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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타국땅에서 뉴스를 접했다 안도했다 다 살았다고 옆 외국 친구들이 역시 한국은 선진국이라고 말해줬다그런데 아니라고 다 수장 될거같다는 말에당혹감이 잠시 밀려왔다.그 후부터는 모든 국민이 알다시피 어린 학생들의 수장을 생방만 하는 병신 색히들의 마이크만 듣고 있었다 아무것도 해줄수가 없는 절망에 눈물만 흘렀던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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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회사에서 일하던 중이었어요. 현장업무여서 사무실에 중간 중간 들어와서 뉴스를 확인했지만 당시에 큰 걱정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한국이 그 정도로 실력이 없는 나라는 아니라 생각했지요. 전원구조 속보가 뜨고 휴게실에서 사무실에서 당연하다는듯 다행스런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대화 중 뉴스 내용에 이견을 확인하고 진지하게 지켜봤습니다. 중계방송을 보았고 뒤집힌 배에서 공기가 뿜어나오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우리나라의 모습에.. 내가 갖은 상식과 믿음이 그렇게 무너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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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결코 인간이 아니었다. 아니 아예인간이기를 포기한 짐승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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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로 근무하는 저는 새벽출근이 잦았던 그 즈음을 기억합니다. 자료를 검색하며 인터넷을 여는 순간 누군가 도끼로 내 머리를 쪼개는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그 또래의 어린 여동생이 있었기에 너무나 충격은 컸습니다.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너무나 무서운 어린시절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래도 일부 희생이 있을지언정 대부분 구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16년 12월이 되는 지금. 구조는 진행중입니다. 우리의 기억속에서 진행중입니다. 51%가 만들어준 대통령 당신은 49%의 국민을 죽일 생각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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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단다.전원 구조했단다.하지만 나는 믿지않았다.가슴이 철컹 나도 모르게 눈물만 났다. 불안한 내 예상은 맞았다.그리고 나는 정부를 버렸다.난 이제 이 나라의 국민이 아니다.아이들에게 해줄 게 없어서 화가 났다.우리는 기억해야한다. 그리고 가슴아파야한다.우리의 팔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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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 있는 회사에서 업무 중 이었습니다. 회사 동료로 부터 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 가던 배가 침몰했다고 들어서, 그 이후로 핸드폰만 보고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계속 구조자 수가 바뀌는게 이상했고 얼마 안 되어 선수(?) 혹은 선미(?) 만 남는 걸 보고 이게 어찌된 일인지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있네요. 그날은 업무때문에 나가지 못하고 3-4일 후에 광화문 촛불집회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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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내뱃속에 있던 아이가 두돌이 지났어요.그날 아침출근준비하던 남편이 인터넷뉴스를 보고이야기해주었지요. 전그때 입덧중이라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한채 인터넷만 뒤지고있었습니다.몇백명의 구조대가 구조중이라는데 모두 돌아오겠지 믿었어요. 그런데 아무도 돌아오지못했어요.나는 엄마가 되었는데. 그분들은 자식을 잃었어요.모유수유를 하며 그부모님들의 마음을 알것같아 한없이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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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산악구조대를 이끌었던 리더로서 4월16일 당시 상황은, 가슴속에 뭔가 불쾌한 것이 잔ㄸㄱ 들어 있는 불쾌한 기분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야 그 불쾌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들어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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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동백 사는 친구를 ak백화점에서 만나 냉면을 먹고 야외 테라스에서 차를 마시며 세월호 사고가 전원구조라 다행이라고 서로 이야기 했다. 그러다 오보라는게 밝혀지고 한시람이라고 더 구조되길 기도했다. 그날이 기억나지 않을순 절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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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밥을 먹다 뉴스를 보고 어찌 저런 일이 이러며 안타깝게 보고 있는데 전원구출이라는 소식이 나와 다행이구나 큰일 날 뻔 했구나 생각했었지만 오고였다는 걸 안 순간 하루종일 폰을 들여다봤고 밤에라도 정부에서 손을 쓰서 구출을 해 낼 줄 알고 밤잠도 설쳤던 날이었습니다바로 몇 지인들이 준비해서 서면에서 촛불집회를 바로 시작했었고 지금까지 세월호활동을 하고 있습니다세월호 7시간 꼭 밝혀내야 합니다꽃같은 아이들을 수장시켰던 관계자들에게 꼭 책임을 물어야 됩니다박근혜의 7시간세월호 아이들을 위해서 꼭 밝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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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티비를 켠채 청소를 하다가 속보를 접하게 되었고 친정엄마한테도 전화로 안타까운 상황을 알려드렸죠. 곧 티비 여기저기서 생방송을 했고 많은 어선과 세월호 위에 떠 있는 헬기도 보았습니다. 왜 해경이 출동하지 않는지 궁금해하던차 전원 구조되었다는 자막을 분명 보았습니다. 그러나 지나가는 화면에서는 아이들은 볼 수 없고 당시 제가 받아들이기로는 배 선원만 구조되는 영상만 보았네요. 어쨌든 전원구조라는 희소식을 친정엄마께 전화드렸더니 엄마도 역시 티비 시청중이셨습니다. 그렇게 안정된 마음으로 학원에 출근했으나 전원구조라는건 오보라는걸 알게 되었고, 확인차 친정엄마께 전화드리니 저것들이 애들 다 죽인다고... 저것들이 세월호 옆에서 구조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막 분노하셨고 시간이 흘러, 엄마는 그날 하루종일 국가가 집단살인하는 생중계를 보셨다고 아직도 마음 아파 하십니다. 