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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 근무하는 프리랜서라 밖에 나갈 일이 거의 없는 제가 모처럼 서울로 외출했던 날이었습니다.그날 저는 강남역 인근의 뒷골목에 있는 커피숍에서 맞선을 보는 중이었습니다. 90년대 분위기가 풍기는 작고 오래된 가게였고, 상대 남자는 일에 지쳤는지, 제가 별로였는지 심드렁한 분위기였습니다. 저 또한 앉아 있는 시간이 아깝구나 생각했고요.그날 그와 나누었던 시시껄렁한 이야기는 거의 기억에 없습니다. 하지만 집을 나서기 전 우연히 보았던 세월호 뉴스에 관한 대화는 뚜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사고 얘기 들으셨죠?""네, 그런데 다 구했대요.""정말 다행이에요.""그러게요."서로 밋밋한 대화를 나누던 사이였지만 세월호 승객의 조 이야기에 잠깐 마주보고 웃었습니다. 그게 끝이었죠.그렇게 차 한 잔 마시고 가게를 나오니 빗발이 굵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다행히 우산을 들고 왔고 그 남자는 아니라서 편의점까지 같이 우산을 쓰고 갔습니다. 그리고 헤어졌습니다. 지금은 그 남자 이름은커녕 얼굴도 기억나질 않습니다. 하지만 그날 그와 나눴던 세월호에 관한 짧은 대화와 집에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접했던 구조 소식 때문에 받았던 충격은 아직도 생합니다. 시외 버스를 타고 구리 대교가 보이는 도로를 달리며 접했던 기사에는 200명 넘는 승객이, 단원고의 학생들이 아직도 뱃속에, 바닷속에 있다고 하더군요. 믿기지 않아서 멍하니 강물만 바라봤습니다.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한 달 내내 온종일 뉴스를 틀어 놓고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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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속보로 사고소식을 접하고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나했는데 이어진 보도에 전원 구조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사무실 동료들과 기뻐했었다. 그러나 다시 전해진 오보 소식에 절망했고... 그렇지만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가, 나름 최신 기술력을 자랑하는 선진 국가이고 해양 기술력을 보유한 국가이니 배에 갇힌 사람들을 구하는 것은 문제 없을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나의 7시간은 국가를 믿으며 배에 갇힌 사람들이 모두 구조 될 것이라는 굳은 희망을 가지며 보낸 시간이었다. "설마"라는 단어조차도 떠올리지 않으며 희망만을 생각했던 그 7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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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전 저는 밥집에서 청국장을 먹고 있었습니다. 큰 배가 좌초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있었어요. 별 일 아니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대한민국에서...설마 못 구하겠느냐 식당 주인에게도 그렇게 말 했어요. 다음 날이 수업이라 학교로 바로 들어갔어요. 근데 그날 뉴스에서 구조했다는 소식을 결국 못 들었어요. 대학원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아이들을 걱정하면서 서로 눈물을 흘렸어요..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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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방송사에서 세월호 전원구조 오보를 냈다. 나도 전부 구조된 줄 알고 있었다.하지만 아니었다. 초조하고 땀의 등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결국 200여명이 수장된 채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왜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까, 왜 어떤 지시도 내리지 않을까 분노와 공포에 손톱을 물어 뜯으며 구조 현장 영상을 지켜봤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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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처음 뉴스를 보고 전원 구조에 참 다행이라고 느꼈다가 다시 전해오는 뉴스에 오열하며 느꼈던 제 슬픔은 2년이 지났지만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그 날 제 플래너를 찾아봤습니다.오전 11시 종각 업무 회의, 오후 1시 여의도 회의..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평범한 저도 그 날의 기억과 기록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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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어린이집 보내고어린이집 친구 엄마들과 만나서점심을 먹으러 갔어요그때 식당에서 뉴스를 봤네요그 기억은 언제나 생생합니다절대 잊혀지지가 않아요아이 엄마중 한명 이름이 지영이거든요그날의 의인 지영씨와 같은 이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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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모두 구조되었다는 속보를 보며 녀석들 추억 쌓으러 가다가 엄청난 추억을 쌓는 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넘어갔었는데....