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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때 첫 뉴스를 접하게된게 4교시 과학시간 끝나갈때쯤 점심먹으러 달려가려고 준비자세 잡고있는데.. 갑자기 과학선생님께서 뉴스를 보여주셨습니다. 배 한척이 침몰되고있다는 뉴스였습니다. 그때 정말 저는 뭐지 진짜인가..? 그런생각이 들며 대통령이 빨리 사태파악하고 학생들이 모두 구조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기독교를 부모님이 믿으시는데 살아생전 처음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접한 뉴스는 가관이였습니다. 무능한 박근혜 대통령은 사태파악 조차 못하고 구명조끼 입었는데 왜 구출을 못하냐. 는 식의 질문을 던졌고 저는 리모컨을 던질뻔 했습니다. 7시간동안 잠적탄것까지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사건현장으로 오면서는 사태 파악 못하고 뭐한건가요? 국민의 혈세로 뒷돈 주고받느라 피곤하셔서 퍼질라게 주무셨나요?정말 저런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대통령이였다니.. 정말 자괴감이 들지경입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최순실 게이트 사건이 터졌습니다. 참.. 16년 인생에 인생초반에 이런일이 생길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게 나라인가요? 전 아직 중학교 3학년이지만 꼭 제가 살아갈 사회는 한걸음 나아간 발전된 사회에 살고싶습니다.아니 제가 살아가는 사회는 발전한 사회가 아니라도 최소한 발전중인 사회라면 참 좋겠습니다. 꿈을 못이루시고 멀리 떠나신 단원고 선배님들.. 잊지않겠습니다. 꼭 미래가 밝은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박근혜는 하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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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그날일 초라도 빨리 밥을 먹으러 급식실로 내려가 줄을 서면서야, 다 구조됐대 전원 구조래....춥고 비오는 날이었다스파게티를 먹으러 뛰어갔었다이 추운 날 얼마나 놀랐겠냐고그래도 구조돼서 다행이라고스파게티를 먹으면서 친구와 말했다그 급식실엔 구조되지 못한 300명과 동갑인 내 후배들 내 동생들이 똑같이 스파게티를 먹으러 줄을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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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선생님과 밥을 먹고 있었어요. 지금은 이사 온 동네지만 또렷이 기억이 나네요. 집 옆 도로를 조금 걷다보면 굴다리가 나왔는데, 거길 지나면 있는 족발집에서 매운 족발을 먹었었죠. 그리고 또 걸어서 한 카페에 갔어요. 아주아주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선생님과 헤어져서 집에 가는 길 버스에 타 핸드폰을 봤는데 뉴스가 하나 뜨더라구요. 배 하나가 가라앉는다는 기사였어요. 전원 구조라고 괜찮다고 하기에 큰일날뻔했구나..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집에 오자마자 가족들이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뉴스를 봤어요. 아직도 거기 사람들이, 학생들이 있다고 했어요. 아까는 분명 전원구조라고 했는데, 그게 오보라고? 어떻게 그게 오보일 수 있어? 방에 들어가서 뉴스를 더 확인했어요. 실감이 나질 않더라구요. 몸은 머리보다 빨리 알아차린건지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엉엉 울면서 기도를 계속 했어요. 그래도 그 때는 막연히 구조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하루 지나고 이틀 지나고.. 학교 쉬는 시간에 티비를 켜면 나오는 뉴스에서 누가 구조되었더라는 소식을 들을 때 마다 눈물을 쏘도 그 모든 일상이 죄스럽고 내가 밤에 침대에 누워 잘 때 마다 차가운 물 속에 계실 희생자분들 떠올라 뒤척이고 울고 기도하고. 그 때 희생자 분들은 저보다 두살이 더 많았는데 이제는 동갑이 되었군요. 이년이 지났지만 모든 것이 생생합니다.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요 그 감각을. 얼굴도 본 적 없는 그들이 사무치게 그립고 안타깝고 미안하게만 느껴지던 그 감각. 아무것도 하기가 싫고 무력하고 실감이 나지 않고 야속하고 죄스럽고 원망스럽고 죄송하고 허무한, 전국이 구렁텅이로 빠져든 것만 같았던 그 시간. 기억이 안 난다고요. 모르겠다고요. 당신들은 사람이 아닙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이 참사 하나 때문에 당신들은 사람이 아닙니다. 모든 걸 알고 침묵하고 늦게 보고하고 그래놓고 피해자 가족분들로 하여금 자식을 죽도록 내버려둔 살인자에게, 당신들에게 무릎 꿇도록 한 당신들. 