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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근무중이었는데 다른 동료를 통해 학생들이 탄 배가 기울어졌단 얘기를 들었습니다 당시엔 대수롭지 않게 무슨 이놈의 나라는 별 게 다 부실하다 하며 큰 배니까 승객들 구하느라 고생하겠네 하고 할 일 하러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점점 분위기가 심상치 않고 사람들이 티비 앞으로 모여들길래 인터넷 검색해봤더니 애들이 못 나오고 있다 했죠 정말 황당했습니다 배 밖으로 나오면 되는데 왜 안 나왔을까? 그 후로 별 희안한 사실들이 밝혀지더군요. 나오지 말고 그대로 있으 했다는 방송이 있었고 주요 승무원들은 대부분 구조가 되었고 해경이 구조를 안 했고 민간인 다이버들이 제지를 당했고 홍가혜라는 사람이 현장을 중계하다가 허언증 환자로 매장되었으며 유병언 관련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실시간으로 배가 기울어져가는 걸 봤습니다 까먹기가 쉽지 않은 일들이죠 생전 이런 일은 처음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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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광화문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다 우연히 아직 세월호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분들의 사진을 처음으로 보게 됐습니다. 광화문에 그렇게 많이 갔었는데.. 이제서야 찾아본 제가 너무 부끄러웠습니다.잊고 살았던 저를 반성하고 싶어서 글을 쓰게 됐습니다.제 인생에서 그렇게까지 슬픈 일은 드물었기에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저는 그 때 집에서 혼자 논문을 쓰고 있었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아침에 <배가 침몰되었다 그런데 승객들은 모두 구조되었다>는 속보를 보고 "아 다행이네.. 그런데 느낌이 뭔가 쌔하다"는 생각이 들어 티브이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뭔가 주먹구구식으로 전달되는 것 같았거든요.결국 곧 오보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 순간을 잊을 수 있습니까.전혀 모르는 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국가 시스템에 너무 화가 나서 억장이 무너져내리는 기분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뉴스를 찾아보며 형편이 어려운 부모님과 아이들의 안타까운 사정을 듣고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렸습니다.하지만 그것도 두어달. 어느 순간부터 사태 수습은커녕 말도 안 되는 꼼수를 부리고 있는 행정부와 정치권, 검찰을 보며 기가 차고 답답해서 뉴스를 보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그 일을 잊고 살았습니다.하지만 이번에 박근혜 게이트가 터지며 또 다시 언급되는 세월호를 보고 가슴에 뜨거운 것이 불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그동안 부패한 국가 시스템에 익숙해져 그 무기력감에 우리 국민들은 환멸감을 느끼면서도 아무런 손을 쓰지 않았습니다.국민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애잔함과 분노를 느끼지 못하는 상층부.저 역시 그런 기성 세대가 될까봐 두렵습니다.그래서 이제부터는 끊임없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조금씩 나라를 바꿔보려고 합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말하지 못하고틀린 것을 틀리다고 하지 못하는 세상억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이 속출하는 세상이런 세상을 나의 아이에게 물려줄 수는 없습니다.우리 모두 옳은 방향이 어디인지 잊지 않고 조금씩 정진한다면, 그래도 지금보다는 살만한 세상이 될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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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조리로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텔레비전만 보고 있을 때 보게 된 믿을 수 없는 뉴스. 설마 저거 실제 상황이야? 설마, 모두 구조되고 해프닝으로 끝나겠지? 그런데.....엄마가 된 지 5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이제 막 태어난 , 세상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보물, 우리 아기..저 아이들도 모두 그런 아기들인데,저 아까운 아기들을 어떡하지.. 엄마들 은 어떡하지... 우리 아기를 보며 행복해 하다가도 , 상상하기도 싫은 걸 상상해버리고, 나는 절대 울애기 혼자 수학여행 안보낸다고 울먹이던 기억.기억하겠습니다. 우리 아기가 살아갈 세상은 반드시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작은 힘이라도 보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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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수업을 했다. 아침에 출근하며 뉴스로 접했지만, 그냥 사고이고 당연히 모두 구조될 줄로 믿었다. 그날도 교실에서 아이들과 아웅다웅하며 1교시, 2교시......6교시까지 수업을 했다. 점심 시간에 잠깐 인터넷 뉴스를 접하면서 "설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그날 저녁부터 수업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나", "이렇게 그냥 있어도 되나"라는 생각과 의도적 떼죽임에 대한 분노로 수업은 제대로 하지도 못했다. 매번의 울컥거림으로 교실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날 7시간....난 아무일 없을 거라 믿고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그날 7시간 이후는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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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기억 속에서가슴 속에서시간 속에서지워지고 있다지워지고 있으나이 아픔은이 울분은이 슬픔은더욱 커져가고 있으니이를 어찌하여야 하나이를 어찌하여야 하나기억은 지원지나슬픔은 커져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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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 근무하는 프리랜서라 밖에 나갈 일이 거의 없는 제가 모처럼 서울로 외출했던 날이었습니다.