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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에 있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 날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으나, 2년간 했던 프로젝트가 강제로 종료되고 더 이상 할 수 있는게 없다는 생각에 고민이 많았던 나날들이었습니다. 현재에 대한 절망과 미래에 대한 희망과 두려움이 같이 있었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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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달 여 남은 중간고사에 자꾸만 감기는 눈꺼풀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아버렸는데, 너흰 자꾸만 들어오는 물살에 힘겹게 눈을 감았구나.나는 일어나라 일어나라 깨워주는 소리에 눈을 찌푸렸지만, 너흰 몰아치는 거친 파도 소리에 눈을 찌푸렸구나.그때 나는 너희와 동갑인 18살 여고생이였는데, 지금은 21살을 앞둔 여대생이다.여전히 변한게 없다.미안해, 미안하다.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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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쓰러지시고 심폐소생술로 간신히 살아나신 뒤 기계로 숨만 쉬고 계시던 할머니를 편히 보내드린 날이었습니다.. 80세 넘게 사셨고 천국에 자기 집을 지어놓았다며 자식손주들을 볼때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라며 말씀하시던 할머니가 아직도 눈에 선해 장례식장에서 참 많이 울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는 세월호 침몰에 대한 속보를 장례식장 본관에 설치된 티비로 접한 후 어느새 다들 그 소식에 눈을 떼질 못했습니다 할머니의 명복을 빌어주러 오신분들도 세월호 희생자들의 무사기환을 빌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할머니를 잊지 못하는 한 그분들도 잊지 못할것 같습니다.. 아직 찾지 못한 분들이 하루빨리 돌아오기를.. 구조되신 분들이 죄책감 갖지 않기를.. 유가족분들이 더이상 슬프지 않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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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친구는 안산에서 학교를 다니다 이사왔어요 제 친구의 친구들은 단원고를 다니고 있었어요 지금 제 친구는 안산에 가도 반겨주는 친구가 없어요 20살 되면 꼭 같이 술마시자는 어렸을 때부터 곁에 있었던 친구들 ,항상 울면 자기가 더 슬퍼했었던 그 친구들도 이젠 볼 수 가 없데요 제 친구의친구들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주세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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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대학생이었습니다.기차로 통학을 하는 학생이여서 역 광장에서 스쿨버스를 기다리다가 대합실에서 뉴스를 접했습니다.배가 가라앉고 있다는 뉴스를 보고 믿기지 않았습니다. 학교를 가고 수업을 들어도 온통 신경은 아이들.. 그때 저와 같은 공간에 있던 학생들 모두 교수님까지 다 온통 세월호 아이들뿐이었습니다.그러다 새로운 수업을 들어간 그때, 전원구조라는 기사를 접했고, 교수님과 강의실 학생들은 환호했습니다. 그렇게 행복하게 수업을 듣는도중 오보라는 소식을 접했습니다.그날의 기억.. 2년이 훌쩍 넘어 어느덧 3년이 되어가는 그날그저 작은 한사람조차 그날을 이리도 생생히 기억하는데, 괴로운 마음에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는 그날의 모든 순간을 기억하는데대통령, 당신의 7시간은 어디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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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처음에 어떤 기분이었는지 생각이 잘 안 납니다. 다만 그날 오후 느지막이 골목길을 걷다가 어느 집 담벼락 틈 사이를 힘겹게 비집고 나와 핀 작은 노란 꽃들을 보고 사진을 찍어두었고, 밤에 혼자 그 사진을 보며 배가 침몰할 당시 그 안에 갇혀있던 사람들이 느꼈을 두려움과 공포를 상상했던 기억이 납니다. 종일 보면서도 믿을 수 없고,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 무의식적으로 눌러두기만 했던 감정들이 올라와 (아무것도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하며 펑펑 울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배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면 무섭습니다. 