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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저는 세월호를 타고있던 단원고 학생들과 동갑인 고2였습니다. 그 날이 전국 영어듣기시험을 치는 날이었어요. 보통 시험이 끝나고 바로 답지가 인터넷에 올라와요. 그래서 시험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답지를 찾아본다고 핸드폰을 하나둘씩 쥐고 있었죠. 그 무렵 저는 공부하느라 신경을 안 쓰고 있었는데 제 친구들 몇몇이 실시간 검색어에 있는 세월호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처음에는. 전원구출이라는 뉴스도 있었고, 다행이네. 거기서 끝이었어요. 점심시간이 되고, 저녁시간이 되고 교무실에는 계속 뉴스가 켜져 있었어요. 그런데 계속 구조자 수도 바뀌고 이상했어요. 아니, 이상하다기보단 뭔가 무서웠어요. 아이들이 그리고 배 속에 있는 선생님과 시민분들이 피해자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엄습했거든요. 그리고 그 주 내내 어쩌면 같은 대학을 다닐 수 있었을지도 모를, 친구들의 억울한 죽음에 우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저처럼 안일했던 자신과 무능한 정부에 분노한 아이들도 많았어요. 2년이 넘게 지난 지금, 어쩌면 무능한 정부라기 보다는 무서운 정부라는 말이 어울릴 지금. 여전히 화가 나고,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2년 전부터 외쳤던 세월호 진상규명 이 네 글자가 이렇게나 청와대에 닿기가 힘든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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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구조라 했을때.. 다 살았구나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전원구조가 아닌 사망자가 늘어갈때 너무 가슴이 아팠다..ㅠ.ㅠ 아니.. 왜 구조 하지 않고 머하고 있는지 언론을 보며 화가 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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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고, 수업 중 선생님을 통해 사고소식을 접했습니다. 전원 구조되었다고 했을 때 놀란 마음을 쓸어내렸고, 저는 하루종일 열심히 수업을 듣고 문제를 풀었습니다. 당시 들었던 수업들이 뭐였는지도 기억이 납니다. 사회문화, 수학, 영어....등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전원 구조라더니...다 이상 말할 가치도 없는 것 같습니다. 당신들은 인간이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더럽고 추합니다.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몰라도, 평생 역겨운 죗값을 다하다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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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새며아침까지 게임을 하다 채팅창으로 사고가 났다는 소리를 들었다.그냥 별거아닌 사고인줄 알았다.당연히 구조될거라 생각했다.뉴스속보에서도 전원 구조라는 말이 나왔다.그럼 그렇지 하며.. 잠을 자고 오후 쯔음 일어났다..혹시나 해서 다시 켜본 tv속의 뉴스는 "경악"그자체였다.도무지 이해할수 없었다. 계속 뉴스를 집중해서 보았다.생존자수..사망자수..실종자수..보도는 온갖 혼선보도로 인해 아수라장이었다.최초 구조부터 모든게 이상했다.해경도,청와대도,언론도,선원들도왜 저렇게 무능한 것인지 이해가 되질않았다.처음부터 뭐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걸 직감적으로 느꼈다.뭔가 숨길려는것을본능처럼 느꼇다.지금껏 세월호 관련보도는 항상 관심을가지고 지켜보고 원인을 찾아보았지만온통의문만 무성한채 할수 있는건 없었다.그뒤로 세월호 관련 보도와 뉴스로 아직까지분노하고 눈물흘리고 있다.차가운 바다아래 서서히 침몰하고 있는 배의선수만 봐도 눈물이 난다.용서할수도 없고 절대 잊을수도 없다.동조하고 방조하고 기만했던 이들을죽을때까지 용서할수가 없다.그저 슬프고 미안하다.아무것도 할수 없어서 더 미안하다.. 이런 내가 할수 있는건 미약하나마언제까지 기억하고 진실을 알리는 일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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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부부는 4월 부터 새로운 가족을 맡이 하기 위해 준비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날 아침 회사에 출근하는 도중 사고를 알게 되었습니다. 회사에 도착해서도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되는 현장 상황 인터넷 기사를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직장동료들과 사고를 공유하고 안타까워 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아침 사내 카페테리아에는 사람이 무척 많았습니다. 모두 커피를 들고 세월을 이야기 했습니다.모두 한 마음이였습니다.아이들이 무사히 부모 품에 돌아가길...