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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 당일 과학시간이었습니다. 반 수학여행이 이주일 전 즈음이라 아이들은 옷을 무엇을 입을까. 뭐먹을까. 뭐하고 놀까. 하며 들떠있었습니다. 쉬는 시간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던 친구가 말했죠.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가 사고가 났다고. 우리는 걱정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그저 모두 구조된 소식을 기다렸고 기적이 일어난 듯 전원구조 소식은 떴습니다. 소식을 접한 후 다들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고, 그렇게 끝난 줄 알았습니다.오보소식을 들은 후에도 믿었습니다. 구조하고 있겠지. 모두 구조 되겠지. 설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낼 줄은 몰랐습니다. 모두 노란리본을 달고 다닐 줄은. 아무 사이도 아니던 사람들이 평생 기억할 나비들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는데 무슨 세월호냐. 라는 사람이 많습니다. 세월호 희생자는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운 좋게 그 날 그 시간에 배를 타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렇기에 세월호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직 배 안에는 사랑하는 사람들 곁으로 돌아오지 못 한 9명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다 밝혀내지 못한 진상규명과 7시간이 남아있습니다.우리는 또 다시 세월호와 같은 아픈 시간을 겪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7시간, 잊지 않고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우리는 기억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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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이 제법 쌀쌀한 아침이었지만 오후엔 따뜻해서 입고 있던 하얀색 니트가 조금은 덥게 느껴졌다. 특별할 것 없는 사월의 봄이었다. 대학생이었던 나는 강의 시작 바로 전에 사고 소식을 들었고, 옆에 있던 친구와 가벼운 대화를 나눴다. 큰 사고는 아니겠지, 하면서. 날씨가 좋아 햇볕이 잘 드는 벤치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었다. 마음 맞는 친구들과 도시락을 먹으며 즐거운 나날을 보내던 때였다. 사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친구가 말했다. 전원 구조 됐다고. 역시 큰 사고는 아니었구나 하는 마음에 안도하며,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즐거운 점심시간을 보냈다. 그날은 학교에서 주관하는 프로젝트 참가 문제로 사람을 모집해야 했다. 중간고사를 며칠 앞둔 때이기도 했다. 오후 5시쯤,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 프로젝트와 중간고사 이야기로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인터넷을 하던 친구가 믿기지 않는 사고소식을 전해주었다. 구조가 아직 진행 중이라고 했다. 뉴스에선 연일 세월호 보도뿐이었다. 그 때만큼 뉴스를 손에서 떼지 않고 봤던 적은 없다. 아이들이 남긴 영상은 몇 번이고 재생해서 보았다. 아무리 봐도 믿기지 않았다. 이렇게 평범한 아이들이 살아있지 않다는 사실. 안전을 위해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방송. 화가 났고, 답답했고, 안타까웠다. 일상을 보내다가도 이따금 터져 나오는 울분과 눈물로 한 동안 이상한 하루를 보냈다. 그들과 전혀 상관없는 나도 이런데 감히 유가족들의 마음은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 더욱 더 마음이 아팠다. 나는 기억한다. 2014년 4월 16일 그날, 어떤 옷을 입었고, 날씨는 어떠했으며, 어떠한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는지. 나는 여전히 평범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내 시간의 일부는 아직 그 때에 멈춰있다. 기억할 것이다. 나처럼 평범한 하루를 살았을 세월호 속 수많은 사람들, 그날이 아니었다면 지금도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을 사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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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기억을 하고 있는거보면... 