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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는 고등학교 컴퓨터수업시간에 우연히 실검에 올라온 세월호침몰 이란 제목을봤고 바로눌렸어요 누르고보니 수학여행을가는 친구들을 태운배가 침몰했다고 하지만 전원 다 구조했다고 뉴스가떴어요 그때까지만해도 오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했어요 그러고나서 학교를 일찍 마치고 근처 치과에가서 충치치료를 기다리며 티비를보고 있는데 맙소사 전원구조가아니였어요..ㅎ 실종자수와 사망자수가 뜨더라구요.. 너무놀래서 그때부터 친구들과 걱정어린 마음으로 서로얘기를주고받다가 집으로 돌아왔어요 돌아와서 평소 안보던 뉴스를챙겨보며 구조수가 늘어나길 간절히 바랬어요..ㅅ나지만 사망자수만 더늘어나고있었어요 그때부터 전 세월호에 관심을가지기시작했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죠 이렇게 그당시 평범한 학생이였던 저도 마음졸이며 기다리고 걱정했는데 한 나라의 대통령이던 박근혜는 도대체 무얼하고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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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놀랐고 전원 구조 되기를 바랬습니다.같은 학생으로써 안타깝고 마음이 아픕니다.그날의 시간은 잊을수없습니다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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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직장 회사 대표가 제가 아는 거래처에서 정장 좀 싸게 사자고.. 끌려가는 날이었습니다.전날 야근해서 상태도 안좋은데.. 그 짜증나는 인간을 집에 찾아가서 데리고 나오고.. 정장 매장까지 가서 또 아는 매장 사장한테 아쉬운 소리 하면서... 싸게 입혔져.. 사장 데리러 갔을때 사장 집에 들어가서 뉴스 보는데 전원 구조 자막을 보고..아 별일 아니구나..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던게 어제 같네요.. ㅠㅠ나중에 세월호 사건 커지고 나서 전 직장 대표의 이게 무슨 박ㄹ혜 탓이냐는 개소리가 머리속에 남아 있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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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디스크 진료받으러 경기도부천에서 서울 일원동으로 가던차안에서 처음 들었고 오보와 다시 들은 진실과 분노했고 몸이아픈것보다 마음이 더아팠습니다.병원에 있던 35일동안 잊지않고 매일 병실에서 세월호관련소식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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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학생회관 식당에서 늦은 아침밥을 먹으면서 식당에 설치된 텔레비젼으로 세월호 첫 소식을 보았습니다. 너무 당황하고 놀라긴 했지만 곧 구조되었다는 소식에 안심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오후시간을 아마도 학교에서 강의를 들으며 보냈을 것이고 저녁에는 수영 강습을 갔습니다. 강습 후 수영장을 나서는데 당시 남자친구가 새로 보도된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그것은 낮에 들었던 소식과 정반대의 소식이었고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믿기지 않았던 그 느낌과 그때의 장소와 풍경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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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구조됐다는 소식에 다행이라는 안도에 앞서 거짓말일거라는 확신이 본능적으로 먼저 들었습니다. 안전시스템이 완전히 망가진 사회의 수장과 그 하수인들(경찰, 언론, 일부 정치인들)에게 가졌던 불신이 MB때부터 누적되어 있었으니까요.그리고 그 확신이 사실화되는 것을 보며 참담했고 분노했고 사무치게 미안했고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했던 무기력에 저 자신조차 용서할 수 없던 자책과 괴로움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제 개인의 역사 속에서도 절대 잊혀지지 않고 잊을 수도 없는 현장으로 남아 2년 7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흐르고 있는 시간이자 눈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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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또한 수학여행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안이였다. 서로 수학여행에서 어떤 점이 즐거웠고 어떤 것이 재밌었는지 한참 대화를 나눈 터라 사건이 일어났는지는 우리들의 부모님에게서 전화가 오고나서 알게 되었다. 수화기 넘어로 혹시나 그 세월호에 탄 아이들이 우리가 아닐까하시는 부모님의 염려가 멀리있는 우리까지 닿았고 우리는 한참이나 그 전화를 받고 단원고 학생들의 몸이 되려 상상까지 하며 슬퍼했다. 몇몇 아이들은 나였으면 너무 힘들것같다며 눈물까지 흘렸다. 전원구조가 버스의 작은 티비에서 울려퍼졌을땐 버스안이 축제였다. 다행이라며 좋아하고 있을 찰나에 다시 오보라고 뜬 것이다. 부끄러웠다. 현재 수학여행을 즐기고 온 나도 부끄러웠고 내가 되고 싶었던 언론인도 부끄럽고 나와 같은 학생들을 삼켜버린 바다를 미워하기만 할 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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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오보와 현장의 구조가 안되고 맴도는 헬기와 배들이 기억납니다. 현실감이 전혀없었어요..... 구조하겠지...구조하겠지....설마...설마....하다가 완전히 배가 잠겨버리고....그래도 살아있겠지.....