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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지키러 군대에서 열심히 일하는 중 이었죠처음 뉴스보고 다 구조됐구나 싶었다가완전히 뒤바뀐 상황 접하고 마음이 철렁했죠.......사람 목숨가지고 장난친듯한 느낌이었죠.........그 당시 진짜 창피한게요..............사고났으니 휴가 및 외박 제한 되겠내하고걱정을 했어요미쳐가지구요 사촌동생뻘되는 애들이 바다 속에 있는대요....................정말 미안합니다...정말 죄송합니다.........그래서 팔찌하나 샀습니다. 그런데 이런거 밖에 못하는 제가 참 원망스럽더라구요 그래사 매일하고 다닙니다 누가 안물어도 가르쳐줍니다 이거 세월호 추모 팔찌라고 우리 기억하자고 까먹지 말자고 정말 죄송합니다........기억하고 뉘우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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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인솔하고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다가, 세월호 참사 소식에 멍한 눈으로 뉴스만 바라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에는 전원구조라는 소식을 듣고 휴, 다행이다 하고 잠시 소식을 놓고 있었는데 곧 들려오는 소식은 믿을 수 없더군요.. 잊지 않겠습니다. 따뜻한 시선, 관심한번 보내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지금부터라도 꼭 지켜볼레요.아이들을 위해서라도꼭 함께 밝혀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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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침몰한 세월호에 탑승한 친구들과 같은 나이, 같은 학년의 학생이다. 사건 당시 나는 학교였고 생방송으로 방영되고 있는 세월호 침몰 영상을 학급에서 함께 보고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선생님과 선원들 말을 잘 들으면 모두 살 수 있다."며 방송을 끄고 수업을 시작하기를 요구하셨고 곧 전원 구조되었다는 속보가 나왔다. 선생님은 "거봐, 말 잘 들으니까 다들 살았지."라고 하셨다. 그러나 곧 오보임이 드러났고 우리는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구조 작업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엄정 대처의 중요성을 입버릇처럼 강조하던 대통령은 그때 올바른 대처를 하고 있었는가? 뉴스를 보며 우는 친구들도 있었고 기도를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청와대는 하지 못하는 그날 내가 겪은 7시간을 똑똑히 기억한다. "가만히 있으라." 행동하지 않음은 모두를 가장 최악의 상황으로 이끌었다. 친구들의 죽음은 내게 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그로부터 2년 반, 가만히 있지 않았기에 많은 것들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나라는 마치 세월호에 탑승한 것 같다. 한 번 겪었기에 아팠던 그날처럼 침몰 시킬 수는 없다. 가만히 있어서는 안된다.기억하자 잊지 말자 2014 04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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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수 없는 2016년 4월 16일 집에 돌아와 티비를 키자마자 본 세월호 뉴스 아직도 잊을수도 없고 잊고싶지도 않습니다. 아이들을 충분히 살릴수 있으셨을텐데 7시간동안 무얼하셨나요. 단원고 친구들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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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가 조금 넘어서부터 뉴스속보가 나오고 구조되지 않고 있는 모습에서 의구심을 갖기 시작하는데 얼마지나 진원구조 됐다라는 속보를 보며 정부가 국민들을 대상으로 속이며 우롱하려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울분을 참지못하고 경악했던 일들과기울어진 창문안에 아이들이 보이는데도 구조하지 않고 지시만을 기다리듯 빙빙돌다 팬티바람인 선장을 구하는 모습이란 과관그자체였고 구조헬기에 타고온 정치인들과토다른정치인들은 구조된 아이들과 사진찍어야 한다며 트라우마에 빠져있는 그나마 구조되 배를 타기 싫타고 하는 몇안되는 아이들을 배에태워 육지로 이동시키는등 상식을 벗어난 행동들을 일삼았던 대한민국의 정치인들 이 생생히 기억납니다이제는 우리국민들 또한 공부만 잘해 어디출신 어디에서 어떤경력을 한 사람들을 뽑는게 아니라 국민들을 아낄줄알고 위할줄하는 기치관을 올바르게 배워 어려움에 처했을때 일사불란하게 지시하며 움직일수 있도록 교육되어진 정의로운 사람들을 정치에 새워야 한다고 생각되어집니다세월호어 아픈 기억은 절대로 잊혀져서는 안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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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놀고있었습니다. 