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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는 아버님 고향이라 물에 빠진 사람이라도 구하겠다고 모두 출동해나갔는데 퇴선방송이 없어 나오질 않아 구하지도 못했다고 한탄하시는 말씀을 나중에 전해듣고 화가 났었죠 도망가는 선원들을 보고 얼어 붙은듯 앞이 아득했던 기억 반드시 진실을 밝혀서 왜 구조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는지 밝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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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잊을수 있을까요.....그날도 저에게 다른날과같이 아이를챙겨 등교시키고 뉴스를 틀어두고 집안일을하고 있었습니다.사고소식.....,전원구조.......다시 하교한아이와 숙제하다 구조소식이 오보라는걸 접하고는.....,그때부터 였던거같습니다..가슴에 큰바위가 얹어진듯 뭘해도 가슴이 막힌듯한기분.......무서워 티비를켜지도 핸드폰도 못켜다 접한 가슴무너지는 소식들......아이들아 미안해.....이나라의 어른이란것만으로도 너희에게 한없이 미안하고미안하다......잊지않을께 늘 가슴에담에 기억할께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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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침대에서 뉴스를 보다가 놀라 친구들에게 카톡했어요 그러나 금방 전원 구출이라는 오보를 보고서 다른 채널을 보았죠 그뒤에 세월호 침몰이라는말에 어찌나 허망하던지요 기억합니다 잊지 않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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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TV를 보다 정말 놀랐습니다.허망하게 침몰해버린 세월호....지금도 가슴아프고 눈물이 납니다.잊지 않을게요 기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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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처럼 예쁘고 착한 아이들이 차디찬 바닷물에 허무하게 가라앉은걸요..아이를 키우는 부모입장에서 얼마나 비통하고 가슴아팠는지 모릅니다..적어도 인간이라면 이정도는 다 느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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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뉴스롤 보면서 엄청울었습니다. 그날을 어찌 잊을수가 있을까요? 죽음의 문턱에서 가족에게 전화하고 문자하고. .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4월 16일 그날을 기억합니다. .세월호 유가족 여러분들 힘들 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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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안타깝네요 언니 오빠들이 살아있다면 취직이나 대학 등등 많은 곳에 취업을 했을탠데 아직 꽃도 못피고 돌아가셔서 정말 죄송하다는 말슴을 들이고 싶으네요 박근혜 대통령이 제발 정신을 차리시고 제발 시민들의 귀기울려서 목소리를 들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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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유난히 일찍끝난 날이라 계속 아팠던 눈을 진료받으러 안과에 갔다. 진료를 다 받고 약국에서 약을 지으려고 하는데 상가에있던 모든 티비에서 뉴스가 나왔다. 배가 침몰했다고. 핸드폰을 켜보니 또래 언니오빠와 일반승객을 태운 배가 침몰하는 중이란다. 침몰한것도 아니고 침몰중인데 구하겠지... 기사를 찾아보며 불길함을 애써 무시했는데 그날 저녁 아무도 구하지 못했단 뉴스를 봤다. 어쩐지 슬퍼져서 아픈 눈을 감싸고 침대에서 엉엉 울었다. 그 수많은 목숨이 가라앉는걸 전국민이 지켜봤는데 왜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모른다고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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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같은 일상에 출근을 하고 비슷한 패턴의 업무를 보다가 급히 뜬 속보에 놀란 가슴을 안고 회사에서 동료들과 함께 TV를 켰습니다. 전원 구출이라는 문구로 안심을 하며 또 어느때와 같이 일상의 업무로 돌아가려는 찰나에 그 문구가 오보로 수정이 된 뒤 몇분간을 멍하니 뉴스만을 보고 있었지요.그렇게 몇일을 애타는 마음으로 그렇게 보내던 그 날들..저는 아직도 그 날을 기억을 하면 파노라마처럼 그려집니다. 어떻게 잊나요? 어떡하면 잊을수 있나요? 저는 도무지 잊을래야 잊을수가 없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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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가는 길 , 지하철역으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여느때와 같이 흘러나오던 라디오.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배가 침몰하고 있다고. 라디오 뉴스를 들으면서도 믿기지 않아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봤지만 단 하나의 기사도 나오지 않았다. 내가 접할 수 있는 정보는 라디오에서 반복하는 말뿐 .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 인터넷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있느니만 못한 것들이었다.지하철역에서 학교로 향하는 버스에서는 전원 구조라는 속보를 들었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마음이 놓여 눈물이 났다. 누구에게 감사한걸까 하지만 모두 살아 있단 소식에 감사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두 시간 남짓. 그동안 내가 믿은 것은 허상이었다. 누군가는 사람들을 배 밖으로 인도해줄 것이고 누군가는 그 사람들을 구해줄 것이고 누군가는 원인을 밝히고 다시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할 것이라 믿었다. 그 누군가가 되지 못한 나는 마음을 다해 무사하길 바라며 기다렸다, 나의 바람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길 바라면서.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말하길 기다리면서. 그런데 나의 두 시간은 그렇게 사라졌다. 그 시간처럼 이 날이 기억속에서 사라질까봐 두렵다. 나는 진실을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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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뉴스와 티비 하나로 구조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다시 아니라는 이야기 정말 분통터지는 이야기밖에 안하는 방송들 그러나 그사람들은 입을 닫고 있네요 우리는 기억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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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늦잠을 자는 날. 중간에 깼을 때, 앵커는 전원구조라고 했어요. 