구조하겠지....하루 이틀.....그후에도 팽목항의 모습을 뉴스로 보면서 가야하나....나라도 가서 도와야 하나....고민속에 하루하루 보냈던게 기억납니다.... 그런 나의 주저함들이 아이들을 보낸게 아닌가 자책하게되고 반성하게 됐습니다. 이젠 행동하려고 합니다. 더이상 가만히 앉아있진 안을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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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저는 경기도 부천에 있는 거래처 회장님을 뵈러 갔다가 회장님 사무실에 있던 오래된 TV에서 세월호 침몰 뉴스 속보가 나오는 걸 그 분과 함께 엄청난 충격으로 지켜 보았습니다.처음에 올라온 자막 양옆이 조금 잘려 나온 언론사의 오보로 판명된 "승객 전원 구조"라는 뉴스를 보면서 회장님과 함께 환호하면서 "역시 대.한.민.국!!!"이라고 외쳤습니다.하지만 뒤이어 올라오는 어처구니 없는 소식 속에서 "아니 이게 대한민국 맞나???"라고 자책과 무력감에 빠지게 되었습니다.그리고 점차 시간이 흘러 가면서 박근혜와 그 일당이 보여주는 "그건 좀 사람이 많이 죽은 여객선 사고일뿐야. 뭘 그걸 가지고 그래. 니네 빨갱이지!"라고 몰아가는 몰상식한 모습에 엄청난 실망에 빠지게 됩니다.대한민국의 대통령이 그 중요한 순간에 자리를 비우고 뭘 하고 있었는지는 매우 중요합니다.박근혜는 노무현정부가 알카에다에 의해 한명의 한국인이 살해되었을 때 "국민을 지켜주지 않는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가 아니다"라고 했는데, 본인은 직무를 내팽긴 채 어디서 뭘 하고 있었단 말입니까?반드시 이 부분은 명명백백히 밝혀서 모든 국민이 알아야 합니다.박근혜와 그 일당이 얼마나 잔인하고 부도덕한 집단인지를 알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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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저는 그 친구들과 같은 나이 그리고 그 친구들이 수학여행을 가기 바로 전 주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왔었고 4월 16일 영어듣기 시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라디오에서 화분이라는 노래가 나왔던게 기억이나고 그 때 선생님이 인터넷 기사가 올라왔는데 배가 침몰되고 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모든 친구들이 걱정을 하고 뒤이어 선생님은 전원구조라고 말씀해주셔서 모두 안심하고 시험을 봤습니다. 그리고 오후 각자 핸드폰을 받았을 때에는 전원구조는 커녕.. 모두 야간자율학습시간에 공부는 뒷전이고 걱정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던게 기억이 납니다. 그 날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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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저는 학교에 등교해서 1교시 수업을 막 하고 있었습니다. 교과서 수업을 하다가 인터넷 수업을 하기 위해서 컴퓨터를 켰을때 속보를 접했습니다. 선생님과 친구들 모두 놀랐지만 모두 구조했다는 소식에 다행이다라는 생각이였지만 곧이어 그 속보가 오보였디는 것을 알고 반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경악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교실 앞 티비에 인터넷을 연결해놓고 구조인원이 한명이라도 정말 진짜 한명이라도 늘길 기도하며 바라보았던 기억이 납니다.제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게 죄송스러울 뿐입니다. 도움이 되어주지는 못했지만 저는 그 날의 기억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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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겠습니다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절대로 잊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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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그날 밤은 대학원에 입학한 이후 첫 학회에 참석하는 날이었어요. 연구원들과 TV앞에 옹기종기 모여 간간이 들려오는 구조소식에 왜 이런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분노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회의감을 삭이고 있었죠. 다음날 밝혀진 진실은 학회 내내 절 슬프고 괴롭게 만들었어요.시간이 흐르고 유가족을 제외한 모두가 다시 일상에 젖어들때 즈음, 부끄럽지만 전 광화문에 길고 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유가족을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곤 했습니다.다시 진실이 재조명 되는 지금, 저는 무관심했던 부끄러운 모습을 반복하고 싶진 않습니다. 대한민국은 잊지 못할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하지만 상처는 아물것이고, 우리는 후에 이를 보고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고, 변화시킬 것입니다.이제야 기억의 조각들을 맞춰보는 저를 다시 한 번 반성하며,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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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서 속보를 보고 바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 저 아이들 어두운 바다에서 어서 빨리 빛을 볼 수있게 인도해주세요 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도 힘을 다하셨었나 봅니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 모든 승객들을 구하시기는 어려웠나봅니다. 