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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기억하는데 그사람들은 기억을 못하는지.. 심리학의 섬광효과란게 있는데 충격적인 사건에는 그 주변 상황이 잘 기억이 난다는데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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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고영어 수업을 듣고 있었습니다.영어 선생님은 수업 중 "얘들아 수학여행 가던 고2학생들이 탄 배가 침몰 되었다네? 그런데 전원구조 되었다니 다행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가슴이 철렁했지만 전원구조라는 말에 한시름 놓고 나머지 수업도 들었습니다.그렇게 하루의 수업과 야간자율학습까지 다 마친 저는 집으로 갔습니다. 부모님은 뉴스를 보고 계셨고 저는 참혹한 상황에 너무 놀랐습니다. 그 기사는 오보였고 많은 학생들이 사망•실종 되었다는 속보가 나오고 있었습니다.매일매일 살아서 돌아오기를 바랐는데 아직까지 18살로 남아있는 단원고 친구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2016년 4월 16일의 7시간을 절대 잊지않고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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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때 저는 고등학교 3학년이였습니다. 쉬는 시간에 학교 친구들과 티비를 틀어 뉴스를 접했습니다. 정말 충격적이였습니다. 구조되었다고 해놓고.. 그건 오보였습니다.. 친구들과 정말 며칠동안 안타까워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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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때 학교에서 교육하는 날이여서 도서관에 갔습니다. 도서관에 도착하니 여러명의 학생들이 어지럽게 놀고있었고 저도 그중의 한명이 되었죠. 놀면서 꼭 인터넷을 만지는 학생이 있듯이 그날도 있었습니다. 그때의 실시간 검색어 1위는 "세월호 침몰" 이였고 확인해본결과 300여명의 학생들이 전원구조라는 사실에 안심하고 그대로 믿고 더 이상 신경쓰지않았죠. 그런데 교육시간이 지체되고 한번더 확인한결과 300여명에서 100여명으로 떨어지고 상황은 더욱더 좋지않게흘러갔습니다. 뉴스에선 긴박한 상황이 흘러나오고 한낱 조그만한 학생이던 저는 가만히 지켜볼수밖에 없었죠 다음날 선생님께선 살아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노란종이를주셨고 꼭 돌아올거라 믿었지만 끝내 돌아오지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갑자기 떠난 아이들이 왜 죽어야만하는지에 대한 진실도 묻혀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꼭 기억해야하고 다시는 되풀이되어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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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교시 국어 선생님이 단원고 학생들이 전원구조 됐다는 말씀 하셨고 반친구들과 그 말을 믿고 평소와 다름없이 수업을 듣고있었습니다. 모든 수업이 끝나고 핸드폰을 받고 나서야 전원구조 됐다는 기사가 오보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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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름없는 수요일. 오늘만 버티면 한주가 꺽인다는 생각에 그럭저럭 회사일을 처리하고 있었습니다."배가 뒤집혔대!"뭐지... 여객선 사고인가? 구명조끼,구명보트는 제대로 있었을까?"전원구조됐대"다행이다. 작은 헤프닝이었구나.아니었습니다. 작은 헤프닝인줄 알았는데, 오보라고했습니다.밥을 먹으면서도 일을하면서도 뉴스에 온 신경이 쓰였고, 작은 헤프닝이길 바랬던 이 사건은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못할 300여명의 아이들과 많은 사람들을 잡아먹은 괴물이 되었습니다.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질 정부는? 과연 그때 무엇을 하였던 것일까요?기억을 못한다면 기록을 보면 될것이며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 국가 재난 상태에 아무것도 멋했던 잘못에 대한 면죄부가 될수 없을 것 입니다.우리는 기억합니다 지난 7시간을. 그리고 잊지 않을것입니다. 세월호 사건으로 인한 수많은 피해자, 그리고 무능을 감추기에 급급했던,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당당하게 주장했던 권력자들의 민낯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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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저렇게 구조 명수만 보도를 할까?