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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사무실에서 메신저로 올라오는 뉴스를 처음봤을때만해도 이렇게 될줄은 몰랐습니다. 뉴스에서는 모든 구조방법이 동원되고있다고했습니다.예상보다 구조시간이 길어지고있을때도 뉴스에서 에어포캣..등등을 거론하면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보도할때,저도 끝까지 희망이 있다고 믿었습니다.하지막 결국 아무도 구하지 못했습니다.끝까지 희망을 놓치않고있었기때문에 충격이 더컸고,굉장히 절망적인 기분이었습니다.이런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가 너무 무능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하지만 그뿐.또 시간이 흐르면서 저는 그냥 이절망적이 사건을 그냥 잊으려고했습니다.내가 할수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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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너무나 마음 아프게 기억합니다. 쌍문역앞 가판에서 장사할때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하루종일 나오는 뉴스들.... 저녁에는 분노와 미안한 마음에 장사를 일찍 접어야 했습니다. 왜이리 먹먹한지... 미안하다.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는 어른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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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이지리아 출장중 숙소에서 알자지라 톱뉴스를 보고 세월호를 알았습니다. 같이 있던 외국인들이 테러났냐고 안부를 물었고, 왜 구조가 늦냐는 질문에 대답을 못했습니다. 그냥 하염없이 침몰하는 세월호를 같이 머물던 일본, 중국인들과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안타깝고 슬프고 부끄러웠습니다. 나이지리아에서 상상도 못할 일이라는 말에 대꾸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날을 정확하게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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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구조라는 속보가 뜨는 걸 보며, 함께 뉴스를 보던 아빠와 "단원고 2학년 쟤네들 저거 나중에 어른 되고 동창회 하면 저 이야기만으로도 이야기가 끊이질 않겠다~" 하고 안도하며 약속 장소로 향하기 위해 집을 나섰던 기억이 나요. 동창회가 되면 매년 나올 추억이자 해프닝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상하게 묘한 기분이 들어 약속 장소로 향하며 내내 뉴스를 확인했고, 전원 구조가 오보였다는 기사들이 하나둘씩 뜨기 시작하며 이게 결코 추억으로 남을 수 없는 사건이 되어버리게 되었죠.그 때까지도 알지 못 했어요. 그래도 누군가는 구조가 될 수 있겠지, 실종자들 모두가 살아서 돌아오진 못 하더라도 물 속에서 외로이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게 되지는 않겠지...1000일 가까이 되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도 처음 이 소식을 접한 그 날처럼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고 달라진 게 없을 거라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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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심지어 같은 경기도 내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이었습니다. 아직도 그 날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많은 학생분들이 살아계시고, 구조를 구할 때쯤 티비에서는 뉴스가 흘러 나왔습니다. 저희는 그날 수업을 듣다말고 티비와 뉴스를 연결해 수업 대신 뉴스로 구조되길 바라며 지켜보았습니다. 이후엔 수업을 하며 계속해서 소식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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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17살, 고1이던 저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습니다. 학교에서는 핸드폰을 제출했었기 때문에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깜짝 놀랐지만 당연히 모두 구조될 줄 알았고 많은 사람을 구출하지 못했다는 뉴스를 보고서는 믿기지 않았습니다. 왜 구출하지 못했는지 전혀 납득이 가지 않았고 지금도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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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가 조금 넘은 시간뉴스 속보로 제주도로 가던 선박이 침몰 중이고 수학여행중이던 학생들이 타고 있다는 보도를 봤다.막내 딸 아이와 동갑내기인 아이들이 겪을 고초에 마음이 아팠지만~~~그때까지만 해도 그 꽃같은 아이들을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차디찬 물속에 수장시켜 버릴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설마,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질 국가가 그 아이들을 무사히 부모들 품안에 안겨 줄 거라 굳게 믿었다. 이 정부가 이정도까지 도덕불감증에 무능덩어리도 모자라 근무태만까지 자행하는 족속들 일거라고 생각지 못했었다.