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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름 없던 바쁜 오전 진료시간..치과의원 진료실에 근무하는 나는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환자 대기실에 켜있던 뉴스를 보며 놀람을 감출수 없었다.계속 뉴스를 보고 있을수 없는 상황에 뜨문뜨문 소식을 전해들으며 , 세상에 어떻게 이런일이 생길수 있나 싶으면서도 한편으로 ......그담주 배편으로 제주도 수학여행 계획이 잡혀있던 둘째 딸 을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 그순간.... 내딸이 아니어서 정말 다행 이다... 라는 정말 부끄럽기 짝이없는 잠깐의 옹졸함.....사고가 터지고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시간이 갈수록 슬픔이 커지고 분노도 커지고..지금도 세월호관련된 기사나 사진만봐도 눈물부터 쏟아진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마음을 다헤아리지는 못해도 , 자식을 키우는 부모입장에서 ...벌써 세번째 겨울을 맞이 하면서 아직까지 찾지못한 9명의 실종자들, 원인도 책임자처벌도 해결된것도 아무것도 없는 것이 화가나고 미안하고 부끄럽다.낼모래 오십을 바라보며 어제일도 가물가물 건망증에 실수 연발이지만.. 그날일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데....우리모두 잊지말고 기억해주면 지금 기억이 없다 쌩까는 사람들도 언젠간기억해 낼수 있겠지.. 난 그렇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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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시내 호텔에서 집에 갈 준비를 하며 짐을 정리하고 있던 아침, 갑자기 친구들 단톡방이 울렸습니다. ㅇ ㅇ 야 너 제주?? 뭐 타고 갔어 설마 배는 아니겠지?? 저는 ㅋㅋㅋㅋ 무슨 배야. 그리고 나 오늘 서울올라갈거야 ㅋㅋㅋ 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한 친구가 갑자기 급하다고 티비를 틀어보라고 하길래 뭐지? 하면서 켠 티비에는 믿을 수 없는 장면이 방영되고 있었습니다. 영화도 아닌 드라마도 아닌 실제상황.. 꽃 같은 아이들이 탑승한 배가 침몰하는 장면이 브라운관에 방영되고 있었습니다. 너무 놀라 숨도 쉬어지지 않아 체크아웃할 생각도 잊은채 울면서 티비에 집중했습니다. 전원 구조라는 자막이 뜹니다. 혼자 소리를 지르며 다행이다!! 쾌재를 불렀습니다. 친구들에게 전원 구조래!! 기쁜 소식을 알렸습니다. 그리고는 마음 놓고 호텔 체크아웃을 한채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동안은 인터넷을 볼 수 없었습니다. 집에가는 버스 안에서 침몰 사실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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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학교 tv로 채널을 돌리는 중에 뉴스 속보가 드면서 배가 침몰 하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요 대략9시 정도 같은데 배가 많이 기울어져 있는것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더라고요 그다음 교시가 긑난뒤 바로 다시 보니 그전 보다 더 심하게 기울여져 있길래 정말 큰일이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큰일은 안 나겠지 생각하고 마음 놓고 있었는데 5시 정도에 뉴스를 보니 정말 거의 다 가라 앉았더라고요...그래도 다친 사람은 없겠지 생각했는데 ...안타깝고 죄송하는 마음만 듭니다...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나는걸 보아하니 정말 쉽게 넘어갈 문제는 아니었다고 생각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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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침몰했다는 꿈을 꿨어요근데 모두구조해서 다행이다라고생각했죠알고보니 잠결에 뉴스를 들은것이었더라구요근데 오보라는 기사가나오고 그많은학생들의꿈이 사라졌었죠 차라리꿈이었다면 좋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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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기가 걸려 수업에 가지 못하고 동네 이비인후과에 가있었어요. 제 차례를 기다리며 티비를 보는데 여객선이 침몰한다는 뉴스가 나오더라고요. 병원에서 기다리는 모두가 보며 안타까워했어요. 옆에 계신 아주머니는 혀를 끌끌 차며 탄식을 내뱉으셨어요. 불과 몇개월 전에 바다에서 학생들이 무고하게 죽어나간 사건이 있었는데 또 이런 일이 생겼다니 참 슬펐죠. 그런데 다시 300여명 전원 구조라는 뉴스속보가 뜨더라고요.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어요. 그리고 전 제 차례가 되어 진료를 받고, 약을 타서 집에 왔어요. 전원 구조는 오보였대요. 학생들이 아직 물 속에 있대요. 그 때까지만해도 뭐 다들 구조되겠지라고 생각했었어요. 2년 반이 지난 지금, 이렇게 큰 일이 되어있을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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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근무를 마치고 아침 6시에 할머니 할아버지댁에 가서 뉴스로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 당시엔 이렇게 까지 사고가 커질거란 예상을 못했었죠. 