뉴스를 보면서 저와 같이 기도를 하고 있었을 수만은 대한민국 국민들과 피해자 가족들이 가슴 아파하였던 그 순간은 잊을 수 없습니다. 너무 진심을 담아 기도해서 마음 깊히 새겨졌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우리는 다 같이 마음아파하던 순간을 항상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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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겠습니다최근들어 제일 슬픈날이네요..민주주의 지켜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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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 있을 때다.당직병으로 TV와 CCTV를 예의주시하던 나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갑작스럽게 터진 사고에 언론조차 당황하여 속보를 번복했다.누가봐도 어른의 잘못, 뿌리깊게 박힌 나라의 잘못이었으나 당시에 나는 군인이라는 이유로 그 어떤 말도 표현도 할 수 없었다.그저 미안하고 미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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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를 하던 때였죠. 점심 때 ㄴㅂ 부대찌개집 들어가서 다같이 점심 먹으며 식당 티비로 세월호 뉴스를 봤습니다. 전원구조라길래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오후부터 그게 오보라는걸 알았습니다. 그날저녁부터 계속 세월호 보도만 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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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지금 떠올리면 가슴 한켠이 먹먹하고손이 떨려오는 날짜 이지만당시 중학교 2학년 이었던 저는그날에 평소와 똑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습니다평소와 똑같이 등교하고평소와 똑같이 수업을 듣던중노트북으로 수업자료를 보여주시던선생님께서 갑자기 "얘들아 지금 난리났다"며인터넷 기사를 보여주셨습니다기사에는 학생들을 태우고 수학여행지로향하던 배가 침몰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하지만 얼마 후 전원구조라는,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는 오보가 올라왔습니다 우리반 모두와 선생님은 다행이라며 안심했고곧바로 다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하지만 쉬는시간이 되고휴대폰을 내지 않은 소수의 아이들과교무실에 계신 선생님들을 통해전원구조된것이 아니라는 기사가 올라온 것을 보고우리는 다시 마음을 졸였습니다그땐 몰랐습니다2년이 훌쩍 넘게 흘러 내가 단원고 희생자분들과같은 나이가 된 지금까지 마음을 졸이게 될 줄은,957일 동안 진실이 밝혀지지 않을 줄은...이제 그만 진실을 알고싶습니다당신들이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 감추더라도우리가 전부 밝혀낼 것입니다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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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수업가기전 막 침대에서 일어났을 때,"야 여객선 사고났대. 근데 다 구했대.""오 다행이다."채 몇시간도 안되어서 300여명이탈출하지 못한 채 밑바닥을 드러낸커다란 배의 사진이 인터넷을 도배했다."아..."그러나너무나 무기력하게도나는 그렇게 물속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을 바라만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날 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을 때,까만 물이 차오르는 객실이 선명하게 그려질정도로, 가슴이 너무 아팠다.그런데,나는 할 수 없었지만, "우리"는 할 수 있었다.그 아이들, 그 많은 사람들을 "우리"는 구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나는 할 수 없었지만, "우리"는 하지 않았다."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나는 그들을 찾아갈 때마다 한번도 영정을 제대로 마주하지를 못했다.너무 미안해서.나는 언제쯤 그들의 영정앞에 하얀 꽃한송이 제대로 놓을 수 있을까.나는 아직 우리가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지" 이유도 하나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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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비슷한 또래의 후배의 (역시 바다에서의) 죽음을 몇 개월 전 보고 장례를 치르고 아직도 한참 슬퍼하고 있었지만 어떻게든 잊어보려고 하고 있던 시기였어. 눈 뜨고 괴로워하기 싫어서 깨도 일부러 다시 눈을 감곤 했지. 그 날은 거실에서 티비만 켜두고 멍하니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속보가 뜨더라구. 이게 또 왠일인가 싶다가 동시에 믿어지지도 않더라구. 전원구조에서 실제 숫자로 바뀌고 나서 몇시간을 티비만 켜두고 정신나간 사람처럼 구조소식만을 기다렸어. 왜 구조할 수 없는건지, 왜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건지, 부모님들은 얼마나 속이 썩고 있을지, 저 안의 학생들은 얼마나 무섭고 차가울지, 참... 절대로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임에 분명해. 우리는 모두 그 날을 기억하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는 몇몇 책임자들은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