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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또한번 글을 씁니다 , 3년만에 배가 떠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단원고 학생들 이랑 같은 나이라 남일같지가 않네요 한날 꿈에서 바다를보면서 세월호 떠있는 모습보고 너무 신난 나머지 그바다로 빠져서 무작정헤엄치고 달려갔네요 젊은나이에 우리천사 가 되준 단원고 친구들 평생 잊지못할겁다진실은 꼭 밝혀졌으면좋겠고 단원고 친구들의 한을 풀어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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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서 단원고 학생들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배타고 가던 도중에 가라앉고 있던 상황이라는 뉴스가 나왔고 전원 구조라는 말에 가족들과 함께 안도를 했다. 근데 점점 tv에 나온 실종자 사망자수는 계속해서 늘어났고 믿을 수가 없었다. 그 상황에서 정부는 구조작업 준비중이라고만 나오고 결국 진행된건 아무런 것도 없었고 오로지 단원고 선생님들만 앞장서서 아이들을 보호할 뿐이었다... 지금 와서 느끼는 것은 과연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도 우리나라정부에서는 이제는 제대로 대처를 잘해줄것이다 라는 보장이 없고 믿을 만하지 못하다는 것이다.우리나라 국민이 우리나라를 믿고 살아갈 수 있게,제발 안타깝게 희생된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세월호의 진상규명이 거짓없이 진실되게 밝혀져 모든 국민이 납득할 만한 이유가 존재해야만 할 것이고 납득할 만한 이유가 아니라면 그에 따른 정당한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세상이 공평하고 우리는 세상을 믿고 바람직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차기 대통령은 보다 더 좋은 세상을, 국민이 자기 나라를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고 믿음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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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는 6호 마자렐로센터 라는곳에서 뉴스를 보고 세월호 가 침몰했다는걸 알았습니다 그곳에는 50 명이 다같이 생활하는데 모두가 한마음이 도어 기도하고 가도했습니다 . 기도하면서 제가 정말 착하게살테니까 저기있는 언니오빠들좀 꺼내주세요 하고 몇십번을기도했습니다 그 기도가 이제서야 하늘에 전달된것같습니다 세월호 사건에 진실이 꼭 밝혀졌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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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 속에서 소리치던 소리를 듣고 모른척한 그사람,그 날 물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모두 물 안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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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학교에서 꼭 살아남으라고 계속 인터넷보고 무사하길 바랐던게 엊그제인데 잊지않겠습니다.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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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는 제가 대학생이 된 해이자, 세월호가 슬픔속으로 가라앉은 해였습니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아침을 먹고 양치를 하던중 얼른 이리와서 뉴스 좀 보라시던 아빠의 말씀에 함께 세월호가 가라앉는것을 보게되었습니다. 구명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보트에 타려 아등바등하는 모습과 점점 기울어져 가던 배의모습. 저는 전원구조가 되었다는 오보가 나온 후 정정되는 보도부터 보기 시작했지만 그 정정되는 생존자 수는 점점 줄어들었고 실종자 수와 사망자 수가 점점 늘어가는 것을 보며 확실하게 몇명이 살았는지 얼른 구조는 제대로 되고 있는건지 알지못해 갑갑함을 느꼈습니다. 늦은 봄날을 느끼려 친구들과 함께 황혼의 나이에 여행을 떠나셨던 할머님 할아버님들도, 제주도에 신나게 여행을 가자며 웃음꽃 피웠을 가족들도, 즐겁게 친구들과 놀며 집에있을 부모님에게 안부전화를 하던 단원고 학생들도, 그런 학생들을 보며 조심히 다녀라 얼른 자라 감기조심해라 곁에서 지키시던 선생님들도..모두가 즐거웠던 행복하던 세월호였을겁니다... 배가 뒤집힌 그날 저녁. 가라앉은 세월호에 사람이 있다고, 내딸이 전화를 해왔다고, 내 아들이 문자를 보내왔다고 울부짖고 눈물지으시는 부모님들의 뉴스를 보며 한시도 눈을떼기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먼저빠져나간 선장의 사진을 보면서 분노또한 느꼈습니다. 제가 본 세월호의 모습은 답답함과 엄청난슬픔의 집합체같은 존재였습니다. 어떻게 된일인지도 모른채 깊은 바닷속으로 차갑게 감추어져버린 진실을 지금이라도 인양되고 있는 세월호와 함께 끌어올릴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우리는. 그 날. 2014년 04월 16일을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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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마지막 수련회의 마지막날, 그날은 4월 16일이었다. 버스에서 속보를 보았다. 하지만 전원 구조랬다. 안심하고 학교에 도착하니 많은 부모님들께서 우리를 반겨주셨다. 우시는 부모님도 계셨다. 우리 엄마는 묵묵히 나를 안아주셨다. 그리고는 말하셨다. 다 구하지 못했다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고등학생 언니오빠들, 학교에 간 우리 언니와 동갑인 언니오빠들이었다. 괜히 더 속상하다, 어쩌면 우리언니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속상하고 슬프다. 그리고 세월호가 다시 돌아온 올해, 나는 중학교 3학년이다. 