죗값 치를 수 없을 거예요 평생. 뭘 해도 모자랄테니까.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어둠은 빛을 몰아낼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피해자 가족분들의 행복을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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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백화점에서 근무하는 나는 맛없는 점심을 먹고 별 생각없이 휴게실에서 두 다리를 쭉 뻗고 휴게실 안에 틀어져 있는 티비를 보았고, 배가 가라앉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솔직히 처음엔 대수롭지않게 생각했다. 왜냐면 당연히 다 구조될거라 믿었으니까. 같이 티비를 보고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생각했고, 서로 그렇게 말했다. 금방 수습될거라고. 그리고 그 생각에 부합하듯 전원 구조라는 뉴스가 나왔다.그래, 요즘같은 시대에 저런 일이 일어나는것도 웃기지만 다 못구하는것도 웃긴 일이야. 말도 안되는 일이지. 나는 그렇게 속으로 생각했다.그런데 내 생각을 비웃듯 "웃기고 말도 안되는 일"은 상황이 점점 심각해졌고, 퇴근길에는 컴컴한 밤바다에 완전히 잠긴 배를 보았다. 여전히 나는 현실적이지 않은 그 장면에 우리 나라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벌써 2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 날, 그 배를 떠올리게 하는 것들을 보면 눈물이 나오려고 하는 것을 꾹 참는다. 미안하도 또 미안하고 울 자격도 없는 것 같아서. 그래도 목에 건 카드 지갑에 달린 노란 리본을 보며 미안함을 상기시킨다.진실은 침몰하지 않으며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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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가 학교에 허둥지둥 등교하고 바빴던 마음을 달랠겸 커피 한 잔을 타서는 텔레비전 앞에 앉았는데 배가 침몰했다고 했다. 깜짝 놀라 출근중이던 남편에게 소식을 전했더니 설혹 배가 침몰하더라도 규모가 큰 배라서 승객을 구조하는데는 문제가 없을거라고 남편은 말했다. 그렇지만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아이들은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날 마시려 했던 커피는 하루종일 식은채 테이블에 남겨져있어야 했고 나는 커피를 마시지 못했는데도 벌떡거리는 심장을 어찌하지 못한채이 일을 어째...... 중얼거려야했다. 퇴근한 남편은 아무 일 없을거라 말했던 자신의 말때문인양 미안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눈물이 먼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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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단원고학생들과 동갑입니다 그날 학교에서 쉬는시간에 인터넷을 하는 도중 실시간검색어에 뜬 것을 보고 교실티비를 틀어 친구들과 함께 보았습니다. 당시 뉴스특보 자막에는 전원구조 라는 말을 보고 친구들과 안심을 하고 다행이라 생각하며 손뼉을 쳤죠 . 전 같은날 다른학교에서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친구에게 안부를 물었죠..하지만 오후수업이 끝난뒤 뉴스를 보니 오보라는 것을 보고 친구들과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해경이 구조중이라 했을때에 그들을 믿으며 친구들이 구조되기를 바라며 하루종일 뉴스를 보았어요, 에어포켓부터 시작해서 여러가지희망을 가져보았지만 너무 비극적인 결과가 되었죠 도대체 그 7시간동안의 일을 왜기억못하는지 묻고싶습니다. 저는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날을 절대 잊어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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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 때 였어요. 제가 동아리 활동으로 4.19 기념관에 갔다가 친구랑 같이 동네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고있었는데 가게 안에있는 조그만 티비에 세월호 뉴스가 뜨더라구요. 배 안에 탄 사람들 대부분이 고등학생이라고 하길래 정말 놀랐었고, 저랑 두살 차이밖에 안났기 때문에 마음이 더 안좋았죠 . 