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도서관에서 인터넷강의를 듣고 있었습니다. 10시쯤 남자친구가.. 이런 일이 뉴스에 나온다고 말해준 기억이 나요..
-
생후 2달이 된 아이를 수유하며 핸드폰을 보던 중 세월호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전원 구조였다가 시간이 지나 오보 였다는걸 알고 충격이었네요.
-
평범한 날도 아니고 그날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떻게 잊을수가 있을까요?2014년 4월 16일 출근하는길에 항상 포털 뉴스를 보며 출근하는데세월호사고 소식을 보고 놀랐는데 구조했다고 해서 마음 놓고 출근후 업무 하다가 나중에 포털에 들어갔는데 구조를 못했다는 기사들을 보고 몇시간째 왜 구조를 못했냐고 미친거 아니냐며 화내면서 기사를 엄청 찾아보며 애태웠던 기억이 납니다.집에왔더니 엄마도 하루종일 뉴스보며 가슴아파하고 계셨었고 엄마랑 뉴스보며 가슴을 쳤네요그후로 몇주간 세월호 기사들과 뉴스만 보면 회사에서도 눈물이 나고 일에 집중도 안되었던 기억이 이렇게 생생한데사람이면..사람이라면 제발 솔직하게 말해주세요당신 자식이 이런일 당했다면기억안난다고 그렇게 타협할수 있습니까
-
뉴스보면서 점심먹고있었어요..전원구조라 다행이라며.. 간식 사먹으러 가서다행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요..일 마치고 나오니 오보라 하더라구요..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일주일동안 뉴스 보면서 정말 눈물 많이흘렸어요.. 직장에서 세월호 이야기 하다가도 도중에 통곡 하는사람들도 많았구요..야간 근무 많은 직업이었는데 거의 한달동안 잠을 못잤어요ㅡ안산과 너무도 먼곳인 부산이구 고등학교 친척도 없고 졸업한지 15년이다된 어른인데 지금도 생각하면 너무 가슴아프고 분합니다...절대 잊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시간이 지나도 아프고 슬퍼해야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
사고소식과 곧그뒤로 전원구조되고있다는소식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엄마들함께 애들학교공개수업에 참관했었지요.
-
아침에 운동을 하고 기분좋게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가서 앉았는데. 식당 텔레비전에서 뉴스속보가 나오고 있었어요. 뒤집어진 배가 잠기고 있었죠.친한 언니와 뉴스를 보며 어떡하냐고 맘 졸이며 뉴스를 보았습니다. 왜 구조를 안하고 있는지.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맘이 너무 아팠던 기억이네요.어느식당이었는지까지 기억이 다~나는데..어떻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말할수 있을까요
-
남자친구와 함께 밥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었어요. 낮이었을 거예요.주문한 밥이 나오길 기다리며 텔레비전을 보았는데 침몰 소식이 나오더라구요. 수업을 끝내고 바로 식당에 온터라 그때서야 소식을 들은거죠. 식당까지, 앉았던 자리마저 아직까지 기억이 나는데.. 어찌 잊을 수가 있을까요
-
프리랜서 방송인입니다.방송프로그램의 시작~끝이 매출에 영향을 미치는직업인지라..그날 또렷이 기억하지요.ㅠ유난히 힘들었던 방송.끝나고보니 학생들의 사고소식.다행히 전원구조라고 속보가 나길래 다행이다싶었죠.그러나 집에와서 속보를 접할수록ㅠ오보에 구조가 되지않았다는 날벼락같은 소식들아이를키우는 부모마음으로 도저히 볼수가없었습니다. 진실은 침몰하지않습니다. 거짓은 참을 이길수 없습니다.