그날 저는 강남역 인근의 뒷골목에 있는 커피숍에서 맞선을 보는 중이었습니다. 90년대 분위기가 풍기는 작고 오래된 가게였고, 상대 남자는 일에 지쳤는지, 제가 별로였는지 심드렁한 분위기였습니다. 저 또한 앉아 있는 시간이 아깝구나 생각했고요.그날 그와 나누었던 시시껄렁한 이야기는 거의 기억에 없습니다. 하지만 집을 나서기 전 우연히 보았던 세월호 뉴스에 관한 대화는 뚜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사고 얘기 들으셨죠?""네, 그런데 다 구했대요.""정말 다행이에요.""그러게요."서로 밋밋한 대화를 나누던 사이였지만 세월호 승객의 조 이야기에 잠깐 마주보고 웃었습니다. 그게 끝이었죠.그렇게 차 한 잔 마시고 가게를 나오니 빗발이 굵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다행히 우산을 들고 왔고 그 남자는 아니라서 편의점까지 같이 우산을 쓰고 갔습니다. 그리고 헤어졌습니다. 지금은 그 남자 이름은커녕 얼굴도 기억나질 않습니다. 하지만 그날 그와 나눴던 세월호에 관한 짧은 대화와 집에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접했던 구조 소식 때문에 받았던 충격은 아직도 생합니다. 시외 버스를 타고 구리 대교가 보이는 도로를 달리며 접했던 기사에는 200명 넘는 승객이, 단원고의 학생들이 아직도 뱃속에, 바닷속에 있다고 하더군요. 믿기지 않아서 멍하니 강물만 바라봤습니다.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한 달 내내 온종일 뉴스를 틀어 놓고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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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속보로 사고소식을 접하고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나했는데 이어진 보도에 전원 구조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사무실 동료들과 기뻐했었다. 그러나 다시 전해진 오보 소식에 절망했고... 그렇지만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가, 나름 최신 기술력을 자랑하는 선진 국가이고 해양 기술력을 보유한 국가이니 배에 갇힌 사람들을 구하는 것은 문제 없을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나의 7시간은 국가를 믿으며 배에 갇힌 사람들이 모두 구조 될 것이라는 굳은 희망을 가지며 보낸 시간이었다. "설마"라는 단어조차도 떠올리지 않으며 희망만을 생각했던 그 7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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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전 저는 밥집에서 청국장을 먹고 있었습니다. 큰 배가 좌초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있었어요. 별 일 아니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대한민국에서...설마 못 구하겠느냐 식당 주인에게도 그렇게 말 했어요. 다음 날이 수업이라 학교로 바로 들어갔어요. 근데 그날 뉴스에서 구조했다는 소식을 결국 못 들었어요. 대학원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아이들을 걱정하면서 서로 눈물을 흘렸어요..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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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방송사에서 세월호 전원구조 오보를 냈다. 나도 전부 구조된 줄 알고 있었다.하지만 아니었다. 초조하고 땀의 등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결국 200여명이 수장된 채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왜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까, 왜 어떤 지시도 내리지 않을까 분노와 공포에 손톱을 물어 뜯으며 구조 현장 영상을 지켜봤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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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처음 뉴스를 보고 전원 구조에 참 다행이라고 느꼈다가 다시 전해오는 뉴스에 오열하며 느꼈던 제 슬픔은 2년이 지났지만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그 날 제 플래너를 찾아봤습니다.오전 11시 종각 업무 회의, 오후 1시 여의도 회의..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평범한 저도 그 날의 기억과 기록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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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어린이집 보내고어린이집 친구 엄마들과 만나서점심을 먹으러 갔어요그때 식당에서 뉴스를 봤네요그 기억은 언제나 생생합니다절대 잊혀지지가 않아요아이 엄마중 한명 이름이 지영이거든요그날의 의인 지영씨와 같은 이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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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모두 구조되었다는 속보를 보며 녀석들 추억 쌓으러 가다가 엄청난 추억을 쌓는 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넘어갔었는데....현실은 그렇게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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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저와 제 친구들은 웃고 떠들며 과자를 먹고 있었고 페북을 통해 인터넷을 통해 이 소식을 접했습니다. "아무 일 없겠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수업을 마무리하던 순간 나오는 방송,방송,방송...동갑이어서 남일같지 않았던,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데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때 그 순간 저는 그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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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모르고 전원구조 중이라는 멍청한 뉴스만 다들 믿고 체육대회를 하고 있었습니다.