12시쯤 세월호 사건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5월에 수학여행이 예정되있었습니다. 멋도 모르는 중학생은 세월호 유가족을 비난하고 헐뜯었습니다. 2년이 지난지금 그들이 억울하다는걸 알았고 욕한 내자신이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을 대변하는 현 국회의원 박주민변호사를 보고 새로운 목표가 생겼습니다. 나도 억울한 우리 국민들을 모두가 외면해도 그분처럼 대변하고싶습니다. 유가족여러분 그리고 희생자 형 누님들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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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아침 출근길에 사람들로 꽉 찬 전철안에서 세월호 침몰 기사를 봤어요.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다들 세월호 기사로 수근 거리고 있었죠. 막 침몰하고 있어서, 기사보면서 아 점심때쯤엔 다 구출되겠거니 하고 회사에 도착했지요. 점심때쯤엔 다 구출될거라고 정말 아무 의심없이 그리 생각하고 있었죠. 회사직원들도 다들 그렇게 당연하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째서, 왜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질 줄은 전혀 상상도 못했어요. 그 날 아침기억이 정말 아직도 생생하고 여전히 어제 일같기도 하고 몇일전 일같기도 하고 아직도 그 사건을 떠올리면 눈물이나네요. 믿기지도 않고, 믿고 싶지도 않고, 너무 아픈 기억이네요. 저는 당사자도 그 가족도 아니지만, 여전히 그 시간에 갇혀버린거 같네요. 7시간이 꼭 밝혀지리라 믿어요.모두의 간절함이 힘이되어 꼭 밝혀지길 바라고 또 바래봅니다.모든 진실이 다 밝혀져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전 탑승자들과 가족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 친구들을 마음편히 놓아줄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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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시 중학교 2학년 이였는데, 수학쌤이 사고가 일어났다했었는데, 아무생각없이 친구들이랑 재미있게 학교 생활하고 집에가서 티비를 봤고 많이 울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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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들과 점심식사를 하기위해 식당에 들어갔을 때 tv를 통해 세월호가 침몰되고 있는 것을 생경한 눈으로 쳐다보았어요,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거든요. 그땐 모두들 구조되었겠지 생각했는데 저녁 뉴스는 그런 보도가 아니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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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수학여행의 마지막 일정이 끝나고 점심을 먹은 뒤 단체버스에 타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들다가 주변이 시끄러워서 깼는데 버스티비에서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듣고 소름이돋았다.몇십분 뒤 , 모두 구출되었단 기사를 보고 다행이다 생각했지만 그 기사는 오보였다. 정말 마음이 아팠고 수학여행이라고 들떠서 몇일전부터 옷사고 계획짜며 기대했을 고2선배들을 생각하니 너무 슬펐다. 난 아직도 그 날이 생생히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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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이 살아돌아왔다면 여느때와 다름없이 저녁을 먹고 야간자율 학습을 하고있었겠지?나는그날이 생생하게 기억이나 지구과학시간에 선생님께서 배가침몰했다는 뉴스를 틀어주셧어 전원구조라는 그 기사를말이야 나는안도하고 휴대폰도 보지않고 공부를했어 야자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니 엄마와 언니가 티비앞에서 하염없이 눈믈을 흘리고있었어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추웠을까 아직 못다핀 꽃 하늘에서 꼭 피우길 바라 얘들아 그러니 너무 걱정말고 편히 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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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국사를 공부하는 연구자입니다.2014년 4월 16일 10시부터, 대학원에서 비슷한 공부를 하는 동료들과 세미나를 하고 있었습니다. 