현실은 그렇게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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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저와 제 친구들은 웃고 떠들며 과자를 먹고 있었고 페북을 통해 인터넷을 통해 이 소식을 접했습니다. "아무 일 없겠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수업을 마무리하던 순간 나오는 방송,방송,방송...동갑이어서 남일같지 않았던,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데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때 그 순간 저는 그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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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모르고 전원구조 중이라는 멍청한 뉴스만 다들 믿고 체육대회를 하고 있었습니다.오후에 집에 돌아와 아니라는걸 알았을 때, 너무 부끄럽고 미안하여 눈물흘리는 일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그 후로도 기억해드리는 것 밖에, 때가 되면 주위에 이야기해주는 것 밖에, 유족분들을 욕하지말라고 하는 것 밖에 하지 않았습니다.이제서야 우리 모두가 이때를 기억하며 행동하고 있습니다. 이제서야 행동하여 죄송합니다. 끝까지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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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4년 4월 16일. 그 날은 군단지휘검열을 앞두고 훈련 준비 기간이었다.나는 육군 포병부대에 있었다.. 포대원들많은 이 들이 (어느 정도 예상 된) 전투준비태세를 위해 나름의 사전예비활동을 하고 있었고8시즈음, 예상대로 상황은 터졌다. 사이렌이 울리고 방송이 나왔다“화스트페이스 화스트페이스 제 1부 화스트페이스 제 2부 2014년 4월 16일 08시 제 3부당직사령 제 4부 식량 탄약 치장 실적재”15분 안에 출동준비가 완료되어야 하는 화스트페이스. 사전의 예비행동이 어느 정도 있어서인지몰라도 그 시간안에 통신병이었던 나는 치장물자 적재와 기동타격대 물자를 모두 적재하고출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포부터 여섯포까지 각각의 화포에 있던 포병 동기들은 탄적재와 장약 적재를 하고 있었다. 위장을 하고 기동타격대 임무 분담을 하고 개인호에 잠깐있으니 점심 시간이 되었다.점심을 먹고 생활관에서 잠깐 쉬고 있는데 무척이나 이상한 방송이 하나 나왔다.“행정반에서 전파! 가족이나 후배 중에 단원고등학교 학생이 있으면 행정반으로 올 것. 다시 한 번 전파!, 가족 중이나 후배 중에서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이 있으면 행정반으로 올 것 이상 전파 끝.”무슨 일이 생긴지는 몰랐다. 우리 포대에서는 없었고, 내가 알기로는 우리 대대에서도 없었다.그렇게 나는 방송을 잊고 있었다. 야외 숙영이 결정되고 욕을 정말 많이 하면서 FDC 장갑차뒤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는데 배가 침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던 중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이었다. 침몰 원인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혹시북한이 그런거 아냐?” 라고 이야기하는 전포사격통제관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을 잤다. 그것이 나의 7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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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름 없는 하루. 똑같은 일상.출근하여 바쁘게 업무를 보는 중 뜬 네이트 뉴스속보.세월호의 침몰.놀란 마음으로 뉴스 클릭.많은 인원이 배에 타고 있고 구조 작업이 진행중이라던...뉴스에서 특히 눈을 뗄 수 없었던 이유는 승객들 중 단원고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떠나는 도중 사고가 났다는 이야기.나도 고등학교 1학년때 배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간 경험이 있어서 그런가 들뜬마음으로 출발했을 학생들이 눈에 밟혀서 그랬던거 같았다.전원구조속보에 가슴을 쓸어내리고 다시 업무를 보던 중 전원구조소식은 오보판명.회사에서 업무중이라는 사실도 잊고 눈물이 났다.생존자 수는 늘어났지만 실종자수는 상상할 수 없이 많았고 생존자 수는 시간이 갈 수록 줄어들었다.가족들의 애달픈 마음을 어찌 알겠는가.내 마음도 이리 아픈데 가족들의 마음은 오죽할까.왜 빨리 구조를 못할까...정부는 무얼하고 있을까...그런 생각들은 그냥 묻히듯 지나갔다.최악의 인재.최악의 정부.그곳에서 희생된 우리의 아이들과 모든 분들에게 평화가 깃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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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놀고 강자탕집같은데서 아침밥을먹다가 뉴스를 봤어요. 정확히는 속보였던걸로 기억나네요분명전원구출이라고 봤는데 7시~8시경9시쯤 난리가난거에요 구출되지 않았다는거죠뉴스가 나오기 시작하고 내가본 뉴스는 없었다하고 사람들은 맨붕상태로 구조속보만기다리는데그렇게 3일을. 