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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고2아이들과 함께 했던 수련회 마지막날이었습니다.아침을 먹고 숙소방에 양치를 하러 갔을 때 같은 방 선생님께 사고소식을 듣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마지막 회의를 하러 갔습니다. 그 시간이 9시전후였던 것 같은 데 사고시간이 더 늦게 발표되서 의아하긴 했습니다. 그나마 사고가 아침에 일어나서 천만다행이라고 동료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tv에서 나오는 그 지역상황(바람이 잔잔하고 날씨도 춥지않다. 구조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곧 구조가 시작될 것이다..)을 듣고 사고상황에 촉각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수련회해단식을 하기 얼마전 포털에 뜬 전원구조소식에 기뻐하며 저희 학교 학생들에게 알려주었던 기억도 나네요. 그런데 그것이 오보일줄은...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오보였다는 사실을 접하면서도 아직 해가 지려면 몇 시간이나 남은 상황이니 더 늦기전에 많이 구조하겠지 라는 기대를 했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 주말이 끝나가도록 자력으로 탈출했던 사람들 외에 구조자가 0명이라는 사실에 분노하고 절망하며 몇달을 보냈습니다. 제게 남아있는 그날의 기억은 이랬네요..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 때 이상했던 점은 당시 회의실에서 보던 tv 화면에 어느 순간사고 현장의 생방송 장면이 아닌 사진으로 찍힌 이전의 장면만이 떠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도대체 그 시간동안 우리가 모르는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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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 죄없는 생명들이 차가운 바닷속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가야 했나요.모두 살수 있었습니다.하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4월의 저는 대통령이,무책임한 어른들이 너무나 미웠습니다.이제는 제가 어른이 됩니다.훗날 저의 자식들이 살아갈 이 나라를 위해,그날의 상처가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 저는 싸워나갈 것입니다.겨울바람이 아무리 차갑고 상대가 돌처럼 단단할지라도 그날의 아픔을 되새기며 진실을 향해 촛불을 피워나가겠습니다.절대 잊지 않겠습니다.REMEMBER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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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대구에서 김천으로 기차통근했어요.그날 저녁 기차에 내려서 지하철 타러고 가는 중인데 가려고 "세상의 모든 음악" 진랭자 카이씨가 이렇게 멘트를 했어요,"이제 어두워지는데 아이들 무사귀환을 기다리는 가족의 애타는 심정 ...."가슴이 철렁해서 더 이상 듣지도 못했습니다. 제 안에 있는 한줄기 희망의 끈이 뚝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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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름없던 평범한 날이었습니다충격적인 기사를 접했고전원구조 소식에 안도했으나오보임에 분노하고 눈물이 났습니다동생과 동갑인 어린 아이들...저는 안산에 살고있습니다같은 동네, 같은 또래 아이들의 비극적인 소식에 동생 생각이 났습니다배 속에 자기 친구도 있다고 말하던 동생자기 빼고 친한 친구들끼리 같은 학교라 함께 수학여행을 갔다며 서운해하다가 단톡방의 사라지지 않는 숫자에 울부짖던 동생의 친구은사님께서 돌아가셨다며 울던 친구자기 자식의 일인양 가슴을 치며 우시던 부모님제 동생이 살아있음에 너무 감사하고또 그런 제 이기심에 자책하고또 희생당한 아이들을 살리지 못했음에 너무나도 죄스럽고 눈물만 하염없이 나던 하루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당신들은 어떻게 잊을 수가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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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구조 오보만 믿고 푹 잠들었습니다별일 없을거라 생각하고 깨어나서사람들 수근거림에 알게되었습니다푹 잤던사실이 너무 미안해서 계속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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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전 저는 공학관 5층에서 건축시공 수업을 듣고 있었습니다. 강의실은 동쪽에 칠판을 뒀고 저는 맨 뒤에서 남자교수님이 피피티로 진행하는 영어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죠. 친구가 수업 프린트를 제것까지 해주어 고마워했던 아침이었습니다. 열없이 인터넷을 뒤적거리던 저는 진도 앞바다에서 수학여행 가던 아이들을 실은 배가 침몰했다는 속보를 보고, 옆자리 친구에게 작은 목소리로 알렸던 기억이 납니다. 얼마 후 300여 명을 모두 구조했다는 속보를 보고, 그래, 당연하지. 다행이야. 