중간에 잠깐 책상 아래로 스마트폰을 꺼내 사전을 찾아보려다가 속보로 뜬 세월호가 침몰 중이라는 뉴스를 보고, 동료들과 함께 걱정하는 이야기를 나누었고, 곧이어 "전원 구조"라는 보도를 접하고 안도하고는 모임을 끝까지 마치고, 다 같이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 오후에 연구실에 돌아와서 자리에 앉아, 우리가 아는 그러한 비극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확인하고, 생후 40여 일이 지난 딸 아이와 아내가 갑자기 너무 보고 싶어져서 집으로 돌아가, 그 뒤로는 쭉 TV 뉴스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습니다.너무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날, 그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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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4월 16일. 저는 학교에서 과학의 날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시험기간으로 지쳐있던 터라 행사를 하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오전 11시경. 잠깐 쉬는시간에 컴퓨터를 보고 있던 중 실시간 검색어 1위에는 단원고등학교 2위에는 세월호가 떠있었고 고등학생을 비롯한 승객들을 태운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비보를 접했습니다. 처음에는 곧 구조되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점점 심각해져갔고 공부방에서 방과후에 자율학습 중에 나와 dmb로 뉴스를 보며 많은 사람이 구조되기를 간곡하게 바랐습니다. 또 뉴스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던 적이 처음이였습니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 갈 수록 구조되는 사람은 적어졌고 정부에서 내세운 에어포켓이라는 일말의 희망을 내건 채 한 명이라도 더 구조될 수 있다는 확신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차가운 바다 속에 잠들었고 그들의 시신들이 올라올 때 마다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남의 일이 아닌 누군가의 오빠,언니,자식이라는 것에 하루하루가 무서워졌습니다. ㄷ또한 아직도 차가운 바다 속에 잠들어있는 10분을 하루 빨리 발견되어 따뜻한 가족들의 품안에서 눈 감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시간이 흘러 저는 곧 졸업을 앞둔 중학교 3학년이 되었고 아직 세월호에 대한 확실한 진상 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있습니다. 또한 세월호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잊혀졌고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비난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10년이 흐르고 20년이 흐른다해도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차가운 바다 속에 잠들어 버린 단원고등학교 언니 오빠들. 그리고 승선하고 있던 많은 승객분들. 또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지키셨던 우리들의 영웅들까지. 잊지않겠습니다. 그날의 생각, 기억, 온 국민들이 함께 나눴던 슬픔 모두 가슴에 담아 오늘도 그분들의 몫을 다하여서 살아가고 있노라고 생각하며 살겠습니다. 또 지금까지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정부를 상대로 싸우고 계시는 많은 유가족분들도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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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7시간의 공백기간동안 뭘 한지 모른다고 한다 그럴수 있다 왜냐하면 나도 누군가가 나에게 그시간에 뭘했는지 말하라고 물어본다면 기억이 안난다고 할것이기 때문이다 난 그시간에 쳐잤다 꿀잠을 잤다 진짜 개꿀잠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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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한국에 쉬러 귀국해 있었다. 늦잠자고 일어났더니 선박 사고라는 뉴스에 놀라 포털 뉴스와 sns를 통해 찾아보다가 전원 구조라는 오보에 안심하고 또 낮잠을 잤다. 그리고 오후 늦게 약속이 있어 일어나서 가는 동안도 뉴스를 안 챙겨봐서 제대로 알지 못 했다. 저녁이 돼서야 사퇴의 심각성을 알았던.. 사실 처음엔 그냥 이런 일이.. 말도 안돼.. 라는 슬픈 감정이었다가 해경 정부의 무능에 분노하게 됐던 것 같다. 다시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던 대응들.. 왜 그랬을지 정말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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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치료를 하고 로비로 나왔는데 로비티비에 왠 배가 바다에 뒤집혀있는 기사가 나오고,오른쪽 상단에 전원구조라는 속보글을 봤죠.