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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 도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근무중이었고 미안했고 분노했으며, 퇴근후 바로 집에와서도 tv앞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게 미안하고 미안해서, 차가운 물속에서 너무도 무서웠을 아이들 생각에 하염없이 울기만 했던.. 그날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게 나라인지,어떻게 아이들이 가라앉을 동안 어른들이, 이 나라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바라만 보고있었는지.. 기억하고 있습니다.그리고 2년이 흐름 지금도 너무나도 미안해서 가슴이 먹먹합니다. 사라진 7시간의 진실이 중요한건 그 것을 알아야만이 또다시 이런 재난앞에서 무기력해지지 않고 내가 사는 이 나라가국민을 소중히 여기리라는 희망을 가질수 있는 기초가 되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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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과 봄 산행을 하려고 팔공산 가산산성 에 올라갔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직원들을 기다리며 입구 의자에 앉아 있는데. . 누군가 배 사고가 났다고 했습니다. 배가 기울어져 가라앉았다고 다행해 사람들은 구조되었다고.. 그리고 산정상까지 산행을 하고 저녁을 먹고 집으로 와서 밤 늦게 텔레비젼을 보는데.. 왠걸 사람들이 구출된것이 아니었어요.. 전 가산산성만 아니 팔공산만 지나가도 세월호 생각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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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에 저는 중학교 1학년이였고 중학교 생활에 적응 하고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아직은 어색한 아이들과 급식을 먹고 평범히 학교 생활을 하다가 담임선생님이 종례 할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때 담임선생님은 유난히 종례가 긴 선생님셔서 또 집에 늦게 가겠구나하고 종례를 듣다가 선생님이 처음 저와 저희반 아이들에게 세월호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낮에 뉴스를 보니까 수학여행 가던 배가 침몰해서 학생들이 큰일이났다. 2년 반은 지나서그런지 기억이안나지만 대충 제가 쓴 내용이 맞을겁니다. 아무튼 그때처음 세월호 얘기를 들었고 선생님도 일하시는중에 뉴스를 보셔서 그런지 세월호얘기는 많이하지않았고 평소대로 종례를 하셨습니다. 저는 세월호얘기를 듣고 ... 아니, 그때 기준으로하면 수학여행가다가 배가 침몰한 얘기로 바꿔야겠죠. 그얘기를 들었을때 저는 아침마다 뉴스를 봐왔었는데 그땐 뉴스를 안본건지 뉴스에 안나온건지 세월호 얘기를 뉴스로는 못봤습니다. 그래서 큰일이 아니지않을까 생각하고 하교해서 집에오니 ...보통 큰일이 아니더라구요. 뉴스를보니 같은 점퍼를 입은 사람들이 앉아서 말하고있고 그배가 뒤집혀서 가라앉는 영상이랑 사람들이 나오는 영상 그중에서 제일 놀라고 눈길이갔던건 오른쪽상단에 계속써있는 구조자 사망자 실종자 명수가 써있는 자막이였습니다. 제가 필력이 좋지않아 그날의 7시간을 제대로쓴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때도 어렸고 아직도 어린 제 기억으로 채워나갔습니다. 우리는 기억하는데 이나라의 대통령님이 기억하지못하는이유가 있을까요불행히 하늘나라로가버린 안산단원고 선배들은 이 시국에 편히 잠을 자고있는지 의문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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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기숙사에서 아침 먹다가 뉴스를 봤습니다수학여행 가던 고등학생 수백명이 타고 있던 여객선이 침몰중이라고..곧 전원구조라는 뉴스를 확인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하지만 다음날 아침, 그 다음날 아침을 먹을 땐 차마 TV를 못쳐다보겠더군요.. 밥먹는것도 미안하고 부끄러웠습니다하지만 그 후로 뉴스에선 점점 세월호 소식이 줄었고주위에서도 지겹다 그만해라 라는 얘기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유일하게 계속 팽목항 소식을 들려주던 JTBC를 찾아보면서 제발 그들을 찾아주기를 바랐지만 어쩐지 국가는 그들을 외면하는것 같더군요그들을 유기한 국가와그들을 비웃은 국민들모두 기억해야 합니다틀린건 틀렸다고 말해야합니다정의를 말할 수 없는 사회는 얼마나 부패한 사회입니까떠올리기도 힘들고 아픈 시간이지만 기억합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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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마감을 앞둔 때였습니다. 제법 부수가 많은 잡지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었죠. 20일 전후가 마감일이라 눈 코 뜰 새 없이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인터넷에서 선박이 침몰했다는 기사가 올라 왔습니다. 