라고 생각했고, 배에 남은 인원이 있는 건 아닐까 까지 생각이 미쳤다가, 수업을 끝내고 가방 메고 나오면서 300여 명을 무사히 구조한 해경이라면 잘 하겠거니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최악의 오보였고 저는 그날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진도 상황을 지켜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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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국가직 공무원 시험이 얼마남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늘 그렇듯 아침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영어 강의를 하나, 둘 보고 졸린 정신을 깨려고 핸드폰을 켰습니다.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아이들이 물에 빠졌다는 소식의. 너무 놀라 찾아보니 곧이어 전원 구출이 되었다는 소식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곤 다시 하나 남은 인강을 틀었고 인강이 끝나고 핸드폰을 켰습니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이어서는 안되는 기사가 전달되었습니다. 아이들은 구조되지 못했고 배는 바닷 속으로 점점 가라앉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잠깐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분명히 아까는 전원구출이었는데 왜 지금은, 그때부터 공부는 할 수 없었고 tv뉴스를 틀어놓고 핸드폰으로 시시각각 올라오는 소식을 검색했습니다. 처음엔 구출할 수 있겠다고 그래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그 희망은 절망이 되었습니다. 7시간 동안 제 자신이 얼마나 무기력한 사람인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괴롭고 절박한 시간이었습니다. 절망이 어떤 것인지 철저히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피가 마르는 느낌을 겪게 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그랬을 겁니다. 아이들이 차디찬 물속으로 가라앉는 동안 대통령 당신은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온 국민이 절망에 빠질 그 동안 도대체 무엇을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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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평소처럼 바쁘게 학교에서 수업 듣다가 점심 쯤에 친구로부터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뒤로 수시로 핸드폰 뉴스 화면을 들여다보았으나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아이들 생각을 했습니다. 옛날도 아니고 21세기인데, 조금만 기다리면 구조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무서움을 참고 있을 학생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속이 갑자기 안 좋아졌습니다. 그 뒤로 저의 하루 일과는 아침에 깨자마자 핸드폰으로 구조 소식을 찾아보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나는데, 아직도 답답하기만 합니다. 정부는 어떻게 그렇게도 뻔뻔스럽게 발뺌할 수 있는지... 마음이 참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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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없는지라 라디오만 틀어 두는데언제나와 같이 cbs fm 틀어두고 집안일 하면서 주방 tv 켜니 , 전원 구출이라고..그냥 여객선 사고에 전원 구출이라니 다행이네 하고 있다가마침 도서관에 예약 대출해둔 책 준비완료 문자 받고 도서관 다녀와서배가 기울고 있다고, 전원 구출 오보라고..그때부터 주방 tv 계속 켜놓고우린 아이들이 그대로 물속에서 나오지 못한 걸 생중계로 보는 잔인한 기억을 가지게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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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그 날을.. 전 초등학교에서 일하는데 그 날 저희학교 4학년 아이들도 수학여행을 떠났었어요. 아침에 배가 침몰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수학여행을 간 저희 아이들이 생각나기도 해서 깜짝 놀랐다가 곧 이어 전해진 전원 구조 소식에 안도를 했었죠. 그게 오보라니 이게 진짜 말이 되는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훤칠한 덩치에 웃는 얼굴을 한 사진 속 남학생이 최초 사망자로 보도 되었을 때도 결국 몇 백명이 그렇게 차가운 바닷물에 갇히게 될지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점심을 먹으며 계속 인터넷 뉴스를 새로 고침했던 기억, 침통한 마음으로 TV를 보던 그 날이 이렇게 생생한데 왜 막상 그 날을 뼈아프게 기억하셔야 할 분들은 기억을 못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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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출근해서 일하다 점심시간 304명이잠긴 뉴스를 보고 지금끼지도 세월호 단어만들어도 가슴이 아픕니다왜 구조하지 않았는지 그 진실이 밝혀질때까지노란 리본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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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아침부터 일이 많아서 인터넷 포털을 볼 틈도 없이 바빴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고서야 세월호 침몰사고를 들었고, 전원 구조소식도 함께 들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은 사고 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퇴근시간까지 일을 했고, 퇴근하고 뉴스를 다시봤을땐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때 느낀 절망감이 아직도 생생합니다.