분명 전원 구조가 될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구조가 되길 믿었는데... 너무도 한심하고 참담합니다. 아무것도 못하고 보고만 있어야 했던 내 자신이 용서가 안되고 너무나 죄송합니다. 도대체 구조를 위해 출동하려 했던 해군은 왜 막은겁니까?? 진실을 말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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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을 기억합니다. 저는 그때 일본에 있었고 일본호텔에서 일을 끝나고 오전에서 오후 넘어가는 시간에 그 기사를 접했습니다..... 네이버로 전원구조 라고 떠서 에이... 모야,,;,,,, 라고 무심코 넘겼고 호텔에서 저녁타임일 끝나고 기사를 보았을때는. 울고짖고있는 학생들의 부모님들과,,,, 뉴스를 인터넷으로 보았습니다. 왜. 그날이 그들일이 기억나지안을까요,,, 진실을 말해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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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때의 그 날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봄 내음이 나는 4월의 수요일이었다. 학교에서 방과후 수업을 듣는데, 쉬는 시간에 친구들이 몰려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경기도에서 수학여행을 간 학생들을 태운 배가 기울어 가라앉고 있다는...뉴스가 화면에 띄워져 있었다. 나도 같은 고등학생이었기에 기분 좋은 날 사고가 난 것에 대해 마음이 좋지 않았고 실종된 사람들은 없는지에 대해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전원 구조가 되었다는 기사가 떴고, 이내 안심한 채 그들이 아주 조금 운이 안 좋았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전원 구조가 되었다는 기사는 오보였다. 나는 분노했다. 그럼 내가 뉴스를 확인하고 저녁식사를 하고, 야자를 하고 집에 돌아오는 그 시간동안 여전히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버티고 있던 거였어? ...죄책감이 들었다. 나는 이렇게 잘 지내고 있었는데. 숨 쉬는 것조차 미안했다.내가 소비하는 산소가 몽땅 배 속의 그들에게 가도 모자랄 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모두의 기대와는 달리 구조작업은 갈수록 길어져 몇 날 며칠을 뉴스만 들여다보며 지냈다.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울적해하는 내 모습을 보고 엄마가 물었다. 요즘 안 좋은 일 있냐고. 나는 말했다. 엄마, 내 또래의 학생들이 지금... 바다에서 목숨을 걸고 살아남으려 하는데, 나는 지금 이렇게 방 안에 앉아있는 것 만으로도 죄스러워 죽겠어요. 정말 답답했다. 그리고 미안했다. 한 명씩 사망자가 생길 때마다, 그 날에 웃고 떠들던 내 스스로가 원망스러워서. 야속하게 흐르는 시간이 밉기도 했다. 고등학교에 올라와 즐거운 날을 보내야 하는데, 그 계절의 우리는 모두 슬픔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더 절망적인 봄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1년이 지나고, 나는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 4월이 찾아오면 아직도 덜 아문 것 같은 마음 한 켠이 아파오지만, 그 때보다는 덜한 것 같다. 그리고 지금 2016년 11월, 비상상황 속에서 그 누구보다 침착하게 대처하고 국민을 보살펴야 했을 사람들의 부끄러운 민낯이 온 대한민국에 드러났다. 특히나 그 날 7시간동안 행방을 알 수 없었던 대통령, 그녀는 대한민국 국민이 정당하게 위임한 권력을 정치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일개 민간인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그녀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었다. 최씨일가와 박근혜, 그리고 이들이 맺어온 수십년간의 관계를 눈감아주고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새누리당. 그들은 그 날 세월호 속의 사람들을, 그들의 가족을, 그리고 온 국민을 우롱한 것이다. 정치, 경제, 종교, 교육, 문화, 예술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곳간의 쥐마냥 야금야금, 아니 아주 대범하게 자신들의 배를 불리고 있었다. 나는 그 날처럼 또다시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지켜야하는 대표자는 그 때에 무얼 하고 있었나? 얼마나 떳떳하지 못하면 스무고개를 하듯 교묘히 빠져나가고 진실을 숨기는 것인가? 부끄럽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도대체 이런 사람이 국민을 대표하고 나라를 운영한다는 말인가? 박근혜정부는 모든 진실을 숨기지 말고 뱉어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온 국민이 단결하여 진실을 요구하는 것이다. 박근혜, 당신은 들리지 않는가? 두렵지도 않은가? 매주 백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내는 이 목소리가? 