왜 수많은 언론사 방송국 기자들이 있는데전송되는 화면은 모두 같을까?대체 왜 사람이 있는 배가 가라앉는 전과정을보고있어야 하는건지.완전히 건지지는 못하더라도 더이상 가라앉지 못하게 시간을 벌 방법은 없는건지답답함만 들었고저조차도 쉽게 할수 있는 생각에 대한 답변도 의문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국가도 대통령도 신경쓰지않아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는 그 배를 생생히 보고만 있었던 제가.. 그냥 안타깝고 화가나도 아무것도 못하는 제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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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전 고3이었어요. 아침에 친구들과 함께 교실에 있는 모니터로 뉴스를 보다가 수업을하고, 몇몇 친구들이 핸드폰으로 몰래 뉴스를 보다가 전원 구조되었대 라는 말에 안심을 하였지만 그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지요. 그들의 두려움과 공포는 제가 감히 생각할 수도 없겠죠 평생 기억하겠습니다. 진실을 함께 찾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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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수학여행의 마지막날이였다. 제주도에서 우도로 가는 배에서 내리자, 친구가 말했다."야, 수학여행가던 배 침몰했다는데? 근데 전원구조래""아 그래?"별 생각이 없었다. 뭐, 놀라긴 했겠지만 전원구조됐다니까. 우리는 즐겁게 남은 수학여행의 추억을 쌓고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어 공항에 갔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피곤한 몸을 이끌며 집에 가면 기다리고있을 푹신한 침대를 생각하고있었다. 그때 여기저기서 친구들의 전화기가 울렸고, 나에게도 문자가 왔다."어디야? 괜찮은거지?"비행기를 타러가는 길엔 큰 티비가 있었는데, 티비엔 기울어가는 큰 배와 함께 삼백몇명이 실종이라는 자막이 흘러나왔다. "아까 전원구조라고 하지않았어?""어떡해..."하지만 나는 이내 별일아니라는듯,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듯 집에가는 비행기를 탔고 집에 도착했다. 그렇게 나와 동갑인 아이들이 떠나갔을땐 이 일이 그렇게 크게 다가오지않았다. 그러나 그아이들이 치지않은 수능을 보고, 그 아이들도 가고싶었을 대학에 입학해 엠티를 가고, 그 아이들도 해보고싶었을 것들을 할수있게 됐을때 점점 그 일이 나에게 크게 다가왔다. 어쩌면 그 아이들도 나처럼 평범하게 과제가 많다며 투덜되고, 가끔은 자체 휴강의 맛도 즐기고, 알바로 용돈을 벌고, 시험이 끝나면 치맥하러가자고 웃으며 지냈을수 있었을텐데. 어쩌면 그 아이들도 할수있었던 것들을 하다보면 문득 마음이 아파온다. 7시간, 그 시간은 나에게 이런 의미이다. 어쩌면 그 아이들도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갔을지도 모르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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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2학년 1학기 중간고사기간이었습니다. 민법 시험을 앞두고 전원구조 속보에 마음을 쓸어내렸지만 시험을 치고 나오니 비보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선명히 기억 납니다. 뉴스를 보며 시험기간 제대로 보지 못한 딸아이가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아이 잃은 부모 마음을 생각만해도 가슴이 아파 엉엉 울었습니다. 내 아이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을 안심하고 이 세상에 내보낼 수 있는 그날을 위해 오늘도 촛불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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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저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신 분들을 위해, 짧은 글을 남깁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잊지 않을 것이며, 잊을 수 없습니다. 저희의 촛불이 되어주세요. 절대 꺼트리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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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어린 너희들을 깊은 그곳에.....남겨야만 했던 부끄러운 어른은 오늘 날 들어나는 진실에 분노하고 억울함에 목이 메인다.미안해.....