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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구조라는 말을 들었을때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넘기고... 진실을 들었을때 그냥 아무생각도 안들더라 소름밖에 안돋았어 미안해 아무것도 해줄수가 없어서 추웠겠다 뭐라고 말해야 너희들 마음이 조금 풀릴까 내가 너무 미안해 많이 힘들었지 우리가 너무 미안해 이젠 좋은 곳가서 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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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저는 중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처음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는 7교시 동아리 활동 수업이 끝나고 반에 돌아왔을때였고 휴대폰을 다 반납한 상태라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모두가 반에 돌아온 후 누군가가 얘기했습니다. "제주도 가는 수학여행 배가 침몰했는데 전원 구조 됐대." 아이들은 모두 다행이야, 대박 이러면서 그냥 넘어갔습니다. 그 날 저녁 , 오보라는 이야기들이 점차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고 그 이야기들은 모두 진실이 되고 있었습니다.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그 날을 위해 저는 오늘도, 내일도, 죄 지은 것 없이 떠나가버린 꽃들을 위해 촛불을 듭니다.우리는 기억합니다, 그 날의 7시간을.수많은 피해자들이 발생하고 있을때 자신들의 무능함만을 감추기 위해 급급했던 정치인들을, 재난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고 주장했던 그 사람들의 민낯을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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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아침 학교를가려고 준비하는 중 뉴스로 사건을 접했습니다 뉴스를 보고 학교를 간 후에도 세월호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이 많이 하늘로 갔다는걸 듣고 너무 가슴이 아팟습니다 사는지역이 바로 옆동네여서 학생중에 간접적으로 아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에도 가슴이 너무아프고 게속 아파하고 기억할것입니다 유가족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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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앞으로도 모두가 잊어서는 안될 날일 것입니다.설마설마 하는 마음으로 걸어 본 전화를 통해비통한 소식을 들었습니다.커서 공대에 가서 엔지니어가 되고싶다 했던그 친구의 마지막 모습을 영정 사진으로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후 무엇을 하든 미안한 마음 뿐이었습니다..아이들의 희생이 아깝지 않도록다시는 이런 아픔이 발생하지 않도록잘못된 일들을 직시하고 표현하고내가 하는 일에 있어서는 거짓과 위선이 없도록 직접 행동하겠다 다짐했습니다.그 아이들을 떠올리며지금의 우리를 위해 희생했던 올바른 과거 세대와지금 우리의 세대와 미래의 세대를 위해촛불을 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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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안좋아 저는 그때 병원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뉴스에서 나오는 사고에 놀랐지만 곧 구출될거라고 생각하며 병원을 나왔습니다. 그날 비가 내리고 있었던것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들은 그곳에서 얼마나 추울까 걱정됩니다. 이번 겨울도 모두 그들을 사람들에게 잊혀지지않길 첫눈 오는 날 간절히 소망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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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꿈을 가진 그들..아직 피지도 못한 그 꿈들의.무게를 어찌 감당할 수 있을 까요.그들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지 못한 미안함에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한 없이 목놓아 통곡했던 그날을 기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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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야자를끝내고 지친 몸을 뉘이고 평소처럼핸드폰 메신저에들어갔습니다. 친구들 메신저 단톡방에 "어떡해..진짜 무슨일이야" 등 단톡방에 한 주제로 계속 이야기하고잇길래 무슨이야기인지 궁금해 뉴스를보았습니다. 그 소식은 참으로 충격적이고 안타깝지 않을수 없엇습니다. 계속 전해져오는 소식 슬픈동영상들을 보면서 저는 이 날을 절대 기억에서 지우지말고 한 평생 기억하면서 살아야할것이라고 다짐하며 눈물을 쏟앗던 날 4.16일 절대 절대로 잊어서는 안되는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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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은 얼마나 큰 기대에 부풀어서 수학여행 길에 나섰을까요. 