오후에 집에 돌아와 아니라는걸 알았을 때, 너무 부끄럽고 미안하여 눈물흘리는 일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그 후로도 기억해드리는 것 밖에, 때가 되면 주위에 이야기해주는 것 밖에, 유족분들을 욕하지말라고 하는 것 밖에 하지 않았습니다.이제서야 우리 모두가 이때를 기억하며 행동하고 있습니다. 이제서야 행동하여 죄송합니다. 끝까지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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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4년 4월 16일. 그 날은 군단지휘검열을 앞두고 훈련 준비 기간이었다.나는 육군 포병부대에 있었다.. 포대원들많은 이 들이 (어느 정도 예상 된) 전투준비태세를 위해 나름의 사전예비활동을 하고 있었고8시즈음, 예상대로 상황은 터졌다. 사이렌이 울리고 방송이 나왔다“화스트페이스 화스트페이스 제 1부 화스트페이스 제 2부 2014년 4월 16일 08시 제 3부당직사령 제 4부 식량 탄약 치장 실적재”15분 안에 출동준비가 완료되어야 하는 화스트페이스. 사전의 예비행동이 어느 정도 있어서인지몰라도 그 시간안에 통신병이었던 나는 치장물자 적재와 기동타격대 물자를 모두 적재하고출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포부터 여섯포까지 각각의 화포에 있던 포병 동기들은 탄적재와 장약 적재를 하고 있었다. 위장을 하고 기동타격대 임무 분담을 하고 개인호에 잠깐있으니 점심 시간이 되었다.점심을 먹고 생활관에서 잠깐 쉬고 있는데 무척이나 이상한 방송이 하나 나왔다.“행정반에서 전파! 가족이나 후배 중에 단원고등학교 학생이 있으면 행정반으로 올 것. 다시 한 번 전파!, 가족 중이나 후배 중에서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이 있으면 행정반으로 올 것 이상 전파 끝.”무슨 일이 생긴지는 몰랐다. 우리 포대에서는 없었고, 내가 알기로는 우리 대대에서도 없었다.그렇게 나는 방송을 잊고 있었다. 야외 숙영이 결정되고 욕을 정말 많이 하면서 FDC 장갑차뒤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는데 배가 침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던 중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이었다. 침몰 원인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혹시북한이 그런거 아냐?” 라고 이야기하는 전포사격통제관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을 잤다. 그것이 나의 7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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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름 없는 하루. 똑같은 일상.출근하여 바쁘게 업무를 보는 중 뜬 네이트 뉴스속보.세월호의 침몰.놀란 마음으로 뉴스 클릭.많은 인원이 배에 타고 있고 구조 작업이 진행중이라던...뉴스에서 특히 눈을 뗄 수 없었던 이유는 승객들 중 단원고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떠나는 도중 사고가 났다는 이야기.나도 고등학교 1학년때 배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간 경험이 있어서 그런가 들뜬마음으로 출발했을 학생들이 눈에 밟혀서 그랬던거 같았다.전원구조속보에 가슴을 쓸어내리고 다시 업무를 보던 중 전원구조소식은 오보판명.회사에서 업무중이라는 사실도 잊고 눈물이 났다.생존자 수는 늘어났지만 실종자수는 상상할 수 없이 많았고 생존자 수는 시간이 갈 수록 줄어들었다.가족들의 애달픈 마음을 어찌 알겠는가.내 마음도 이리 아픈데 가족들의 마음은 오죽할까.왜 빨리 구조를 못할까...정부는 무얼하고 있을까...그런 생각들은 그냥 묻히듯 지나갔다.최악의 인재.최악의 정부.그곳에서 희생된 우리의 아이들과 모든 분들에게 평화가 깃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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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놀고 강자탕집같은데서 아침밥을먹다가 뉴스를 봤어요. 정확히는 속보였던걸로 기억나네요분명전원구출이라고 봤는데 7시~8시경9시쯤 난리가난거에요 구출되지 않았다는거죠뉴스가 나오기 시작하고 내가본 뉴스는 없었다하고 사람들은 맨붕상태로 구조속보만기다리는데그렇게 3일을. 아마도 다들 심장조렸을겁니다3일...부끄러운 대통령 수치스런 총리와 수행원들..하....충격적이라 기억을 안하기가 더!힘들거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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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해를 연신 되뇌이며, 아이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던 날.무능한 해경과 정부관계자는 뭘 하고 있냐며 화가 나던 날.아무런 관계가 없음에도 눈물이 나고 억울해 마지 않던 날.빨리 구조되서 무조건 살아야 한다며 모두가 기도했던 날.ㄹ혜는 뭐했는지 거짓말하지만우리는 뭐했는지 다 말할수 있다.우리는 기억합니다.잊지 않겠습니다.그날의 7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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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오전 바쁘지도 한가하지도 않은 오전이었고 친구와 스카이프로 대화하며 메일을 확인 하고 있었습니다. 쇼핑을 해볼까 싶어서 인터넷 창을 열었는데 뉴스 속보로 배가 침몰 했다는 소식이 보였습니다. 처음엔 다른나라 뉴스인 줄 알았고,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현재 상황 인 것을 알았을때는 단순 헤프닝에 그칠 것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어서 속히 모두 안전하게 구조되어서 상황이 마무리 되었다는 뉴스가 뜨길 기다리고 있었어요. 사무실 안의 모든 직원이 한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점심을 먹고 와도 오후가 되어서도.. 그런 뉴스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일어난 것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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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아무것도 원하지도 바라지도 않읍니다. 그날의 진실 그리고 사과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