치매는 안걸리겠어... ㅎㅎㅎ출근후.인터넷 메인글 하나씩 훝어보기를 하던중에배 사고소식을 봤다. 전원구출이란 기사를 접하고 아... 사고났구나... 다 구했구나... 다 구했으면 됐네... 머... 하면서이때까지만해도 신경안썼다.. 그냥 일했다.. 늘상하던 패턴으로....그런데 조금후에 수업을 받고 계시던 수강생과 선생님 사고 어쩌고 저쩌고 얘기나누면서 나한테도 묻더라,, 사고난거 봤냐고... 기사봤는데 ,, 사람들은 다 구했다던데...?? 하니 그게 아니란다.. 머야 하면서 다시 인터넷을 켜보니 진짜 그게 아니더라.. 이게머야... 아깐 다 구했다 했는데.. 이렇지 않았는데,,, 왜 이러는거야... 일을 하는건지 마는건지.. 인터넷뉴스 검색하고.. 일하다 뉴스보다 일하다 뉴스보다 계속 반복했다. 다들 세월호 얘기만했다.. 가라앉고 있는 배만 봤다.. 저녁에는 신당동 떡볶이 먹으러갔다.가게엔 3-4 테이블에 사람들이 있었다..다들 하나같이 뉴스만 보고있었다.먹으면서 얘기를 해도 세월호 얘기뿐이었다. . 떡볶이 집에서 서비스로 칠성사이다 큰캔받았다.떡볶이 맛? 분위기가 그래서 그랬는지 맛이없었다.. 그 후로 그 동네에 떡볶이 먹으러가서 그 가게를 보면 세월호 생각난다.그냥 저절로 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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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약속이 있어 남자친구를 기다리는 와중에 집 컴퓨터로 메인에 떠 있는 기사를 봤습니다. 단순한 사고라고 생각했던 게 시간이 지날 수록 이곳 저곳에서 대서특필 되어 집 밖을 나서고도 뉴스에서 눈을 못뗐었어요...간절히 기도까지 했었고, 계속 내가 신이라면 내 손으로 저 배를 온전히 들어낼 거라고 계속 생각하며 ... 바다 위 작게 떠있던 배의 머리를 보며... 배가 바닥에 고정되어서 저기를 뚫어도 가라앉지 않았으면... 딱 뚫었는데 영화처럼 모두 저기에 생존해 있어서 안도의 울음을 뱉으며 나올 수 있었으면 ... 7시간 .. 하루 이틀... 눈물도 한 모금 삼킬 수 없었던 그 때를 저는 잊지 못하겠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잊어 내고 싶지만 그러면 안되니까요. 진실이 드러나고 세월호 유가족...학생들의 부모님 그리고 형제, 자매들에게 아픔이 치유될 때 쯤에야 저도 고이 보내드리고 잊고 싶습니다.. 너무 아픈 기억이라 떠오를 때 마다 괴롭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던 그 허망함은 세월호처럼 쉬이 가라앉지 않네요. 부디 떠올랐으면 좋겠습니다. 세월호도.... 7시간의 진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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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렷이 기억합니다마트 알바중이었는데 뉴스가 나오는거에요 사람이 없는 오전이라 티비 대신 책을 보고싶었습니다. 별일 아니겠지 구출 하겠지 하며 티비를 꺼버렸습니다. 그게 대한민국이 붕괴하던 실시간 중계였을줄이야..분명히 기억납니다. 그만보자 하며 티비를 끄던 그 순간의 장면.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잊었다는건 거짓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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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입대후 1년 그리고 또 반년만에 처음 가지게된 휴가. 2014년 4월 15일. 군생활을 반년도 채 남겨두지 않은 나의 첫 휴가.1년이 넘게 쌓여있던 스트레스를 늦은 새벽까지의 술로 달랬지만 습관이 되어버린 생활패턴에 이른아침 눈이 떠졌다. 2014년 4월 16일. 대략 아침 9시.아직 채 말짱하지않은 정신으로 그토록 누리고싶었던 휴대폰으로 포털사이트를 이유없이 들어간다. "여객선 좌초."모르겠다. 별일 있겠는가. 내가 휴가를 즐기고 있단 사실조차 아직 긴가민가한데. 졸린 정신은 다시 사고를 정지시킨다.아침 10시. 피같은 이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자. 무거운 몸을 일으켜 담배한대 태우며 사연없이 또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세월호 여객선 좌초. 승객 전원 구조"아. 다행이구나. 참으로 정말로 다행이구나... 어쩌면 내 첫 휴가를 송두리째 흔들지 모를 이 사고가 다행히도 무탈히 지나가는구나...TV를 켠다. 현장 생중계가 한창이다. 시간이 조금 지났나. 구조자 집계 오류 이야기가 들려온다. 등골이 서늘하다.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무거운 공기가 TV속 화면에 가득차있는듯.단원고... 단원고... 내 가장 친한친구의 모교구나. 이자식은 군생활 할 적 휴가때 나를 만나러왔다가 새벽까지 술을 마시다 천안함 사고 속보를 함께 본 친구의 모교였지... 가만 생각하니 친구의 여동생이 아직 단원고 학생이었다. 학과의 안산출신 여자후배도 자신이 단원고 출신이며 동생도 아직 단원고를 다니고 있단 얘기를 나눈 기억이 퍼뜩 든다.