그 기대가 그렇게 쉽게 사라져버릴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겠지요.. 수백명의 아이들은 그 차가운 물 속에서 추위와 두려움에 맞서는 그 7시간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너희를 구하러 물 속에 뛰어들지 못한 그런 못난 어른이라서 미안하다. 나라의 대표 하나 제대로 뽑지 못해 7시간동안 대책도 없이 너희를 방치해버린 그런 어른이라서 정말 미안하다... 생각하기만 해도 억장이 무너지는 그 시간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부디 편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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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히 기억이 납니자 매번 뉴스 기사를 열어봤던것 같네요. 생존이 어려울거라 예상되는 시간가비도. 너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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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영어 수행평가 점수에 반영되는 영어듣기평가 시험 준비중 뉴스 속보가 네이버에 나왔다. "단원고 학생들이 타고있는 배가 침몰중이다." 아무것도 할수없는 우리는 그저 시험에 집중해야했고 시험이 끝나자마자 본 기사 "전원구출" 그래서 다행이다 우리나라가 나름 선진국인가보다 생각하며 그렇게 단 1분뒤 오보라는 얘기와 함께 그 곳에 타고있던 친구들과 친구였던 반 친구들이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또 주변 군인들이 도와주러 간다는걸 대통령이 돌려보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화가 안날수가 없었다. 같은 지역에 같은 나이인 나로써 하나건너 친구들이 차디찬 바다속에서 그렇게 별이 됬다. 시험기간이였지만 한명이라도 살아나오겠지 도서관에서 울며 기도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려 아직도 돌아오지못한 9명 그리고 별이 되어버린 많은 사람들 그들이 그 배안에서 싸우는동안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아무것도 아닌 우리들은 친구들이 바닷속에 가라앉는걸 알면서도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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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하교를 하고 핸드폰을 보는데 세월호라는 배가 침몰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전원구조라 해서 안심했지만 그것은 오보였다는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날 하루종일 세월호와 관련된 카페 글을 보면서 제발 전원 구조되길 바랍니다. 라며 마음속으로 바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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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서 세월호 사건이 나온 뒤 굉장히 슬펐습니다.. 그런데, 정작 정부는 사태 파악도 못 한 채 7시간을 낭비했습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조금만 더 살릴 수 있었을텐데.. 결코 잊으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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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김포공항에서 아침 8시 20분 비행기로,제주로 출장간 날이었다.제주 오피스에 도착해서 뉴스/기사들을 보다가너무나 현실감 없는 얘기에 손이 다 떨렸던 것 같다.너무 기가 막혔던 진행상황, 하나하나 기억난다.내가, 그 친구들과 같은 시간에 같은 방향을 향했었구나.이제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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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발목이 삐어서 정형외과에 가서 액스레이 결과를 기다리던 중 병원 천장에 부착되너 있는 TV에서는 이름 모를 여러 사람들이 울부짖고 있었고 어느때보다 어두운 바다가 출렁이고 있었습니다. 병원 내 모둔 사람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일제히 입을 닫았고 뉴스만 시청했습니다. 지인에게 전화를 하는 환자, 뉴스를 보며 함께 우는 보호자 등 각양각색의 반응이었지만 발목을 다친 저는 발목이 아픈 걸 잊은 채 옆에 계신 어머니를 부여잡고 발빠른 대처를 하지않는 정부에 대해 저게 과연 위급상황에 대처하는 정부의 옳바른 행동인지를 여쭈었습니다. 정치에 대해 무지한 저와 저의 어머님이시지만. "그래도, 저건 아니다."라는 확고한 생각을 가지게되었죠. 이 날 당시 병원 TV에서 계속해서 중가하는 실종자의 수와 그 긴박하고 답답한 상황이 저의 머릿 속에는 아직도 살아움직입니다. 이 참사를 추모하기 위해 참사가 있고 1년 후가 된 날, 학교 전체로 추모 뱃지를 공동구매를 추진하기도 하였고 또 학교 대표로 안전관련 시민 원탁토론회에도 참석했지만 달라지는 간 없었습니다. 그저, 정부도 나름 그 일에 관해 안타깝게 여기고 꽤나 많은 관심을 쓰고 있음을 일부러 알리려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참사가 있고 몇 년이 흐른 지금... 