근데 얼마 지나지 않아 거의 구조 됐다고 뉴스가 나서 친구와 저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고 분식집에서 나와 저는 집에서 다시 소식을 접하기 전 까지 까맣게 잊고 놀았습니다, 그 뉴스를 믿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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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살고 있는 저는 뉴스기사를 보던 남편의 한마디 "한국에서 배사고가 났는데 전원 구조되었대" 를 듣고 " 다행이다" 이렇게 말하고 아무렇지 않게 일상의 일들을 하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얼마뒤 오보라는 소식을 접한 뒤 점점 무언가 이상해진다라는 느낌. 인터넷을 통해 접한 많은 학생들이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됬습니다. "왜 구조를 못할까?" 가 아닌 "왜 구조를 안할까?" 의 제 물음이 현실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진상규명 될때까지 끝까지 기억하고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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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은 경기도교육청에서 진행하는 고등학교 2학년 대상 영어듣기평가날이었다.당시 나는 고3이었기에 언제나 그랬듯 다음날 있을 영어듣기평가를 준비하면서, 또한 중간고사를 공부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어서 친구들과 1층으로 뛰어내려가 밥을 받고 자리에 앉아 떠들고 있었다.항상 핸드폰의 실시간 검색어를 확인하면서 밥을 먹었는데, 그 당시에 핸드폰 밧데리가 없어서 친구에게 지금 실시간 검색어가 뭐냐고 물어봤었다. 친구는 "세월호 전복"이라고 말했다.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나는 그냥 작은 통통배가 전복되었다고 생각했다. 실시간 검색어를 알려주던 친구도 키워드만 알려주었지, 상세하게 알려주지 않았다.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렇게 여느 일상과 다르지 않게 8교시까지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자습을 하러 가기 전 다시 한 번 실시간 검색어를 보았고 여전히 떠있는 "세월호 전복"을 클릭하고서 나는 그 하루를 아무 생각없이 보낸 것을 후회했다. 내가 다른 날들과 다르지 않게 보내고 있던 평범한 하루를, 누군가는 바닷속에서 하염없이 구조를 기다리다가 그렇게 하늘로 갔다. 내가 조금만 더 기사를 일찍 봤더라면, 내가 조금만 더 친구에게 물어봤다면, 그 아이들을 위해 기도했을텐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대로 짐을 싸서 집에 돌아갔다.세월호가 3~400명을 태운 유람선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큰 배가 쉽게 전복될것이라는 생각은 더더욱 하지 못했다.2014년 4월 16일의 하루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루이다. 며칠 전 세월호 추모곡인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리는 곡을 들었다. 자그만한 빛 하나라도 존재한다면 그 곳은 더이상 어둠이 아니다. 이제라도 나는 기억하려한다. 가끔씩 잊혀지고 있던 그날을 기억하려하고, 작은 촛불하나를 키려한다. 나 혼자만의 불빛이 아닌 수백만명이 모인 촛불로 어둠으로 덮으려는 정부를, 권력을 이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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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을먹으면서 뉴스를 보았다. 세월호가 가라앉고있었다는거다. 하지만 난 배가 가라앉을때도 있다는생각에 무신경했다 그래도 마음에걸려 학교에서 햔드폰을 내지않고 페이스북을통해 세월호가 가라앉고있다는 소식과 모두 구조했다는 소식을 봤다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난 생각이 짧았었다. 거짓이었다 . 너무 화가났고 어이가없었다. 그때당시 세월호선장만을 욕했지만 과연 그사람만 욕을 먹었어야하나 그7시간동안 우리도 핸드폰을보고 집에서도 뉴스로보면서 7시간을 방성했지만 대통령사람은 단한번도 나오지않았고 배가 모두 잠길쯤 대통령이란사람이 왔다. 수도없이 욕이나왔다 왜이제서야 모습을나타내는지... 저기요 얘기하는걸보아 이해도못하는데 7시간동안 정작 당신은 무엇을 하고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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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던 고통과 힘겨루기 하던 시간들이 떠올라 잠들지 못하다 그날에 남겨뒀던 기록들을 꺼내어 봤어요그저 가슴이 아프다가 미어지다가 저리다가 착잡하다가 참담하다가 비통하다가 침통하다가 숨통이 막히다가 분통이 터지다가역겨운줄 스스로의 양심에도 모르는 속물들 인생 그렇게 사는거 아니라고 재수없는 아가리 섞어빠진 눈탱이 휘어버린 잣대 그게 너라고이녀석들 죽어도 못죽는구나 싶어요 어떻하면 좋아요더많이 분노하고 더많이 저주할꺼야 용서받지 못할짓 해서는 안되는 거라고우리 아이들 잊지 말아주세요 청와대를 떠나며 가족들이 언론에 울부짖습니다 제가다 죄송합니다 저분들 다른것도 아니고 영정사진을 안고 왜 청와대까지 가셔야 했는지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줄 알았는데 더 애통하네요 더 애가 타네요 가슴을 치네요세월호 관련 트윗들이 사라졌음 잠못자고 슬퍼했던 악몽같던 일들이 절대 있었던 일들이 없어지진 않아 시간을 되돌릴수 있을 만큼 대단하지도 않잖아? 