-
아침에 애들 학교 보내고 참여수업이 있는 날이라 준비하고 있는 도중 뉴스를 들었습니다.친정이 진도라 엄마께 전화 드렸어요.통화 중 엄마는 엠블런스 소리와 여러대의 차량이 지나간다 그러셨어요.배가 아직 바다 위에 있었고 구조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히 있어서 그 때 당시는 마음 졸이지 않았어요..충분히 그조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며 많은 아까운 생명을 그냥 그렇게 비참하게 잠기도록 하지않을거라 믿었으니까요...며칠전 광화문에 걸려진 사진을 보며 아이들과 헌화하며 그 날 기억이 또렷이 나며 가라앉는 배 창문너머 두드리며 소리 지르던 아이들이 생각나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또 흐르더라구요..그 날 기억이 납니다...몇 달을 얼마나 울었는지 ....지금도 너무 가슴 아프네요.
-
아침 출근하는 길에, 수학여행으로 제주에 가는 배가 좌초되었다는 뉴스를 듣고 출근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YTN 보도로 전원 구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점점 가라앉는 배만 보일뿐 구조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왜 구하지 못했을까요? 그 이후 시청앞 광장에서 만난 아이들의 영정사진에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
나는 그 날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희미하게 그 날 학관에서 밥을 먹으면서 와이티엔 뉴스를 보고 있었던가 짐작이 될 뿐이다. 그나마의 기억도 그 당일이었는지, 며칠 후였는지조차 확언할 수 없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가 분명하게 떠올랐다. 그때 내가 했던 생각이. 나는 고향이 인천이다. 어디 가는 배가 얼마만한 크기인지는 대충 알고 있다. 그래서 들었던 생각이ㅡ 인천에서 제주 가는 여객선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여객선일텐데, 그것이 가라앉고 있다고? 다른 배를 착각한 게 아닐까? 속보를 봤을 때, 나는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었다. 세월호라는 묘한 이름도, 대형 여객선에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 이렇게 생각했던 것도 분명하다. 그렇게 큰 배면 구명보트나 대피 장비도 잘 갖춰져 있고 배도 천천히 가라앉을텐데 큰 일이야 있겠어? 내가 그당시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뭘 보고 있었는지, 누구를 만났었는지 아무 기억도 없지만, 정말 저렇게 생각했던 것만은 아주 또렷하게 기억난다.나는 지금도 내가 잘못 생각했다고 여기지 않는다. 무언가 잘못이 있다면, 그건 내 생각을 모두 뒤집어버린, 마땅히 했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자들에게 있다.
-
집청소하다가 속보 접하고 전원구조라하여 하던청소 마저 하던중 출몰한다는 속보와 구조안된 아이들이 있다는 그말에 눈물콧물다 빼고 그래도!그래도! 희망이 있다는 말만 맴돌다 하루.이틀 시간은 지나고 악마에 의해 침수 되었습니다.그 악마에게 이나라는 맡길 수가 없습니다.욕도 아까운 악마는 자진 사퇴 하길 바랍니다.악마야 넌 이제 꺼져 줘야 하는거 아니니?유병언도 니가 죽였니?네 아버지 독재에 물든 철없는 노파야!대통령 소꼽놀이는 이제 끝을 내야지.
-
세월호 침몰 소식이 뉴스를 타고 전해져 오던 바로 그 순간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남아있는 사람들의 아픈 상처가 치유되기는 커녕 점점 더 벌어지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움이 더해집니다. 이제 겨우 유치원에 가기 시작한 어린 딸 둘을 키우는 아빠로서 이런 아픈 기억이 우리 아이들에게는 더 나은 유산으로 남겨지길 바랍니다.
-
그날도 맛이 없는 2900원짜리 학식을 약간은 의무적으로 먹고 있었습니다. 평소 티비도 잘 보지 않고 인터넷도 잘 하지 않았던 저는 그 소식을 모르고있었고 함께 점심식사를 하던 친구가 말해주고나서야 알게되었지요. "무사히 구조됐대." 친구는 그렇게 말해주었고 걱정에 잠겼던 저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시 점심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몇년이 흐른 지금도 통째로 그날이 기억납니다. 그 소식을 말해주던 친구의 표정과 나를 둘러싼 식당의 습기,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절망적으로 변해가던 온갖 뉴스채널의 이야기들. 아직도 그 계절이 다시 돌아오면 내내 우울해집니다. 여전히, 멈춰서서 이젠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고 우두커니 눈물흘리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우는 내가 우습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그게 살아있는 내가 해야하는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기억하는 것, 절대 잊지 않는 것. 나는 내가 사는 동안 모조리 그 시간들을 품고 살아갈 것 입니다. 국가의 무능함에 국민들이 다쳐야만 했던 그 악몽같은 시간들을 말입니다.
