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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4월 16일 .새벽2시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세월호 전원구조소식으로 운을 띄우며 수줍게 여자친구에게 사귀자 고백.16년 4월 16일. 여자친구와의 연애한지2주년이자, 결혼한 날매년 4월 16일은 결혼기념일로 바뀌었지만끝내 돌아오지못한 304분의 세월호 희생자 분들을 저희 가족들은 꼭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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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미안합니다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웠을까...혹시라도 보고있다면 당신들을 당신들 가족들...국민 모두 가슴 찢어지게아프게한 나쁜사람들....엄벌받고 죽을때까지 고통받을수있게꼭 벌받고살게 도와주세요평생 그대들 잊지않고 살아가겠습니다지켜주지못해 미안해요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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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이 뚜렷하게 기억납니다. 아침에 학교에 가기 이전 빵을 먹으며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긴급 뉴스를 들었습니다. 친구들이랑 카톡을 하면서 제가 했던 말은 뉴스를 보니 큰 배이기도 하고 침수되기까지는 시간도 있을테고 벌써 안전매뉴얼이라던가 시스템이 가동되서 안전하게 구해지고 있겠지? 해군이라던가 해경이라던가 근처 어민도 있으니... 수학여행인데 안됐네 저 학생들.. 이정도로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수업시간 중에 아마 전원구조 뉴스를 들었을겁니다. 그래서 봐라 시스템이 갖춰진 나라는 다르지 않느냐 라는 치기어린 생각을 했습니다. 친구들이랑 점심을 먹고 뉴스기조는 달라졌습니다. 오보에 이은 선수만 달랑 올라와있는 배의 모습을 보며 그래도 설마 설마 했었던 그 날의 기억 지금 저는 여전히 살아있지만 저에게 그런 불행한 재난이 닥친다면 저는 지금의 국가시스템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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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름 없던 일상의 시작.일을 시작하기 위해 준비하던중 긴급속보로 보도되었던, 세월호 침몰과 전원구조 되었다는 자막에조금의 의심은 들었지만 설마 설마 하였던 그 시간..의심이 현실로 다가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슬프고 아파하였던 그 날을 언제까지고잊을 수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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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상실의 시대.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것을 잃었지만, 마음속 희미하게 빛나는 희망이 있기에 오늘도 촛불을 들고 거리로, 광장으로, 꽁꽁 얼어붙은 세상으로 나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하나 되어 진실의 인양을, 부정의 종말을, 추운 겨울이 지나 따듯한 봄이 오리라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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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014년 4월 16일 시험 공부를 하고 집에 돌아와 밥을 먹기 위해 TV를 켰습니다 속보라고 적힌 뉴스 속엔 잠겨가는 배의 모습이 있었고 저는 그 날 밥을 먹지 않았습니다 아니, 못했습니다 가슴이 먹먹하고 난 왜 도움이 되지 못 하는가 울음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그때14살이었던 저 또한 쉽게 잠들지 못했고 쉽게 밥을 넘기지 못한채 7시간 동안 괴로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무얼 하고 계셨습니까? 힘이 되어주지 못하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광화문에 들려 꽃 한 송이 두고 오는 일밖에 하지 못하는 제가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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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이 세 글자만 들어도 눈물이 납니다고1 수업시간에 학교 선생님께 수학여행을 가던 배가 침몰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친구들은 어떡하냐며 다들 걱정했어요 그리고 조금 뒤 모두 구조됐다고 뉴스가 나왔습니다 저는 그 뉴스를 보고 친구들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솔찍히 추억 아니야? 