아마도 다들 심장조렸을겁니다3일...부끄러운 대통령 수치스런 총리와 수행원들..하....충격적이라 기억을 안하기가 더!힘들거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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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해를 연신 되뇌이며, 아이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던 날.무능한 해경과 정부관계자는 뭘 하고 있냐며 화가 나던 날.아무런 관계가 없음에도 눈물이 나고 억울해 마지 않던 날.빨리 구조되서 무조건 살아야 한다며 모두가 기도했던 날.ㄹ혜는 뭐했는지 거짓말하지만우리는 뭐했는지 다 말할수 있다.우리는 기억합니다.잊지 않겠습니다.그날의 7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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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오전 바쁘지도 한가하지도 않은 오전이었고 친구와 스카이프로 대화하며 메일을 확인 하고 있었습니다. 쇼핑을 해볼까 싶어서 인터넷 창을 열었는데 뉴스 속보로 배가 침몰 했다는 소식이 보였습니다. 처음엔 다른나라 뉴스인 줄 알았고,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현재 상황 인 것을 알았을때는 단순 헤프닝에 그칠 것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어서 속히 모두 안전하게 구조되어서 상황이 마무리 되었다는 뉴스가 뜨길 기다리고 있었어요. 사무실 안의 모든 직원이 한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점심을 먹고 와도 오후가 되어서도.. 그런 뉴스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일어난 것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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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아무것도 원하지도 바라지도 않읍니다. 그날의 진실 그리고 사과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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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고 믿기지가 않아서 영상만으로도 왜 유리문이라도 깨트려달라고 동동 굴렀어요..배가 저렇게 기울어지는데 왜 아이들이 이것 뿐일까 생각했는데...선장이 본인은 탈출하고 아이들한테 방송으로 구명조끼입고 그대로 있으라고 했다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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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선명한 그 날의 시간왠일인지 그 날 그 시간 그 소식을 들은 그 순간이 잊혀지지 않습니다.출장지인 중국 수조우에서 이른 점심을 위해 들렸던 식당에서 접했던 세월호 침몰 소식.....전원 구조라는 소식에 요즘 같은 세상에 당연하지 라고 생각하고 업무를 보고 오후에 돌아 온 후, 다시금 접한 뉴스에서는 배 안에 남겨진 이들이 300명이 넘는다는 혹독한 소식을 들었던 그 날... 침몰 당 일. 다음 날.. 그 다음 날까지 계속 구조 소식에 귀를 기울이며, 아이들의 무사 아녕을 빌었던 그 봄 날의 사건은 저에겐 아직까지 마무리 되지 않은 슬픈 현실로 남아 있습니다. 기억합니다. 그 날의 슬픔을기억합니다. 그 날의 좌절을기억합니다. 그 날의 절망을기억합니다. 그 날의 분노를그리고, 기억하겠습니다....당신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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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잊을 수 없는.. 잊어서는 않되는.. 어른들의 무책임함과 어른들의 욕심이.. 어른들의 권위의식이...앞으로의 미래일 아이들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그 어른들이 만든 결과가 얼마나 암울한 미래를 만들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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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사무실에서 라면을 끓여 먹는데 12시 조금 안되서 사무실 인근의 슈퍼에 라면 사러 갔다가 그곳에 있던 티비에서 처음 소식을 접했다.황당한 마음으로 멀건히 서서 뉴스를 보고 돌아왔다.혼자 일하므로 조금 바쁜 날은 세상일 을 늦게 알게된다. 그 날 오전에 인터넷기사나 네이버 초기창도 제대로 보지 못했나보다.저녁에는 별 약속없이 일찍 집에 가서 티비로 뉴스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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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출근.해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서울 본사 출근 대신 생산공장을 방문하여 회의중이었습니다. 회의 방문하여 생산 운영회의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회의를 시작하고 우연히 누군가가 진도앞바다에서 배가 침몰했다는 속보가 있었다고 했니.. 솔직이 잘 구출해주겠지 하고 회의를 계속했습니다. 회의 이후, 전원구출이라는 속보를 듣고 안심하고 다시 서울로 출근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