이어 얼마 지나지 않아 ‘전원구조’라는 뉴스가 올라오기 시작했지요. 당연하겠지, 그렇게 큰 배가 침몰할 리가 있어?라며 하던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일생에 한번뿐인 수학여행을 망쳐 속이 좀 상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어 11시30분 조금 넘어 점심을 먹으러 가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전원구조로 알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사상자가 나오기 시작한 거죠. 그때 점심으로 수육에 만두전골을 시켰습니다만 우리는 누구도 그것을 먹지 못했습니다. 음식점 텔레비전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세월호 소식에 모두들 숟가락을 제대로 들 수 없었던 거죠. 그 후 저 또한 상식적인 모든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거의 두세 달 간은 세월호 트라우마로 힘든 시간을 보냈고, 그 날 그 시간은 그렇게 제 기억에 박제된 채 지금도 오롯하게 떠오릅니다. 제가 살아있는 한, 4월16일과 세월호, 단원고의 눈 맑은 아이들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아니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날이 어서 잊히기를 바라는 누군가를 위해서라도 그 날은 영원히 기록되고, 기억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힘없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아이들을 위한 가장 작은 헌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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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직후 영국에서 나는 부활절을 맞았다. 내가 다니는 성공회 성당은 그 날 주교님이 오셔서 설교를 하셨는데, 그 날 설교를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내용으로 대체하셨다. 그 분은 이 성당에 한국인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예배후에 그 분은 나를 찾았다. 누군가 한국인이 있다고 얘기를 한 모양이었다. 외국인이 거의 없는 작은 마을에서도 거의 모두가 내 손을 잡고 마음 아파했었다.내 나라의 대통령은 그 시간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유가족들은 무려 2년 반을 울었다. 이제는 진실을 알아야 한다.-_"세월호 당일 간호장교 2명 "청와대 상근"..왜 숨겼나?"서복현 입력 2016.11.28 22:00 수정 2016.11.29 01:25/ Daum 기사에 있는 catlover8님의 글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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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제가 공부방 을 열기 위해 해당 공부방 교육을 들으러지방에 가 있었던 때입니다. 쉬는 시간중 인터넷으로 기사를 보게 되었고 그날은 수업을 어떻게 들었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구조는 됐는지 인터넷기사만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오보를 보며 잠시 안도했고 그것이 잘못된 소식이라는 걸 다시 알게 되고 ... 8시 수업을 마치고 방에서 뉴스를 보면서 동료들과 함께 울었네요. 그리고 며칠동안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를 정도로 힘들어 했습니다. 그 커다란 아픈 현실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없는 무기력한 스스로를 탓하면서요. 지금이라도 꼭 밝혀져야 합니다. 아니라고 말만하지 말고 7시간 동안 뭘했는지 밝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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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속보로 보던 수학여행 가던 세월호 침몰 소식...회사에서 팀 주간회의와 프로젝트 회의하면서 간간히 검색하던 뉴스 속보...나의 2014.04.16일은 그렇게 기억납니다.설마, 애들 구조되겠지....하면서 그날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보내고 있던 그날...2년전 Planner를 보니...진급회식까지 있었더라구요. 어렴풋이 기억납니다.하루종일...어떡하지...를 머릿속으로 되뇌이면서 속보만 보던 기억...아직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고...개운하지 않은 변명들...그날이후 2년이 훨씬 지났지만...아직도 마음이 불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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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다.그날 단발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긴 파마머리 였던 것 같기도 하고.날이 화창했던 것 같기도 하고 비가 왔던 것 같기도 하고.