어차피 아무도 안죽었고 보험금도 나올거고 나중에 친구들끼리 만나서 우리 수련회 가다가 배 침몰했었잖아ㅋㅋㅋㅋ 하면서 웃을 거고, 그런 추억 쉽게 생기는거 아니잖아" 하지만 또 조금 뒤 구조된게 오보라는 소식이 들렸어요 방송에선 하나 둘 죽은 사람들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장이 벌렁거리고 식은땀이 났어요 난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한건지 죄책감이 들었어요 하루 종일 뉴스만 보고 있었습니다 제발 제발 남은 사람들만이라도 살아서 돌아오라고, 하지만 해경은 사람들을 구하지 않았고 시체만 건저 올렸습니다 그 날의 기억은 제 자신에게 가장 실망한 날이고 후회스러운 날이며 악몽입니다 희생자 분들께 죄송하고 또 죄송해서, 죄책감에서 빠져나올 수 없어서 괴로웠을때 약속했습니다 끝가지 싸우겠다고,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잊지 않을게 2014년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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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이후 좋은 세상 만들겠노라 다짐 했거늘 아직 세상은 여전히 부패하고 불의에 타협하는자가 웃는 더러운 세상이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 촛불 하나하나 모여서 큰 빛이될거라 믿는다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봄은 꼭 온다는것을잊지 않겠다 그때 그 시간 201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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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당시 군입대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며 뉴스와는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세월호 소식을 들을 수는 있었습니다. 전원 구출이라는 잘못된 소식에 안도하고 맘편히 의경으로 입대를 했던 저는 자대에 도착해 뒤늦게서야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의경이 된 이후로는 집회관련 교통 통제나 질서유지를 명목으로 의경으로서 매주 광화문에 가게 되었습니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만 하는 신분으로서 저는 노란 리본 하나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 21개월간 비록 전 여러분들의 맞은 편에 서있었지만 제 마음만은 그 반대 방향에서 함께 소리치고 있었다는 것만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때 저와 함께했던 수많은 의경분들도, 지금 이 시국에서 폴리스라인을 치고 질서유지에 힘쓰는 수많은 경찰분들도 마음만은 저희와 함께하고 있다고 믿고있습니다. 2014년 4월 16일의 잃어버린 7시간을 돌려받을 수는 없겠지만 가슴 속에 깊이 새겨두겠습니다. 부끄러워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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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립니다2년 6개월이 지났습니다지금도 아파서, 무서워서 당시 사진도, 영상도 보지 못합니다그러나 머리와 가슴에 새겨진 그날의 기억들은 너무 또렷합니다그렇게 쓰러져간 내아이 우리의 아이들은 우리에게 무거운 빚을 주고 떠났습니다 다시는 정말이지 다시는 이 땅에서 자신들과 같이 스러지는 아이들이 없게 해달라는 빚을 주고 떠났습니다미안합니다 하지만 희생으로 남겨준 그 무거운 빚.. 결코 잊지않겠습니다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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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때와 다름없이 학교에서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수업시간엔 조는둥 마는둥 수업을 듣고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갑자기 오늘 세월호가 침몰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침몰....?"정말 일상생활에선 자주 들을 수 없는 단어였습니다. 그 세월호 안에는 관광객분들과 수학여행을 가는 고등학생2학년들이 타고있었다고 합니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솔직히 처음엔 실감이 안나서 아무런 생각조차 나지않았습니다. 게다가 모든 사람이 구조가 되었다길래 아.. 다행이다..라고만 느꼈었는데...학교 안에 티비가 있었습니다. 공중파만 연결되어있는 학습용 모니터. 그걸로 매 쉬는시간마다 친구들끼리 옹기종기모여 뉴스를 시청했습니다. 그런데 구조된 사람들이 3분의 1조차 되지 않은 것을보고 경악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깐 분명 전원 구조가 됐다고 했는데.... 그럼 구조가 안된 아이들은..? 아직도 배안에 있는건가? 못빠져나온건가? 배는 이미 다 가라앉아가는데? 그때 그 뉴스 장면들을 아직까지도 기억합니다. 절대 잊을 수 없으니다. 모니터 가장자리에 적혀있던 구조된 숫자들.. 더이상 늘어나지않았습니다.제 나이 20살 이제 성인입니다. 하지만 저 아이들은 아직 고등학교 2학년입니다. 같은 날 수능을 보고 같은 날 성인이 되어 꽃길만 걸어야 했던 아이들이 아직도 물 속에 잠겨 깰 수 없는 잠을 자고있습니다.비록 아이들은 잠들었지만 우린 아직 깨어있습니다. 4월 16일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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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을 가다 들린 식당에서 세월호 침몰소식을 처음으로 알게되었습니다. .이미 가라앉아 뒤집혀 있는 배모습만 볼수있었습니다. 