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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하는 국어시간, 저는 여느떄와 다름없이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평상시때와는 달리 늦게 들어오셨고, 저희에게 "배가 침몰했다."라는 소식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희 학교는 따로 컴퓨터가 없어서 선생님들께서 노트북을 가지고 들어오시는데, 저희는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뉴스를 보았습니다. 첫 뉴스를 보았을땐 해경들과 구조대원들이 금방이라도 구조할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다음 수업이 시작할때까지 구조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집에 갔을때도 구조는 신속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결과로 우리는 아름다운 우리 단원고2학년 선배님들을 떠나보내게 되었습니다. 가끔씩 유투브로 세월호와 관련된 영상을 봅니다. 당시의 뉴스와 세월호 안에서 찍었던 희생자분들의 동영상, 그리고 유가족들의 시위모습, 현재어떻게 지내는지, 팽목항 등등 여러 영상을 볼때마다 항상 눈물이 납니다. 제가 가장 기억에 남는 영상은 희생자의 동생이 오빠를 정말 많이 그리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담담해 보이지만 저는 그 담담한 모습이 더 가슴이 아팠습니다. 어린 동생이었는데 일찍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느꼈다고 생각하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슬퍼서, 저는 영상을 보고 그대로 침대에 엎드려서 계속 울었습니다. 평소엔 티격태격해도 없으면 섭섭하고 그리운게 바로 형제,자매인데. 저도 언니가 있어서 그런지 유가족분들의 슬픔과 고통이 너무 잘 전해졌습니다. 글로 이렇게 쓰려니까 잘 표현이 안되지만 정말 정말 저는 그 영상을 보고 언니와 함께 울었습니다. 왜 아직 꿈도 못 펼쳐본 청춘들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이런 고통을 주시는지. 저는 신이 너무 밉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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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고등학생이었기에 학교에 앉아서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핸드폰도 내고 교실 컴퓨터도 함부로 사용을 못해서 세월호 사고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국어 시간에 국어선생님께서 세월호가 침몰되었다는 뉴스를 말씀해주셔서 알게되었습니다. 국어선생님과 저희 반 아이들은 이렇게 슬픈 결과는 예상치도 못한 채 금방 구조되리라 믿고 수업진도를 나갔습니다. 학교는 세월호에 대한 얘기로 떠들썩했고 우리나라가 떠들썩했습니다. 하교를 하고 집에 와서 티비를 트니 세월호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했습니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배는 점점 가라앉았고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흘러갔습니다. 지금도 저에게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는데 도대체 대통령님의 7시간은 어디로 사라진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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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평소랑 다름 없었던 하루였었는데....뉴스에서... 그래도 다 구조했다고 나와서 안심 했었는데.... 모든것이 아니라니 지금도 거짓이라고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은날이다.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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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또한 같은 나이였기때문에 똑똑히 기억합니다. 아침에 친구들한테 세월호가 침몰한다는 말을 듣고 같이 걱정하다가 전원구조라는 말을 듣고 안심했었죠. 그래, 다 구조되었다니까 진짜 다행이다 하며 안도하고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냈습니다. 후에 오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각종 SNS가 난리나며 간혹 자기 지인 중에 단원고 친구가 있으니 기도해달라는 카톡도 기억이납니다. 또한 사고 전 날 세월호침몰이라는 기사가 뜬 것을 보았다는 사람들의 말과 기사캡처도 봤지만 모두 묻혔습니다. 모든 것이 미궁에 빠져있던 그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던 해경과 정부 등 관련책임자들의 무능함을 기억합니다. 그 무능함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슬픔에 빠졌습니다. 우리는 아직 7시간을 잊지 못합니다. 7시간동안 도대체 구조하려는 노력이라도 , 살리려는 마음이라도 있었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 못하듯 회피로 억울한 죽음들이 가려지지 않습니다. 부디 그 날의 진실이 밝혀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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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은 잊어도, 우리들만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어요. 언니,오빠들 부디 그 곳에서 편안히 쉬세요.7시간의 진실이 밝혀지면 그때는 밝은 미소 한 번 지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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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이던 저는 평소와 같은 학교 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선생님께서 배가 침몰했다고 하셨고 그날 도서관에 가니 전원구조라는 기사가 떠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게 오보라는걸 알게되고 생각보다 많은 희생자수에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다음날 저희반 복도에서 엄청 서럽게 울던 친구.. 