그 전날 제가 뭘했는지 다음날 뭘 했는지는 기억나진 않지만 그날만큼은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그 때 회사사람들과 나누었던 말도 기억이 납니다. 퇴근하면서 걸었던 길도 기억납니다.저는 기억이 나는데 그들은 기억이 안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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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그저 평범한 하루였죠..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소식에 이어 전원구조라는 소식을 접하고 다행이다 생각하며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얼마후 오보라는 걸 알게되고 걱정이 되어 뉴스를 검색하던 기억이 납니다. 두 딸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너무나 가슴아픈 소식이었어요.지금도 출근길 교차로에서 매일같이세월호를 잊지 말자는 피켓을 들고 서있는분들을 보며 저도 매일 다짐합니다. 잊지 말자.. 잊지말자.. 잊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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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학교에서 여느때처럼 수업을 듣다가 교수님이 강의하시는 컴퓨터에 속보로 세월호가 침몰했고 전원구조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러나 수업후 그 소식이 오보였다는것을 알게되었습니다. 뉴스만 봐도 충격적인데 이 날을 잊을리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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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는 온종일 집에 있었습니다.8시쯤인가 TV에서 뉴스를 보았습니다. 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을 제주도로 가는 중이라는데 사고가 났다고 해서 유심히 보았습니다.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뉴스 화면에 나오는 해경들이나 구조대원들이 뭔가 긴박하고 절실하게 구조하려고 움직이는 기척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방송멘트도 계속 지리하게 같은 얘기만 반복하는 느낌들, 정부 관련부처나 해양부서에서 사고나 어떤 재해앞에서 보일 수 있는 행동패턴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느낌에 강하게 사로잡혔던 기억이 있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뭔가 이게 아닌데 하는 기분과 이게 뭐지? 하는 느낌이 하루종일, 그 다음날도 그 다음도 지속적으로 의문이 생겨서 괴로웠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에 전개된 해경이나 정부부처의 말도 안되는 대처광경들로 인해 지금까지 세월호 하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우울하고 욕이 막 나오고 하는 이상증세가 생겨 버렸습니다. 그날 뉴스가 진행되고 그걸 시청하고 또 내가 그걸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뭔가 어긋나고 이상하고 일반상식이 충돌한다는 느낌은 지금도 선연하게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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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출근했다가 베스티즈 라는 커뮤니티에 게스트천국이라는 게시판에서 처음 기사를 봤어요. 친구들한테 단톡방에 링크 보내주면서 이거 어쩌냐 그랬는데 그때 기사에 나와있는게 살짝 기울어져있는 정도의 사진이라 그래도 저정도면 다 구할수있지않나, 먼 바다도 아니래, 해경들 다 출동했으니 구할수 있겠지. 괜찮았으면 좋겠다 그런 대화를 나눴죠. 그리고 좀있다가 다른 친구가 전원구출했다그랬어요. 이야 애들 수학여행가다가 큰일날뻔했네... 그러고 일하다가 인터넷을 봤는데 전원구출이 아니라그래서 이게 무슨소린가 그랬습니다. 그렇게 일하는 틈틈히 기사들 찾아보다가 이삼십분 일찍 퇴근했어요. 회사 맞은편에 있는 이비인후과를 갔는데 유난히 사람이 많았는데도 사람들이 조용히 앉아서 뉴스속보만 보고 있었고 겉이 속보를 보다가 나도모르게 울었고... 그때 봤습니다. 구명조끼를 입었다고 하는데 구출이 어렵습니까.... 그날 병원에는 일찍갔는데 기다리느라 대기시간이 늦어져서 야간진료 비용을 냈고 머리로는 부당하다고 생각했는데 뭐라고 말할 기운도 없었어요. 결제하고 진료받고 집에와서 혼자 앉아서 뉴스를 보다가 많이 울었습니다. 같은말을 반복하는 티비는 도저히 계속 보고 있을 자신이없어서 라디오를 틀었어요. 박지윤의 4월 16일이라는 노래가 나왔고 그렇게 새벽 두시 세시까지도 잠을 잘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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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저는 유학생이었습니다. 한국보다 8시간 느린 시간을 살고 있던 저는, 평소 같았으면 자고 있었을 그 시간에, 과제를 하느라 깨어 있었습니다. 