌아오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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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골프 동호회에서 버스를 타고 라운딩가는 날이었습니다. 제가 총무라 버스 안에서 그날 일정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도중에 한 분이 세월호 소식을 핸드폰으로 보시다가 저에게 알려주셨습니다.회원님들에게 사고 소식을 전해주라면서요. 왜냐하면 저희 모임이 안양,수원 이쪽이라 혹시나 사고와 관련된 분이 있을지도 모른다면서요..저는 전달하면서 이렇게 큰 사고라고 생각지도 못하고 가볍게 전달하고 그날 일정을 설명하고있는데 또 다른 회원님이 모두 무사히 구출했다고 얘기하셔서 안심하고 도착 후 라운딩을 하였는데 나중에 억장이 무너지는 비보를 듣게되었습니다. 그때 함께하신 회원님들 모두 똑똑히 기억하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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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처럼 폄범하게 출근을 했고, 업무처리에 여념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회사 사람들과 업무용으로 사용하던 네이트온에서 배가 가라앉고 있고 사람들을 구조중이라고 했던 뉴스특보를 봤어요. 걱정이 되긴 했어도 당연히 구조 될거라고 생각했고, 또 얼마후에 전원구조라는 기사를 접한뒤에는 다행이구나 생각하고 크게 신경쓰지 않았죠.점심시간에 사고에 대해서 얘기를 나눌때에도 오전에 전원구조 되었다는 기사를 봤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얘기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원래는 사고 이틀뒤에 회사 워크샵을 가기로 되어있어서 미리 업무를 땡겨서 하느라 더 정신없는 하루였던것도 기억나요.그 날일이 전 이렇게 생생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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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날 수련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때 조교님은 큰 일이 터졌으니 조심해서 집으로 가라고 하셧고 우리는 조교님이 우리를 겁주기 위한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서 우리는 정말 큰 사건이 터진것을 알고 놀랬지만 전원구조라는 뉴스가 떠서 안심하고 눈을 붙였다. 하지만 집에 도착하니 엄마는 티비를 넋을 놓고 보고계셨고 그순간 나는 사망자와 아직 구출되지 않은 사람의 수를 봤다. 그때 짐도 풀지않고 엄마옆에서 멍하니 뉴스를 보던게 아직 생생하게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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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고 얼마 안돼서 전원구조라는 소식을 듣고그래도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선진국형 구조를 하고있고 또 해경도 든든하다고 생각했지요...그런데 그 예쁜아이들이 구명조끼만 입고 선내에 있으며 구조되지 못했다는 소식을 보고 저는 그날 하루종일 일도 못하고 울고.. 또 울고 ...몇일동안 티비를 켜놓은 채로..... 실종자수가 줄고 구조자 수가 늘어나기를 바랬지요....사망자수가 늘어나는 기사를 보며 정말 가슴이 찟어지는것 같았습니다그날...... 7시간.... 제가슴이 찟어지는 고통을 저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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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모 대기업의 1차 면접을 준비중이었습니다. 하루에 7시간 정도 스케줄을 잡아 면접 스터디를 하고 있었는데 중간 휴식시간에 리더가 "지금 뉴스 빨리 봐보세요!!"라고 외쳤던게 기억납니다. 학생들이 가라앉는 배 속에 있다는 기사였습니다. 금방 구할수 있을거라고, 희망적으로 쓰여있던 기사. 저희는 그 기사를 믿고 미래를 위해 면접 준비를 진행했습니다. 이후 늦은 오후 무렵 쉬는 시간을 한차례 더 가졌습니다. 다들 말없이 포털사이트를 키기 바빴습니다. 거의 다 구했다는 기사가 메인에 나와 있었습니다. "와 빨리 대처했나봐요" 다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저녁을 커피로 대신해 빈 배를 채우고, 다시 막바지 스케줄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스터디가 끝난 후 포털 사이트를 다시 키자 어린 학생들의 구조가 되지 않고 있다는 말이 바뀐 기사가 올라와 있더군요. 모두 당황해서 며칠후의 면접, 당장의 막차 시간을 잊고 배에 대한 정보를 찾기 바빴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 실내에 앉아서 준비를 할 시간에, 어린 학생들이 차가운 바닷물에 잠겨갔다는 그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 2년이 넘게 지났지만 저는 그날을 뚜렷하게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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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던 그 날, 저에겐 전역 후 사회에서 맞이하는 첫 날이었습니다. 자유를 만끽하며 늦잠을 자고 일어나 티비를 켜니 저의 개인적 삶과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나 있었습니다.제가 2년 간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했다는 자부심은 사라지고 국가에 대한 배신감과 불신만이 마음 속에 자리잡았습니다. 제가 뉴리는 모든 삶이 희생자들에 대한 죄처럼 느껴졌습니다. 지금, 그 죄의식을 기억으로 남겨 영원히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우리는, 저는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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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수학여행 간 날이었다. 오전에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래서 엄마한테 전화드렸는데 동생은 비행기를 탔다고 했다. 