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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출근해서 언제나 그랬듯이 대한민국이 간밤에 안녕했는지 인터넷뉴스검색을 했습니다.9시 23분 경부터 속보를 접했던거 같습니다. 회사 동료들에게 알렸지만 모두들 보면서 믿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점점더 기울어가는 세월호...30도 이상 기울어가는데도 해경은 커녕 헬기조차도 급파되지 않았고, 탈출을 위해 갑판위로 나와있어야할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목이 메여서 꾸역꾸역 간신히 점심식사를 마칠 무렵...전원구조???말도 안되는 오보를 국민의 방송 KBS에서 하더군요.400여명이 넘게 탄, 3분의 1이 기울어 가라앉은 유람선에서 1~2시간안에 전원구조????? 전....그날을 기억합니다.슈퍼맨이라도 되서 두손 번쩍 들어올릴 수만 있다면...정말 있다면 아메리칸 히어로들이 나타나주길....하지만 아무도 그럴 수 없음에 좌절해야했고 절망 했습니다.전 ...그날을 기억합니다.그날 그 시간부터 눈물이 마르지 않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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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첨엔 단순 사건 사고로 생각했지만방송국으로 빗발치는 제보 전화와 당시 긴급상황으로 정신이 없었어요. 허위제보 부터 팽목항으로 파견지원 얘기와해당지역이 아닌 곳의 방송국이었지만아직도 그날의 일은 생생합니다게다가 그 날은 동생 생일이었기에.아이들과 나이차가 비슷한 동생이었기에동생의 케이크를 사고서 잡으로 가는 그 길에케이크가 정말. 무겁게 느껴졌던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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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지루하게 이어지던 회의를 끝내고회의실 밖을 나오니 사무실이 묘하게 웅성거렸다여객선이 침몰했다고그런데 곧 전원구조 되었다고그걸로 끝인줄 알았다하지만 그 이후로도 며칠간 하루종일 뉴스를 놓지못하고 눈물지어야 했으며2년 반이 훌쩍 넘은 오늘에까지 이렇게 마음 앓고 고통스러워 하고있을줄은 몰랐다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그러나 끝날때까지 놓지 않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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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병으로 군복무 중에 주변 군무원과 장교들이 인터넷을 보고 전해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전원 구조 소식을 들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오보라는 소식을 듣고 매우 걱정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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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구조 오보를 보고 가끔있는 사고였나보다 했으나한두시간 후쯤 뉴스를 보니 너무 답답한 뉴스만 나오더군요.그때의 느낌과 감정과 상황을기억합니다.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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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름없이 출근을 했습니다. 아침마다 폰으로 인터넷 뉴스를 챙겨보곤 했는데 그 날도 마찬가지였어요. 제가 일하던 팀에서 제가 가장 먼저 세월호 소식을 들었고 팀원들에게 "수학여행 가던 배가 침몰했는데 다 구조됐대요. 어휴 순간 타이타닉 생각이 났네." 라고 말하고는 오전 업무를 계속하고있었는데 전원 구조됐다는 게 오보라는 걸 듣고 타이타닉 얘기를 한 제 자신이 너무 미안했습니다. 그래도 다 구조가 될거라 믿었는데.....다람쥐 챗바퀴 도는 평소와 다를 것이 없는 하루였지만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아직 어제처럼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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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름없이 회사에 출근하여 일하고 있었습니다.일하던 중 인터넷 뉴스를 통해 사고 소식을 처음 들었고 전원구조 뉴스를 보고 안도했습니다.그렇지만 전원구조가 오보로 밝혀지고 나서는 회사에서 계속 뉴스를 찾아보면서 일했던 기억이 납니다.너무나 큰 사고라 오히려 현실감이 없었는데 정보가 조금씩 공개되면서 걱정과 분노가 커져가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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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학교보내고 TV켜니 세월호 충돌 전원구조 속보 뜨길래 손뼉치고 다행이다하고 계속 보고 있었고 그때 안산부모님들 다행이지만 직접 봐야겠다고 버스타고 가시는 모습 나왔고 한시간반쯤인가 지나서 구조된 사람들 배타고 여기로 내릴것이다라며 어느 항구로 현장이 바꼈었는데 기다려도 내리는 사람의 수가 얼마 안돼고 현장에 나가 있던 기자들 당황하고 스투디오 앵커들 당뢍하고 그때부터 화면위에 있던 구조 실종자수 뒤죽박죽 되고 그때부터 하루종일 채널돌리고 인터넷 찾아보고 어느 한군데도 점확한곳이 없었어요 오후 둘째가 학교 갔다올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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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티비보고 엄마가 이런일이 있대~근데 구조됐대 하시길래 글쿤 하며 급히 학교를 감. 