-
그냥 평범한 날이었습니다여느날처럼 일어나자마자 폰을봤고아마 전원구조라는 다행스러운 별일 아닌듯한 뉴스를 보고여느날처럼 연구실에 출근을 하기위해 밍기적밍기적 일어났죠그런데 출근하기도전에 전원구조가아니라는 뉴스를보고도대체 어떻게되는건가 계속확인을 했어요연구실에 도착해서는 울었어요그날모두들 착잡한마음으로 일을했어요저는 그날 하루종일 일이손에안잡혔어요끝내 애들이 못돌아왓다하더라고요구조되기만을 기다렸고시간이 조금지났지만 기적처럼 몇명이라도 더 구조됏다는 뉴스를 기다렸어요그러다가 날이 흐려지고 비가오는 팽목항을 계속 보여주던 뉴스들이 기억나요잠수사들이 구조작업을 하고있으나 물살이 워낙세고 날이 흐려서 구조에 굉장히 애를먹고있다고제 대학동기들은 팽목항에 의료자원봉사를 가기도했습니다물론 이건 그날 일곱시간동안에 있었던일은아닙니다만사실 그날은 온통멍하고 도대체무슨일인가 알수가없엇어요 하루종일 잘못된뉴스들과 믿을수없는 일들 뿐이었어서요그날이 있기전으로 돌아가고싶네요진짜아직도 변한게없는 대한민국이라는게 그아이들한테 너무나도미안합니다자기들이 왜 죽는지도모르고 배는 왜침몰되고있는지도모르고 도대체 누가 구조를 하러오는건지마는건지아무것도 모르고 죽었을 아이들에게 너무미안합니다여전히 그날을 기억합니다 4월16일
-
모든 공중파에서 속보라고 빨간글씨로 보도되는거보면서"에이 뭐야 전원구조다했네"이말이 아직도 죄스럽네요....별일아닌데 왜저리 속보라고 내보내는지...했던 그런데 시간이지나면서 오보라는거보고그날 뉴스채널만 계속옮겨보면서 경악했습니다..보여주기식으로 헬기몇대 구조정 몇대 해경몇명..정작 아이들은 구하지도않았으면서..그날부터 뉴스를달고살았는데..진짜 이게나라인가 싶었죠.에어주입한다쇼하고ㅡ밤새 배주면 돌면뭐하나 구하지도않고유가족들은 발만동동구르고눈앞에 배가있는데,...구하지는않고..잊을수가없어요 그날의 국가 쇼를ㅡㅡㅡ이제라도 다시 그날일이 수면위로 떠올라 다행이라느낌니다
-
취업준비한지 1년이 다 되어가는 백수였어요. 아침에 큰 사고가 났다는 소식이 들렸지만 금방 전원구조됐다는 생각에 안도했어요. 사실 그 큰 배가 바다에 빠졌다는 뉴스 자제가 워낙생소해서 현실감도 없었고..요즘도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는구나 생각도 했죠. 평소처럼 한참 스터디 준비를 하고 오후엔가 저녁엔가 뉴스를 다시보는데....와.... 애들이 다 빠져있대요. 사실 저는 사고 당일날보다 그 다음, 그 다다음날 밤 기억이 더 생생해요. 어처구니없게도 더이상 탑승자들을 구조하지 못하는 정부때문에 속이 터지고.... 시간은 가는데 생존자 숫자는 늘지 않고. 아프리카 어딘가에선 선체에 에어포켓이 생겨서 일주일 가깝게 생존했다더라. 세월호 희생자들도 어딘가에서 에어포켓을 찾아 피신해있지 않을까. 의무를 져버린 국가가 아니라 부질없는 기적만을 붙들며 몇날 며칠을 울었네요. 희생자들을 한번 만나본 적도 없는 내가 그렇게 울었는데. 유가족들은 어떻게 버티셨을까. 감사하고 미안할 뿐입니다.