그래서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할 수 없었다.Tv앞에 앉아 속수무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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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시간시간 마다 선생님들과 친구들과 수업을 미루고 뉴스와 눈물로 가득찬 시간을 보냈습니다 잊지맙시다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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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8월말 정년퇴임을 앞두고 병가 중으로 통원치료 가기전 티비를 통해 세월호 뉴스를 보며 40년을 도보로 버스로 기차로 배로 비행기로 아이들을 수없이 인솔했던 초등교사인 저는 숨조차 쉴 수 없는 충격을 받았습니다아이들 인솔의 책임감과 중압감을 잘 알기에 단원고 교사는 곧 저 자신이기도 했으며 40년간 단 한차례의 사고 없이 정년을 하게된 것에 무한한 감사를 했던 기억이 어제처럼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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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대근무. 월요일에 출근하고 주말에 쉬는 "요일제"보다 지정근무표에 따라 일하는 "순환근무제". 참사 당일 아침에 "수학여행가는 아이들 배가 침몰했다. 큰일이다. 어쩌나!" 발 동동 구르며 집사람이 알려주었습니다. 전날 밤샘 했던 지라 "다행이다~" 가슴 쓸어내리며 쪽잠을 잤습니다. 점심무렵에야 그게 아닌 걸 알았습니다. 가슴이 쿵! 이후 출근하면 한동안 "팽목항 구조현장"을 생중계로 보았습니다. 안타까움과 분노가 함께 떠오르곤 했습니다. 화장실 갈 때도 "착신전환"을 합니다. 언제 무슨일이 생기더라도 "통신축선상 대기"하기 위해서입니다. 너댓명 근무하는 작은 일터이지만 "마스터디렉터"의 책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7시간, 70분, 7분이 아니라 "자리 비운 7초"에 어떤 연락이 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청와대 7시간"을 아무렇지도 않게 덮으려는 상황을 그래서 이해하지 못합니다.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람도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그럴 것입니다. 제정신이 아닌 사람, 그 사람을 둘러싸고 제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 거기에 빌붙어 찌꺼기라도 핥으려는 사람....그들의 "7시간"은 밝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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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욜 아침 법회참석을 위해 법당에 갔다 난 영상담당이라 컴퓨터를 켰더니 수학여행가는 학생들이 탄 배사고가 있다했다 큰일났네 하다가 10시 법회가 시작되고 마치고 점심공양을 하다 아이 담임샘의 호출을 받았다 점심도 먹는둥 마는둥 하다 학교로가 선생님 수업 끝나기를 기다렸다 벤치에 앉아 핸드폰을 열었더니 아직도 구조된게 아니라 심각한 상태였다 말썽을 피워 학교로 호출돼 학교 뒷문 근처 벤치에 앉아 기사를 보노라니 우리 애 일은 일도 아니라 싶었다 그애,이애 할것없이 애들이 다 가여웠다 지금도 세월호란 단어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 내가 엄마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것이다 지금 내 아들이 세월호 아이들 나이가 됐다 진상규명까지 힘을 보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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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 프레스센터에서 조찬 강연회에 참석했다. 오전 9시 경 차를 몰고 강남의 사무실로 출발했을 때 <양희은 강석우의 여성시대>를 라디오로 청취했다. 그런데 갑자기 여객선이 침몰했다는 속보가 나오기 시작했다. 9시30분경 세월호 안의 단원고 학생과 강석우씨가 전화로 연결되었다가 바로 끊겼다. 그 학생의 아버지인지 아니면 다른 학부형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급보를 듣고 단원고에 모이고 있다는 전화인터뷰도 들었다. 10시경 회사에 도착했을 때부터 계속 인터넷을 켜놓고 사고상황을 체크하고 있었다. 전원구조 속보가 나오는 순간 마음이 놓이기는 했지만 참 마음이 찜찜했다. 큰 배가 뒤집어지고 있다면 분명히 사상자가 있을텐데... 아니나다를까 오보라는 사실이 다시 전해지고, 그때부터는 모든 시간이 올스톱되면서 한없이 울기만 했다. 도대체 왜 해경들은 승객들을 제대로 구하지 못했는지, 왜 승객들은 뒤집어지는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는지... 눈물만 흘리며 애를 태웠다. 오후 늦은 시간 박근혜 대통령이 중앙재난대책본부에 가서 "구명조끼" 운운하는 발언을 하는 것을 보고 비극적인 대참사가 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국민을 구해야 할 임무가 있는 국정 최고 책임자가 사고 발생후 7시간이 넘어서도 상황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고 있는 바에야, 도대체 구조라는 것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겠는가. 국가의 무능에 분노하며 4월16일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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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10시쯤 아이를 등원시키고 차안에서 신호 대기중 우연히 뉴스를 들었습니다. 집에 도착해서 전원구조란 얘길 듣고 헤프닝인가 보다 했는데, 오후1,2시쯤에 오보란 얘길 듣고 얼마나 털썩 했는지요... 오후에 차로 이동하는 도중 계속 속보를 접하면서 차안에서 혼자 엄청 눈물을 쏟았더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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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야탑에서 대학동창 모임이 있었음.