두번째 수업 듣다가 핸드폰을 보니 네이버 기사에 난리가 남.. 그날 교수님까지 모두가 멘붕이 되어 수업 안했던 기억이 남. 그 교수님 시간 너무 어렵고 졸려서 뭐했는지 기억도 안났는데, 4월의 그 수업은 확실히 기억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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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남편이 항상7시 30분쯤 출근준비를 시작하기때문에 제가 티비를 남편과 편안하게 누워서보고 있었던 시간은 대략 7시 15분에서 20분쯤일겁니다 티비 뉴스 자막에 세월호침몰기사가나왓던걸 남편과 같이 보고는 너무 놀라했던게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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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가깝지는 않지만 보길도 근처에서 함해중이었죠.제가 보통 6시쯔에 일어나서 운동도 조금 합니다.이저리 운동 조금하다 들어와 시간을 보니 대략 7조금 넘었드라구요 .티브이를 켜고 체널이 KBS 2방송에 굿모닝 아침인가 .?무심히 보는데 화면 아래 자막이 뜨는 겁니다 그래서 뭐지 하고 자세히 보려고 자세를 바로 않으니 자막이 사라져 버렷어요.자막 내용은 기억 나는대로 대충(서해안 해역 부근 여객선 좌초)이런 내용 이었다고 기억 합니다.그리고 좀있어니 세월호 침몰속보가 본격적으로 시작됬죠.몄번의 속보 오류 그리고 그속에 갇힌 아들 딸 같은 삭생 일반인 들의 구조 과정과 정부의 무능력 대처들 그리고 오후5경 대통령 브리핑의 그한심한 작태까지 몄날 였일인징 모를 아이들 부모들의 절규 까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 하면 눈물부터 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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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대학원 입학 후 첫 중간고사 기간이어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도서관에 있던 중 핸드폰 뉴스 속보로 여객선 침몰 소식이 울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원 구조 되었다는 속보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큰 걱정없이 공부하다가 수업에 갔습니다. 별 일 아니네!라 생각했습니다. 친구에게 별일 아니잖아~라며 걱정말라는 말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계속 뉴스 알림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전원 구조는 오보였고, 세월호가 침몰 중이라는 사실을, 사망자 수가 한 명씩 늘어가는 내용을 알리는 속보가 분 단위로 도착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세월호 침몰 당시, 별 일 아니니 공부해야지라고 생각했던 제가 너무 부끄럽습니다. 끊임없이 반성할 것입니다. 머리가 멍해지던 그 기분을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을 꼭 기억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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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전 직장이 된 사무실에서 누군가 켠 TV로 처음 소식을 접했습니다. 업무가 많아 따로 뉴스를 검색해볼 짬은 많이 나지 않았고 업무를 처리하면서도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서 뉴스 화면을 보던 기억이 납니다. 왠지 사무실 조명이 어두웠던 것 같습니다. 답답한 영상과 속 시원한 소식 하나 없는 자막만 계속되었지만 누구도 차마 텔레비전 화면을 끄지 못했습니다. 오후 내 오가는 이메일 인삿말이 거의 모두 아이들과 다른 탑승객들의 무사귀환이었지요.야근 전 팀원들과 분식집에서 볶음밥을 먹었어요. 식당에 있는 사람들 모두 티비만 봤어요. 그러고도 밥이 넘어갔네요. 퇴근했는지, 저녁은 먹었는지 묻는 엄마와 카톡 나누면서 마음이 안 좋다고 서로 얘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부끄럽지만, 내 가족은 내 곁에 있음에 내심 감사했습니다. 떠올릴수록 더 생생해집니다. 그날의 7시간을 명명백백하게 밝힙시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분들과 그 가족분들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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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증권트레이딩룸에서근무합니다종일뉴스를틀어놓고있기때문에침몰속보에너무나도놀랐죠전원구조됐다오보에놀랐지만결국비극적인결과로끝나는과정들이너무생생합니다퇴근하고혼자술마시면서울었어요무고한생명들이너무불쌍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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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아이분유먹이다봤네요.