섬 앞바다에 좌초된 여객선에서 어떻게 300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만... 그 의문이 시간이 갈수록 분노로 바뀌어가고 있는 듯 합니다. 우리 모두 느끼고 있을 그 분노를 잊지 않기 위해 이곳에 글을 남기며 다시 한번 마음속에 되새깁니다. 앞으로 또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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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반차를 쓰고 이사를 했던것으로 기억합니다.정신없이 이사를 끝내고 뉴스를 보는데 그 안타까운 현장....뉴스를 보면서 한참을 울었고,그 슬픔에 잠 못이루었던게 어렴풋이 생각이 납니다.아이가 태어나기 한달 전이어서..곧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면서 많이 슬퍼했습니다.비록 그 날의 제 기억은 희미해지고슬픔이라는 감정만 남았지만,14년4월16일 그날에 무슨일이 있었는지는결코 잊지 못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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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도 연구실에 나갔습니다.출근하면 습관처럼 이메일을 확인하고, 자주가는 블로그, 사이트들을 돌면서 하루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그때, 자주가던 커뮤니티에서 한 여객선이 사고가 났다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저희 학교는 안산 단원고에서 크게 떨어지지 않은 옆동네였습니다.그때부터 모니터 한쪽에는 뉴스를 틀어두고 업무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뉴스를 볼 때만해도, 침몰이 크게 진행되지 않아서 별일이 없을 거라고 여겼고, 곧 전원이 구조되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다행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오보였습니다. 그러면서 배는 점점 침몰하기 시작했습니다. 구조작업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그렇게 하루가 지났고, 수많은 사람들이 끝내 물 밖으로 나오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날의 촛불은 아마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슬펐던 그날 써내려간 글을 같이 올려봅니다.-------------------------------아름다운 꽃이여햇빛이 따스한 봄 날에 차가운 비가 내린다떨어지는 빗방울은 바다를 울리고그대들의 눈물이 우리를 울린다차가운 그곳에서 우리들의 이름을 불렀을 아름다운 꽃이여우리는 그대의 부름에 답하지 못하였구나사랑한다... 미안하다... 살고 싶다...마지막까지 외친 부름에 답하지 못하였구나아직 피우지 못한 아름다운 꽃이여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져버린 꽃이여그곳은 따뜻합니까저 높은 그곳에서 아름답게 꽃피우소서평생 지지 않는 꽃이 되어 이 세상을 밝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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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신입생이었습니다. 1학기 차.. 세미나를 하다가 잠깐 쉬는 타임에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다가 전원 구조 소식을 듣고 안심하였는데 세미나가 끝나고 오보였다는 것을 알고 절망했습니다. 그 날 그 시간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적어도 인간이라면 응당 그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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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식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습니다. 학식 안에는 항상 뉴스를 틀어주는 커다란 티비가 있습니다.같이 밥 먹고 있던 친구가 갑자기 놀라며 티비를 가리켰습니다.수학여행 가던 배가 사고 났다고.조금 뒤에 다시 뉴스가 나왔습니다.전원구조 되었다고.어머머머 무슨 일이래, 어쩜 좋아, 하다가오 전부 구조 됐대, 다행이다, 놀랐겠다 걔들, 하면서 다시 고개를 돌리고 밥을 마저 먹었습니다. 나는 그러고 있었습니다. 그냥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근데 기사는 계속 말이 바뀌었습니다. 하루종일 핸드폰을 붙잡고 오락가락하는 숫자를 바라봤습니다.어느 순간, 더 이상 생존자 숫자가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며칠간 꿈을 꾸었습니다. 배 안에 기적처럼 공기가 차 있어서 사람들이 다 살아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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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영어듣기평가가 있는 날 이었다. 학교 내신 시험이 2주 앞으로 다가온 시기 이기도 했다. 솔직히 타인의 아픔보단 당장 나의 성적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세월호 침몰"이라는 기사를 봤을 때도 그냥 심각하지 않게 넘겨버렸다. 그냥 다들 구조되기를 바라며 당장 내 앞의 공부에 집중했다. 아무 일 없는 듯 지극히 정상적인 일과였다. 