직장 동료 모두 일이 손에 안 잡히는 그런 슬픈 하루였습니다. 얼렁뚱땅 일을 정리하고 집에 돌아와 뉴스를 보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남편과 한참을 티비를 보며 울었습니다. 그 4월에는 아이가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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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전 저는 대학에서 병리학 시험을 보았습니다.시험이 끝나고 오후에 있을 수업을 기다리고 있을 때 앞자리 앉은 학우가 핸드폰을 검색하더니 이게 뭐냐며 세월호 기사를 보여주었습니다. 그 학우는 군포 친구로 안산에 동네 친구들이 많다고, 자기가 과외했던 아이며 자기 친구의 사촌동생 등이 단원고에 다닌다며 걱정하였습니다. 저는 제 핸드폰에서 속보로 내용은 없이 전원구조라는 기사가 포털 메인에 뜬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서 그 친구에게 " 걱정마. 애들 다 구했대. 한국이 후진국도 아니고.."라고 말했습니다. 그 친구가 그런데 왜 기사 내용이 없을까? 큰 일이 아닌가 봐? 다친 애들은 있는거 아냐? 라며 안산 근처가 집인 다른 친구와 걱정하는 말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러 나갔습니다. 봄인데도 바람이 약간 차가운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제가 자신있게 말했던 그 말들이 마음 속에 가시처럼 걸려서 빠지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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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식사를 하다가 뉴스를 보았고 전원구조 소식을 들으며 아이들 수학여행에 큰 추억거리 생겼겠다 웃으며 함께 식사한 사람과 농담을 주고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후 일을 보면서 듣게된 뉴스와 저녁 시간은 한마디로 아비규환 같았습니다. 무정부 상태와 같은 상황이 계속되고 충격을 받아 한동안 슬픔과 우울증이 느껴져서 함들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 아이들의 부모님들 생각을 하면 지금도 한없이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아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박근혜와 잃어버린 7시간에 대한 비밀이 대한민국 역사에 명백히 밝혀지고 기록되어야 합니다. 침몰하고 있는 이 나라를 끌어올리는 힘이 하늘에 있는 아이들의 처절한 손길에서 나온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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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베라를 먹던 중 한 친구가 휴대폰을 보더니 수학여행갔다가 배가 침몰했다고 모든 친구들에게 보여줬었다. 서로 어떡하냐 하고 몇시간 뒤에 집에 가니 엄마가 사촌언니가 그 고등학교에 다니고있다고 아직 나오지 못했다고 알려줬었다.어렸을때 몇번밖에 보지못했지만 어렸을때 같이 찍었던 사진을 보면서 울었다. 아직도 이렇게 생생한데 왜 그날이 기억이 안난다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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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씻고 집을 구하러 서울갈 준비를 하는 중이었어요. 친구에게 카톡이 왔어요. 진도 앞바다에 학생들이 많이 타고 있는 배가 침몰했고 먼저 구조된 학생들이 쉴 수있는 곳을 마련하기 위해 체육관에 매트를 깔러 간다고 했어요. 놀라서 티비를 켜보니 다행히도 전원 구조라고 했고 저는 안심했어요. 전원 구조가 오보라고 떴지만 구조중이니 당연히 모두 구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어요.서울에 도착해서 밥을 먹고 돌아다니며 내 할일을 했어요.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간간히 침몰된 배의 승객들이 빨리 구조되길 기도할뿐이었어요. 다음날이 돼서야 어쩌면 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너무 무서웠어요. 마음이 무겁고 목이 아파졌어요. 너무 슬퍼졌어요. 눈물이 마구 나왔어요.그날 나는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거죠. 당연히 모두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나의 안심이 너무 뻔뻔하고 무책임하고 미안해서 잊을 수가 없어요.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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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반쯤 눈을떠 배가 침몰했지만 전원구조라는 기사를 보고 마음을 쓸어 내리고 다시 잠들었습니다11시쯤 일어나 당시 방과후 교사였던 저는 출근 준비를 하였고 도보로 출근길에 오보였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당시 학교 교무실 분위기는 그 어느때보다 조용했고 모든 선생님들이 침통했습니다 한번도 못봤던 교감선생님의 화내시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리고 그날 퇴근 후 티비로 뉴스를 계속 시청하며 설거지를 하였는데 물속에 잠기는 그릇들을 보며 .. 