신도 못해 그건얽힌 고리 같은 세월호 사건 하나님은 무슨 말씀 하시려는 걸까 그럼에도 달라지지 않는 세상은 또 뭐?도망치시면 안되요 그고통 딸 아들들 위해서라도 도망치시면 안되요 저사람들 온몸 찢겨져 죽으라고 그만한 대가 치르라고하늘도 미친날 눈물나는 노래 (바보엄마 Ost 신효범 자장가)진실로 해결되지 못한다면 오랜시간 흘러도 울컥거릴 꺼에요 평생 용서받지 못할 꺼에요 거짓된 진실이 진실 눈뜨고 살만합니까?하나님이 물으세요 얼마나 울었던 거니? 이제 안울게요 했더니 가슴에 숨이 불어 넣어지는 기분 하늘의 아이들이 나와 같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뜻밖의 무지개 소식 우리 아이들 흔들리지 않는 집에 거하기를 허락하신것 같아요세월호가 남의일? 직접적 해는 없는지 모르지만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쯤 아시면 될듯 쇼크독트린 죄로서 죄를 덮는짓 면죄될수 없는 죄로 무너져 내리기를 진심으로 기도하고 싶다어쩌다 보니 일기장을 펼쳤어요 잊지말자구요 그때의 그마음들 분노했고 슬퍼했고 허탈해 하며 밥알을 삼키지도 못했던 차갑게 얼어 돌아온 그때의 그순간들의 우리 아가들 기억해요? 멈춰버린 아직도 그대로인 세월호의 진실을 위해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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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로 계속 속보를 보고 있었고 ....전원 구조라고 해서 그냥 일상을 보냈으나저녁무렵부터 이상하게 돌아가는 구조상황에트위터를 놓을수가 없었어요 ... 생존자들의 트윗까지 모두 볼수있던 그날 저녁에만이라도 구해줬음 좋았을텐데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미안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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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게 흐렸던 날이였던거같아요안개도 자욱하게 내려와있었고..할아버지가 아침에 말해주셧어요학생들이 타고있는 배가 뒤집혔다고 난리났다고 말입니다별거아니겠지 나랑은 아무 상관없는일인데 했었습니다알고보니 사고를 당한 학생들이 다 저와 같은해에 태어난 친구들이었습니다97년생 이룬것보다 아직 못이룬게 많고 해본거보다 아직 해볼게 더 많은 엷여덟살 친구들이 물속에 같혀서 나오지못하고있다는걸 알게된후부터 초등학교때부터 오래동안 알고지낸 친구들의 얘기처럼 가슴이 아팠습니다그땐 그저 슬퍼하기만했었는데 이제는 제친구들이 그렇게 되도록 방관하고만있었던 정부가 너무나도 못미덥습니다제 친구들을 위해 나는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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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난 고등학교 3학년이었구 수업을하고있었나? 뉴스에서 큰배가 침몰하고있데요...얼마뒤 전원구조란 속보가 올라왔고 전 뉴스가 거짓말이 아닐꺼라 믿어의심치 않았어요. 신속함과 정확함을 겸비해야할 뉴스에서 몇분새 실종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날부터밤마다 뉴스를 보고 학부모님들의 곡소리를들으며 저도 생존학생이 있기를 기도하였습니다.. 많은동생들과 사람들은 별이되었습니다 그렇게 많은사람들이 죽어나갔지만 대한민국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의힘으로 바뀔수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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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8시 10분 등교일 때였습니다.1교시 수업을 끝내고 나왔을 때독서지도사 선생님이 세월호가 사고가 났고 안산단원고 학생들이 타고 있다했죠.네? 단원고요? 하고 놀랐습니다.제 첫 발령지가 안산이라 단원고를 잘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도 설마 하는 생각에 다음 수업을 들어갔습니다.2교시 수업이 끝나고 나온 시간이 10시 반전원 구출됐다해서 안심했습니다.3시간 연속 수업인 좀 바쁜 날이었죠.3교시 수업이 끝났을 때 상황이 이상해졌죠.오보라고.4교시 내내 뉴스만 봤습니다.몇 주 뒤에 제주도 수학여행 이었어요.기분이 싸했습니다.애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했고요.