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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을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제발 진실을 규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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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년,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뉴스에 우리아이들이 사고가 났는데 전원 구조가 됬다고 했죠, 다행이다 했어요 그리고는 그 전원구조됬다는 이야기가 아니란 기사를 다시 보았죠.. 허무하고 먹먹했어요계속 구할 수 있을거라고 믿었지만우리 정부는 할 수 있는게 없는것처럼 외면했고 그렇게 희망은 사라졌어요하지만 저는 생각해요우리가 그 진실을 알아내고아이들을 맘편희 하늘에서 웃을 수 있게 해줄수만 있다면아직 희망은 있다고..아직 우리는 기억하고 있고아무렇지않게 웃어도 마음 한켠은 아리단것을 .. 이 일은 그냥 쉽게 지나칠 수 없을거라고 알려주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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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옆반친구가 버스에 치여 혼수상태라는 말을 들은 날이었어요.그 친구과 세월호에 계신 분들을 위해 기도밖에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한심했어요하지만 영원히 잊지않을꺼에요 내 자식에게도 그 자식에게도 이런일이 있었고 너희들도 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려줄꺼에요 저는 오늘 그분들을 위로하기 위해 광화문으로 갑니다. 할 수 있는게 이것뿐이라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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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자율학습 중 모두가 교실속 TV화면만을지켜봤다.가라앉는 친구들을 보며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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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대학의 중간고사 기간이었습니다. 시험 시작 직전 전원 구조라는 속보에 안심하고, 공부하다가 밤이 되어 기숙사에서 인터넷을 키고서야 그것이 오보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시험이고 공부고 하나도 집중하지 못한 채 세월호 소식만을 기다리며, 추운 바닷물 속에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며 답답해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시험이 어땠는지는 다 잊어버리면서 이 기억만은 잊혀지지 않는군요. 결코 잊지 않습니다. 떠올리는 것이 괴롭지만, 그래도 기억할 겁니다.괴로움은 우리가 지고 갈 테니, 부디 편히 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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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학교를 갔었습니다 친구들이랑 티비로 게속 어떡해 됬는지 보며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저랑 나이가 똑같아 더 안타깝고 마음이 아팟어요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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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고사를 며칠 안남긴 날이었네요저는 고등학교 3학년, 단원고 친구들은 저보다 한살이 적은 또래였구요.아침에 누군가 수학여행가던 배가 사고났다는 얘기를 했고점심시간에도 급식을 먹으며 더 많은 학생들이 구조됐다는 소식을 기다렸어요. 계속 새로고침..새로고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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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바쁘게 일하는 오전이었다. 열심히 인터넷에서 자료 검색을 하다가, 우리나라 어딘가에서 배가 가라앉았는데 전원 구조했다는 뉴스가 얼핏 스쳐지나갔다.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무슨 고등학교에서 수학여행 온 학생들도 타고 있었다고 했다. 전원 구조했다니 별일 아닌가 보다, 걔네들 나중에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무용담이 생겼네, 라고 생각하기도 했다.워낙 바쁜 날이어서, 그렇게 많은 생명이 무참히 죽어갔다는 진짜 뉴스는 오후 늦게야 알았다. 키보드를 누르는 손이 벌벌 떨렸다. 오전에 했던 내 생각이 죄스러울 지경이었다. 한동안은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손석희 앵커의 뉴스를 보면서 내내 눈물로 흐릿한 밤을 보냈다.나도 이제는 기성세대에 접어들었다. 대학생 때는 화염병을 던지며, 지금은 눈곱만큼이나마 기부금을 내며 조금이라도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했고 또 기여한다고 믿지만, 대한민국이란 국가는 결국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인가. 기성세대로 무한한 책임을 느낀다. 잊지 말자. 기억하자. 진실을 요구하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이라는 것이 안타깝고 화가 나지만, 기억은 또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이기도 하다. 