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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다 구했다는 속보(오보)를 듣고 그럼 그렇지 그래도 우리가 후진국도 아니고 설마.. 했었다. 그날 오후 교수님과 학생들 모임이 있었는데 교수님께서 큰일났다고 하시던 말씀이 기억난다. 모두 망연자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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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뉴스로 여객선 사고가 있었다는 걸 알았고 전원 구조라고 해서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다시 뉴스를 봤는데 서서히 기울어가던 배를 보며 속이 타던 기억이 난다. 엄마가 지방에 여행을 가 계셨는데 지역 특산물을 택배로 보냈다고 하셔서 받으러 가던 길이었다. 결국 배가 완전히 물 속으로 잠겨 자취를 감추고 아직 구하지 못한 사람이 300명 가량 있다는 뉴스를 보고 지하철 안에서 펑펑 울었다. 그 때 입고 있었던 옷, 택배를 받으러 가던 길에 보이던 것들, 친구와 주고받았던 안타까운 문자 내용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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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정말 다행이다.직원들과 점심을 먹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그날에도 지금처럼 난 근무중이었다. 오전 뉴스 속보가 나온다. 컴 화면을 통해서 현장상황 영상을 보는데 마음이 철렁 내려 앉는다. 학생들이 창에 매달려서 구조를 기다린다. 다행히 배는 일부만 가라앉은 상태. 그래, 배가 가라앉지 않았으니 배 밖으로 뛰어 나오면 구조할 수 있겠구나. 천우신조네. 근무하는 와중에 짬짬이 속보와 현장 중계에 귀를 기울였다.전원구조~! 야호~!! 탄성을 질렀다. 직원들도 나도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색이 펴졌다.그래 그래 당연히 구조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아......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창에 매달려서 구조를 기다리던 아이들, 엄마 아빠 가족에게 문자를 보내고 동영상을 보내서 배 안 소식을 전하던 수많은 아이들이..... 아이들이.......잊을수 없다.잊히지 않는다. 안산 추모공원에 가서 헌화하고 아이들의 사진을 보는데 미안하구나. 제대로 눈 마주치기 미안하구나. 정말 미안하구나.......아이들이 바다에 가라앉아 스러져 갈 때 나라의 대통령은 무엇을 했는지 지금껏 오리무중.미안하여라. 너희들이 왜 그렇게 희생되었는지 그 진실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으니....책임추궁도 제대로 못 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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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휴가를 나와 있었다.오전에 뉴스속보를 보고 구조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 게임을 했다.그러나 황망하게도 오후가 되니 상황은 뒤바뀌어 있었다. 거실에서 뉴스만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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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내근이었고 일하다 스트레스때문에 커피좀 마시려고 동료와 건물 내 매점으로 가는데, 동료가 "지금 진도에는 난리났대" 라고 해서 그순간부터 종일 뉴스만 검색했다가 전원구조라고 해서 마음쓸어내렸다가 다시 오보라고 해서 종일 뉴스만 보고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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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도 고객 대출상담을 하고 있었습니다.객장 티비에 뉴스 속보를 보며 고객과 잘 구조되겠지 하며 이야기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믿기 힘든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고 사무소 직원이고 고객이고 모두 걱정하던 그 날이 또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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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에 회사 식당에서 TV 보도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전원 구조했다는 오보여서 안도하였었는데, 일과를 마칠때쯤 아직 구하지 못한 생명들이 많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주권자로 권력에 대한 감시를 소홀히 하고, 무능한 대통령이 이끄는 나라를 만든 어른으로서 부끄럽습니다. 부디 진실을 규명하고 대한민국을 바로 세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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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그만두기 얼마 전이었어요. 그날 하루종을 역삼역 근처 외근으로 바쁜 날이었는데, 중간에 짬을 내 아이폰as센터에 들렸을때 사람들이 많이 구조되었다는 오보 뉴스를 봤었어요. 전원구조 오보 이후 1xx명 구조라고 뜬 오보로 기억해요. as가 안 된다는 얘기 듣고 바로 나온거라, 잠깐 본 뉴스 장면인데 선명해요. 