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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다른 장소로 이동하던 중 긴급 속보가 뜨더니 몇 백 명을 태운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날 수학여행을 가는 학생들도 타 있었다고 했죠. 처음에는 전원 구조했다는 소식을 듣고 큰 사고가 아닌가 보다 요즘 세상이 어느 세상인데 다 구조됐겠지 하는 생각도 잠시 시간 조금 흐른 후 이것은 오보였다 실종자가 300명이 넘는다.는 뉴스를 보고 하나둘 친구들에게로 부모님께서 전화를 걸어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 들었냐 너희들도 다치지 않게 조심해라 무슨 일이 있다면 전화해라 걱정을 하시기 시작했죠 저는. 부모님의 전화를 받으며 차디찬 배 안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부모님의 목소리조차 들을 수 없는 바다 한가운데서 얼마나 춥고 외롭게 있을까 무능력한 우리나라 조치 덕분에 몇백 명의 부모님들의 마음은 무너지는구나. 하며 실종자 모두가 살아 돌아와 걱정하는 가족들 품에 안기길 빌었죠.국민들에게 신속하고 정확하게 모든 사실을 알려 주세요.7시간.. 짧은 시간 아닙니다. 긴 시간이죠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우리는 기억합니다. 그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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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선생님들께서 사고 소식을 알렸었고, 전원 구조라는 사실까지 들은 이후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친구와 학원 가기 전에 편의점에서 불닭볶음면을 먹고 있었고 편의점에 달린 작은 tv에서 뉴스가 나왔다. 전원 구조 사실은 오보이며,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아직도 물에 빠져 있다고. 그 날 무슨 정신으로 밥을 끝까지 먹고 학원에 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뉴스를 들었을 때 친구와 눈시울이 붉어진 채 차가운 바다에서 떨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며 덩달아 손이 떨리던 기억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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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분들과 사무실 근처에서 칼국수를 먹고 있었죠. 전원 구출 이라는 뉴스에 어린학생들이 대피 매뉴얼이나 그런걸 잘 따라줬나 보구나. 기특하네. 라고 생각했어요. 외국엔 그런 일들이 종종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한 내가 어리석었다는 걸 깨닫는건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기특한 우리 학생들은 어른들의 말을 잘 따른 죄로......돌아오지 못했으니까요......진짜 제가 생각을 잘못한거죠. 여기는 외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인데...................대한민국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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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는 친구들과 학교수업을 마치고 카페에서 둘러앉아 이런저런 얘기와중에 세월호 뉴스를 접하였고 전원구출 이라는 대문짝만한 뉴스 속보에 그래도 다행이라고 전부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라는 말을 하며 계속 뉴스속보를 보고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전원구출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구하지 못한 아이들과 승객들의 숫자가 더 많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렸고 하루종일 핸드폰만 바라보며 살이있는 아이들의 이야기와 죽여도 시원찮을 선장의 도망 아직도 나오지 못한 아이들과 승객들의 소식에 하루종일 아파했던 그날의 기억이 요즘 자주 깜빡하는 저도 이날을 기억하자 하면 생생히 기억나는데 왜 그분께서는 기억이 나질않으신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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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점심 준비를 하며 들었던 라디오 디제가 세월호가 침몰했지만 전원 구조 되었다는 멘트를 듣고 다행이다 싶었는데직장에 다녀와 접한 저녁뉴스는 황당스러웠다..ㅠㅠ설마 그날 그엄청난 일을 파란지붕의 그들은 대수롭지않은 사고로 치부해버렸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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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일을해서 주방에서 여느때와다름없이 라디오를틀고 일을하는데 긴급속보로 세월호침몰을 들었다가 전원구조라그래서 다행이다 그래도잘구출됐네 하다가 갑자기 실종인원이 많아져서 어떻게어떻게 무슨상황인거야 밥먹으면서도 실시간으로계속뉴스보고 전원구조오보에 화도내고 트위터에확산되는 생존자들 소식 실종자들소식 마지막카톡캡쳐본들보면서 너무슬퍼했던그시간들 얼른구조되길바랬던 그슬펐던그시간을 왜기억하지못할까요 아마평생기억할꺼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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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내려갔던 날.