-
미국에 있었던 나는 조금 늦게 소식을 접했다. 아침에 있었던 첫 수업을 마치고 다음 수업까지 시간이 비어 가까운 빌딩에 있는 도서관 1층에 갔다.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자리에 앉았다. 다음 수업 퀴즈를 리딩자료에서 내겠다고 했던 교수님 말씀이 생각나 리딩자료를 뽑았다. 그 날 내가 앉았던 도서관 자리. 책상보다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한 도서관 창문으로 들어오던 굉장히 밝은 아침햇살. 또렷이 기억난다. 전날 잠을 못자 몽롱했던 나는 자료를 바로 마주하기 귀찮아 네이버를 켰다. 곧 세월호 기사로 도배된 네이버 페이지를 보았고 그 다음 수업 퀴즈 생각은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내 왼쪽과 앞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던 다른 학생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든 말든 세월호 동영상과 기사만 계속 읽으며 줄줄 눈물 흘렸다. 지역상 조금 쌀쌀한 날씨 때문에 자주색 패딩조끼를 입고 있었던 것, 렌즈를 안끼고 안경을 끼고 있어 눈물을 흘렸어도 눈이 덜 피곤했다는 것. 충격으로 남아있는 그 하루를 나같은 사람도 기억하는데 나보다 대단한 일을 하는 그 대단한 사람들은 어째서 기억을 하지 못하는 걸까...
-
저는 대학 다니는 4학년이었어요. 4월 16일에는 진행 중이던 작품도 진척시키고 손도 풀 겸해서 미대 과방 겸 작업실에 오전부터 가있었습니다. 생각없이 뉴스란을 봤다가 배가 부서져서 침몰중이라는 걸 봤습니다. 수학여행가던 아이들이 주된 승객이라고. 저한테 남동생이 있는데 걔가 그때 고2였습니다. 동생 또래 아이들의 말투나 웃음이나 그런걸 생각해보면서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면서, 또 지금 시대가 어느 땐데, 배가 실시간으로 가라앉는걸 이렇게나 생생하게 뉴스로 볼 수 있는데, 구조도 당연히 실시간으로 할 수 있겠거니, 사상자가 거의 없을 수 있겠다는 생각과 희망을 가졌습니다. 제 대각선 맞은편 자리를 쓰던 후배가 왔고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거지?", "그래도 금방 구할거야"따위의 대화를 나눴습니다. 전원구조 속보를 보고 그럼 그렇지, 이렇게 기술이 발달한 시대에 구조도 어렵지 않지, 하면서 안도했었어요. 그렇지만 오보라는 소식과 함께 줄어들지 않는 실종자수, 뉴스에 배가 점점 가라앉는 건 보이는데 어째서 구조 진척도는 전문적으로 상세하게 보고되고 있지 않는 건지! 온갖 사람들이 팽목항에 내려가서 발을 구르고 있는데 왜 배안에 있는 사람들은 못 나오는건지. 스무살도 못되어볼 아이들이 너무 안타까워서 엉엉 울었습니다. 그 이후로 일어난 모든 일련의 사태에 분노합니다. 단체로 기억상실증 걸린 마냥 책임 회피하는 년놈들, 당신들은 인간도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날의 일상조차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배가 가라앉지만 않았다면 아무것도 기억못하는게 당연했을 4월 16일을 말입니다.
-
학교 가려고 200번 버스를 타고 구청 앞을 지나고 있는 순간, 친구가 보낸 카톡을 보고 소식을 알게 되었어요. 그날 종일 뉴스만 봤어요. 304, 174 라는 숫자는 평생 기억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