하나 만큼은 선명히 기억난다.뉴스를 평소에 보지 않던 내가 꽤 오랜 시간 마음을 졸이며 뉴스를 봤고 외출 전 전원구조라는 소식을 듣고 다행이라며 집을 나섰다.집에서 돌아온 후는 생각하고싶지 않다.하지만 생각해야 한다.다시는 절대로 되풀이 되서는 안되는 참사.내가 할 수 있는건 많지않다.그 날을 잊지않으려 이렇게 되새기는 게 그중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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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시각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회사 업무차 카타르에 가서,숙소 다른층에 있는 식당에서 아침을 먹으면서티비에 나온 세월호를 보았습니다.그때가 한국 시각으로 점심 전쯤이었고, 천천히 가라앉길래 "에이 다 꺼냈겠네" 라고 생각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무실로 가서 업무를 봤습니다.제 기억력은 절대 좋은편이 아닙니다만,아직까지 식당 풍경, 티비의 위치, 제 생각이 그대로 기억납니다.저는 기억합니다. 그날 그 순간을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있습니다.다른분들도 저와 같을거라 생각합니다.제발, 더이상 손바닥을 하늘로 가리려 하지 마십시오.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천벌 받기전에, 제대로, 지금이라도..마지막으로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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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아이 어린이집 보내고 갓태어난 둘째아이모유수유 중이었어요. 집에 계시던 도우미이모님이 티비 좀 켜보자고 급하게 말씀하셨죠. 처음엔 모두 구조되었다고 해서 다행이라고 이모님은 다시 주방으로 가셔서 아침을 차리셨죠. 누구도 몰랐을거에요. 그렇게 많은 사람이 나오지 못하고 있었을줄은. 모두 믿었겠죠. 구해줄 거라고. 그 날뒤로 저는 아이를 낳은 기쁨을 마음껏 느끼지 못했어요. 가슴이 답답했고 아이를 안고 눈물을 많이도 흘렸죠. 내가 낳은 이 작은 아이가 앞으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암담한 마음이었어요. 세월호가 가라앉던 날 우리의 미래도 가라앉아버린 마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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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회사의 사무실 풍경이 기억나요세월호 소식은 너무도 급작스러웠지만설마 별 일 아니려니 했고...이름은 왜 세월인가 촌스럽네 생각도 스쳐가고세월이 가면이란 가사도 스쳐가고바쁘게 일하는 짬짬이 기사를 보았어요.세월호 부근 현장은 왜인지 이상했죠.구조정은 둥둥 떠있을뿐인 것처럼 보였고왜인지 치열한 구조현장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뭐지? 왜 저러지?너무 답답하고 이상해서사무실에서 동료랑 이게 뭐냐고 한탄을 하며발을 굴렀죠.그런 중에도 무관심한 사람들도 있더군요.참으로 씁쓸했어요. 지금도 그렇듯이...우리는 이렇게 애타는데 왜 현장에구조하러 온 자들은 멍청히 제대로 대처도하지않고 구하러 들어가지도 않고설마 설마 설마정말 구하지 않았던 것일줄이야지금까지도 돌아오지 못한 9사람아직도 편히 눈감지 못한 희생자들잊지말고 구하지 않은 자들을단죄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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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서 일을 하면서 라디오를 항상 틀어놓는데...세월호가 침몰했다는 뉴스소식을 들었고 그안에는 수학여행을 가기위해 떠난 고등학교친구들이 대다수라는 소식을 들었죠...얼마후전원무사탈출했다는 소식을 듣고가슴을 쓸어내리고난지 얼마 지나지않아많은 아이들이 물속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너무 안타까웠어요...ㅠㅠ그안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얼마나 추웠을까 가족들곁으로 얼마나 가고싶었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려와요...ㅠㅠ 아직도 나오지못한 9명을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해집니다피지도 못한 꽃들을 위해 기도합니다.부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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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촛불 행진이 벌어지는 안국빌딩에 있던 레스토랑에서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제주도로 향하는 여객선의 사고소식을 접했고 초기에 발표된 뉴스에 전원구조가 되었다며 안도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다시 뉴스가 나오면서 하루종일 구조 소식을 기다리며 보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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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집에서, 학교에서, 타지에서 그 끔찍한 소식의 뉴스를 접하고 놀란 분들,그리고 전원 구조 되었다는 오보로 가슴을 쓸어내린 순간들, 그리고 이어진 악몽같은 시간들...