잘 다듬고 날카롭게 벼려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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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학교 2교시가 마치고 친구 두 명과 앉아서 연예계 얘기를 하고 있었으며 오늘 급식이 뭔지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눴었다. 그러던중 한 명이 인터넷을 하면서 실시간 검색어에 세월호가 떠 있는 것 이었다 처음에 정부에서는 전원구조나 무사히 안전귀가를 위해 노력한 결과라는 둥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같잖지도 않은 안정감을 줬다. 그 이후 다시 뜬 실종자가 2백명이 넘는 다는 것에 난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 . 차디 찬 바다를 헤메고 있을 걸 생각하니 말이다. 그 때 난 춘추복을 입고 있었고 육지는 따뜻하거나 선선할지 몰라도 바다는 추우니까 아직도 입을 꾹 다물고 있는 ㅂㄱㅎ정부 이름 석자 붙혀가며 대통령이라 칭하기도 싫은 사람아 정신차리고 하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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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해외 파견되어 일하고 있었어요. 새벽에 일찍 출근했었기 때문에 거의 출근하자마자 속보를 봤어요. 분명히 기억나는 건 저 큰 배가 저렇게 넘어갈 수 있냐고 동료 직원과 얘기했던 것.. 그리고 전원 구조 속보를 봤을 때 저게 가능한가? 였어요. 아무리 안전 구조에 대한 상식이 없더라도 tv에 중계되는 화면의 상황만 봐도 그렇게 쉬워 보이진 않았거든요. 안에 타고 있었을 노약자들과 장애인들은 우선 빼내고 나름 우리나라가 구조 기술이 그만큼 발전했나? 라고 희망적인 생각을 잠시 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뉴스 새로고침을 하면서 점점 상황이 끔찍해져 가는 것을 봤습니다. 현실감이 없는 상황이, 영화 같은 상황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에 대해 망연자실했고, 나중에서야 나타난 대통령이 했다는 말을 듣고 분노하면서 7시간이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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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세월호 사건을 본 건 교정치과에서 대기하며 텔레비젼을 볼때였다. 하지만 그 때는 전원구조라고 보도되었고 난 그 사실을 믿었다.하지만 교정진료가 끝나고 집에가는데 오보였다고 대부분의 사람을 구하지못하였다고 보도되었다.소름이 돋았다. 코끝이 찡해졌다. 수학여행을 가는 도중 사고라니... 어린학생들의 죽음이 많은 사건이라 노란 리본을 볼때마다 그 날의 오보가 사진처럼 떠오른다. 세월호관련영상을 볼 때마다 눈물이난다.나는 이 일을 영원히 잊지못할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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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었다. 세상에 신문은 조선일보만 있고 시위는 나쁜 것이며 광주 민주화운동을 안 좋아하는 부모님 슬하에서 살던 내가 광장에 나선 건 세월호 때문이었다. 심지어 망설이고 망설이다 1년이 지나서야 약속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집을 나선 터였다..그날의 기억은 희미하다. 어제 일도 제대로 떠올리지 못하는 성미에 2년도 넘은 일을 자세히 기억할 순 없다. 다만 어렴풋 회색 바탕이 떠오른다. 하루종일 재난보도를 확인할 때 화면 가득 하늘을 메운 먹구름은 잊히지 않는다.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무기력함으로 하룰 보냈다. 아니, 3년을 보냈다. 일부러 세월호에 관련된 내용을 피해봐도 나는 여지없이 세월호 세대였다. 정치에 무관심하던 내가 저 사람들이 왜 굶는지, 우는지, 떠나지 않는지, 아무 변함없는 일상이 이상하다고 느끼게 됐다.그렇게 세월호 1주기에 광장에 나섰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유족들이 돈을 원하는지, 데쓰는 건지, 언론보도가 사실인지, 모든 걸 직접 확인해야겠자 생각했다. 머뭇거리다가 시청역에 내려 광장을 바라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정말 그들은 순수한 유족인가."그때의 비겁함 그대로 나는 자주, 아니 가끔 광장에 나서는 사람이 됐다. 잘못된 걸 잘못됐다 말하는 자리에 가야 한다는 부채감이 들었다. 그 광장에서 본 건 빨갱이도, 폭도도 아닌 억울해하는 시민들이었다. 이미 당한 폭력에 저항조타 못하는 시민들이 모여 울고 있었다 아주 사소한 변화지만 이제 집에서 정권울 비판하고, 조선일보가 아닌 다른 기사들도 찾아보는 인간이 됐다.아직 멀었다고 느낀다. 1주기 때 격화하는 현장에서 나는 유유히 빠져나왔다. 물대포가 등장했다는 걸 집가는 길 페이스북으로 봤다. 그 때의 안도감은 4월 16일의 기억보다 뚜렷하다. 내게 지울 수 없는 비겁함이 남았기에 결국 오늘도 광장을 향한다. 이젠 당당히 나서서, 잘못됐다 외칠 수 있는 떳떳한 내가 되길 바라며 처음 발을 들인 두려움 그대로 오늘도 세월호를 기억하며 나는, 광화문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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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동갑인친구들이 탄 배가 위험하단 얘기를들었어요 곧 구조되겠지하고 넘겼었는데 아니었어요 잊지않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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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꼴딱 새고 세상 모르고 자고 있던 중에 잠시 눈을 떴어요. 습관처럼 핸드폰으로 검색창을 켰다 끄..려는 순간 믿을 수 없는 기사들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그날 밤을 넘어 새벽까지 모든 대화방에서 잠을 쉬이 이루지 못하고 아이들의 생존을 빌었습니다 . 