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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동료 들과 바깥 나들이중 이였습니다.침몰 소식을 듣고 서둘러 돌아오는길 ..차안 라디오에서 전원 구조 소식에젤 나이 많은 분께서 노래를 부르셨지요!오메 ~ 좋은거새끼들 다 살았다네 .~~그런데 ...그런데그 이후 제 삶은 일을 그만두고 있습니다.영업 일에 집중 할 수 없어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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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근무하는데, 같이 일하는 동료가 평소에 휴대폰을 너무 많이 하느라 업무가 소홀해서 그닥 좋아하진 않았었어요. 그 날도 환자 돌보고 데스크로 들어왔는데 역시나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그 동료가,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채 큰 일이 났다고 속보를 전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구조가 되었다는 뉴스가 바로 떠서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직원식당에서 점심 먹는와중에 오보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그 다음날, 그 다음 다음날도 저는 휴대폰을 붙잡고 계속 바라보고 있게 되었습니다. 직원들도, 환자들도 모두 제정신이 아니었던것 같습니다. 정신이 반쯤 빠진 상태로 일을 하고, 수다쟁이 환자분들도 말씀이 없으신채로 한숨만 쉬시고....그 날 집에 가는 순간까지, 멍한 상태로 무언가 좋은 소식이 있지 않을까, 휴대폰의 뉴스화면만 들여다보고 있던 기억... 아마 아주 늙어서까지도 가슴에 깊이 남아있을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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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1학년 큰애가 하교하기를 기다려 함께 치과 진료를 갔습니다. 점심시간 직후여서 사람도 별로 없고 한가롭게 아이가 치료를 마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TV 뉴스에서 사고 장면을 보내주고 있더군요. 전원 구조라고 보도가 되고 있기에 다행이라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서 다시 켠 TV에서는 침몰해 가는 배와 함께 수백 명의 사람들이 여전히 갇혀 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더군요. 한참을 먹먹하게 지냈던 기억이 납니다. 유가족의 아픔을 외면하며 눈물연기까지 했던 대통령도 기억나고... 그 날 이후로 더욱 나빠져만 가는 상황이 서글프고 화가 납니다. 2014년 4월 16일, 모두에게 무력감과 슬픔, 분노를 안겨주었던 그 날, 저에게는 평범한 일상이었지만 수많은 분들의 세상이 뒤바뀐 그 날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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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그날은 다른날과 크게 다를것없던 날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다 tv뉴스에서 배가 참몰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많이 염려스러웠지만 작은 통통배도 아니고 저렇게 큰 유람선이 순식간이 아니라 서서히 가라앉고 있는데 당연히 다들 구조되겠지하는 안일한 마음이었습니다. 수학여행을 가던 아이들이 타고 있던 배라길래 아이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갔을텐데 안됐다 하는 마음도 들고 학창시절 갔던 수학여행을 곱씹어보기도 했습니다. 전원 구조됐다는 소식이 다행이다하며 안도하다 오보라는 소식에 마음이 철컹 내려앉았습니다. 세월호의 모습이 점점 물속으로 사라질때마다 뉴스만 보며 기도했고 안에 갖혀있을 아이들 생각에 눈물과 공포가 함께 다가왔습니다. 아직도 뉴스속에서 아이를 찾으러 온 부모님들의 모습이 가슴속에 남아있습니다. 7시간.. 너무나도 긴시간입니다. 차가운 배안에서 숨이 막히는 공포와 고통으로 사라져갔을 아이들 생각에 2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한달전 아니 일주일전에 제가 뭘 했는지도 기억나지않습니다. 하지만 그날만은 전국민이 자신이 뭘했는지 기억하고 있을겁니다.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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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날씨의 아침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남편과 아이들을 서둘러 출근과 등교를 시킨 뒤 대충 정리하고 한숨 돌리고 있었습니다. 가스검침원 아주머님이 검침을 하러 오셔서 정말 큰일났다고 하더군요. 뒤늦게 티브이를 켜보니 바다 위에 기울어서 떠 있던 세월호의 모습이 나오더군요. 기울긴 했지만 너무나 조용히 떠있는 모습에 당연히 인명구조에 어려움은 없겠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배는 계속 전복되고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설마 설마 하면서 그렇게 아이들을 떠나 보냈네요. 그냥 망연자실 눈물도 나지 않고 멍하게 며칠을 보냈습니다. 그날 그 흐린 하늘과 바다와 세월호의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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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처럼 출근을 하려고 2호선 낙성대역으로 내려가서 스마트폰 페이스북을 봤었지. "세월호" 란 배가 침몰했고 곧 "전원구조" 라는 내가 안도해도 될 뉴스를 확인하고 아무렇지 않게 페이스북을 두들기며 보았던 기억이 있다. 회사에 가서 내 자리에 앉아 인터넷에 실시간 검색어로 떠 있는 "세월호" 란 배 이름과 계속 생산되는 새로운 뉴스들...자리에 앉아 컴퓨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계속 멍때리 듯 모니터만 주시하고 있던 나. 불길한 예감과 무기력한 시스템.... 내가 지금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지 착시가 일어났을까? "아닐거야..." 