그 때만 해도 배가 저렇게 완전히 운항하다가 전복된 그림을 생전 처음봐서, 어? 이랬는데, 전원구조된었다는 말에 당연하지, 요즘 세상에 배가 전복된다고 죽을수가 없지, 생각하고 병원을 나와서 일상을 계속 살아나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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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서 세월호가 침몰하였다는 내용을 얼핏 봤으나 처음에는 그리 크지 않은 사고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내 조금 더 상세한 것들을 알게 되자 눈물이 났습니다. 방에서 불 끄고 하늘색 이불을 덮고 많이 울었습니다. 전원 구조라는 말을 듣고 안심했으나 곧 더 울게 되었습니다. 친구가 학생들이 바다에서 저체온증에 걸리면 어떻하냐고 걱정하던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실제로는 배에서 나오기도 힘들었지만. 많이 미안해서 울었습니다. 많이 슬퍼서, 오랫동안 몰래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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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4월16일 그 때 저는 15살 중2였습니다. 그 날은 수련회 가기 2주전쯤이었습니다. 학교 규정상 저희 모두 핸드폰을 낸 상태였기에 오전 수업 중 한 과목인 국어 시간에 소식을 들었습니다. 배가 침몰되고 있다고. 저희는 그저 많은 헤프닝 중 하나로 생각하며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수업 중간중간 접한 소식은 학생들이 구조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 소식이 오보임을 학원이 끝나고 집에 도착해 뉴스를 보고 알았습니다. 구조되긴 커녕 많은 학생들이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더 많은 기사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저도 그때의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이 일의 뒤에는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그 날 그 하루를 잊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는 그 7시간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기억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당시 희생자들은 고2였습니다. 만약 그때 적절한 조치를 취했던라면 그들은 가장 예쁜 나이라 하는 20대입니다. 그들의 예쁜 나이를 뺏앗아간 7시간의 진실을 알고싶습니다. 절대 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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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단원고친구들과 동갑인 여학생입니다. 그날은 어제있던일도 까먹는 저에게 유난히도 생생히 기억이 납니다. 동산정보산업고등학교 2-6 교실딋편에서 제주도수학여행을 얼마 안남겨놓고 2,3교시쯤 사고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땐 철이없어서 처음드는 생각은 "우리 수학여행 못가는거아니야?"라는 생각을 친구들과 같이 하던중 전원 구조되었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그래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우리도 수학여행을 갈수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교실에서 친구들과 기분이 좋았었습니다. 하지만 오보라는 기사를 보게되었고 그 순간부터 하교하는 순간까지 계속해서 전해지는 구조작업현황, 물밀듯이 늘어나는 사망자수. 생전 뉴스도 챙겨보지 않던 제가 오후5시쯤 집에가자마자 뉴스를 틀어보았습니다. 그후 지금까지 4명이 돌아오지 못하고있는거구요. 저같은 사람도 이렇게 생생히도 기억나는데 공부를 잘하셔서 높은자리에 계신분들은 어째서 기억이 안난다고만할까요? 단원고 학생들 뿐만아니라 다른 희생자분들,유족분들의 원통함을 하루빨리 해결해주길 바랍니다.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날의 7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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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속보를 확인한 것은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였어요. 인천에서 제주도로 가는 큰 배가 고장나 가라 앉는 중인데 모두 무사히 구조됐다고 들었어요. 볼일을 마치고 동료들에게 소식을 전하고는 다 같이 다행이라고 이야기 나눴어요. 그리고 까맣게 있고 있었는데 오보라는 후속 뉴스를 오후에 확인하고 화가 너무 화가 났어요. 우린 그런 것도 모르고 다 구했다는 이야기에 웃으며 넘겼는데 그 시간에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었던 거 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