과제를 하다가 지루해져 인터넷 창을 켰을 때, 믿을 수 없는 뉴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수백 명의 승객을 태운 배가 침몰했고, 구조 중이라는 소식이었습니다. 조금 더 살펴 보니, "전원 구조"라는 기사가 올라와 있길래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여 뉴스를 닫았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여 계속 한국 인터넷 창을 켰다가, 껐다가, 반복하였는데, 소식은 점점 참담해졌습니다. 새벽에서 오전으로 시간이 흐를 수록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졌고, 저는 어느 새 과제 따위는 제쳐 두고 새로운 뉴스가 뜨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나타난 때는 제가 있었던 곳 기준으로는 오전 9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습니다. 밤을 지새우며 불안해 했던 저와는 달리 대통령은 아무 것도 모르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같이 지내던 한국 사람들과 하루 종일 걱정스러운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분노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그 7시간 동안 저는 잠을 전혀 잘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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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침몰했으나 전원 구조했다는 소식을 학원생들에 제가 먼저 전했어요대부분 자식 키우는 엄마들이라 다행이라며 요즘에도 수학여행을 배타고 가냐며..제주도는 저가 항공으로 많이 가던데.. 하며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던 기억이 나네요만약 배가 아니라 비행기를 탔다면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요?처음엔 안됐다, 안타깝다.. 정도 였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은 슬픔이 느껴지네요그네들은 기억을 못하는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것도 아닐꺼에요그네들 한테는 마치 일어나지 않은 일처럼 그냥 모르는일일뿐..그냥 무관한 일일뿐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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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친구들이랑 밥을 먹는데 회사다니시는 엄마한테 전화가 왔었어요.수학여행 가던 학생들이 탄 배가 사고를 당했는데 다행이 전원 구조되었다고. 정말 다행이라고.바빠서 회사에서는 연락도 잘 못하는 엄마가 왜 전화를 했나 사실 좀 갸웃했어요.전원 구조인데도 전화를 한 이유는 뭘까.사실 좀 어리둥절 하기도 했어요.그러고 그냥 밥을 마저 먹었어요.애들이랑 "그랬대~"라고 몇마디 하고요.그냥사소한 사고인줄 알았던거죠.그렇게 학교 끝나고 학원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엄마 차에서 다시 그 얘기가 나왔어요.오보였다고, 애들이 구조됬단거 거짓말이었다고.처음엔 멍했어요.한두명, 몇명도 아니고 수백명의 사람들이 배안에서 잠겨 죽어갔다는 사실이, 열일곱의 저는 이해할 수 없었던것 같이요..엄마가 그날 굳이 전화를 걸어 전원 구조 소식을 전했던 이유.티비 모니터에서 제 모습이 비춰보인건 아닐까,.내 딸 같아서, 내 아들같아서 맘이 아팠던건 아닐까.그냥 그렇게 어렴풋이 느끼고 있어요.4월 16일 그날, 엄마와 함께 저는 그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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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선득해지곤 합니다.고 3이 된 후 첫 중간고사를 2주 앞둔 날이였습니다. 가요나 예능 프로그램 등을 보며 먹는 평상시의 점심시간과는 달리 모두들 뉴스 프로그램을 틀었습니다. 승객들을 태운 배에 사고가 났다는 소식이였습니다. 심각한 표정으로 뉴스를 보던 저와 친구들은 곧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모두 안전하게 구조되었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였습니다. 수학여행을 가려고 했는데 서바이벌 체험을 했다는니 이것도 추억이겠거니 하는 철딱서니 없는 대화를 주고받고는 저는 공부를 위해 자습실로 향했습니다. 비보를 접한 것은 한국사 수업을 마친 후였습니다. 한 친구가 새햐얀 얼굴을 하고 티비를 켜더군요. 걔들 배 안에 갖혔대 라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얘기하는 그 친구의 말을 저는 이해할 수 없었고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교실 안은 혼란으로 채워졌고 뉴스를 틀자 곧 침묵이 모든 것을 압도했습니다. 목에 뭐가 걸린 것마냥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빌고 또 빌었지만...그 때는 아무 말도 못했지만 이제는 말하겠습니다. 당신은 도대체 그 시간동안 뭘 한 겁니까? 왜 저보다 1살 어린 그 친구들을 차디찬 바닷물로 내몰았습니까? 뭐 때문에 그 친구들은 그렇게 되버려야 했으며 남은 가족들은 왜 가슴에 대못이 박힌 채로 그렇게 살아야 합니까? 7시간 동안 도대체 당신은 무엇을 했습니까?제가 남은 가족분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위로할 수 있다는 생각은 감히 할 수도 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날을 기억하고 또 진실을 기다리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