내가 그날 거기 있었던 사람도 아닌데,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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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5일 학생식당에서 식사중 안정적으로 구조중이라는 뉴스를 보며 쉬었던 안도의 한숨이 불과 몇시간만에 안타까움으로 또 참담한 심정으로 변해갔습니다.아직은 추운 바다 한가운데에서 가족들을 그리워했을 그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아픕니다.그들의 희생이 불가항력적인 것이 아니었기에 더더욱 슬프고 분노하게 됩니다.그들과 가족들에게 간절했을 그 7시간, 대통령과 정부는 무얼 하고 있었는지 낱낱이 밝히고 사죄하기를 바랍니다.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그 날을 그 시간을 다시 기억해야합니다.그들이 평안하게 눈감는 그 순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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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때 고삼이었어요. 그래서 학교에서 선생님을 통해 소식을 듣게 됐는데 그냥 멍 했던거 같아요. 지금 하는 공부들이 부질 없는 것같고 보호받지 못한 아이들 때문에 눈물나고...무기력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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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그날 일본에 있었습니다 일본에 일본tv로 맨처음 소식을 접했고 전원구조 라는 소식을 핸드폰으로 보았을때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고 그냥 배가 가라앉았지만 모두 당연히 구조 될거라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속보를 보았을때 수학여행을 가려고 배를탄 학생들이 아직 구조되지 못했다는 소식을 접했을했습니다 그래도 구할수있겠지 지금의 기술력과 구조 장비가있다면 ...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구조소식 을 듣지못하고 갖쳐잇다고 뉴스를 보았을때 절망했고 또절망했습니다 물속에 있는 학생들이 얼마나 무서웠을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그리고 얼마나 구조를 기다렸을지 를 생각하니 지금도 가슴이 많이 먹먹해 옵니다 제가 할수있는게 없다는것도 가슴이많이 아픕니다 지금부터라도 기억하며 살겠습니다 7시간 딱 골든타임7시간 7시간동안 무엇을했나요 영화보다 어느 막장 드라마보다 더 말이안되는 상상할수없는 세상속에 우리는 살고있습니다 이미상상할수없는 일들이많이 일어났지만 정말 상상 할수도 없는 그7시간의 일들이 현실이 아니길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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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올해엔 군대 좀 가자 하면서 공석을 먹기위해 병무청 사이트를 들락날락 했지만 결국 4월 공석은 얻지못했다 그리고 몇달 뒤 입대를 했지훈련소는 두 번 다시 가고싶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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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전원구조 오보가 떴을 때 나는 뉴스만 믿고 안심을 했었어 그리고 그냥 평소와 다르지않게 친구와 놀았던 기억이 난다 너희는 그 힘든시간을 어떻게 견디고 있었을까 그냥 안심하고 넘겨버린 내가 원망스러워 나의 4월 16일은 이랬어 너희를 평생 기억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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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은 아침마다 학교에서 걷어갔고, 처음 소식을 들은 건 선생님의 한 마디였어요. 지금 아이들이 바닷속에 갇혀 있다구요. 이렇게만 말하고 교실에서 나가셔서 무슨 말인가 했는데 점점 들려오더라구요. 전원 구조다, 오보다, 몇명이 실종이고 몇명이 사망이다. 너무 화가 났어요. 2014년에 그렇게 많은 희생이 어디 있어요. 이해도 가지 않았고 학교에 가도 친구들이랑 같이 울고 집에선 부모님이랑 뉴스만 확인했어요. 나보다 딱 한살 어린 아이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죽었다는게 너무 슬프더라구요. 저는 앞으로 성인으로서의 새로움에 들떠있었는데 아이들은 그럴 수도 없게 된 거잖아요... 