중학교때 친했던 언니가 그 사고난 배에 타고 있던 것이였어요. 정말 걱정이 많이 되었고 실날같은 희망을 가지고 기도를 했지만 그 언니뷴께서는 결국 5월 중순인가 말 즈음에 발견되었다고 해요. 그리고 저는 어린시절 안산시 단원구에 거주하였습니다. 저랑 바로 옆집에 살았을 수도 있는 학생들이 그렇게 말도 안되는 사고로 희생되었다는게 슬펐고요. 다시는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고 잊혀진 7시간 진상규명 꼭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04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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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학관 3층 강의실 왼쪽 뒷편에 앉아있었다. 등뒤로는 창이 나있어 햇살을 등으로 받았고, 그 때는 수업 중간의 짧은 쉬는시간이었다. 쉬는시간마다 스누라이프를 들어가곤했으니, 가장 먼저 소식을 접한 곳도 스누라이프였다. 처음엔 너무 영화같은 일이어서 피부에 와닿진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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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일 없는 그냥 하루였다.나는 학생이였고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아침 일찍 등교를 했을 뿐.휴대폰을 내지 않았던 날이였다 하릴없이 앉아있다가 인터넷을 켰는데마음아프게도, 그날은 2014년 4월 16일이였고나는 충격적인 기사들을 보게되었다학교에서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른다 나와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다들 다치지말라고.그게 내 7시간, 평범한 날이 였지만 결코 잊을 수 없게되어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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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구조 됐다는 뉴스 소식에정말 다행이다..감사합니다를 외쳤는데오보라는 말에 마음이 다시 무너져 내렸다.하루 하루 뉴스를 보며 제발 제발..내 삶을 깍아서라도 그 들을 다시 돌아오게 할 수 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절대 잊지 않겠습니다.REMEMBER 201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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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고가 일어날 당시, 저는 갓 고등학교에 입학한 신입생이었습니다.그 사고가 일어날 무렵, 저희학교에서도 수학여행으로 제주도를 가기 위해 들뜬 마음으로 여행 일정을 짜고 있었습니다.그 사고가 일어났을 때, 저는 수학수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선배들이 수학여행을 가려고 탄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걱정했지만, 곧 전원 구조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선생님과 친구들 모두 마음을 놓았었죠. 하지만 잠시 후 그 기사가 오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순간부터 매일 매시간마다 휴대폰으로, 인터넷으로, TV로 세월호에 대한 뉴스만 검색하고 찾아보며온 학교가, 온 가정이 한마음으로 걱정하고 슬퍼했던 기억이 있습니다.그랬던 제가 이제 곧 있으면 졸업을 합니다.저보다 한살 많던 언니오빠들은 아직도 18살 그대로 입니다.저는 곧 있으면 20대를 맞이합니다.절대 잊지 않겠습니다.2014 . 04 .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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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정도면 금방 구출할줄 알았고, 전원 구조 속보가 떴을때에도 그려러니 했는데 벌써 2년반이나 흘렀네요.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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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자 마자 메일을 확이하려고 PC를 켰을때, 살짝 기울어진 세월호 사진을 보았습니다. 육지와도 무척 가까워 보였고, 주변에 배와 헬기들이 보여 큰일날뻔 했지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평소와 다름없이 일을 했습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돌아왔을때, 여전히 아이들을 구하지 못하고 있었고, 어느덧 배는 맣이 잠겨 있었습니다. 도대체 어째서 저런 일이 벌어지는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불안한 마음으로 오후 내내 뉴스를 보며 마음 졸였습니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아직도 추운 바다속에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세월호는 정치적인 이슈가 아닙니다. 비상식에 대한 정당한 물음이며 똑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원인 규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진실을 알고 싶습니다. 잘못한 사람들이 벌을 받는 아주 단수한 진리를 증명하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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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유독 어두웠던 하늘이였습니다 .저는 2년전 고등학교 1학년 이였기때문에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있었습니다 .