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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학교 생활 속에서 한 줄기의 빛처럼 다가왔던 수학여행, 즐거운 마음으로 수학여행을 가던 중 일어난 잊지 못할 사건들,아직도 똑똑히 기억합니다. 그 날 처음으로 사건을 접했던 교실,입고 있었던 옷,기울어지고 있던 배.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 본인만 살고자 했던 선장,재빠른 대처를 하지 못했던 국가의 대표, 모든 걸 기억하지만 정말 기억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던 제가 많이 원망스럽습니다. 차오르는 물 속에서 너무 무섭고 두려웠을 당신들의 마음을 헤아리진 못하지만 그 현장과 어린 학생들과 선생님을 궁지로 내몰았던 사악한 사람들, 그리고 당신들을 기억하겠습니다. 부디 그 곳에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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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전에 나는 7살이어서 아무것도 몰랐는데 내 사촌형, 누나들 같은 형 누나들이 세월호라는 배로 안타깝게 돌아가시게 되셔서 너무 슬픕니다. 형 누나들 이 좋은곳으로 가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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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어린나이에 죽어버린 언니 오빠들 기억할게요 너무 이루고 싶었던꿈 많았을탠데...이제 새가 되어이루고 싶은거 다 이루고 어머니 아버지들도 힘내세요 주저 앉으면 하늘에서 보고있는 언니오빠들도 힘들꺼에요 실종된 언니 오빠들 꼭 어딘가에서 살아있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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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시간의 저편으로 묻혀가는 당신의 시간... 누군가는 정치적목적으로 당신의 시간을 사용하고 있어요. 또 누군가는 흐려져가는 당신의 시간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노력하고 있고요. 그런데 저는요. 이 둘에 속하지 않아요. 당신의 시간을 나쁜 목적으로 사용하지도 않고요. 그렇다고 해서 당신의 시간을 부여잡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아요. 하지만 잊지 않을게요. 당신의 시간을 영원히 기억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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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구조"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 큰 배는 우리에게 구할 수 있는 많은 시간을 주었는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승객들을 전원 구조 못 해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러나 "학생들이 전원 구조됐다 이런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일단 정부가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는 구조 인원은 161명"얼마나 무서웠을까? 가라앉고 있는 배 안에서, 점점 뒤집혀 자는 창문 밖 세상을 바라보는 게.얼마나 화가 났을까? 밖에 나오지 말고 객실에서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한 사람이 자신은 옷 입을 시간 여유도 없이 빠져나갔다는 이야기를 만약 들었더라면.얼마나 기뻤을까? 밖에 보이는 많은 배들이 나를 구하러 왔다고, 살아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텐데...자신을 믿고 이 나라를 맡겨 달라던 어른들은 충분히 구할 수 있었음에도 아이들의 손을 뿌리쳤고, 착하기만 했던 아이들은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그 말에 구명조끼를 나눠 입고 어른들을 기다리다 억울하게 떠나갔다.그때 당시 나는 기다리라는 그 말 하나에 가라앉는 상황 속에서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던 형 누나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6년이라는 시간. 대한민국의 중고등학생으로 살아보니 그들이 나올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스스로 표현하고 결정하고 실천할 수 있는 교육이 아닌 "왜?"라는 질문도 하지 못하는 교육을 통해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만 하는 것이 익숙했던 250여 명의 꽃들은 스스로 피어나지 못한 채 희생된 것이다.그래도 있잖아 형 그리고 누나! 지금의 우리나라는 많이 변했어. 전 세계가 흔들리고 있지만 우리는 그래도 안전하게 생활하고 있고 붕괴된 재난 대처가 아니라 정부의 정부의 발 빠른 대처로 전 세계에 모범이 되었다? 다시는 이러한 무책임한 행동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노력인 것 같아.우리는 형 누나들을 너무 빨리 허무하게 보내버렸는데. 아직도 형 누나들의 슬픔과 고통과 무서움을 짐작조차 하기 힘든데. 우리에게 너무 많은 걸 주고 떠나게 한 것 같아 너무 미안하고 미안해.6번째 봄이 지나고 7번째, 8번째 아니 평생의 봄을 나랑 함께 해줄 수 있지? 좋은 어른으로, 멋진 어른으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지켜봐 줘. 또 찾아올게. 그곳에선 편히 쉬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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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그곳에선 행복하시면 좋겠어요언제나 가슴에 새기고 기억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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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때는 별 다른 생각 없이 형식적인 추모를 했지만, 지금와서 다시 생각하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슬펐을까.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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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선 아프지 말고 행복하게 웃으면서 있으시길 기도합니다. 