마침 전원 구출이라는 속보가 떠서 안심하고 여느 때와 같은 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중 끔찍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동생을 걱정하고 내 일이 아니라 안심했던 내 자신이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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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기억력이 좋지않지만 그날은 똑똑히 기억합니다! 달력을 보아야 어제가 무슨 요일인지 오늘이 몇일이였는지 아는 제가 그날은 수요일이였단사실을 잊지못합니다 그날은 어느때와같이 교양 수업을 들으면서 저는 과제를 하고있었습니다 다른 학과 학생들이 배가 기울어졌대 고등학생들이 타고있대 라는 소리를 듣고 바로 핸드폰으로 찾아봤던 기억이 납니다 전원구조라는 기사를 봤을땐 정말 기뻤습니다 하지만... 진실이 아니얐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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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가는 길에 들여다 본 스마트폰에서 수십 개의 속보가 떴습니다. 배가 침몰되었다는 겁니다. 이윽고 전원구조되었다는 소식에 친구와 별일이 다 있다며 점심을 먹었죠.평소처럼 수업을 듣고 하루가 마무리되어가는 4시 5시. 아침에 들은 기사가 오보라는 소식과 함께 급증하는 사망자수 실종자수를 바라보며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못하며 밤잠을 설쳤던 것이 기억납니다.그날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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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생활 중 가장 중요한 졸업작품 프로젝트로 작업에 매진해 전날 밤을 새우고 정오가 다 되어서야 자취방에서 눈을 떴습니다. 오후 두시에 있는 전공 수업에 가야하기 때문에 씻으려다가 포털에 들어가본 저는 메인을 가득 메운 선박 사고 기사들에 침대 위에 앉은 채로 꼬박 한시간을 기사를 찾아 읽다가 결국 수업에 결석을하고 온 하루를 번번히 뒤바뀌는 보도에 혼란스러워하며 보냈습니다. 내가 나가지 않으면 누구와도 만날 일 없는 자취방 한구석에서 저도 마치 침몰하는 것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물이 차오르고 있을 배와는 전혀 다른 편안한 자취방이었지만 불도 켜지 않고 밥도 먹지 않고 구석에 앉아 믿기지 않는 하루를 그렇게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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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8시 20분경 학교에 등교하고 평소대로 티비를 켰습니다.그리고 집안 일을 하던중 우연히 화면에 여객선 침몰 속보가 뜨는 걸 보고 청소를 멈추고 티비를 봤습니다.곧 전원 구조했다는 앵커의 말을 듣고 마음을 쓸어내며 집안일을 계속했죠.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티비는 끄지 않고 있었는데 시시각각으로 들려오는 소리가 달라졌습니다.처음엔 전원구조. ...구조인원 숫자는 점점 작아지고 점점 많은 아이들이 아직 구조가 되지 못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발만 동동 구르며 주변 지인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뉴스 좀 보라고....점심시간이 훌쩍 지난지도 모르고 티비보고 엉엉 울다가 기도 했습니다."하느님 제발....아이들을 구해주세요...제발 .."그날을 물한모금 넘기는 것도 밥한수저 뜨는것도 할수가 없었습니다.저 차가운 바다에 아이들이 갖혀서 엄마아빠를 애타게 부르며 살려달라 버둥거렸을 생각에...왜 이렇게 구조자 집게도 안맞고 뉴스는 찌라시만도 못한가.대체 국민안전처에선 무엇을 하고 있는가.너무 힘들었습니다.몇일전 광화문 집회 참석해서 세월호 유족들이 세워놓은 분양소에 갔을때...차마 고개를 들어 아이들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어여쁘고 어여쁜 우리 아이들에게 어른으로서, 이나라 국민으로서 너무나 미안하고 미안했습니다.우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어른이라 너무 미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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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9시까지 출근을 해서 일을 하다가 11시 30분에 이른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으로 향했었죠tv에서는 세월호 침몰기사와 함께 전원구조라는 자막을 내보내고 있었습니다 그걸보고 "아 다행이다" 많이 놀랐겠지만 전원구조라니 맘을 놓고 있었습니다식사를 마치고 다시 일터로 돌아와 일을하는데 다음텀 식사자들 얘기가 구조자는 일부에 불과했고 아직 배안에 남았다고......이 얘기를 듣는 순간 차가운 물에 있을 아이들이 너무 가여웠고 마음이 아팠습니다그날의 TV 오보는 뇌리에 남아 아직도 안타깝습니다그 자막이 사실이었더라면.......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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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일본에서 마침 비즈니스 미팅 건으로 회사에 찾아온 일본인 분이 있었어요. 저는 회사 회의실에서 간단히 제품에 대한 계획안 논의를 마치고 그분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야기 내용 중 그분이 글쎄 "오늘 아침 뉴스 보니까 한국에서 선박 하나가 사고 났다는데요"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마침 그 소식을 딱 휴대폰으로 확인했는데, 문제는 제가 오보를 봤다는 것이었죠. "그거 다 구조되었다는데요? 다행이네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어요. 그리고 그날 오후엔 뉴스에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거짓말을 한 것과 같은 미안함이 제게 몰려왔어요. 오보가 현실이길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너무나 안타까웠어요. 이렇게 저는 2014년 4월 16일을 또렷이 기억합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어떡해..."를 속으로 외치던 그 날을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