세수를 하다가도.. 샤워를 하다가도 물을 쓸때마다 말도안된다 곱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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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둘째아이 유치원에서 오전 10시에 학부모총회가 있던 날이었어요. 학부모총회를 끝내고 같은반 학부모님들 몇분과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근처 닭갈비집을 찾아 자리를 잡았습니다. 테이블 두곳에 나누어 앉았는데 제 왼쪽 위 벽에 티비가 있었어요.세월호 침몰중 뉴스가 나오더라구요.단원고 학생들 수학여행중이라 몇백명이 타고 있다고 나와서 다들 어떡하냐고 주문도 못하고 걱정중이었어요. 그런데 곧 전원구조라고 뜨더군요. 다들 정말 다행이라며 안심하고 밥을 먹었어요.그리고 식사후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본 순간 전원구조가 오보였다는것을 알고 너무 놀랬습니다.집으로 와서는 계속 뉴스화면을 켜놓고 제발 빨리 구조하길 빌었는데...이렇게 되고 말았네요. 아직도 그날의 아픔이 너무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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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인터넷을 켰더니 네이버 화면이 제일 먼저 떳고, 작은 헤드라인으로 세월호 사고났지만 전원 구조라는 헤드라인 봤던 거 기억나요. 그거 보고 와 큰일날뻔했다 하고 넘어갔고 일상으로 돌아갔어요. 그 뉴스 헤드라인 네이버 화면 다 기억나요. 왜 저도 기억나는데 왜 그 사람들은 일상적이지 않았을 그 날이 기억이 안 납니까? 양심이 있다면 말을 하세요. 한번뿐인 인생 그렇게 개차반 쓰레기로 살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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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수업시간 전 컴퓨터 만지고 있었다.당시 안산에 살던 친구가 놀라면서 세월호 기사를 보여줬다우리는 별일 아니려니 하고 생각했다.하지만 수업이 끝나고서야 우리는 사태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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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야! 배 넘어졌데" 라는 단순한출근인사에서 평생을 지니고갈 아픔이라는걸 깨닫는 시간이 고작 7시간이라니....그 7시간동안 온국민의 염원과 바램을자신의 사심을 위해 내팽게친그들에게 살아 못받은벌 꼭 후세,내새에라도 받을수있게 되길 바랍니다.그리고 지금 이시대를 살아가는우리 마음속에 또하나의 긴 상처가되길...꼭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되고 각인되어다시는 이땅에 무책임한 권력이 판을칠수없도록 평생 그상처를 기억하고 어루만지며살아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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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휴가라 아침에 아이 보내놓고, 긴급 뉴스 보고 있었죠. 언니가 경기 남부 학교 선생님이라 혹시나 하여 급히 언니에게 연락을 취하고, 전원 구조라는 보도를 보며 브런치를 먹으러 나갔습니다.브런치를 먹으며 다시 확인한 내용이, 전원구조가 오보라고...집에 돌아와서도 내내 TV 켜놓고 지켜봤어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구조되지 못한채 배가 가라앉는 장면이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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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저는 일주일에 하루, 봉사활동을 다녔습니다. 그날도 봉사활동날이었고, 평소처럼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화상영을 위한 준비를 했습니다. 전원구조라는 기사에 안도하며 평소처럼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바쁜 시간이 지나 다시 본 기사에는 가슴아픈 이야기들이 가득했습니다. 스크린에는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고, 현실에는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날, 그때에. 어찌 잊을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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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날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그 날은 수요일이었습니다. 원래 업무 중에 뉴스는 잘 안 봅니다. 오전에 수학여행 가던 배에 사고가 났다는 동료의 말에 인터넷기사를 잠깐 검색해 사고가 났다는 걸 보고 아직은 추운데 승객이나 구조대나 고생 좀 하겠다고 생각했지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래도 마음에 계속 걸렸는데 점심 식사 시간에 전원 구조라고 보고 안심했습니다. 