보다가 전원구조라고 나와서다행이다싶어 티비끄고 아가랑하루종일 놀아주다가 저녁에퇴근해온 남편한테 들었어요..300명 넘는사람이 배에갇혀 침몰했다고..그제서야 알았습니다.. 그다음날부터 계속뉴스만봤네요..네이버엔 몇명발견했다는 숫자만계속올라가고.. 오열하는가족들보며몇날몇일을 애기들 안고울었어요.내아이가 저배에있었다면..유가족들의 마음이와닿아서집밖에만 나가도 내아이들지키려온몸에 신경이 곤두서서 두렵습니다.7시간 진실도밝혀야하지만..절대 잊어서는 안될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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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진지 한달이 조금 더 지난 날이였습니다.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눈뜨자마자 이별의 아픔에서 허우적 대다가, 속보를 보게 되었습니다.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일들이, 제가 좋아하는 제주 근처 어딘가에서 벌어졌고 시간이 지날수록 정부의 대처는 더 영화같았습니다.정말 미안하고 죄스러운 일이지만, 계속해서 뉴스를 찾아보고, 또 뉴스에는 보도되지 않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찾아보고 하면서, 저는 이별의 아픔에서 조금 더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죄스럽습니다.)........그래서 저에게는 세월호의 그 날이 더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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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례시간에 우연히 핸드폰을 보다가 세월호에 대한 뉴스가 나왔습니다. 다행히 탑승객들 모두 구조가 되었다고 하여 큰 사건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녁에 뉴스를 본 저는 종례시간에 본 내용과 사뭇 다른 내용의 뉴스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전원구조가 아니었습니다. 오보였습니다. 저는 중학교 졸업여행을 앞두고 혹여나 가지 못할까봐 두려웠던 마음이 점차 그들을 구조하지 못한, 아니 구조하지 않은 듯한 해경들과 정부에 대한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기억을 잘 하지 못한 나이지만 그 때의 기억은 선명히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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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수업듣는중에 선생님께서 다 전원구조 됬다고 하셨다.그런데 몇 시간후 그 기사는 오보였고..집에서 속보를 보며 구해주지못하는 마음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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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이 되어 잠시 교사연구실에 들렀을 것이다. 선생님들이 사고가 났단 소식 들었냐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행히 전원 구조 됐대요. 뭐, 별 일이야 있겠어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는 그날은 너무 바빠 하루를 정신없이 보낸 다음, 집에 들어와서 그것이 오보였음을 알았다. 당황함과 서글픔에 펑펑 울고 다음날 출근하자 선생님들은 거의 넋이 나간 채였다. 구할 수 있겠지, 설마 큰 일이야 있겠어 하던 기다림은 어느새 몇 년이 되었다. 마치 트라우마처럼 남아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울컥 눈물이 난다. 그러니 어떻게 그 날을 잊을 수 있을까. 그건 사람이라면 잊을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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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회사 연수 마지막날이었습니다. 같이 교육받은 동료들과 오전 일정까지만 하더라도 전원 구조 기사를 보고 괜찮겠지 하고 안심했었는데, 오후 일정 끝나고 서울로 복귀하는 열차를 기다리다 보니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습니다. 아직 4월이라도 추운데 계속 구조가 안되면 어떡하나, 하며 대합실에 모여 다같이 걱정을 했던 기억이 아주 또렷합니다. 결국 저녁에 서울 도착하니 배는 완전히 침몰해 있었고, 저는 뉴스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안타까워하다가 잠이 들었죠. 그 날의 기억을 어떻게 잊겠어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기억을 못할 수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책임자 격인 청와대에서 기록과 기억이 없다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 말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