그곳에서는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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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고등학교 1학년, 영어 선생님이 교실 복도 창가에서 놀란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수학여행 가던 배가 침몰하고있다" 큰 일이 나긴 했구나..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눈물 나도록 슬프지는 않았다. 다만, 그 상황이 참담하고 답답했을 뿐..당사자가 아니라서, 그래서인지 와닿지는 않았다.그렇게 3년이 지나고 인양 소식이 들려온 후 안산 분향소를 찾았다. 한 번 가봐야지 가봐야지 했던 약속을 3년이 다 되서야 지켰다.사람은 겪어보지 못하고 눈으로 직접 보지않으면 모른다고..그 곳이 있던 영정,밑에 놓여진 편지들이 하나같이 자신의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할 수 있는것이 흐르는 눈물을 닦는것 밖에 없었다.그 날 나는 한없이 후회했다 그리고 화가 났다.별다른 관심없던 내 자신한테..무엇보다 자신 하나 살자고 304명의 미래를 앗아가버린 선장과 지금도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묵묵부답인 박근혜 정부.금요일에 돌아온다던 학생들의 사연을 간직한 배가 3년이라는 긴 수학여행을 마치고 금요일에 돌아왔다.304명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3년이라는 세월동안 그 곳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보고 또,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을까.아직도 그들은 여행중일 것이다.먼 미래에 꼭 만나서 묻고 싶다.만족스러운 여행이였냐고 혹여나 춥지는 않았냐고그리고 미안하다고, 내가 정말 미안하다고.그렇게 304명은 별이 되었다.그리고 진실은 여전히 인양중이다.2016.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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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족이 아니래도 국가적 아픔이고 고통이었다. 눈을 뜨나 감으나 그때 당시는 온통 세월호로 가득 찼다. 출퇴근길 기사보며 전철 안에서도 울고 기도실에서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진실을 밝혀달라고 애원했다.아이들을 끝내 구하지 않은 정부가 평생 원망스러울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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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 평상시와 다를바없이 집에서 편안한 날들을 보내고 있던 중 세월호 소식이들려왔다.전원 구조되었단 말에 다행이라면서 가족들과 안심을 한후 불과 몇시간 만에 사망자 수. 실종자 수는 끊임없이 늘어만 갔다.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단지 티비앞에서 진실을 말하는것인지 거짓을 말하는것인지 알 수 없는 티비속 사람들의 얘기를 숨죽여 귀울이는 일뿐 ,, 하루종일 티비와 핸드폰을 멀리하지 못하고 좋은 소식만을 기다려왔고 2017년 4월달이 되어도 여전히 나는 좋은 소식만을 기다리고 있는것이 이제는 화가 난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거라곤 4월16|일 그날을 잊지않는것뿐..4월16일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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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하루종일 티비를 보며 마음 졸였습니다.국가가 구조를 위해 무엇을 해줄지 기대했지만아무것도 하지 않고진실대로 이야기하지 않은 것을 기억합니다.희생된 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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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도 어김없이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어요. 점심시간 즈음에 한 선생님께서 아침에 난 사고 이야기를 해주시며 아직도 구조가 되지 않은 학생들이 많다고 걱정어린 말씀을 하셨던게 기억이 나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그 배에 탔던 언니오빠들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할줄은 짐작도 하지 못했어요. 당시엔 그저 뉴스로 스치는 많은 사건중 하나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제가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쉽사리 잊혀지게 두면 안될 사건이라는걸 알고 있기에 이렇게 제 기억도 몇 자 보태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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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다시 또 뚜렷해집니다 물이 창문의 반을 덮었을때 한아이가 의자로 계속 창문을 깨서 나오려고 하던 장면 너무도 안타깝고 화면만 바라보고 그저바라보고 아무것도 할수 없는 내자신이 떠오릅니다 선장을 구할게 아니라 창문을 먼저 깨주었다면 어땠을까 안타까운마음에 몇자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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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저는 중학생이였어요, 아침에 친구들이 모여서 "야 배가 기울어졌데" 라고 할때만 해도 별로 심각한지 몰랐죠, 선생님들도 그 끔찍한 오보를 믿고 "모두 구조되서 다행이다" 라고 하셨으니까요그런데, 하교 후 휴대폰을 받은 다음부터. 저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실시간으로 TV,뉴스로 봤습니다. 정말 끔찍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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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3년 전 4월 16일 수학여행을 떠난 단원고 학생들과 같은 1997년생입니다. 