야탑으로 가는 광역버스 안에서 처음으로뉴스를. 접했는데 전원구조했다는 뉴스자막을보고는 안심하고 내렸음.모잉에서 잠깐 세월호 이야기가 나왔고..전원. 구조돼서 다행이라며 이야기 마무리했음.그리곤 실컷 수다 떨다 집으로 돌아와서저녁 뉴스를 통해서 최악의 참사소식을 접하고망연자실하며 울었던 기억을 지울 수가 없네요.그리고 세월이 흘러서 올 봄, 울 딸이 단원고에교사로 첫발령을 받아 출근하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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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을 하고 직원들에게 들었을 겁니다.해군출신인 저는 배침몰시 어떤 절차에 따라 이함을하고 어떤 구명장비들이 있는지 알고 있어거던요. 그래서 걱정하는 직원들에게 저 정도로 큰 배면 대부분이 살아날거다. 안심시키면서 큰 소리 쳤죠.. 다만 물에 빠졌을 때 저체온증으로 큰일날 사람들이 소수 있겠구나 여학생들이 걱정이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남학생들이 여학생들 구조하다가 사고날수도 있겠구나.. 그래도 다 구조가 될 거다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리고 전원 구조 소식을 듣고 신이나서 내 말이 맞지 않냐며.. 큰소리를 도 쳤습니다.하지만.... 그 뒤는 절망에 이은 분노만 있었습니다. 그리고 구조가 어려울 것 같다는 예상만이 가득한 제 예상을 원망했습니다.정말 반전이 있었으면 했었지만.. 결국 반전은 없었습니다. 그뒤에는 복장터지는 소식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저는 기억합니다... 그날 일을 1분1초 정확하게 모두다 기억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그 날 어떤 큰일이 있었는지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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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에서 힘들게 일 하고 있을 당시, 믿을 수 없는 뉴스가 나왔다. 수학여행가는 학생들이 탄 배가 침몰했다는데, 잠시 뒤에는 또 전원 구조됐으니 걱정말라는 기사였다. 안심하고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러나 다시 뉴스를 봤을 땐 이미 절망이 가득했다. 살아만 있어달라고 그렇게 기도했는데 아이들은 돌아오지 못 했다.. 아이들이 편히 쉴 수 있게 제발 진실을 밝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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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으로 회사에서 세월호 소식을 들은듯 합니다.간간히 뉴스 소식을 보았고, 전원구조에 안도에 한 숨을...그러나 점심시간 12:10 분경 인가...전원구조는 잘 못된 뉴스란걸 알았고, 어린 학생드이 아직 구조를 못 하고 있다고 안타까운 뉴스를 본 그날의 기억이 생생 하내요.무엇을 하셨나요? 아니 아침에 일어 나서 무엇을 하고 싶으셨나요? 대통령 께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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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가까운 곳,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먼 훗날 희망찬 발돋움을 할 당신들과 함께할 시간들을 기약 했습니다. 그 약속들을 자의로 저버린 게 아니라는 것을 너무 명확히 알고 있기에 아직도 깊숙히 남아 있습니다. 7시간, 오보에 의해 행복했고 사실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아이들의 발돋움을 외의 것으로 누르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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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전 역삼동 어느 편의점에서오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당시에 친하던 사장님이랑 편히 이야기하다가김밥을 사러 갔었고 기다리던 사이에 처음 소식을접했습니다. 맨 처음.전원 구조 완료 속보를 듣고사장님과 함께 안도했었습니다. 자세히 말하자면. 2014년인데 당연히 신속하게 구조한게 당연한게아닌가 하며 생각했었습니다. 10분이 지났을까?오보라는게 밝혀지면서부턴 계속 뉴스를 시청했었습니다. 설마 2014년인데 이런 일이 발생할까?....... 생각하기 싫었던 그것이 현실이 되었음에할 말을 잃어서 또 너무나 슬퍼서 기억하기 싫어도기억하지 않을 수 없는 날이 되었습니다.지금도 가방엔 리본이 있고 그 날의 정확한사건이 밝혀질때까진 아니 그 영혼이 편히 쉬기까진 최대한. 기억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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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30분 딸아이 어린이집 등원10시 부모님 식당에 들림10시 30분 세월호 뉴스를 접함11시? 전원구조 뉴스를 접함11시 30분 집으로 귀가 (가사일 및 창업준비)3시 딸아이 하원시키러 어린이집 감3시 30분 딸아이와 부모님 식당에 들림(딸아이와 시장산책 및 식당에서 간식먹이고 시간 보냄)5시 집으로 귀가기억력 안좋은 나도 이렇게 기억이 나는데...멀 그리 숨겨야 해서..말씀을 못하시나요?그 시간 성형을 받든 머리 손질을 하든 그게 잘못이 아니에요...여자니까 그래여... 대통령도 여자니까 그럴수 있어요... 하지만... 그 시간 아이들은 물속에서 숨이 막혀 살려달라거 허우적거리고 있었어여... 죽어가고 있었다구요... 살리라고 민간이든 정부든 누구든 가서 한명이라도 더 살리라고 했었어야죠... 왜 구하고자 달려간 사람들조차 막은 겁니까? 그들이 아이들이 죽기를 바라신 것처럼... 너무나도 당신이 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