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그날 그시간에 학교에 가고 있었습니다.그 시간에 다 구출되었다는 소식이 나오고 있어서 안심했고 기뻐했는데 나중에는 아니라는 이야기, 오보였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너무나 어이가 없었고 마음은 처참했습니다. 지금까지 안타까운 마음도 슬픈마음도 있었지만 중간에 이제 그만좀하지라는 생각을 가진것 자체만으로도 정말 죄스럽고 자괴감이 듭니다. 부디 아이들이 구출되지못한 그시간, 그때 무엇을 했는지 밝혀야 합니다. 똑같은일이 두번다시 발생하면 안됩니다. 진실을 밝힙시다.
-
7시간, 길고도 짧은 그 시간 저는 기도했었습다. 간절히
-
학교 쉬는 시간 때 한 선생님께서 침몰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모두들 걱정을 했고, 다음 시간 선생님께서 전원 생존했다는 소식을 알려주셨습니다. 그 소식은 오보였습니다. 작은 사고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였던게, 아직 피지도 못한 어여쁜 꽃들이 물에 잠기다니.절대로 잊어서도 안 되고 잊혀져서도 안 됩니다.
-
구조완료라는 소식을 접했을 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하지만 오보였고 뉴스에서는 계속 똑같은 소식만을 내보내고 있었습니다. 답답하고 화났습니다.
-
여느때와 다름없이 학교에 있었고 소식을 전해들을 수 없었지만 학교 선생님들께서 다구조되었다고 말씀해주셔서 별일 아닌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몇분마다 뉴스가 바뀌면서 점점 큰일이 되어가고 있다는걸 느꼈습니다. 이젠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
그날 전 엄마와 함께 벚꽃놀이겸 봄 여행중이었습니다.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뉴스가 나왔고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어쩌냐저거..하다가 밥을먹고 나와 계속 여행을 하는데 궁금해서 자꾸 인터넷 뉴스를 켜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좀 있다가 전원 구조되었다고 하는 소식을 듣고 그래 그렇지..하면서 마음을 놓았던 기억이 나네요. 그런데 그 이후 배가 침몰한다는 소식을 다시 들었을 대의 충격과 그 이후....그때 우리나라의 썪어있는 단면을 보았다고 생각햇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그 과정이 맞물려 돌아가는걸 봅니다.우리나라는 지금 바닥을 찍고 올라가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
저와 같은 나이의 친구들이 었기에 처음 뉴스를 접했을 때부터 정말 안타까웠고 걱정이 됬었습니다. 점심을 먹기위해 줄을 서면서 전원구조 라는 기사를 봤고 안심했으며 점심식사후 오보라는 사실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던 기억이 있네요...그날의 기억이 이렇게 생생한데 하루 빨리 진실이 밝혀지길 소망합니다!!
-
그 날 그 시간 생방송을 사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먼서 보았다.가라앉고 있는 배에 학생들이 많이 타고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고 구조하는 배가 안보여 안타까와했던 기억도 또렷하다. 그 날은 입 맛이 없어 밥대신 샐러드를 받아서 먹었고 샐러드에는 토마토 소스의 스파게티도 있었다. 그 날의 날씨는 물 론 산책하였던 거리도 기억이 선명하다.내가 만일 그날 성형수술을 받았다면 몇분 몇 초에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또렷할 것임이 분명하다!!