이말밖에 할 수 없어서 정말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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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집안일 끝내고 tv를 켰더니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속보가 떴지요. 구조가 거의 다 되었다고 자막이 뜨길래, 역시 대한민국 해경은 대단하다고 감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구조 소식이 잘못 되었다는 절망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tv 곁을 떠나지 못하고 구조 소식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통령만 보지 못했던 그 시간에, 아니 외면하고 있었던 그 시간에 우리들은 하나같이 마음 모아 절박하게 구조 소식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구요!!!!우리 아이들의 그 아픔을 우린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것이며, 자식을 품에 안고 그 숨결을 느껴보지도 못한 대통령은 반드시 그 잊어버린 시간에 대한 보상을 우리 국민 하나하나에게 해야만 합니다!!!우린 아직도 그 고통스러웠던 날을 , tv만 보며 기도밖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그 무기력했던 시간을 생생히 느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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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시간에 담임선생님께서 뉴스를 통해 소식을 접하고 눈물 흘리시는것을 보며 뒤늦게 진실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침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무식하고 철없던 나도 하교후 온종일 뉴스를 보며 실종자 수가 점점 늘어갈 때마다 슬퍼했고 구조자 수가 간간히 늘어갈 때 마다 안도했었던 게 생각난다.2014년, 6학년이던 나는 어느덧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는 중2가 되었고 갓 고등학교에 입학했던 우리 오빠는 어느새 수능을 치뤘다.하지만 2014년이 2016년이 되었을뿐 지금 상황은 2년전과 다름없이 상처 투성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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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겠다는 저의 그 때, 그 울면서 그대들을 위해 기도하며 했던 제 말은 거짓이 아닙니다.여전히 제게 그 7시간은 생생합니다.2014년 4월 16일, 당시 고 1이던 전 친구들과 점심을 먹으러 가기 이전 반에서 친구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그러다, 친구가 뉴스를 보고 헐 뭐야 라며 말했고,무슨 일인가 싶어 보니,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가 단원고였습니다.기사를 찾아보니,수학여행을 가던 단원고 학생들이 탄 세월호 침몰 관련한 기사가 수두룩 했고,점심시간까지만 하더라도 "모든 인원 구출" 이라는 식의 기사를 써 나가기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그렇게 안도한 채 친구들과 반에 들어오자,언제부턴가, 기사 내용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모든 인원을 구출했다던 내용에서,많은 인원이 실종상태라는 내용으로 말입니다.무슨 일인가 했습니다.분명 전 꿈을 꾼게 아닌데, 분명 모두를 구출했다 했는데,왜 뉴스에선 저리 많은 인원을 실종으로 분류하며,오전에서 오후로 넘어 갈 때의 뉴스의 내용과는 왜 그리 다른지.그렇게, 제 7시간은 여전히 또렷합니다.당시 18살이었던 단원고 학생들은,그 당시엔 저보다 1살 많던 언니, 오빠들이어서,얼마나 많은 꿈을 꾸며 하루를 살아갈 지 상상도 안 가는데,벌써 저 피지도 못 한 꽃들을 져버려야 한다는 생각에 전 그 당시 기억을 전혀 있지 못 합니다.앞으로도 더 잊지 않을 것 입니다.여러분을 위해서, 청춘을 위해서.그를 위해 이렇게 글을 씁니다.Remember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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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학교에서 수업을 받을 때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그저 단순한 사고인줄만 알았습니다. 사건이 진행될수록 우리는 모두 울었습니다. 선생님도 울고 학생도 울고 학부모도 울고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을겁니다. 내가 밥을 먹고 수업을 받을동안 수학여행을 간다던 언니오빠들은 살려달라고 외쳤습니다. 가만히 앉아있으라고 자기먼저 살겠다던 이기적인 어른들이 그들을 밟고 올라가 언니오빠는 가라앉았습니다. 그 이기적인 어른들위에 서 아마도 입막고 귀막고 눈막은 어른 몇분때문이겠지요. 