썩어 빠져 구멍이 날 대로 난 대한민국이지만, 나는 아직 이 사회에 일말의 정의가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국민이 지금처럼 정부에 맞서 단결할 때, 반드시 우리는 진실을 알아내고 정의를 되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세월호도 잊지 않았고, 작금의 사태도 잊지 않을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르고 떠난 그들을 생각하며, 더이상 죄책감이 아닌 의무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대신 싸워주겠다. 2014년 4월 16일, 우리는 모두 이 날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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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 안개처럼 미세 심한 아침평소 어지러움 때문에 치료차 한의원에가는길 ...지하철 모니터로 사고소식을접했고부평 지하상가 큰모니터로 전원구조속보를 봤다사람들이랑 박수치고다행이야 그치? 우리나라가 어떤 나란데!!다구했지! 안도하며 한의원에 들어섰고 그리고 침을맞으면서 한의사샘과 애들다 구조했다고 소식나누고기뻐했는데돌아오는 길에서 본 오보소식...에어포켓과 한명이라도 더...모든걸 기대하며 기도했던 그날의기억이 있네요머리좋은 분들은 왜 기억못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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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지키러 군대에서 열심히 일하는 중 이었죠처음 뉴스보고 다 구조됐구나 싶었다가완전히 뒤바뀐 상황 접하고 마음이 철렁했죠.......사람 목숨가지고 장난친듯한 느낌이었죠.........그 당시 진짜 창피한게요..............사고났으니 휴가 및 외박 제한 되겠내하고걱정을 했어요미쳐가지구요 사촌동생뻘되는 애들이 바다 속에 있는대요....................정말 미안합니다...정말 죄송합니다.........그래서 팔찌하나 샀습니다. 그런데 이런거 밖에 못하는 제가 참 원망스럽더라구요 그래사 매일하고 다닙니다 누가 안물어도 가르쳐줍니다 이거 세월호 추모 팔찌라고 우리 기억하자고 까먹지 말자고 정말 죄송합니다........기억하고 뉘우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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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인솔하고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다가, 세월호 참사 소식에 멍한 눈으로 뉴스만 바라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에는 전원구조라는 소식을 듣고 휴, 다행이다 하고 잠시 소식을 놓고 있었는데 곧 들려오는 소식은 믿을 수 없더군요.. 잊지 않겠습니다. 따뜻한 시선, 관심한번 보내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지금부터라도 꼭 지켜볼레요.아이들을 위해서라도꼭 함께 밝혀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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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침몰한 세월호에 탑승한 친구들과 같은 나이, 같은 학년의 학생이다. 사건 당시 나는 학교였고 생방송으로 방영되고 있는 세월호 침몰 영상을 학급에서 함께 보고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선생님과 선원들 말을 잘 들으면 모두 살 수 있다."며 방송을 끄고 수업을 시작하기를 요구하셨고 곧 전원 구조되었다는 속보가 나왔다. 선생님은 "거봐, 말 잘 들으니까 다들 살았지."라고 하셨다. 그러나 곧 오보임이 드러났고 우리는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구조 작업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엄정 대처의 중요성을 입버릇처럼 강조하던 대통령은 그때 올바른 대처를 하고 있었는가? 뉴스를 보며 우는 친구들도 있었고 기도를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청와대는 하지 못하는 그날 내가 겪은 7시간을 똑똑히 기억한다. "가만히 있으라." 행동하지 않음은 모두를 가장 최악의 상황으로 이끌었다. 친구들의 죽음은 내게 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그로부터 2년 반, 가만히 있지 않았기에 많은 것들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나라는 마치 세월호에 탑승한 것 같다. 한 번 겪었기에 아팠던 그날처럼 침몰 시킬 수는 없다. 가만히 있어서는 안된다.기억하자 잊지 말자 2014 04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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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수 없는 2016년 4월 16일 집에 돌아와 티비를 키자마자 본 세월호 뉴스 아직도 잊을수도 없고 잊고싶지도 않습니다. 아이들을 충분히 살릴수 있으셨을텐데 7시간동안 무얼하셨나요. 