대통령님 당신이 뭔데 아이들이 배안에 갇혀있는 그 7시간동안 아무런 지시도 내리지 않았나요? 어디 숨어 계셨나요? 아니 왜 숨으셨어요? 우리 나라 전체가 들썩였는데 설마 7시간동안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고 하실 수는 없을거에요. 그렇죠? 당신에게 진심으로 진실을 요구하고 싶어요. 진짜 사람이시긴 한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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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 그곳은 너희를 웃게 해주니 ?그곳에선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거니?너희들에게 거기서만은 행복하라고 ,아무 고민하지말고 웃으라고 말하고 싶은데그 날이 되면 흐르는 비는 너희의 눈물이었겠지그동안 왜 너무 안일하게 여겼던 걸까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마음속으로 작은 기도만 응원만 해왔을까이젠 그러지 않을게 너희의 소중한 귀한 생명이헛되이지 않게 더이상 너희가 눈물 흘리지 않게내가 더 노력하고 내가 더 끊임없이 외칠게.너희가 간절히 바라고 있을 그 7시간 동안난 너무 아무렇지 않게 생활을 하고 있었던것 같다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고 더 미안하고 그렇다대신 7시간의 진실 꼭 밝히도록 노력할게아니 꼭 밝혀볼게. 잊지 않을게 기억할게.침묵하지 않을게 ,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게.너희에게 미쳐 하지못했던 인사 "안녕"모든게 정말 밝혀지고 너희가 진정으로 웃을 수있게될때 다시 말해줄게. 그 때 까지 조금만 아주조금만 기다려줘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을거니까.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고,진실은 결코 침몰하지 않을거고,너와 나 그리고 우리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거야.등대처럼 밝게 빛나기만 해줘 언제나 잊지않고 기억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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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건사고보다 정말 더 크게 느껴지고 다가왔던, 그 날 학교에서 선생님께 전해 들었던 세월호 침몰 사고다행히 전원구조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쉬는시간 스크린을 내려 포털사이트에 뜨는 생존자 실종자 구조자 수를 보며 이게 무슨 일일까 싶었는데소식을 들었던 이른 아침부터 결국 야자가 다 끝날 시간인 어두운 밤 10시까지 결코 늘어나지 않았던 구조자 수를 보며,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며 핸드폰을 꺼내 세월호를 검색하고 멍하니 집에 와 오자마자 가족들과 함께 뉴스를 보며 그 다음날까지 전교생이 걱정했던 기억이 있다.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아직도 4월 16일에 세월호 영상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기억하며 그들을 그리워하고있습니다. 못다핀 꽃이 더욱 안타까운 이유는 보다 아름다운 꽃이라는 것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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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같이 학교에서 점심먹고 놀고 애들이랑 얘기하며 시간을보내고 종례때 선생님이 종이를 한장씩 나눠주시더니 오늘 종례는 없다고하고 가셨다 종이를보니 세월호가 침몰해서 우리또래 아이들이 바닷속에 들어가버렷다고 한것이다그리고 꼭 구조됫으면 하는 말과함께 그 종이의 글은 끝나있엇고 나는 마음이너무 아팠다.어떤말로도 표현할수없을만큼 무서웠고 아팟다우리학교가 원래 세월호를 탈려고 햇엇다는 얘기를 들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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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40대는 그 사회의 얼굴이고 그 사회를 이끌어가는 주역이라고 배워왔습니다.제 나이 이미 40중반이 넘었습니다만, 2016년의 대한민국의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을 바꾸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300명이 넘은 인원들이 말도 안되게 수장되는 살인행위가 자행되었는데도,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 한탄스럽네요...누구에게는 생때같은 아들과 딸 들이었는데... 