쉬는시간 마다 티비를 틀어서 뉴스를 확인하고 무사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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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거짓으로 지어낼 일은 아닌 것이다. 나는 세월호 안 아이들이 버텨낸 7시간동안 내가 뭘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나는 세월호 소식을 접하고 잠시 놀란 뒤 선생님의 고함질에 여느때처럼 수업을 듣고 바쁘게 펜을 움직여 하얀 종이를 검은 잉크로 가득 채우기 바빳을 것이다. 의도적인 것은 아니였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을 위해 눈물 흘리지 않은것에 대한 죄책감 또한 없었다. 매일 매일 누군가가 죽어나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해진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내가 도울 수 있는 그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합리화하기 바빳다. 그런데 단원고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을때마다 마음이 너무 불편하고 눈물이 나는 것이다. 아마 내 생각이 틀리다는걸 나 자신도 알고 있기 때문이겟지. 7시간. 우리에게는 간편히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런데 나의 친구들의 시간은 여전히 7시간,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있다. 내가 쓴 이 글과 다른 이들의 마음이 모여 아이들의 시간에 쉼표가 아닌 마침표를 달아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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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뉴스에서 전원구조 소식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정정보도가 나가고 사태는 점점 심각해져 그날 밤에는 새벽까지 뜬 눈으로 TV앞에서 뉴스를 보았습니다. 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해군참모총장의 통영함에 대한 2번에 걸친 구조명령을 철회시킨 장본인은 누구인가요? 미 해병대 3천명이 타고 있던 미 군함의 구조의사를 뿌리친 장본인은 누구인가요? 왜 구하지 못했나요? 우리는 절대 이날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직 밝혀져야할 진실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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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장에서 아침에 무사히 구조되었다는 말은 듣고 아 그래도 사람은 살았구나 했는데....오후 수업 마치고 나니 왠 청천벽력.........실종자가 250명이 넘었다는 말도 안되는.....사고야 일어날 수 있습니다그러나 뒤의 조치는 정말...이게 21세기의 경제 대국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조치였습니까?ㅜㅜ행정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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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수업은 아무렇지 않게 흘러 갔으나 저녁 수업은 침울한 분위기 속에 진행이 되었습니다. 당시 교실의 공기, 분위기, 교수님의 표정, 학생들의 침묵 심지어는 교수님께서 마시던 물의 상표까지 기억날 정도로 그 당시 모든 것이 생생하게 기억이 남습니다. 얼마남지 않은 시험을 위해 공부를 하고 있는 도중에도 실시간뉴스를 컴퓨터로 보며 하고 있었습니다. 오전에 나왔던 전원구조 오보가 저녁에는 수백명의 잠수부들이 구조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오보로 이어졌습니다. 우리 나라는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일까요? 왜 진실을 말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요?최근 공직에 계신 분중 한 분이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사실을 일찍 알아도 결과는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월호 침몰 당시에는 우리나라가 어디서부터 잘못된지 알지 못하였지만 요즘은 알 것도 같습니다. 이제는 잘못된 것을 하나씩 바로 잡아야 할 때입니다. 모두 힘을 모아 나라를 바로 세우는데 힘을 모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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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직원 티를 갓 떼어가던 어느날그 날도 회사에서 근무중이었습니다.모 포털 뉴스에서 알리던 속보,태어난 곳에 소재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전원 구조되었다는 그 뉴스.하지만 그 뉴스가 절망으로 바뀌는데 까지 걸린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한동안 무기력증에 시달렸던 그때를 기억합니다.절대 잊지 않겠습니다.고이 잠드세요.단, 이 사고를 이렇게 키워버린 나쁜놈들을 처단한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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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회 간 날이였는데 같은날에 사건이 터져 안타까움이 생생합니다 기억하겠습니다 잊지않겠습니다 201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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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소녀, 소년, 그리고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가 차가운 바다 속에서 잠드셨고 몇몇의 분들은 아직도 바다 속에 계십니다. 우리는 이 날을 기억만 하는 것으로도 희생자와 유가족, 그리고 생존자 분들에게 큰 위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