말도 안되는 전개로 구성된 스토리가 한 가정이 아닌 한 국가를 뒤흔들고 당시 발빠른 대처를 하지 못했던 정부는 이제서야 핑계거리를 만들어 국민들한테 발표합니다. 아직도 안 믿깁니다. 비록 19년밖에 살진 않았지만 그 십여년 동안 착하게 살고 바르게 살면 성공하는 삶을 살거라고 믿고 살았던 저는 그 믿음을 실현해줄 정부가 한낱 일부 민간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었음을 알고 분노를 감추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알아야합니다. 우리나라의 원수가 그 7시간동안 대체 무엇을 했는지. 또 수많은 소문들 중 사실은 무엇인지 밝혀내야합니다. 아직도 잊혀지지않는. 아니 잊혀질 수 없는 검은 바탕의 긴급한 장면들을 아주 조금은 죄책감 없이 잊을 수 있는 그 날까지 국민을 가지고 노는 국정을 포기하지않고 캐내어낱낱이 밝혀내야합니다. 우리는 기억해왔고 기억하고 기억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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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현장학습을 다녀오고, 2시경 휴대폰 뉴스알림을 통해 세월호가 침몰했으나 전원구출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그 말을 믿었던 저,정말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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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에 있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 날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으나, 2년간 했던 프로젝트가 강제로 종료되고 더 이상 할 수 있는게 없다는 생각에 고민이 많았던 나날들이었습니다. 현재에 대한 절망과 미래에 대한 희망과 두려움이 같이 있었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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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달 여 남은 중간고사에 자꾸만 감기는 눈꺼풀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아버렸는데, 너흰 자꾸만 들어오는 물살에 힘겹게 눈을 감았구나.나는 일어나라 일어나라 깨워주는 소리에 눈을 찌푸렸지만, 너흰 몰아치는 거친 파도 소리에 눈을 찌푸렸구나.그때 나는 너희와 동갑인 18살 여고생이였는데, 지금은 21살을 앞둔 여대생이다.여전히 변한게 없다.미안해, 미안하다.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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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쓰러지시고 심폐소생술로 간신히 살아나신 뒤 기계로 숨만 쉬고 계시던 할머니를 편히 보내드린 날이었습니다.. 80세 넘게 사셨고 천국에 자기 집을 지어놓았다며 자식손주들을 볼때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라며 말씀하시던 할머니가 아직도 눈에 선해 장례식장에서 참 많이 울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는 세월호 침몰에 대한 속보를 장례식장 본관에 설치된 티비로 접한 후 어느새 다들 그 소식에 눈을 떼질 못했습니다 할머니의 명복을 빌어주러 오신분들도 세월호 희생자들의 무사기환을 빌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할머니를 잊지 못하는 한 그분들도 잊지 못할것 같습니다.. 아직 찾지 못한 분들이 하루빨리 돌아오기를.. 구조되신 분들이 죄책감 갖지 않기를.. 유가족분들이 더이상 슬프지 않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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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친구는 안산에서 학교를 다니다 이사왔어요 제 친구의 친구들은 단원고를 다니고 있었어요 지금 제 친구는 안산에 가도 반겨주는 친구가 없어요 20살 되면 꼭 같이 술마시자는 어렸을 때부터 곁에 있었던 친구들 ,항상 울면 자기가 더 슬퍼했었던 그 친구들도 이젠 볼 수 가 없데요 제 친구의친구들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주세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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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대학생이었습니다.기차로 통학을 하는 학생이여서 역 광장에서 스쿨버스를 기다리다가 대합실에서 뉴스를 접했습니다.배가 가라앉고 있다는 뉴스를 보고 믿기지 않았습니다. 학교를 가고 수업을 들어도 온통 신경은 아이들.. 그때 저와 같은 공간에 있던 학생들 모두 교수님까지 다 온통 세월호 아이들뿐이었습니다.그러다 새로운 수업을 들어간 그때, 전원구조라는 기사를 접했고, 교수님과 강의실 학생들은 환호했습니다. 그렇게 행복하게 수업을 듣는도중 오보라는 소식을 접했습니다.그날의 기억.. 2년이 훌쩍 넘어 어느덧 3년이 되어가는 그날그저 작은 한사람조차 그날을 이리도 생생히 기억하는데, 괴로운 마음에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는 그날의 모든 순간을 기억하는데대통령, 당신의 7시간은 어디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