머릿속에 맴도는 아닐거라는 이유를 따져가며 스스로 정리하고 있었던 나.그런 상태로 7시간... 아니 그 이상을 하염없이 보낸 거 같아. 그랬던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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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저는 일이 쉬는 날이라 느긋한 아침을 보내고 있었어요. 아침을 먹으며 TV를 보고 있었는데 속보로 짤막하게 배가 침몰하고 있다고 나오더라구요. 그 이후 얼마되지 않아 전원 구조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했습니다. "아..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었구나, 다 구조 되서 다행이다." 하지만 크게 할 일이 없던터라 채널은 계속 뉴스 속보에 맞춰두고 있었어요. 뉴스앵커가 전원 구조라는 뉴스를 내보내며, 구조를 도와주고 있다는 현지 어민을 전화연결을 했어요. "승객이 모두 구조되었다는데, 현재 구조된 사람들은 어디에 계시죠?"라고 묻는 앵커의 말에 당황한 어투로 말하던 어부의 말이 잊혀지지가 않아요."전원 구조라니 무슨 소리입니까? 아직 배 안에 150명 넘게 학생들이 있다고 하는데, 전원 구조라뇨?아직도 4월 16일을 생각하면, 어부의 당황하던 목소리가 잊혀지지 않아요. 아직도 배 안에 아이들이 있다고 하던나는 아직도 그 날을, 그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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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토요일 모임을 광화문에서 가졋다 시위참여도잇엇지만 세월호희생자들의 조문과 서명을 하러갔었다...2014년 당시 아이가 고2학생이었다 당일아침 뉴스에서 접하고 안타까워할뿐 한번도 분양소라든지 근처어디에가서 표현을 못햇다 실천을 못햇다...날이 갈수록 죄스러웟다...26일 첫눈이왓었다 춥지않아서인지 바로 비가되어내렷다,,, 분향소에 가서 국화꽃을 들고 희생자아이들의 사진을 본순간 너무나 미안하고 죄스럽고 부끄러웟다.... 한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과연 7시간동안 머하느라 살아나올수 있는아이들을 그대로 방치했단 말인가..꼭 밝혀내야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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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3시에 일어났다 난 밤에 일을해서 항상 그시간에 일어나 4시정도 밥을먹으러 식당에 간다...아무런 정보도 없이 단골 분식집에서 티비를 보며 떡만두국을 시켰는데 첨엔 뭔소린가 했다 저 가라앉는 배에 몇백명이ㅠ있다고?수학여행을 가던 아이들이 있덴다...분식집 할머니가 우신다..큰아들이 어린나이에 먼저 하늘로가서 아이들이 죽거나 다쳤다는 뉴스를 보면 가슴이 너무 아픈데 저배에 애들이 수백명이 있단다 어쩌면 좋냐고 훌쩍이셨다...너무 고요하게 갈앉는배를 보고 나도 소리없이 울었다...잊을수없다 기억한다..앞으로도 그럴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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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16일 사무실에서 사고 기사를 보았고 오전 11시 정도에전원 구조 오보 기사를 읽었습니다. 다행이라는 안도도 잠시.... 300여명이 넘는 고등학생이 아직 구조되지 않았다는 기사에 심장이 "쿵"하였습니다. 그날 하루종일 불안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업무를 하였고, 혹여 사망자 숫자가 늘어날까. 새벽 3시가 넘도록 잠들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그 날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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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인터넷으로 실시간 속보를 보고 있었던것 같네요.. 전원구조 라는 소식에 기뻐했고오보였던것이 알려졌을땐 절망과 분노했었어요.. 저도 당시 중3이던 딸이 있던터라... 참 지금 돌이켜보니 어떻게 그때를 지내왔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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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광주지방법원 오전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 고속버스를 타고 갔다가 오전 재판을 마치고 열한시 조금 넘어 상경하는 고속버스를 타기 위새 광주터미널에 도착했는데 그때 뒤미널 내 티비를 통해 세월호 사건 보도를 보았습니다. 또렷이 기억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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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7시간 동안 사무실에서 숨죽여 울었습니다. 도대체 컨트롤 타워는 무엇을 하고 있었으며, 한 나라의 수장이라는 대통령은 7시간동안 얼굴도 비추지 않다가 나중에서야 퉁퉁 부은 얼굴로 "구명 조끼를 입었다는데 발견하기가 힘드냐."라는 터무니 없는 말이나 하고, 그 상황을 지켜보면서 어른으로써 아이들에게 많이 미안했습니다. 집에와서도 뉴스속보를 계속보면서 아이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도하고, 또 기도했지만.... 아이들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지켜주지 못해서, 무능력한 어른들이라서 미안합니다.잊지말고 기억해야합니다. REMEMBER 201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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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차를 산 그 다음날 이었습니다.양지 바른 곳에 차를 세우고 이제 몰고 가려던 아침 열시 전후 휴대폰에 뉴스엔 몇백명이 탄 유람선 제주행 배가 난파됐다 .. 그리고 얼마후 전원구조되었다. 이런 방송이었습니다.새차이기에 잘 달여야 했기에 전원구조란 소식을 보고 바로 휴대폰을 끄고 차에 집중했었습니다. 그래서 그 날은 기억이 납니다. 새차를 몰던 기억이 아니라 전원구조가 오보였다는 사실로 기억에 남았습니다.