학교 분위기는 허청거렸지만 해야할 수업을 다 하고 무척 우울하게그러면서도 불안하게 지나갔던 7시간이었습니다.교사인 저로선 이일이 몇 주 뒤였으면 우리일이었다는 걸 지울 수가 없습니다.그리고 한 달 이상 술로 보낸 시간. 정상으로 살 수가 없었네요.밤마다 아이들이 죽어가는 뉴스를 매일 봤습니다.엄청 기도했죠.무기력하게 매일을 보낸 시간들아직도 죄책감이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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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날 평소처럼 집에서 티비를 보고 있었다. 티비에서 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간 배가 기울어졌다고. 잠시 후 전원구조라는 뉴스 속보가 떴고 다행이다 싶었다. 그러나 오보로 밝혀졌고 사망자 실종자 숫자가 점점 늘어나는걸 지켜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던 그 날들은 여전히 생생합니다. 제발 한 아이라도...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만들 수 있다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열심히 기도했었습니다. 꽃다운 나이에 열매를 맺지 못하고 떠난 우리의 아이들. 지금 이 하늘 어딘가에서 진실을 밝혀달라.......간절히 울고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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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mbc 굿모닝 새아침입니다 생방을 끝내고 오전뉴스를 준비했다. 속보. 진도 부근 500명이 탄 여객선이 침몰중이라고했다. 그 후 중간중간. 크게 속보자막이 떴다. <전원구조>부터 계속 바뀌는 속보자막을 보며 무엇인가 잘 못되어 간다고 생각했다. 대통령은 빨리 지시 안 하고 뭘하는거지? 해경은? 선배들부터 다른 부서까지 회사가 술렁거렸다. 주조실에 급하게 속보자막포맷을 만들어주러 갔고 미친듯 초조했다. 제주도 수학여행가던 학생들이라고 했는데... 학부모들은 어떤 심경일까... 너무도 충격적인 날... 그날 배가 침몰할 때까지... 왜 구조를 안 하는거냐는 말만 백번은 한 것 같다. 오전부터 데스크까지. 세월호로 뉴스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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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는 평소때와 비슷하게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함께 말이죠... 저는 나름대로 저와 제 나라, 이 모든 환경이 다 밝게 보였었습니다.그 뉴스를 보기 전까지는요.뉴스를 보자마자 제발. 제발 모두 구조되기를 간절히 소망했던것이 기억납니다. 그것 외에는 특별한것이 없었던것 같습니다.너무나도 평범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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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대학교 강의가 있었어요.수업 시작 직전에 네이버 뉴스를 봤는데, 배가 침몰하고 있지만 전원구조가 되었다는 글을 봤습니다. 학생들에게 "얘들아, 제주도 가던 배가 침몰했대. 그런데 전원구조란다. 정말 다행이지?" 라고 말하고 수업을 시작했습니다.그날은 8시간 연속 수업이 있는날이고, 학교가 통신사정이 별로 좋지 않아서 수업이 끝난후에 기사를 다시 봤어요.전원 구조는 오보였고,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배속에 있다는 글을 보고 머리가 하얘졌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계속 눈물이 났습니다. 그 다음날 수업도 그 다음주 수업에도 학생들만 보면 계속 눈물만 흘렸습니다. 저뿐 아니라 제 주변의 모두가 그랬습니다. 우리 학생들과 두살차이나는 그 아이들.그 아이들의 사라진 꿈이, 그 가족들의 절망이 제 것인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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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처럼 일어나자마자 알바갈 준비를 하며 뉴스를 켰고, 한국의 수학여행가는 학생들이 탄 배의 침몰 뉴스에 심장이 덜컹했다가 전원구조,라는 단어에 놀란가슴 쓸어내리고, 그맘때 애들이니 비속어도 쓰면서 죽는줄알았어, 엄마아빠 배 가라앉았어 그래 얼마나 놀랬니 조심해서 올라와, 같은 대화가 오갈거라고 생각하며 알바를 하러갔고, 늘 같이 바쁘게 알바를 끝내고 돌아와서 켠 티비뉴스에는 일본인 앵커가 평소같지 않은 걱정어린 표정으로 아침의 그 아이들이 다 아직도 바다에 있다고 전하고 있었다. 그게 꿈이었으면 좋았을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