단원고 친구들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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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가 조금 넘어서부터 뉴스속보가 나오고 구조되지 않고 있는 모습에서 의구심을 갖기 시작하는데 얼마지나 진원구조 됐다라는 속보를 보며 정부가 국민들을 대상으로 속이며 우롱하려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울분을 참지못하고 경악했던 일들과기울어진 창문안에 아이들이 보이는데도 구조하지 않고 지시만을 기다리듯 빙빙돌다 팬티바람인 선장을 구하는 모습이란 과관그자체였고 구조헬기에 타고온 정치인들과토다른정치인들은 구조된 아이들과 사진찍어야 한다며 트라우마에 빠져있는 그나마 구조되 배를 타기 싫타고 하는 몇안되는 아이들을 배에태워 육지로 이동시키는등 상식을 벗어난 행동들을 일삼았던 대한민국의 정치인들 이 생생히 기억납니다이제는 우리국민들 또한 공부만 잘해 어디출신 어디에서 어떤경력을 한 사람들을 뽑는게 아니라 국민들을 아낄줄알고 위할줄하는 기치관을 올바르게 배워 어려움에 처했을때 일사불란하게 지시하며 움직일수 있도록 교육되어진 정의로운 사람들을 정치에 새워야 한다고 생각되어집니다세월호어 아픈 기억은 절대로 잊혀져서는 안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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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놀고있었습니다. 12시쯤 세월호 사건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5월에 수학여행이 예정되있었습니다. 멋도 모르는 중학생은 세월호 유가족을 비난하고 헐뜯었습니다. 2년이 지난지금 그들이 억울하다는걸 알았고 욕한 내자신이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을 대변하는 현 국회의원 박주민변호사를 보고 새로운 목표가 생겼습니다. 나도 억울한 우리 국민들을 모두가 외면해도 그분처럼 대변하고싶습니다. 유가족여러분 그리고 희생자 형 누님들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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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아침 출근길에 사람들로 꽉 찬 전철안에서 세월호 침몰 기사를 봤어요.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다들 세월호 기사로 수근 거리고 있었죠. 막 침몰하고 있어서, 기사보면서 아 점심때쯤엔 다 구출되겠거니 하고 회사에 도착했지요. 점심때쯤엔 다 구출될거라고 정말 아무 의심없이 그리 생각하고 있었죠. 회사직원들도 다들 그렇게 당연하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째서, 왜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질 줄은 전혀 상상도 못했어요. 그 날 아침기억이 정말 아직도 생생하고 여전히 어제 일같기도 하고 몇일전 일같기도 하고 아직도 그 사건을 떠올리면 눈물이나네요. 믿기지도 않고, 믿고 싶지도 않고, 너무 아픈 기억이네요. 저는 당사자도 그 가족도 아니지만, 여전히 그 시간에 갇혀버린거 같네요. 7시간이 꼭 밝혀지리라 믿어요.모두의 간절함이 힘이되어 꼭 밝혀지길 바라고 또 바래봅니다.모든 진실이 다 밝혀져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전 탑승자들과 가족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 친구들을 마음편히 놓아줄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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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시 중학교 2학년 이였는데, 수학쌤이 사고가 일어났다했었는데, 아무생각없이 친구들이랑 재미있게 학교 생활하고 집에가서 티비를 봤고 많이 울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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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들과 점심식사를 하기위해 식당에 들어갔을 때 tv를 통해 세월호가 침몰되고 있는 것을 생경한 눈으로 쳐다보았어요,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거든요. 그땐 모두들 구조되었겠지 생각했는데 저녁 뉴스는 그런 보도가 아니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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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수학여행의 마지막 일정이 끝나고 점심을 먹은 뒤 단체버스에 타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들다가 주변이 시끄러워서 깼는데 버스티비에서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듣고 소름이돋았다.몇십분 뒤 , 모두 구출되었단 기사를 보고 다행이다 생각했지만 그 기사는 오보였다. 정말 마음이 아팠고 수학여행이라고 들떠서 몇일전부터 옷사고 계획짜며 기대했을 고2선배들을 생각하니 너무 슬펐다. 난 아직도 그 날이 생생히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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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이 살아돌아왔다면 여느때와 다름없이 저녁을 먹고 야간자율 학습을 하고있었겠지?나는그날이 생생하게 기억이나 지구과학시간에 선생님께서 배가침몰했다는 뉴스를 틀어주셧어 전원구조라는 그 기사를말이야 나는안도하고 휴대폰도 보지않고 공부를했어 야자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니 엄마와 언니가 티비앞에서 하염없이 눈믈을 흘리고있었어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추웠을까 아직 못다핀 꽃 하늘에서 꼭 피우길 바라 얘들아 그러니 너무 걱정말고 편히 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