토요일 광화문으로 갔습니다 수 많은 인파속에 호주머니에 넣어주면 따스할것 같은 군밤과 은행을 샀습니다. 반반 주세요. 반반을 넣어주고 저에게 거스름돈을 건네 주었습니다. 군밤을 팔고 은행을 팔아도 계산이 맞고 속이는게 없습니다. 우리 서민들은 우리 국민들은 적어도 그렇습니다. 적어도 대통령이 되었다면 대통령 처럼이라도 살아야 되는거 아닌가요. 비록 그 이전은 대통령 처럼 살지 못 했 다 하더라도.!!!!!!!!!!!!!!!!!!임명되고 부터는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었어야 했던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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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시와 같이 근무 중이었고, 잠시 오빠에게 생일 축하전화를 하고 화장실에 갔다가 사고 소식을 들었습니다. 놀라서 뉴스를 지켜보다 전원구조에 안심하고 다시 일을 했습니다.몇시간 후 오보였다는 소식에 손이 덜덜 떨렸고 일은 집중이 안되고 생존자 소식만 기다렸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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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때와 다름없이 회사 출근해서 세월호 사고 소식을 접하고 얼마 안되어 점심시간즈음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접하고, 마음 편히 점심을 먹고 들어왔더니, 배 안에 사람이 있다고 300명이 넘는 사람이 있다는 소리에 설마 하고 심장이 내려 앉았더랬습니다. 특히나 수학여행 가는 학생들이었고, 제주도행이라 행복한 맘을 갖고 있을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선한데, 구조하지 못하고 세월호 상공에서 시간이 갈수록 기울어 가던 배 위를 빙글빙글 돌던 헬기 촬영 장면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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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기 전까지는 단순한 전복 사고인줄 알았고, 300여명 가까운 사람들이 구조가 되었다고 했을 때는 안심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점심 이후에 구조자 인원이 갑자기 바뀌면서 모두가 놀랐고, 끝내 밤이 되면서 많은 실종자만 남았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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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때 외국에서 공부하고 있었다전원구조 기사를 읽었을 때만 해도 이 날이 이렇게 흉터처럼 기억에 남게 될 줄은 몰랐다그 때 다른 나라 친구들이 나에게 세월호에 대해 물었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그만큼 이 일은 충격적인 일이었다한 명은 혹시 나에게 그 중 아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머리 부분만 남기고 물 속에 가라앉은 배 영상을 보면서 울었던 게 기억에 생생하다21세기에 배가 침몰해서 300명이 죽는 게 말이 되냐고 분노가 치밀어올랐던 게 기억이 난다2년 반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노란 리본을 가방에 달고 다닌다그리고 매주 토요일마다 광화문에 나간다벌써 다섯 번을 나갔다2만 명이 20만 명이 되고 100만 명이 되고 150만이 되는 걸 나는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온 몸으로 느꼈다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모였다는 게 얼마나 소름이 돋고 전율이 흐르는 일인지 느꼈을 것이다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우리의 함성과 촛불과 분노는 세상을 바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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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직장동료들과 점심 먹으러 간 식당에서 나온 뉴스를 보았으니 대략 12시 전후였을 것 같습니다. 수학여행 간 배에 사고가 났다고요. 뉴스에서 학생들이 모두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에 뛰어들었다고 말했고, 동료들과 저는 바다로 다 뛰어들었으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면서 근데 오늘 날이 꽤 쌀쌀한데 물속에 있으면 저체온증 오는 거 아니냐, 최대한 빨리 구조해야겠다고 얘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안심하고 밥을 먹고 사무실에 돌아오니 그 때부터 뉴스는 난리가 나있었고 그 뒤로 한동안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뉴스를 볼 때마다 울고, 먹먹했던 기억 뿐입니다. 1년 뒤 4월 16일에는 날이 흐리고 또 비가 내렸습니다. 친구 어머님 말씀이 많은 목숨들이 스러진 날에는 비가 내린다고요. 아직도 그날의 기억은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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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P에서 근무하던 저는 밤샘 근무를 끝내고 근침을 취했습니다. 점심도 거르고 잠을 자고 일어나니 여객선이 침몰했지만 학생들이 전원구도 되었다는 뉴스가 속보로 나오고 있었습니다. "다행이다"라고 생각하고 사지방에 가서 인터넷을 하다보니 하나 둘씩 믿겨지지 않는 기사들이 속보로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전 2013년의 4. 16, 2012년의 4.16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2014년, 2015년, 2016년 4월 16일은 똑똑히 기억합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기위해 청춘을 바치던 제가 정말 나의 도움이 필요한 국민들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치욕감은 도저히 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