-
회사가는 출근길 제주도가던 학생들의 사고사실 저에겐 어린나이에 안타깝다 가족들은 어쩌냐 이런 말한마디로 끝나는 사건이였습니다그 이후로도 출근시간때마다 보여주는 세월호 사건들 그에 연관된 비리들 얌전히 지시를 따르던 그 아이들은얼마나 무서웠을까요제 상황이 아니라 그 무서움의 정도조차감히 상상도 못합니다가족들의 아픔도 감히 상상도 못합니다잊지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이 나라를 위해 촛불을 들겠습니다그것이 저희가 세월호사건을 애도하는유일한 방법입니다
-
처음 학교에서 이 소식을 접했을 때는 전원 구조라고 해서 별다른 생각 없이 넘겼는데 가면 갈수록 구조된 사람 수가 줄어가고 실종자 수가 늘어가면서 이건 아니지 않나를 느꼈습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에게도 크게 와닿았던 세월호 사건바다 속에서 추위에 떨며 갇혔다는 공포심에 휩싸여있을 언니 오빠들을 생각하며 제 핸드폰은 손에서 떨어질 줄 몰랐고 느린 대처들 때문에 살 수 있는 사람들도 못 살았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
"한국의 전통교육"이었나? 여튼 수강인원이 많아 소강당에서 듣는 수업이었어요. 그 소강당은 사범대에서도 유난히 서늘한 곳이었지요. 그래서 그런가. 아직도 세월호 하면 그 소강당의 서늘한 느낌이 함께 기억납니다. 여느 때처럼 교수님이 들어오기전 휴대폰으로 포털사이트를 뒤적거리고 있었어요. 그때 반으로 기울어진 배 사진이 보였죠. 헐 미친. 그때 구조가 진행중이라는 기사도 함께 보았죠. 대서양 한가운데에 있는 배도 아니고, 진도 앞바다. 구조대가 빨리 도착하면 충분히 구할 수 있겠지. 오, 전원 구출했대! 그리고 교수님이 들어오신 후 수업. 그리고 수업이 끝날을 때는 ... 그 이후에 이어진 지지부진한 구조작업, 왔다 갔다 하는 탑승자 수, 학생들을 등진 선장과 선원들,존재하지 않았던 나라,남겨진 엄마 아빠들의 절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너무도 무력하게 느껴졌던 그 시간들. 거짓말처럼 영화 속 히어로가 나타나 한손으로 배를 끄집어 올려줬으면 했던 바람들. 비록 가라앉던 배를 끌어올리지는 못했지만 나의 기억 속 세월은 침몰하지 않을 것입니다.
-
여느날과 같이 출근했던 그날.점심시간이 되서 제주도를 향하던 여객석이 침몰하였으나 전원구조 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습니다.회사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며 우리는 저런 상황이 오면 수영 해서 살아남자 라는 실없는 농담을 하며 식사를 마쳤습니다.하지만 그 뉴스가 오보였고 사망자가 한분 한분씩 늘어날수록 제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급박하고 절체절명의 위기였을텐데 나는 현재 안전하다는 이유만으로 농담과 함께 가볍게 넘겼던 제 자신이 부끄럽고 죄책감이 들었습니다.그 죄책감은 그날뿐만아니라 지금까지도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분들을 보면 마음속 어딘가에서 울컥울컥하고 차오릅니다.일개의 국민인 저도 제가 한 말 한마디에 아직까지도 죄책감을 느낍니다. 진실을 알고 있는 그분들에게 죄책감이란 없는건가요?다시 기억해내십시오. 그리고 제대로 된 진실된 사과를 하십시오.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
누가 그러시더라고요. 그 날 밥을 먹고 있는데 속보에 여객선이 침몰하고 있다라고 뜨더라고 밥을 먹다말고 걱정하며 뉴스를 보는데 얼마안되어 전원구조라고 뜨는 걸 보고 안심하고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오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전원 구조라고 오보가 뜨던 그 시간에 자기가 먹던 밥을 지금도 기억한다고 아마 평소였다면 그냥 지나쳤을 하루 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소한 것 까지 기억할 만큼 우리에겐 세월호가 너무도 크게 자리 잡았는데 그들은 기억이 안난다고 합니다. 모른다고 합니다. 부디 그 날, 그 시간동안 무엇을 했는지 밝혀지기를 기다리겠습니다. 모두의 기억 속 흐려질지도 모르지만 나 하나라도 끝까지 기억하겠습니다.
-
2014년 4월 16일 여느때 다름없이 학교 등교 하고 1교시 수업을 마치고 난 후 였던 것 같습니다2교시 시작과함께 교과선생님께 배 침몰하였다 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전원구조 되었다는 속보를 보았고 그런줄만 알고 안심하고 넘겼습니다야자를 하고 집가는 스쿨버스안 오보였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두 뺨위로 알지 못할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희생자분들의 문자때문에 더 많이 울었던 거 같습니다 비용때문에 부모님께 부담이 될까 장난스런 말투속에 묻어났던 여리고 속이 깊었던 학생들 1년 2년 지날수록 사회적 인식속에서 무뎌질수밖에 없었지만 꼭 기억하고 밝혀내겠습니다 꼭 약속하겠습니다
-
미안해 이말말고는 전할말이없다이런나라에 태어나게해서 미안해모든 죄책감을짊어지고 오늘도 열심히살았어4월16일 오늘과 똑같은하루를 그때도 살았어어제는 하늘에 별이 떴더라별이 정말 많고많아서 너희들인가했어지금 지켜보고있니? 기다려 조금만 더 지켜봐줘 우리 열심히할게다시는 너희같은상황이 오지않게할게미안해 잊지않을게
-
차갑고도 아득한 곳에서 외롭게 떨고 있을 때,나는 먼 곳에서 두 손 모아 기도하는 것 밖에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모두 무사하길.. 아픈 사람 없이 모두가 구조되길..아침에 전원 구조되었다는 뉴스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다행이라고 큰일날 뻔 했다고친구들과 웃으며 얘길한게 생생한데밤 10시가 넘어 야자를 마치고 접한 소식은세상 모두를 가슴 아프게 했다.아직도 무엇이 잘못된 건지도 모르고꼭두각시 인형처럼 텅 빈 머리로삐걱삐걱 춤만 추고 있는 사람들과진실을 감추고 거짓을 늘어놓고있는비열하고 비겁한 이 세상을우리가 바꿔 보려 해.외롭게 아파했을 모두를 추모하며아직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기다리며0416 절대 잊지 않을게.