저는 엔지니어인데 그 주말에 야간 작업이 예정되어 있었고, 작업에 대한 최종 점검 회의를 수요일 오후 2시에 했습니다. 점심 먹고 회의 준비 정신없이 하고 치열하게 회의하고 나왔습니다. 자리에 오니, 후배가 배가 가라앉고 있답니다. 오보랍니다. 그 때 느낌이 선명합니다. 아득해지면서 그게 무슨 소리야?! 라고 앉아서 뉴스 페이지로 들어갔고, 저는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그 날 오후 사무실에 내려앉은 침묵과 일상이 비일상이 되버린 이질감. 퇴근해서도 잠을 못 이루고 계속 새로고침만 하면서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2년이 지나서 우리는 괜찮아 진걸까요? 저는 아닙니다. 그 날은 그대로 제 안에 남아 있습니다. 유가족은 물론 저도 다른 사람들도 그 날 어딘가 손상된 것 같습니다. 진실이 밝혀지면...우리 모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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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아이이유식 재료를 사러 유모차를 끌고 마트에 갔다.한우를 보고 있는데 정육코너 직원분이 말하는게 들렸다."배가 침몰했대"나는 왜인지 어느 이름모를 외국의 작은 나라의 작은배 일일 거라고 생각했다.그리고 마트를 한바퀴 돌고 다시 그앞을 지나갈때 또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다 구조했대""다행이네"지나가듯 생각하고 무심히 계산을 하고 나왔다.유모차에 탄 아들을 데리고 산책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티비를 켰을때.난 그제서야 그 일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단걸 알았다. 그리고 전원구조가 오보 였다는 것도."왜 구하지 않지?"답답해 미어지는 가슴으로 배가 가라앉는 모습을 지켜봤고 한동안 티비를 켜지 못했다.타지에 내려와 유일한 친구였던 티비라 거의 하루종일 틀어놓고 있었는데 그 일 이후 한달 정도를 거의 켜지 못했다. 가끔 켜서보면 아무것도 못하고 그대로 앉아 멍하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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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고2, 단원고와 아주 가까이 위치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주 어린 시절부터 만났던, 어쩌면 바로 어제 만났을지도 몰랐던 친구들을 아주 멀리 떠나보낼 수 밖에 없었던 그 날의 슬픔을 기억합니다. 졸린 눈을 비비고 학교에서 아침을 먹을 때 처음 뉴스를 접했습니다. 단원고 학생들이 탑승하였다는 소식에 "안산에 있는 학교 아니냐?"라고 묻던 친구가 기억이 납니다. 전원 구조라는 말에" 수학여행은 좀 안타깝게 됐어도 다행이다. 특이한 경험 했네."라는 대화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수업이 끝날 때마다 그 말이 죄스러워졌습니다. 쉬는 시간마다 오보이다, 몇 명이 구조되었다라는 이야기를 나누며 걱정과 불안은 커져갔습니다. 점심시간, 우리는 웃음이 사라졌습니다. 오후 수업은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중요한 연락에 방해가 될테니 나중에 하겠다고, 분명히 내 친구는 구조 되었을거라고 말하며 걱정하는 대화도, 구조자 명단을 확인하며 한숨을 내쉬는 모습까지 견딜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방과 후, 체육대회를 준비하던 우리는 응원단 연습을 하고 있었지만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해 취소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마음을 정리하려고 복도에 잠깐 나왔을 때, 울음을 멈추지 못하는 친구와 그 친구를 다독여주던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마음을 더더욱 정리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말이 없어졌습니다. 말로 할 수 없는 슬픔이 가득한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날의 슬픔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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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을 잠시 쉬고 사회복지사 자격증 준비하면서 노숙인 전문케어 다일천사병원에서 실습을 하고 있었어요. 출근하면서 병실 돌면서 환자분등 아침급식드신거 챙겨드리면서 정리 하는데 병실 티비에서 뉴스속보로 처음 보았네요...참담했고 너무 놀랬고 병실에 계신 환자분들께서도 다들 놀라서 계속 쭉 지켜봤었습니다.. 대부분 노인분들이거나 말기병환자분들이셔서 다들 놀라셨었는데 전원구조 속보뜨고 다들 함성 지르시고 간호사님들도 좋아하시고다행이다 그러면서 다들 남은 일하면서 계속 티비를 지켜 보고있었는데요....오후가 되고 대통령늦게 나오고...그게 구조되는 장면이 아니고 아이들이 실시간으로 죽어가는 모습이라고 생각하니까..지금 돌이켜서 생각해도 너무 아찔합니다....진실은 꼭 밝혀져야 하며 남은 유가족분들과 생존한분들의 치유를 위해서도 꼭 필요합니다.진실의 촛불 끝까지 지켜주세요.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