출발하기 전에 뉴스에서 전원구출했다는 내용을 확인하고 다행이다 생각했었지.집에 도착. 안방에 앉아 티비를 보고 있던 아빠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할머니와 할아버지 두분 다 병원에 계셨고, 병원에서도 계속 그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할아버지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이 일에 대해서 어떻게 얘기했을까 잠시 아쉬워했던 기억도 난다.잊을 수 없다. 그 뒤로 뉴스를 챙겨보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으며, 다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리라는 다짐과 함께 지지하는 정당에 입당도 했다. 나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정당이 힘을 낼 수 있도록 나도 주권자로서 좀 더 바른 목소리를 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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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미건조하게 모스크바에서 하루하루 일하고 있던 날 중에 그 날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 것은 한 달에 한 번 있던 은행 외근날이었기 때문입니다.한국과 시차는 6시간, 그 날 따라 너무 바빠서 친구들 연락도 받지 못하고 은행에 겨우 도착해 쇼파에 앉아 그때까지도 입어야했던 두꺼운 외투를 벗는데, 맞은편 티비 뉴스에서 러시아어가 아닌 한국어가 나왔습니다.망망대해, 가라앉는 배. 넋놓고 뉴스만 봤던 것 같아요. 모스크바에서 꿀잠을 자고 있을 때, 아이들은 아마 기울어져가는 배와 사투를 벌였을겁니다. 헬스장 티비에서도 뉴스를 봤어요. 인터넷으로 한국 뉴스를 금방 볼 수 있지만, 그래도 러시아에서 의식적으로라도 러시아에서 방영되는 이 처참한 뉴스를 보고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시간이 이렇게 흐르고 저는 한국에 있습니다. 잊지말아야지 하면서 희미해지는게 부끄러워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기억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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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여느때와 다름없이 병원 실습을 하던날이었어요. 오전 근무를 했던 날이라 실습 중 점심을 먹으러 나왔더니 친구들이 수학여행을 갔던 아이들이 사고가 났다고 근데 다들 구출됐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 다행이다.. 사고났던 아이들 충격받았었겠네.. 괜찮으려나.. 하고 남은 실습하러 들어갔었죠.근데 실습 끝나고 나와서 인터넷을 하는데 전원 구출이 아니라고하더군요.. 다음날 병원가서도 의사쌤 간호사쌤들이랑 어떡하냐고 다들 같이 걱정하고.. 그 후로 계속 실습하면서 낮에는 실습, 밤에는 뉴스나 팽목항 생중계 보는 생활을 반복했던거 같아요... 근데 2년이 지난 지금까지 해결된 게 아무것도 없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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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같이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인터넷을 통해 본 세월호 소식... 처음에 많이 놀랐지만 배가 완전히 침몰된 상황이 아니였고... 구조작업이 시작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렸습니다.얼마 있지 않아 전원 구조라는 기사가 떴고, 회사 사람들 모두 너무 다행이다 하며 안심했었는데 그게 오보일 줄은 꿈에도 생각못했습니다.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2014년 4월 16일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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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마침 운동을 하러 가는 날이라, 오전에 헬스장에 갔었습니다. 가는 길에 커피도 한 잔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장을 봐야겠다 생각했던 평범한 날. 그런데 헬스장에 갔더니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습니다. 운동도 하지 않고 티비 앞에 서서 헬스장 관장님과 같이 뉴스만 보다가 집에 돌아왔습니다. 전원 구조됐다는 오보를 보고, 그래도 다들 살아 있으니 됐다면서 관장님과 떠들고 웃었습니다. 돌아오면서 카페에 들러 여유롭게 커피도 한잔 마셨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보니 난리가 났더군요. 