하루종일 외근이라 한참 뒤에야 뉴스를 보고 충격을 받았던 게 기억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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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에서 떨어져 눈물의 골방생활을 하던 시절, 화장실에서 볼일보다 사고 소식을 들었다. 그 큰 배가 기우뚱 거리며 점점 침몰하는게 생생하게 중계되는데 그 누구도 제대로 구출되지 못하는 것 같아 답답했다. 내 개인적 불행에 비할바 못되는 거대한 불운에 눈이 먹먹해지면서도, 한켠으로는 그이들을 동정하며 내 상대적 우월에 안도하는 내가 혐오스러웠다. 그 순간의 감정, 온도, 대기, 내 혐오감까지 그려지듯 생생한데 그게 생각이 안난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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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건을 뉴스로 본 것은 시험을 치고 갔던 피씨방에서였다. 사고가 났다는 것 자체를 몰랐던 나는 "전원 구조"라는 뉴스를 보고 뭐 별 일 아니네 싶었다.(전원 구조라도 큰 사건임은 맞지만..) 그래서 마음편하게 놀고 나가는데 내가 봤던 뉴스가 오보였으며 수백명의 사람들이, 학생들이 여전히 배 안에 갇혀 있다는 뉴스를 다시 보았다. 너무 충격적이었다. 오보도 충격적이었지만 내가 뉴스를 확인하지 않은 (누군가는) 구조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을 몇시간 동안 그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배 안에 있었다는 것이. 그리고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순간 미웠고 그 후 며칠간 몇십분 간격으로 뉴스를 체크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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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직장에서 신입사원 연수를 받고 있었습니다. 계속된 교육으로 지루해하고 있었던 찰나 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이 침몰했다는 속보를 핸드폰으로 봤었죠. 그래서 동기들이랑 막 웅성웅성 거리다가 전원구출이라는 속보를 보고 안심하고 계속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보니 학생들이 여전히 갇혀있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그 이후로 매일 속보를 확인하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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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때 처럼 남자친구와 함께 등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하철 2호선이 세월호 사고로 술렁이다가 전원 구조라는 오보에 안심하고 있었죠. 첫 수업을 듣고 나와 커피 한 잔을 하려고 교내 까페에 가는길에 네이버 뉴스를 틀었는데 오보였더군요. 수백명의 아이들과 시민들이 침몰해가는 배 속에서 구출해줄거라 믿고 기다리면서 있었다는 사실에 하루종일 괴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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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집에서 쉬던날이었습니다. 오전 10시쯤 눈을 비비고 일어나 텔레비젼을 켰을 땐 온 채널들이 세월호 속보를 내보내고 있었습니다. "얼른 구해야 할텐데.. 아무일도 없어야할텐데.." 라고 외치던 저는, 화면 속 실종자수의 변화가 거의 없는 것을 보며 참혹한 심경을 느꼈습니다. 침몰하는 세월호를 촬영하는 헬리콥터만 보일뿐 어느 도구를 사용해서 구조를 진행하는 헬리콥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배는 가라앉고 있는데, 그 배에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이들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구조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은 좌절감으로 변해갔고 화면 속 실종자수가 무엇을 의미하게 되는지 깨달은 것은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습니다. 어느 누구라도 그 날 상황을 지켜 본 자라면 세월호의 침몰과정 속에 구조활동은 그저 어두운 곳에 손을 휘젓는 메아리였음을 기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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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그냥 평범했었어요. 학교에 출근하고 평소와 다름없이 교실에 들어가 수업하고 쉬는 시간에 스랖을 하고...그러다 진도 앞바다에서 사고가 났다는 글이 올라왔었고, 어떤 놈이 본인이 배를 타고 있는데 차례차례 구조중이라는 글도 올라왔었죠. 그래서 그냥 안심하고 제 할일을 했었어요. 그게 정말 그 글대로 다 구조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날 밤 남편을 붙잡고 울었어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고 교사인 저는 그 학생들이 마치 제가 맡은 반의 학생들과 겹쳐지면서 너무 아팠습니다. 학생들을 먼저 내보내려고 배에 남아계셨던 선생님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었거든요. 나라도 저분들처럼 못나왔을거다 하니까 남편이 저를 안아줬었죠..지금도 아픕니다. 가슴 한구석이 너무 쓰라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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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고사 날이었다. 