일단 모르겠다. 그냥 연락처에서 친구와 후배의 번호를 찾기만 바빴다. 다행히 두녀석의 동생들은 고3이었고 세월호 사고의 사실조차 자느라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비명소리에 가까운 질문과 장난치지마라는 채근이 다시 이 사고의 무게를 환기시켜준다.급히 부대에 전화를 했다. 바다. 그리고 여객선 사고라면 나의 모군이 가장 관련성이 많았으니... 따로이 상부 지시가 없으니 사고치지말고 휴가를 잘 보내다 오라는 답변을 들었지만. 불안함에 TV에서 하루종일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최악이 가장 최악이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그 두려움...해가 저물어간다. 퍼펙트스코어였던 구조자 숫자는 절망과 슬픔의 숫자로 뒤바뀌어있다. 그리고 희망은 부질없이 그대로 멈춰만 있었다.난 무사히 휴가를 마치고 복귀하였고, 그해 가을의 초입 군인의 신분을 벗기 전 까지. 세월호 사고를 간접적으로 겪으며 내 군생활중 가장 피마르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4월 16일. 그 이후의 세월호를 간접적으로 겪었던 나날들.이 기억들은 어느새 나에게 울분으로 남아있다. 어느 누군가 실수로 툭 건드리면 눈물을 주체할 수 없고 내 스스로 상기만 시켜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상처가 되었고 마음 한켠의 응어리가 되어있다.난 일개 병사. 그 상황을 모두와 동일하게 겪고 느낀 국민의 한사람에 불과했고 지금도 그러하다.나에게는 아무런 권한도 책임도 없었기에 이 기억들이 먹먹하고 가슴이 답답해 지금도 진실을 찾으려하고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이들에게 묻고싶은게 많다.어찌. 어떻게. 잊을 수 있고 대수롭지 않을 수 있는가? 우리는 그날. 여느날과 다름없던 그 하루에.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는데.. 얼마나 큰 절망을 겪고 얼마나 절규를 하였는데.... 그게 왜 기억이안나... 지금도 어제일만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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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장에 도착해 친구들과 짐을 풀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을 때 한 친구가 달려왔습니다. 다짜고짜 큰 배가 침몰했다며 큰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핸드폰을 숨겨둔 친구에게 모여 기사를 보았고 학생들이 타고 있다는 말에 놀랐습니다. 전원구조라는 보도에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며 넘겼습니다. 그러나 밤에 핸드폰을 몰래 하던 친구가 어떡하냐며 보여준 뉴스를 통해 오보라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 날 밤은 잠이 들기 힘든 날이였습니다.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지금까지도 전교생들이 노란리본을 착용하며 4월 16일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이제 성인이 되는 저에게 대한민국은 무서운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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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고등학교 1학년였고, 9월 제주도 수학여행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종례시간에 선생님께서 오늘 다른 지역에 수학여행을 갔던 친구들이 사고가 낚다, 뉴스에는 전원 구조라고 뜨고 잠시 뒤에 오보라고 떴다. 자세한건 모르겠다.라며 말씀해주셨는데 반 아이들은 딱히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구해질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하필 그 날 저희는 수학여행 동의서를 받았고, 야자를 하던 중 학교에서 이런 날 동의서를 보내서 죄송하다, 회수조치하겠다, 빠른 구조를 빈다.라며 문자가 왔고 아이들은 무슨 상황인가 하고 집에 갔을겁니다. 저 또한 평소와 다름 없이 집에 갔구요. 집에 가서 심각한 상황이란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수학여행이 전면 취소되었습니다. 하지만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저 무지했던 제가 죄송하고, 잊었던 제가 밉습니다. 미안합니다,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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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전원구조의 기사는 보지못하였습니다.