우리는 이어른들에게 그때 무얼했냐 물어보지만 여전히 입과 기억은 닫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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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천천히 다가왔습니다.아침 회사 사무실에서 흘끗 본 속보에 침몰한 여객선에 아이들이 있다는 뉴스는 그저 약간의 놀람 뿐이었지요.그래도 연안여객선인데... 설마... 이래저래 일에 치이다가 오후에야 다시 본 뉴스는... 지금도 우리 딸이 놀릴 정도로 세월호 얘기만 나오면 눈물부터 납니다. 나이 50에도 말입니다.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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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사건이 터졌던 해의 저의나이는 중학교3학년이였습니다.학교에서 오후9시까지 야자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길에 제친구어머니께서는 오늘 사람이많이죽었다라고하시면서 슬픈표정을 짓고계셨습니다. 그때까지만해도 왜그런말을 하셨는지몰랐습니다. 집에돌아와보네 저희부모님께서는 티비앞에서 뉴스를보시며 눈물을흘리고계셨습니다. 정말일어나서는안될 일이 일어나고야 만것이죠 저는 그때 언니오빠들이 받았던 느꼈던 고통이 어떠할지는 전혀느낄수는없지만 언니오빠들의 마지막모습을보고 슬프고 또 슬펐습니다.아직까지도 세월호이야기만 티비나 기사에서보면 눈물이납니다. 다시는 이런일들이일어나서는안되길 간절히바랍니다. 사람들기억속에 점점 잊혀져만가는 세월호사건이 벌써2년전에일일이란것에 놀랍기도했지만 그 2년이란 짧고도 긴시간동안 전 단한번도 세월호사건을 잊지않았습니다. 앞으로도 잊지못할것이고 죽기직전까지도 아니 죽어서도 잊지않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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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지금 내 동기들이었을 수도 있는 내 친구들.그날은 전국에 있는 모든 고2들이 영어듣기시험을 치는 날이었어. 시험 끝나고 몰래 숨겨놨던 휴대폰으로 네이버를 하다가 진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일을 접했어.솔직히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어. 곧 전원구조라고 했고, 반 친구들과 나는 안도했어 그런데.너희들은 차가운 물 속에 여전히 갇혀있었고, 우리가 저녁을 먹고 야자를 하고 잠에 들기 전까지 계속 갇혀있었어. 감히 나는 상상도 못할 두려움이겠지만 나와 내친구들은 너무 무서워서 잠도 오지 않았어...기숙사 복도를 걷는데 창문으로 푸르스름한 새벽 빛이 들어와 마치 배 안에 갇힌듯한 느낌이 들었어. 나도 너무 무서운데 너희는 얼마나 춥고 아팠니.벌써 3년 전의 이야기가 되어가고 나는 벌써 곧 대학교 2학년이 되는데, 아직도 멈춘 시간 속에 살아가는 너희와 함께 살아 갈게. 절대 잊지 않을게.누군가들은 7시간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나는 기억하고, 국민들이 기억해. 천국에서 끝까지 우리가 싸우는 모습을 봐줬으면 좋겠어. 너무 미안하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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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그날은 중간고사 시험공부를 위해친구들과 카페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공부를 하다가 뒤쪽 테이블에서"배가 침몰했대 근데 학생들이 많이 타있대"라는 소리를 듣고 놀란마음에 바로 휴대폰을 들고 뉴스를 확인했습니다. 메인에 뜨는건 배가 침몰했다는 제목이었습니다. 친구들과 놀란마음에 각자 휴대폰으로 뉴스 기사들을 확인해보았습니다. 조금있다가 전원구조가 속보로 뜨고 저희는 안도해서"다행이다 다 살았네"라며 다시 공부를 하려고 펜을 잡았습니다. 그래도 걱정되는 마음에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는데 그때 또 뒤에서 전원구조가 오보였고 아직 구하지 못한 분들이 많다는걸 알게되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그때부터 공부를 하지 못하고 카페에 앉아 하루종일 기사를 보고, 저보다 동생들인 단원고 학생들을 생각하면서 안타까워하고 일반인 희생자 분들을 안타까워하면서,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직도 그날일을 생각하면 어제 일처럼 제 감정들이 생생한데 어떻게 정치인분들은 다 모르겠다고 하고 어느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지 정말 억울합니다. 가족이 아닌 저도 아직도 세월호만 생각하면 슬프고 눈물부터 나오는데 가족분들은 그 심정이 어떠실지 헤아릴수가 없습니다. 부디 어느 누구도 세월호를 잊지 않고, 4월 16일을 잊지 않고, 아이들의 희생과 일반인 희생자 분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유가족분들의 슬픔을 잊지않았으면 좋겠습니다.저도 반드시 늘 기억하고 슬퍼하며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