저는 그 날로부터 2주쯤 전에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왔었고, 4월 16일 수요일 오전 당시는 학교의 동아리 활동 시간이었습니다. 그 중에 옆에 앉아 있던 친구가 핸드폰으로 여객선 사고가 났다는 뉴스를 보여 주더군요. 그리고 몇 시간 후에 다시 뉴스를 보고는 전원구조 됐다는데 다행이다 했습니다. 하교할 무렵이 돼서야 그게 오보였다는 것을 알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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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수업 중 이었습니다.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 선생님들께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모두 구조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 그땐 실감하지 못했고 큰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었습니다.하지만 알고보니 모두 구조된것이아니라 구조되지 못한 수 많은 희생자들이 있다는것을 알게 되고 이게무슨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기억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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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와 다름없이 친구들과 하교를 하여 태권도 학원에 들어가서 폰을 만지는데 어떤 배가 가라 앉는다는 뉴스를 보았다. 나는 어려 아무것도 몰랐던 터라 음 그냥 그렇구나 하고 놀다가 다시 보니 나랑 6살 밖에 차이 나지 않는 어린 성인도 되어 보지 못한 언니 오빠들이 타고 있던 배라는 사실을 알고 학원에서 동생들이 다 보는데 눈물을 흘려 버렸다.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한 것도 너무 미안하고 내 자신이 원망스러워서 요즘도 세월호 말만 나오면 울어 버리고 침묵해버린다. 세월호 작업이 안전하게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으면 좋겠다. Don"t forgetNever forg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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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기울었다는 소식을 들은 나는 이게 무슨 소리냐 아닐꺼라고 믿었지만...뉴스소식에 까지 올라온후 나는 정말 절망적이고 형 누나분들이 너무 불쌍한 나머지, 선장 개새끼가 먼저 탈출했다는 소식을 듣고 당장이라도 찾아가서 제가 직접 죽이고 싶었습니다. 세월호..벌써 3주년이라는게 너무 믿겨지지가 않습니다. 학교에서 세월 호 추모할때, 울음이 터져버렸습니다...지금도 세월호 사건와 관련된 영상을 볼때마다 눈물으 주륵 흐르곤 합니다. 그리고 미수습자 분들과..형과 누나의 어머니 아버지 분들이 너무 힘들어보였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우실때 저도 같이 울었습니다. 담부터 꼭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단원고 형,누나 분들 기억하겠습니다.항상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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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소식을 들었을 땐 사무실이었습니다.전원 구조됐다는 소식에 다행이다...하고 외근을 나갔는데 들어오는 길에 팀장님 차 안에서 그게 오보였다는걸 알고 다같이 충격에 빠졌었죠.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관심을 가지고 보고있습니다. 진실이 반드시 꼭 밝혀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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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소식을 접한 것은 쉬는 시간이 끝나고 수업이 시작하자 선생님이 "배가 가라 앉는 중이라더라" 는 말을 하고 나서였다. 너희와 또래인,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학생들이 탄 배가 가라앉았다고. 핸드폰을 걷었기에 아무도 몰랐던 소식이었다. 모두 걱정하는 목소리를 냈지만 잠깐이었다. 다들 덤덤했다. 완전히 가라앉은 것이 아니었기에 요즘 시대에 구하지 못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선생님도 우리도 아무렇지 않게 수업을 계속 했고, 몇시간이 지나 집에 갈 무렵 냈던 핸드폰을 받아 포털사이트에 들어갔을 때, 교실 이곳저곳에서 들려온 탄식 소리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당연히 구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별 일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도 구조를 하지 못했단다. 그 이후 난리가 났다.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우리가 어제와 같이 등교를 하고 수업을 듣는 동안 배는 천천히 그 모습을 감췄다. 당혹스러웠다. 집채만한 배를 바다가 삼켜버려 흔적도 남지 않았을 때 그때서야 실감이 났다. 아, 저 생명들이 올라오지 못했구나. 이 사건은 사람이 죽을 수 있는 사건이구나. 배가 가라앉고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며 행동한 것은 없는 국가는 이 나라가 훗날 성인이 되어서 믿고 살 수 있는 나라인지 의문을 품게 만들었고, 우리는 투표권조차 없어 어른들의 손에 맡겼던 대통령은 침묵하여 우리를 참담하게 만들었다. 사건을 가지고 왜곡하며 이제는 잊으라 말하는 어른들에게는 불신을 가지게 되었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는 반기를 들게 만들었다. 나는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었다. 하지만 매년 찾아오는 4월 16일은 내가 다시 수업시간에 그 이야기를 들었던 때로 돌아가게 만든다.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안일했던 나의 모습으로 말이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나면 사진으로나마 볼 수 있는 그들을 차마 부끄러워 바라볼 용기가 없는 지금의 나를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