-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출근해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전 10시 반 쯤 인터넷 기사를 통해 세월호 사고 소식을 들었고 너무 충격을 받아 거의 실시간으로 기사를 확인하느라 일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전원 구출이라는 얘기를 듣고 맘 놓고 점심을 먹었었는데 오보라더군요.. 그 이후 몇날며칠은 분노와 슬픔과 미안함과 허망함에 가득찬 날들이었습니다.
-
훈련병이었습니다. 정신교육을 받던 중 중대장님이 단원고에 아는 사람있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죠 그때는 별일이 아닌줄 알았습니다. 그 후 오후에 배가 침몰했다는걸 알았고 소대장은 북한의 일이 아닐까 하더군요. 저는 별일아닌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수료를 하고서야 이런 일이 있었다는걸 알았습니다..... 잊지않겠습니다.
-
2012년 4월 16일은 제가 고3때 집을 가기 1시간전인 4시쯤이었습니다. 저는 특성화고를 다녔고 취업준비때문에 컴퓨터실을 자주 이용했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컴퓨터로 인터넷을 하다가 검색어, 기사 등에 세월호에 관한 부분이 많이 올라와있었습니다. 핸드폰은 제출했었기때문에 무슨일이 있었는지는 그전엔 알지 못했습니다. 기사엔 많은 단원고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갔다가 배가 침몰하여 구조되지 못하고 있다고 올라왔었고 친구들하고 기사를 보다가 한 할머니께서 손자와 단둘이 사는데 손자는아직 구출명단에 없는 것을 보시고 우는 사진을 보게되었습니다. 그 사진은 곧 동영상으로 올라왔고 친구들하고 그 동영상을보고는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집을 가는길에는 친구들하고 전화를하며 같은 학생의 입장으로써 눈물을 많이 흘렸고 집을 가니 엄마께서도 뉴스를 보시며 많은 눈물을 흘리셨던걸 아직도 또렷히 기억합니다. Sbs kbs mbc 등에선 계속 똑같은 장면만 내보냈었고 너무 답답하고 걱정되는 마음에 Jtbc에서 방송해주는 뉴스를 생방송으로 계속 매일 보았습니다. jtbc에서 방송해주는 다큐를 보면서 제발 모두 무사히 구조되길 울며 기도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땐 제일이 아니였는데도 정말 가족인듯 절실하게 모두가 무사하길 기도했었고 많이 울었던것같습니다.. 대한민국이 우울증에 걸린 시기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아직도 생각하면 가슴 한쪽이 너무 아프고 미안합니다. 저에겐 정말 잊을수없었던 지금도 잊을수없는 앞으로도 영원히 기억할 2012년 4월 16일입니다.
-
그날 직장에서 서버 작업으로 서버실 내에 있다가여객선 침몰이라는 소식을 잠깐 접하고 작업 때문에 저녁 늦은 시간에 뉴스를 보며 엄청난 충격을 받았었어요.. 많은 사람이 갖혀 있었다..그리고 그 많은 인원에 학생들이 아이들이 있었다..그날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서 지워지지 안아요..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눈물 흘리고 아파 했지요..제 메신저 닉네임이 절대 잊지안았습니다.. 입니다.잊지 안습니다.. 잊을 수 없습니다.. 7시간이 밝혀지고 상처 받은 많은 이들이 진실을 알 때까지 잊지안겠습니다. 미안합니다. 아직도 아무것도 해드린 것도 달라진 것도 없어서요.. 하지만 우리들이 마음으로 행동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조금 더 기다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