오보라는 것이뜨고나서야 보고 알게되었습니다.오전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그후 바로 과외가 있어 건대입구로가서 선생님께수업을 받았던 기억이납니다. 그 이후로는줄곧 세월호에 정신이팔려 제가 무엇을 했는지흐릿하긴하지만 아직도 선명히 기억하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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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부터 시작된 무기력과 허탈로 저는 2014년 2월 23일 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대통령 취임식을 보지 않는 것으로 그 사람이 대통령이.아니라고 우기고 싶었던 이유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두 달간의 도피가 막바지로 치달아가던 어느 평범한 여행지에서의 아침이었습니다. 보통 여행 중에는 한국 뉴스를 잘 보지 않았었는데, 그 날은 눈을 뜨자마자 본능적으로 휴대전화를 집어들고 인터넷 뉴스를 보았습니다. " 서해안 진도 부근 해역에서 제주행 여객선 좌초 중" 이어서 계속되던 속보... 속보... 그리고 평생 잊지 못 할 "전원구조"" 라는 기사가 떴습니다. 그 나이의 아이들이 그렇듯이 낄낄거리며 웃고 넘길 무용담을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에 웃으며 밥을 먹고 여행 일정을 계속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전원 구조라는 기사가 오보라는 것이 확인 되는 순간, 아이들로 인해 인생의 방향이 달라진 나도 같이 무너졌습니다. 내가 뿌리를 뻗고 살고 있는 내 나라도 같이 무너졌습니다. 아이들에게 가르쳐 온 양보해서는 안되는 가치, 생명의 가치, 그.가치가 사라져버린 나의 나라... 한 어른이자 그 또래의 아이들로부터 선생 소리를 듣던 저는 그 날부터 세상에서 가장 큰 죄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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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때와다름없이시작된일상이었지만그날은정확히기억납니다범죄자집단도분명그날이기억날거예요저처럼평범한사람도그날만큼은뭘했는지기억나니까요오전에전원구조접하고역시별일아니구나넘겼었는데오후에보니깐이건뭐ㅜㅜㅜ그후로계속근무하면서도tv에서눈을뗄수없었죠상처받은영혼들편히쉬길그리고12월2일탄핵반드시진행되길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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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처음 뉴스를 접했다.점심시간 식당TV에선 전원 구조라는 뉴스에 안도했지만..오보라는 사실에 적잖히 당황스러웠었던 기억이있다.퇴근할때까지 그 답답한 마음 가누며 기다렸지만 구조소식은 더디기만 했다.사실 그 이후가 더 떠올리기 싫은 기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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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잊을수있나요. 그날은 제가 배우러다니는 수업이 있어 외출하는 날이었어요. 아이들 학교.유치원 보내놓고 버스를 탔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초록창 맨 첫줄에서 그 기사를 접했고. 얼마지나지않아 전원 구조라는 기사가 떠서 다행이다하며 수업을 마치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끝나고 보니 생지옥으로 바뀌어있더라고요. ㅜㅜ그날밤에 아이둘을 재우며 깜깜한 물속에 있을 그 학생들 생각하며 많이울었어요.얼마나 추울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하며 그 학생들과 그 부모심정이 어떨까하는 생각에 많이 울었던 기억이납니다. 그 추운날 우리 가족은 따뜻한 집안에 모두 함께 모여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한 밤이었던게 지금도 너무 생생해요. 별이되었을... 너무 아까운 수많은 단원고 학생들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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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논점을 흐리고 있습니다.만약국민을 진정으로 아끼고 책임감있는 지도자였으면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겁니다.시술을 받고 있는상황에서도 나왔을겁니다.그녀는애초에 국민의 생명에 대해 아무 관심이없던 사람이였던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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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과 점심 식사를 하는데 식당 티비에서 세월호 화면이 나오며, 전원구조 자막을 봤습니다. 