몇시간이 흘렀을까 수업을 위해 킨 포털사이트에 도배된 세월호기사를 보는 순간 든 생각은 뭐였을까? 모르겠다. 그 때부터 나는 수업시간에도 자습시간에도 책상 속 핸드폰만 쥐고 제발 한 명이라도 더 살아주길 기도했다. 나와 똑같은 설렘을 느끼며 배에 올라탔을 단원고 학생들, 나와 똑같이 공부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대학입시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을 그 들.그들과 내가 제발 같은 날 같은 하늘 아래에서 수능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기도했던 것 같다. 하루종일 기사만 새로고침하며 울기를 반복했다. 그 날은 유난히 하루가 길었다. 시간은 느리게 갔고 구조작업 또한 더디게 진행되었다. 나는 여기 편안한 기숙사 책상에서 샤프를 쥐고 있는데 그 친구들은 어둠 속에서 추위와 두려움에 떨고 있을 생각을 하니 공부를 할 수 없었다. 그 날 내가 한 일은 고작 기사를 읽는다거나 응원댓글을 단다거나 하는 지극히 사소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때, 나는 2014년 4월 16일 절대로 잊지 않으리라 계속 날짜를 되내었고 맹새컨데 나는 썩어빠진 사회를 살리는 국민의 얼굴,바른 언론인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아직도 기억한다. 그 날의 그 마음.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내 명찰 옆에 채워져 있던 노란 리본. 그리고 나는 계속 기억할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오만감정이 섞인 표정과 그 날 멀리서 방관하던 비열한 그들의 이름을. 호명하기도 더러운 그들의 웃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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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하루종일 어안이 벙벙했습니다.나와 같은 나이의 아이들이 저 컴컴한 바다 밑에 있었습니다.어리둥절했습니다.이게 사실인 것인지, 몰래 카메라는 아닌지.화가 났습니다. 무능력한 정부가, 너무나도 안일한 정부가.교육청에는 난리가 났고, 학교에는 비상이 걸렸습니다.반의 아이들 몇몇은 훌쩍 거리기 시작했고, 선생님께서는 울음을 참는 듯 보였습니다. 7교시가 끝나고 가방을 챙겼습니다.그 길고 길었던 7교시가 너무나도 짧았습니다.집에 돌아와 뉴스를 보았습니다. 너무나도 거짓말 같은 뉴스에 헛웃음이 나왔습니다.허무했습니다. 그들이, 차가운 저 바다 속에 있는 그들이 고작 나이 열여덟이라는 사실에 눈물이 흘렀습니다.나와 같은 나이. 누군가의 친구, 또 누군가의 가족, 예쁜 아들, 딸 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먹먹했습니다.하지만 정부는 무책임했고, 무능했습니다.유가족들의 슬픔을 달래주기는 잠시뿐.나는 기억합니다. 그 날의 그 허무하고 먹먹한 기분을.이유없이 눈물이 흘렀던 내 모습을.한없이 안타까워했던 우리 부모님 모습을.소중한 아들, 딸을 보내야만 했던 유가족의 얼굴을.나는 똑똑히 기억합니다.2014년 4월 16일.그 날이 지나고 어영부영 시간은 흘렀습니다. 무덤덤해졌습니다.간혹 그 아이들에 대한 자료가 나오면 눈시울이 붉어졌을 뿐, 나는 무덤덤해졌습니다.이런 내가 너무나도 그 아이들에게 미안합니다.나처럼, 꿈이 많고 장난 많던 아이들이 이젠 침묵으로 대답합니다.이렇게 어렸던 나도, 그 날 2014년 4월 16일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당신은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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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교양영어수업 중간고사를 보는 날이었습니다.오전에는 전공수업이 있었고, 전공수업을 들으며 페이스북에서 희안한 뉴스를 보게 되었죠.제주도를 향해 가고 있는 배가 선체가 기울어지고 있다. 그 때까지는 심하게 기울어져있는 사진도 아니었고, 심지어 배 근처에 구조를 할 수 있는 다른 배들도 많았기에 대수롭지않게 여기고 넘어갔습니다.전공 수업이 끝나고, 밥을 빨리 처리하고 교양영어 시험공부를 하고자 했습니다. 이른 시간, 학식에서 밥을 먹는데, 티비에서는 아침에 봤던 뉴스를 속보로 계속 방송하고있었습니다.한두시간새 배는 훨씬 많이 기울어졌고, 안에 사람이 있다면 빠져나오기 힘들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배밖으로 나온 사람들과, 구조하고있는 배들을 보며 다행히 큰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이어 전원구출을 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시험을 보러 들어갔습니다. 시험을 마치고 나오자...저는 이렇게 똑똑히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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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창립기념일 휴가라 제주도로 가려던 중에 세월호 사건을 들었다. 당시 몇백명이 구조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알듯이 그 보도는 잘못된 것이었다. 그 날 게스트하우스의 분위기는 정말 다운이었다. 그런 끔찍한 사건이 없었다면 지금쯤 그 아이들도 제주도에서의 즐거운 밤을 보내고 있었을텐데... 다들 믿기 싫어했다. 벌써 2년이 훌쩍 지났지만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 그들의 7시간은 수백명의 생명이었다. 반드시 밝혀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