너무나 부끄럽고 여러가지 진실로 판명되어야할 믿기지않는 진실들이 덮힌채로 있는 이런 현실은 당장 바뀌어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조그마한 관심이 모여 모여서 거대한 힘이 되고 2016년 대한민국이라는 수레바퀴가 험난한 길에서 무사히 올바른 길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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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같은 날이었습니다.회사에 출근을 하고, 일을 하다가 뉴스가 올라오는 것도 보고.. 그러고 있었는데,여객선 한 척이 침몰하는 중이지만 승객은 전원 구조했다는 뉴스가 나왔었습니다.그 뉴스를 보면서, 불행 중 다행이네.. 나는 내나의 일로 다시 돌아가자.. 그랬었습니다...그리고 점심을 먹을 때 쯤 다시 뉴스를 봤습니다.전원 구조는 오보였다고, 지금도 수 많은 사람들이 거기 갖혀서, 침몰하고 있는 배 안에서 못나오고 있다고 하고 있었습니다...너무나 깜짝 놀랐습니다.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어떻게 2014년의 우리 나라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지 당혹스러웠습니다. 결국 그 참사는 일어나버렸고, 한동안 계속 우울함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사실 지금도 꽤 우울합니다. 그 사건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지금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버리는 때도 있는 데, 그건 그 사건이 그만큼 충격적이었고 고통스러웠고, 비참했고,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하지만 외면하고 있을 생각은 없습니다. 보고싶지 않은 것에서 고개를 돌리면 내 눈 앞에서는 그게 안보이지만, 그게 거기 있다는 것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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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따라 늦잠을 자서 늦게 일어나 밥을 먹다 티비를 틀어 접하게 된 소식이었는데, 곧 이어 전원무사구조 라는 속보가 떴고 "다행이네"라는 생각으로 식사를 마쳤습니다. 그 때까진 전날까지의 일상과 별 반 다르지 않았지만 그 속보가 오보였음을, 그리고 함께 공부하던 스터디원의 모교였음을, 그의 선생님께서 순직하게 되셨음을 알게된 후부터 전과 같이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하루종일 뉴스만 멍하니 보다가 우울해지고 이러다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에 걸리겠다 싶어 저와 같은 처지인 친구와 만나 카페에서 밤을 새기도 했습니다. 이 말도 안되는 대처가 계속되는 소식을 피하기 위해서요. 직접적 관련이 없는, 그저 국적이 동일하다는 공통점밖에 없는 저조차도 이렇게 마음이 동요하고 일상 생활이 불가능했는데 7시간 동안 이 나라의 대통령은 뭘하고 있었던 걸까요.저는 그 날 너무나도 평소와 다를바 없었던 제 일상을 잊지 못합니다. 그와 학생들의 일상이 너무나 대비되었기 때문에. Remember201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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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앞 뒤가 다른 변명과 회피에 고작 우리가 할 수 있었 던 일은부디 한명도 빠짐 없이 최대한 많은 인원이 빠르게 구조되는 것하지만 그 바램은 이뤄지지 않았다하여 노란리본을 달며 매년 이 날 7시간을 잊지않아주는 것 조차 할 수 밖에 없는 우리가 되었다.하늘에서라도 못다한 꽃을 피워주는 걸 바라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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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처음 기사와 뉴스를 보고 에이 설마 아니겠지 곧 구조 되겠지 라고 생각하고있었고 버스안에서 세월호와 관련된 위로와 소식들을 리트윗하며 조금이라도 더 퍼져나가도록 하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의 절박한 글을 보며 어리둥절 이게 무슨 도대체 마른 하늘의 날벼락 같은 일이야라고 하고 있었다그 때 찬 물에 있었을 사람들과 찬 바닥에서 그 사람들을 마냥 기다리고만 있었을 보호자들을 생각하면서 울컥했던거같고 나는 지금도 세월호 마지막 생존자 학생의 사연을 보며 눈물을 이렇게 쉽게 흘릴 수 있는데 내 눈물보다 그때 더 많이 아파하고 토해내듯 울부짖었던 당사자분들은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도 못하겠어서 슬퍼하는것조차 송구스럽고 부끄럽다앞으로도 일이 투명하게 해결될때까지 주의와 관심 기울일 것 입니다. 모두들 힘내주시길..다시한번 고인의 명복을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