칠순이 넘은 나이시지만, 세월호에 늘 분노하고 아이들에게 미안해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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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강아지나 고양이를 많이 키웁니다.결혼하지않아 제 아이는 없습니다.그날 2014.04.16은 제인생 최대의 사건이였고참담함이였고 있을수없는 대 참사였어요.살짝 기울어있을때 당연히 다 구조될줄알았고그래서 아무일 아니란듯이 티비를 껐습니다.그리고 오후늦게 배가잠겨버린걸 알고 너무나황당하고 이상하고 분하고 가엽고 뭔가 억울하고여러가지 복잡하고 희한하고 가슴에 통증이 느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공부하기를 이년반여~ 너무나 미안하고 죄스럽습니다.제 반려자식들이 그런일을 당했다고 상상해도상상만으로도 미칠것같은데 그분들은 당사자들은어떠했겠습니까? 기억 안 난다니요..모른다니요..소관이 아니라니요? 아이들이 그렇케 억울하고 비참하게 갔는데 기억 안난 다니요..ㅠㅠ세월참사에관련된 누구하나라도 책임져야합니다.어느 누구라도 손톱만큼의 책임이라도 있는이는모두다 책임지고 죄의댓가를 받으십시요..할수있는한 모든 복수를 대신 다 해주고 싶습니다.응분의 죄의댓가를 꼭 반드시 싹다 치루십시요..그렇케 만들기위해 행동합니다.끝까지 죽는날까지라도 그들이 죄의댓가를치룰때까지 행동할겁니다. 앞으로도 쭈욱~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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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밝은 미소와 동시에 고통의 목소리 그리고 차가운 바닷속의 외로움을 생각하면 지금도 미칠것 같습니다..그.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을 보냈을까요... 어른들을 얼마나 원망했을까요.. ㅠㅠ 너무 슬퍼서 힘듭니다. 박근혜는 아이들을 몰살시켰습니다. 그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것이 유일하게 아이들을 위로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돌아오게 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도 박근혜는 사죄해야 합니다. 꼭 잊지.말아야 합니다. 어른으로써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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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티비에서 아이들이 구조되었다는 소식을 듣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정말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지 ...왜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있는지 ...수 많은 의심들이 들었지만 그래도... 그래도 저 아이들을 구해 줄 거라고 생각하고 믿으면서 티비앞에서 마음 졸이며 있었던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꼭 돌아오리라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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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6일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4월 8일 발인을 하고 아버지생각에 집에 올수 없어 동생집에 있다가 49제중 1제를 마치고 미처 챙겨 오지못한 옷과 여러가지를챙기러 4월 15일 집에 갔어 정리하고 16일아침에 일어나 뉴수 속보를 보고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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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아침을 먹다 YTN 뉴스 속보를 보고 수저를 내려놓고 말았다. 아무것도 할수가 없었다. 배가 침몰하고 에어포켓 이야기를 할때. 그때까지도 국가 최고 지도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잠에서 덜깬 모습으로 나타난 대통령이란 자가. 애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있다는데 그렇게 찾기가 어려운가요? 란 말을 할때. 다 끝났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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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했던 그날을 나는 기억한다여느때와 다름없이 서둘러 집을 나서고,평소와 다를것없이 왁자지껄한친구들의 웃음소리 그사이 들려오던 뉴스앵커의 목소리는 해맑았던 교실을 적막으로 만들었다적막속에, 울음을 터트리던 친구들이 있는가하면나처럼 멍하던 친구들도 있었지전원구조라는 속보에 안도하다가도오보라는 소식에 분을 터트렸던 나의 열일곱, 유난히 서늘했던 4월을 나는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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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소식을 보고 들으며 바라고 바랬습니다.구조가 빨리 이루어져 생존자들의 소식이 들리기를... 큰 배이기에 당연히 구조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했던 결과와 달랐습니다.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어떤 일도 하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추울까? 얼마나 답답할까? 얼마나 보고싶을까?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답답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미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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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오전 10시, 차별철폐대행진 발대식에 참석하고 있었습니다.10시가 조금 넘은 시각, 무심코 핸드폰을 보니 여객선 침몰사고라며 속보가 떴었고, 그 안에 300명이 넘는 승객이 타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놀랬고 순간 온 몸이 떨렸습니다....곧 이어 "전원구조"라는 속보가 다시 떠서 아마 안심했던 것 같습니다..그렇게 이런저런 일정에 뉴스를 못 보다가 저녁에 승객들이 여전히 빠져나오지 못 하고 갇혀있다는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날은 그래도 끝까지 희망을 갖고 있었기에.. 그 다음 날도... 울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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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을 수리하러 서비스센터에 갔다가 거기에서 나오는 뉴스속보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꽃다운 나이에 채 피어보지도 못한 채, 실시간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지켜봐야만 한다는 현실이 너무 참담하고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모두 다 살 수 있었던 아이들이었습니다. 정말 잊지 않겠습니다. 파란 새싹같던 아이들을 죽인 죄를 엄중히 물어야 합니다. 모두 다 처벌받을 때까지 잊지 않고 기억하며 지켜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