절대 잊혀질 수 없는 이 아픔 하늘에서라도 아 작은 글을 보고 위로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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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그곳에서 부디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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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다니는 자식을 둔 엄마라 그날은 절대 잊지못합니다..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유가족분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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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향해 달려가는 친구들이 자신들의 꿈을 펼치지 못한 채 세상과 이별 하게되었습니다. 절대로 잊지 않고 기억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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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로 접해 배가 침몰되는 것을 보고 참 답답했습니다. 멀리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부모님들의 마음은 얼마나 더 답답할까요. 꼭 잊지않고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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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별빛이 된 그들을 절대 잊지 않을게요.춥고 무서웠을 그 시간 모두 잊어요. 그 시간 모두 우리가 절대 잊지 않고 기억할게요.그곳에서는 부디 춥지 않고, 따뜻하기를 기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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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13살이었던 저는 어느덧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19살이 되었네요. 초등학생이었지만 학교에서 돌아오면 티비를 켜서 뉴스를 봤던 그날들이 잊혀지지가 않네요. 너무나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고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들고는 합니다. 유가족분들은 6년이 지나도 앞으로 몇년이 더 지나도 절대 잊을수 없는 그날 , 단원고 언니 오빠들은 별이 되어 하늘에서 이쁘게 빛을 내고 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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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같이 있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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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날부터 지금까지 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네요.당시 저는 11살의 어린 나이로 뉴스로 지켜본 기억이 남습니다. 우리가 평범한 생활 속에서 누리고 보냈던 7시간과배 안에서 고통을 느끼며 서서히 지쳐가는7시간이 절대 같을 수는 없겠죠.여러분들이 힘들게 보낸 7시간을 저는 평범하게 보냈다는 것이 너무 마음 아프고, 슬펐습니다.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존재와 그날의 사건, 그리고 누구에 게나 주어진 똑같은 7시간을 더 고통스럽게 더 아프게 보냈다는 것을 기억하겠습니다.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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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얼마나 무서웠을지 ..다시는 그런 가슴아픈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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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에 들었던 사건이 벌써 그때의 단원고 언니,오빠들의 나이인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도 아직도 4월 16일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뱃속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불안함과 두려움이 점점 커져가셨을텐데 수 많은 희생자분들, 그리고 생존자 분들 모두 앞으로는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곳이 너무 좋은 곳이라서,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돌아오지 않는 것이라고 믿을게요. 저희가 매년 4월 16일이 아니더라도 자주는 못되더라도, 꽃처럼 예쁠 나이에 별이 되신 희생자분들 꼭 기억하겠습니다. 꼭 그곳에서는 행복하고 이곳에서 못 다이루신 꿈을 이루셔서 자유로운 삶을 새롭게 살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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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뉴스 방송 화면만을 바라보던 것이 아직도 기억 나는 것 같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 흘렀지만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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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476명의 승객이 타있었던 세월호가 갑작스레 전복되어 이 사고로 시신 미수습자 5명을 포함한 304명이 사망하였다. 또한 생존자 172명 중 절반 이상은 해양경찰보다 약 40분 늦게 도착한 어선 등 민간 선박에 의해 구조되었다. 그나마 생존자가 있어 다행이지만.. 이 사건의 유 가족들은 눈물을 흘리며 지금까지도 마음 한구석에 슬픔이 담겨있을것이다. 그리고 3년뒤 인양을 밀어오던 박근혜가 파면되고 12 12일후 부터 인양을 시작하였다. 결국 36.1%만 생존이라는 저조한 생존률을 기록했다. 이 유가족들의 슬픈 심정이 이해가 간다, 혹시 인양을 해서라도 가족이 돌아올까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결국 부정적으로 될것을. 하지만 박근혜는 그런 심정도 모르고 인양을 미룬것이다. 유가족들의 의견은 듣지도 않은채 그저 앉아서 구경만 하고있던것이였다. 유가족들은 비참했을것이었다. 부디 모두가 유가족들과 사망자를 위하여 추모를 해주었으면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