배는 다 침몰했어도 아직 선체 안에 에어포켓이 있으니 생존자가 있을 거라는, 절규에 가까운 희망에 매달린 채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인터넷만 들락거리며 구조소식을 기다렸지만, 기다리던 소식은 그날도, 다음날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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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전내 마음 졸이며 뉴스만 뒤적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전원 구조라는 보도가 준 안일한 안도감에 모든것을 덮어버렸던 걸까요. 오보란 걸 알고나서도 , 지난 2 년간 마음이 찢겨진 이들을 알면서도 모른듯 살아온 나 또한 공범입니다. 나만은 불의에 살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스스로 잊은 기억은 이제와 들춰보니 비겁함만 가득합니다.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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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독서실에서 시험공부를 하던 도중인터넷 뉴스로 소식을 하였고, "전원구조"라는 소식에 다행이네... 라며놀란 맘을 쓸어내렸고, 또 시간이 지난 뒤에는"전원 구조"라는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말에분노하였습니다.하루종일 뉴스를 보았고구조소식을 기다렸으나...돌아오는건 희생자가족분들의 분노와절규 뿐이었습니다.그날 기억이 생생합니다.평범하게 뉴스를 보던 저의 기억속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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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은 저에게는 아마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날일 것입니다. 2006년 4월 15일에 시작한 연애는 8년 후인 2014년 4월 15일에 끝이 났고 슬픔에 잠길 새도 없이 세월호의 많은 분들이 차가운 바다 속에 잠겨버린 그 날을 어찌 잊겠습니까.헤어짐의 아픔을 느끼고 있는 것조차 죄스럽고 미안하고 창피해서 그 때부터 저의 시간은 멈춰 있습니다. 제가 가입한 한 커뮤니티 사이트의 한 분이 세월호의 사진과 함께 아직 출발전이라고 남긴 글을 이미 가라앉고 있을 때야 보고 제발 무사히 돌아오라고 많이 울었습니다.그리고 여전히 저는 슬픔에 잠겨 시간이 멈춰 있습니다.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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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오전인가 점심식사중 일이 없어서 인터넷 뉴스보다가 뭔배가 침몰했고 사상자는 없다는거보고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었습니다.그리고 퇴근길에 버스에서 한숨자고 일어나서 핸드폰으로 뉴스보다가 사실을 알게되었죠그리고 집에도착해서 티비로 뉴스를 보면서 사건의 진행을 알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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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평범한 대학원생입니다.그날도 다를 것 없는 하루였습니다.아침에 고시촌 식당에서 친구와 밥을 먹으며 TV를 보았습니다.하지만 곧 전원 구조라는 소식도 함께 TV로 보았습니다. 아, 다행하게도 별 일이 없구나. 해경 여러분 참 고생하셨고, 위기 관리가 잘 되었구나라는 생각만 하고 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그리고 평소처럼 연구실에 가서 논문을 읽고, 공부를 했습니다.그리고 집에 돌아가 TV를 켰는데, 학생들이 배 안에 있고, 아직 구조중이라는 방송이 나왔습니다.너무나 어이가 없고, 화가 나고, 슬프고 뭐라 한 마디로 형용하기 힘든 감정을 느꼈습니다.무고한 아이들이 많이 추웠고, 무서웠고, 힘들었을텐데...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슬픔과 언론에 대한 불신과 분노, 무책임한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허탈함과 실망 등의 감정이 너무나 크게 다가왔습니다.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모든 관심은 뉴스와 기사였고, 결국 안타깝게도 많은 아이들이 다시 우리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그 날이 어제처럼 기억이 생생합니다.그 날만 생각하면, 아이들이 찍은 영상과, 아이들의 부모님들께서 오열하는 장면 등이 생각 나서 더욱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슬픔이 가득해 집니다.