사고 소식에 놀랐지만 모두 구조했다니 다행이다하고 다시 잠이 들었죠. 점심 무렵에 눈을 떴더니 배가 가라 앉고 있다네요. 아이들이 아직 그 배 안에 남아 있다네요. 꿈인 줄 알았어요. 아직 덜 깼나 했죠. 하지만 새빨간 속보 자막은 계속 아이들이 그 안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티비만 응시했습니다. 청와대는 컨트롤 타워가 아니다란 말을 들을 때도 꿈이다 싶었습니다. 한 나라의 대표자가 된다는 건, 그 나라의 기쁨과 슬픔 모두를 어깨에 짊어지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걸 모른다면, 외면하겠다면 그 자리에 있을 이유도 없습니다. 책임이 따르지 않는 권리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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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학원 가서 수업 전 20분간삼각깁밥 꾸역꾸역 집어넣고 있었어요.혼자 밥먹기 외로워서 핸드폰으로 뉴스보는데 세월호 사건이 터졌고 너무 걱정 됐는데 전원 구조됐다는 속보 보고 다행스럽게 여겼네요. 그리고 수업끝나고 집에 갔더니 오보보고서 너무 슬프고 안타까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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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시작시간을 훨씬 지나 문학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선생님의 표정은 좋지않았고 반장이였던 나는 선생님을 일찍 부르지않아 화가 나신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였다.그리고 그때 들었다 선생님의 지난 근무지는 단원고였다는 것을. 지금 그때로 돌아가도 선생님께 무슨 위로의 말을 할 수 있을까. 과거의 나도 친구들도 아무말도 하지못했다. 교실은 간간히 슬픔을 숨기는 소리만 들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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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잊을 수가 없어요.저는 의사였고 인턴이었습니다. 제가 맡은 파트가 외과였기 때문에 아침마다 해야하는 드레싱을 하고 있었습니다.TV에서 세월호 침몰 소식을 보았고 드레싱해주던 환자랑 얘기를 나눴어요. 그래도 전원 구조되어서 다행이라고..그때는 이렇게 될 줄 정말 몰랐습니다. 그 날은 정말 전국민 모두에게 잊을 수가 없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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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7시간 동안에 발빠른 정부의 대처와 구조가 이루어졌다면 세월호에 타고 있던 우리의 가족들은 차가운 바다에 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12월5일 청문회에서 7시간에대한 질의가 이루어졌지만 제대로된 답변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아직도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않고 처벌이 가해지지 않는다면 이러한 일은 언제라도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세월호에 타고있었던 우리들의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국민은 끝까지 포기하지말고 악행을 저지른 이들과 투쟁해야합니다.Remember 4.16 - 19살 여고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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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하게 7시간이 흘러가고 있던 당시 저는 군대 훈련소에 있었습니다. 제 기억으로 그날 저희 소대는 급히 식당에 모였었고 조교들이 소대원들 중 단원고에 다니는 가족이나 친지가 있는 사람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몰랐습니다. 이렇게 큰 사건이었다는 것을요. 저는 단순히 안타까운일 정도로 쉬이 여겼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아직도 훈련소에 있어 사회와 단절되있을 때만큼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저는 모릅니다. 그분들이 얼마나 고단한 2년을 보내왔고 그 당시의 7시간은 얼마나 더 처절했을지를요.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저는 세월호 유가족분들의 마음을 조금은 아주 조금은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반성합니다. 죄송합니다.너무 늦었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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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대강당에서 강의를 듣는 날이었다. 다들 교수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면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포털사이트에 떠있는 "세월호 침몰"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며 친구와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전원 구조라는 사실에 다행이네 라며 핸드폰을 끄고 강의는 시작했다. 많은 인원이 듣는 강의에 지루해질 무렵 다시 핸드폰을 켰고 전원 구조가 오보라는 뉴스가 떴다. 강의를 듣는 3시간 동안 생존자의 이름이 뜨는 것을 새로고침했다. 점점 줄어드는 수에 나까지 초조해지는 기분이었다. 그 나이대의 동생이 있었기에 내 동생이 그 곳에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아직도 그 시간을 기억한다. 구조도 하지 않아 민간인들이 아이들을 구조했던 그 시간을. 내 가족이 희생 당한 것 마냥 가슴 아팠던 그 날들을. 나는 아직도 세월호 이야기만 들으면 마음이 먹먹해진다. 아이들에게 나는 너희를 잊지 않았노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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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에서 친구들이랑 얘기할때만해도 금방구조될줄알았는데 많은희생자들이나왔다 분명 전원구출했다고했으면서 허위보도였고 시간이지날수록 구조된인원수가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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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이상하게 눈이 일찍 떠졌습니다. 평소처럼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들어갔는데 속보가 떴습니다. 그리고 학교에 가기 전 아침밥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았습니다. 조금 전에 인터넷에서 본 뉴스내용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전원 구출." 다행이다 생각하며 학교에 갔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들리지 않는 교내방송에 귀 기울이며 정류장까지 걸어갔고 버스를 타고 집에 왔습니다. 아침과는 다른 뉴스 내용에 당황하였습니다. 한참을 뉴스를 보았습니다. 그 후로 한동안 매일 뉴스만 보았습니다.아침에 전원 구출이라는 말을 듣고 학교에 갔고 집에 오는동안 잊고 있었습니다.이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2014년 4월 16일을 언제나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