갑작스런 단체 기억력상실이 오신 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정말 기억이 안나시나요? 저 간절했던 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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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친구의 생일이였는데 친구의 생일보다는 세월호의 소식이 더 이슈였다 친구들과 세월호 소식을 실시간으로 받아보면서 이거 어떡하냐 하며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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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하려니 벌써부터 눈물이 나네요 저도 이렇게 슬픈데 유가족분들은 얼마나 힘드셨을지... 세상을 이렇게 만든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대통령이라는 게 정말 부끄러워요 저는 2014년 4월 16일 수요일 바로 그날에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웃고 떠들고, 여느때와 다름없이 공부하고 있었어요 이런 글밖에 못 쓴다는 거에 너무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뿐이에요 시험 기간 끝나고도 광화문 광장에서 시위가 계속 진행이 된다면 저도 광화문 광장 시위에 꼭 참여할 것입니다 그저 보여지는 것뿐만이 아닌 진심을 담은 시위로 말입니다 우리는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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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구조 소식을 듣고 마냥 행복했었고오보라는 소식을 듣고 그냥 하염없이슬펐고 아무것도 할수가없어 눈물만 쏟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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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었습니다. 여행중이었기에 따로 와이파이가 되지 않는 곳에서는 인터넷을 접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소식을 드문드문 접하고 있어서 사태의 심각성을 피부로 직접 느끼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지하철을 타러 내려가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독일의 일부 지하철 역에는 벽에 뉴스나 광고를 스크린에 틀어줍니다. 어차피 이해도 못하기 때문에 그냥 멍하니 딴생각을 하고 보고 있었는데, 익숙한 단어가 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Korea" 사실 정확히 저 스팰링이었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어쨌든 저 단어가 한국을 가리킨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선을 살짝 올려 영상을 보자 보이는 대형 배의 침몰 장면. 그때 비로소 사건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한국에서 실시간으로 직접 소식을 접했던 분들에 비해서는 슬픔과 놀람이 크지 않았지만, 그때 지하철에서 본 화면의 장면을 잊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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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저도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수학여행에 갈생각에 들떠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쉬는 시간에 한 친구가 배가 뒤집어 지고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전원구조가 되었대요 .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더 이상의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 그런데 상황은 점점 심각해졌고 우리는 그것이 오보라는 걸 알았습니다. 쉬는 시간 마다 컴퓨터에 몰려와 기사를 봤어요 . 배가 점점 기울고만 있는데 해경과 헬기 등 적극적인 구조를 나서지 않았습니다. 배가 뒤집어져가고 있는데 지켜보고만 있었어요 . 눈물이 멈추지가 않았습니다 . 밤이 되고 배가 바닥을 보일 정도로 침몰이 되었는데 구조에는 진전이 없었습니다. 정말로 화가나서 눈물이 났습니다. 사고 신고가 접수되고 신속하게 구조를 진행했다면 배 안에 갇힌 사람들을 충분히 구할 수있었습니다. 안구한거에요 정부와 선장 선원들이.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대한민국 정부가 얼마나 무능하고 추악스러운지 알게되었습니다. 밤새 뉴스를 보면서 제발 무사히 돌아와 달라고 기도하던 그 날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 지금도 세월호라는 단어만 들으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참사 후 2년이 지났지만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진실이 꼭 밝혀지기를 바라며 학생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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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사고소식에 놀랐습니다.얼마후 전원구조 소식에 다행이다 안도했습니다또 얼마후 오보라는 소식에 설마 다 구조하겠지생각했습니다그런데 7시간후 저를 포함한 전국민을 놀라게한 일이 일어났습니다.무엇이 진실입니까....?남은 가족들에게 진실을 알게해주세요.그게 희생자와 그 가족에대한 최소한의 예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