이렇게 오래 진실을 요구하는 중, 그 때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최근의 기사들을 보며 언론이 모처럼의 역할을 잘 해주고 있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조그마한 촛불이라도 보태어, 돌아올 수 없는 아이들을 위로하고자 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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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낮잠좀 잘려하다가 뽐뿌 쳐다보고 있다가 제주도 가는 배가 뒤집어졌다는 소식을 보고는 티비를 틀었습니다 초반에 제가티비로본기억은 배가 한쪽으로 넘어져있던 상황에 세월호라고불린다는것도 티비통해들었고세월호옆엤 작은배가 많이 잡아서 10척정도 보였습니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구조하는 모습을보는데1~2시간 있으니 아이들 구조다했다라는 소식을 티비로 들었습니다의문은 들더라구요 10척정도되는배에 수학여행이라고간 아이들을 다 태울수있나???아니나다를까 오보더라구요그러다 제아이들 학교마치고와서 우리집아이들 돌보다가 국술원이라는 학원보내고 티비에서 떨어질수없었네요제눈엔 배가 다 가라안고있는데 구조라고하는 행동이 이상했어요 사람이 그렇게 많이 탔는데 구조선은 얼마되지도않고 가까이사는 어부님들도 힘을 합해서 애들을 구조하시더라구요 구조선이라고 아주 큰배가 세월호 옆에서 도움줄지 알았는데 큰배는 구경도 할수없었고요 헬리콥터도 몇대가지도 않았어요 아이들을 먼저 구해애하는게 티비에서는 배조정하는 우두머리구하고 있는거 봤고요 어른을 우선으로 먼저 구하시더라구요 티비에나온 화면으로 봤을때 학부모님들 놀라서 팽목항으로 출발하는것도 보았고 구조된아이들은 병원으로 이송하는것도 보았습니다 그중에 엄마아빠를 동시에 잃은7살정도된 여자아이를 티비에서 방송한 걸 본기억도나고요 수학여행간 학부모님의 비통에잠긴 모습을 아직까지 잊지 못하네요 저역시 학부모라 가슴이 찢어지는 맘으로 티비를 보고 있었어요 그날제가 뭐했는지 사실만적을께요 제가 본것만적을께요 그날 전 잊지 못합니다제 기억이도움될지 모르지만 그날7시간은 제 머리속에 이렇게 기억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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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하루는 정말 또렷이 생각납니다. 대학교 신입생 중간고사를 준비하느라 기숙사 제 책상에서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노트북으로 처음 기사를 접하게 되었는데, 그날부터 계속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제가 그 배 안에 있으면.. 계속 상상했던 것 같아요. 마음이 너무 저릿하면서 정말 공포스러웠습니다. 물이 점차 차오르고.. 제 목이 죄어오는 느낌이었어요.. 가족들과 전화하면서 구조를 기도하고 바랬지만.. 그 동생들은 도대체 무슨 죄가 있었을까요... 이 나라의 국민이라면 과연 그 하루를 잊을 수 있을까요.. 너무나 통탄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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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친구와 약속이 있었습니다.함께 취업 준비를 하는 친구와 만나 수다를 떨며 스트레스를 풀기로 했고약속 장소로 가는 버스 안에서세월호 소식을 접했습니다.너무 걱정됐지만 전원 구조 소식을 듣고그 사실을 믿었고 믿고 싶었습니다.친구와 저는 만나자마자세월호 뉴스 봤냐고정말 걱정했는데 전원 구조돼서 다행이라고짧게 이야기를 나누고취업으로 받으 스트레스를수다로 한참 동안 풀었습니다.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배가 뒤집히는 영상을 보게 됐고그 안에 몇 백 명의 사람이 아직 있다는 걸알게 됐을 때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버스에서 뉴스 소식을 접하고 눈물이 난 건 제 인생 최초의 일이었습니다.그리고 그날은 제 막내동생이수학여행에서 돌아온 날이었습니다.역사 책에서 많이 봤던 일들은역사책 속 한 페이지였습니다.그런데 세월호는 제가 직접 목격했습니다.적어도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지키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믿음.모든 생명을 지키기지는 못하더라도지키려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믿음이산산이 부서져버렸습니다.우리 사회 시스템 어딘가가 고장 버렸고어디가 왜 어떻게 어떤 사람들 때문에고장났는지 알아야 합니다.2주 전 처음 촛불을 들고광장에 갔습니다.제일 먼저 든 생각은2014년 4월 16일 그날 이후에 바로촛불을 들고나가지 않았을까라는 후회였습니다.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하게 만든 것들은 무엇인지대통령은 7시간 동안 뭘 했는지끝까지 물을 겁니다.세월호 철저한 진상 규명 이잘못된 세상을 바꾸는 시작이고그 간절한 마음은 쉽게 꺼지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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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세월호사건이 터지기전 까지 가족들과함께 곱창가게를 운영하고있었습니다. 요식업자체가 힘든일이기에 , 새벽1시까지 뒷정리 및 내일을 위해 잠들어있던 7시간이 되어있겠군요.눈을 뜨고 핸드폰을 집어들었때는 승객분들을 다 구했다는 소식을접해 안도감을 느끼면서 가게에서 일할 준비를 하고있었습니다.근데 5분이 지나지않아 오보였다는 소식과함께 저는 머리에 헤머를 맞은거처럼 느껴졌어요.그리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구요.지금도 2014년4월16일을 잊을수없는,아주많이 슬픔 날입니다.박근혜 대통령님 당신의 7시간은 무엇이였는지 궁금합니다. 꼭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