우리나라가 왠일로 빨리 조치 했네 하고 올라왔는데 나중에 핸드폰 기사로 오보였음을 알았고요.. 그 후로 한동안 충격에서 빠져나오질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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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수업 도중에 폰을 켰습니다.속보가 있더군요. 하지만 얼마뒤 전원구조라는 기사를 보았고 잘 해결되었나보다하고 다시 폰을 껐습니다.그날따라 몸이 피곤해서 밤에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데, 택시라디오에서는 구조가 안되었다는 말이 흘러나오더군요..죄송했습니다. 미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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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학교에 가지 않았다. 느지막히 일어나서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았는데 전원구조라는 헤드라인을 보고 다행이라 생각하며 라면을 끓여먹었다. 지나간 드라마를 보며 시간을 보내다가다시 뉴스를 보니 아무도 구하지못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설마 못구할까 싶었는데 정말 못구하더라. 동생도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갈 계획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내 일 같고 안타까웠다. 그때 우리집화장실 전등이 고장나서 깜깜한 채로 용변을 봐야했는데 칠흑같은 화장실에 문을 닫고 가만히 앉아있자니 내가 물속에 아이들과 함께 갇혀있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 무서웠다. 며칠간은 화장실 문을 열어둔채로 볼일을 봤다. 그날밤은 늦게까지 트위터와 뉴스를 뒤적였는데 생존자 수는 늘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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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구조라는 소식이 들릴 때 까지만 해도 그럼 그렇지 그렇게 큰 배가 한순간에 가라앉을리가 없지라고 생각했다.내가 알던 세상은 적어도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할 수 있는 세상이었나보다. 사고가 점점 커지는 걸 보면서 수학여행 첫날의 설렘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만큼 자꾸만 그 아이들 중 하나가 내가 되어 가라앉았다.그래도 모두가 이 순간만큼은 배안의 누군가를 떠올리며 그들의 최선을 다 할 거라 믿었다.유가족들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속을 안고 광화문 광장에서 무엇을 외쳤는지 이제야 알게된 나는 그들의 속을 헤아릴 수조차 없게 되었다.이제는 더이상 부끄럽고 미안하지 않겠습니다.어른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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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는 텔레비전이 없어서 사고 소식을 약간 늦게 컴퓨터를 통해 알았습니다. 전원구조 되었다는 소식에 다행이구나 생각하고 수업을 하러 갔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아직도 구조 중이라고 말해주던군요. 시간이 제법 지난 건 같아서 불길한 느낌은 들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참혹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정권의 행보는 더 참혹하고 더 절망적입니다. 부디 우리나라가 투명한 나라, 정의로운 나라가 되어 어린 학생들의 죽음이 헛되지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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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4월은 병원야간근무하고 낮근무로 내려온지 얼마 안되어 적응하느라, 일하느라 바빴습니다. 16일 오전에 근무하다 모자라는 물품을 챙기는 도중에 대기실에 TV로 소식을 접했습니다. "어.. 뭐지.. 저게 뭐지.. " 멍하니 물품을 챙기고 근무실로 들어갔습니다. 함께 일하는 선생님과 실시간 뉴스를 켜놓고 바쁘게 근무를 했습니다.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기억할 수 밖에 없는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