많은 분들이 남겨주신 기억의 끈을 붙잡고 저도 잊지 않겠습니다. 다시금 꺼내보는 그 기억들 앞에서 눈물이 납니다. 이 사건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리고 꺼지지 말아야 할 촛불입니다. 다시는 인생의 꽃다운 시절을 다 누리지도 못한 채 희생당하는 아이들이 없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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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첫 기사를 보고 구조되겠지,배가 점점 가라 앉는 모습을 보고,왜 구조가 되지 않는거지?일을 하면서도 찝찝해서 자꾸 기사를 보게 되었던 그날...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그리고 계속 가라앉아 우리 아이들이 떠나갔던 그날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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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생생히 기억납니다... 아이를 2달 째 품고있을 무렵...입덧이 유난히 너무도 심해서 병원에서 수액을 맞고 돌아와 티비를 켜고 뉴스를 보며 쉬고 있었는데..뉴스에 전원구조라는 자막을 보고 다행이라며 친정엄마와 통화중이던 찰나 오보라는 속보와 집계를 본 순간 저 꽃도 못 피워본 아이들을 왜 데려가시려나 하늘도 무심하단 생각이 들면서 뱃속에 아이를 품고 있는 제 자신이 괜히 원망스럽고 저 아이들한테 너무 미안했습니다...저 아이들은 하늘로 가고있는데 저의 아이는 뱃속에서 빛을 보려고 준비중이라 더욱 더 미안했습니다....아이들이 선장말을 듣지않고 조금만 더 빨리 뛰어나왔더라면....이미 천사들이 되어버린 아이들에게는 아직도 미안하기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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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따라 평소엔 점심 시간쯤 일어나는 내가 유난히도 일찍 눈이 떠졌다 그 날 따라 텔레비전도 안보는 내가 일어나자마자 텔레비전을 켰다 그 날 따라 신문은 봐도 뉴스는 안믿는 내가 뉴스를 틀었다 그 날 따라 꿈을 꾸지 않는 내가계속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날 따라 신은 없다고 외치는 내가 신이라는 모든 신의 이름을 간절히 불렀다 그 날 따라 남을 위해 울지 않는 내가 하루종일 소리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 날 따라 잠이 많은 내가 오지 않는 잠을 청하며 이 꿈에서 깨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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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에 사무실 동료들과 함께 방문한 식당의 텔레비전 뉴스로 처음 소식을 접했습니다. 학생들이 탄 배가 전복되었으나 다행히 전원구조되었다는 보도가 자막과 함께 계속해서 나왔고, 그런데도 바다 한가운데 큰 배가 뒤집혀 있는 영상이 계속 나오는 걸 좀 의아하게 여겼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다 구조되었다니 다행이네, 하고 밥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몇 시간 뒤 인터넷 뉴스로 전원구조는 오보이며, 수많은 탑승자들이 대부분 배 안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너무나 답답하고 어이가 없어서 그날 저녁 내내 잠들기 전까지 뉴스를 계속해서 새로고침했었고요.. 아직까지도 왜 아이들을 적극적으로 구조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모든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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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당시 미국에 거주중이었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스마트폰으로 이것저것 기웃거리다가 포털사이트 메인에 떠있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많은승객을 태운 배가 사고가 났고 배에 태운 승객은 다행히 전원구조되었다는 기사의 헤드라인만 보고 내용은 읽지도 않은채 전 무심코 뒤로가기를 눌렀습니다. 그날 그렇게 전 저녁식사를 마치고.. 곧 잠이들었습니다.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켠 저는 전원구조가 오보였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오보였답니다.. 아이들이 아직 배안에 있답니다.. 몸이부들부들 떨렸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죽어가던 7시간동안 따뜻한 이불안에서 자고었습니다..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눈에 눈물이 고입니다.잊지않겠습니다. 잊지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