시험 치고 기숙사 편의점에서 친구들이랑 맥주를 마셨다. 편의점 티비에서 세월호 침몰, 승객 전원 구조란 뉴스가 나왔다. 그런가보다, 다행이네 하고 좀 떠들다가 방에 들어왔다. 다음날 시험을 준비하기 전에 인터넷을 켰더니 전원 구조한 게 아니더라.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고 어린 시절 미국에 있을 당시 9/11 뉴스를 접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루종일 세월호 뉴스만 보느라 결국 그 다음날 시험 공부는 거의 못했다. 그 날도 정말 가슴이 아팠지만, 이후 정부의 대처를 보고 더욱 화나고 슬플 때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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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간은 물론, 여태껏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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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 여느때처럼 운동 후 식사중에 사고 소식을 접하고 큰일이다 싶어 학교에 출근하는 내내 핸드폰을 부여잡고 뉴스기사 새로고침만 반복했습니다.전원 구조 소식과 함께 마음을 쓸어내리며 다시 일상에 복귀했고 그 때 누군가 오보래! 라고 외쳤던 기억이 납니다. (누구였는지까지 상세하게 기억나네요)이 말을 듣는 순간, 아 사고 사실 자체가 오보였구나, 단순 해프닝정도겠네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갈때쯤 구조자가 0명이래 라는 소리가 또 들렸습니다.그 후 순서대로여자친구에게, 어머니에게 그리고 아버지께 전화를 드리고 구조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서로 공유했습니다.그즈음 학교 커뮤니티에는 "개구리"라는 닉네임으로 전원구조 가능성에 대한 낚시성 댓글을 달았고 모든 동문들이 그 댓글하나에 마음이 출렁였단 사실 또한 기억합니다.점심을 거르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생각 못하고 있다가 식사를 하러 뒤늦게 갔고 평소라면 북적였어야할 식당이 한산하고 또 적막했습니다.차마 밥이 넘어가지 않을듯하여 단팥빵하나와 우유를 사들고 올라와서 대충 때운 후 다시 계속하여 기사를 쳐다봤습니다.그러다보니 4시경이 되었고 아무래도 안되겠다싶어 조기퇴근 후 집으로 향했고 4시 30분 무렵부터 줄곧 뉴스만 확인하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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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이 이어지던 날이었다. 아침부터 회의를 마치고 멍한 눈으로 회의실에서 나와 사무실 내 자리로 향하는데 누군가 외쳤다. "배가 뒤집혔대. 수학여행가는 애들이 많이 탔대" 인터넷 창을 켜고 속보 영상을 틀었다. 바다 한가운데 배, 그 위로 헬기, 해경 보트도 떠있었고. 무엇보다 그 현장이 온 국민에게 보여지고 있었으니까. 한치 의심이라곤 없었다. 몇 명 구조. 이런 자막이 뜨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화면은 멈춰있는 듯 헬기도 보트도 구조의 액션을 취하고 있지 않았다. 생방송이 아니라 시차가 있나보다. 안일하게 생각했다. 이미 구조가 시작됐고, 구조 장면은 조금 뒤에 송출되리라. 단 한 명이라도 놓치지 말아야 할텐데. 정도의 걱정만 했을 뿐. 자막이 바뀌었다. <전원 구조>. 또 다시 회의를 들어가며 "다 구했대요"라고 전무님께 알려드렸었지. 그런데 오후가 되자 갑자기 사무실이 웅성거렸다. 오보였다고. 안그래도 종일 흐리멍텅하던 머리가 하얘졌다. 그러니까 2014년에. 매일 신기술이 쏟아져나오는 이 시대에. 고작 바다 한가운데 가만히 멈춰있는 배에서 아이들을 꺼내지 못했다고? 그러니까 우리가 본 그 장면은 3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수장되는 장면이었다고? 다른 나라도 아니고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국민 300명이 죽어가는데 나라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머리와 가슴에 소용돌이가 쳤다. 그날 이후로 2016년 오늘까지 그 소용돌이는 깊이를 모르고 거세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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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담임이던 시절, 교무실 전체가 뒤숭숭했고 각자 안산에 근무하는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곧 전원구출이라는 기사를 보고 학생들에게 안심해도된다고 전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공부에 매진토록 하였는데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학교 현장에 있던 저 역시 세월호에 있을 수 있었던 사람이라는 것에 더욱 마음 아파했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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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2년차, 사무실에서 근무하다 네이버 뉴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팀에 아이엄마가 많았고 모두 함께 초조한 마음으로 무사구조 소식을 기다렸습니다. 점심시간부터 계속해서 기사 웹페이지와 스누라이프를 들락날락거렸습니다. 점심으로 만두국을 먹었고, 함께 식사했던 타부서 선배들도 누구였는지 기억이 나는데.. 왜 저들은 그 날 그 순간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만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