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반기가 바쁜 직장이라, 출근길에 배 사고가 났는데 다 구했다는 소식만 보고 점심시간까지 정신 없이 일하다늦은 점심을 먹고 한숨 돌릴겸 뉴스페이지 끄적거리다 전원구조가 아니란걸 알았습니다.평소 라디오나 뉴스 이런거 전혀 틀지않던 조용한 사무실이였는데, 온 종일 뉴스 켜놓고 참담한 기분으로 근무하던 기억이 나네요.아직도 그 때 생각하면,목이 시큰해져요.. 뉴스틀어놓고 지켜보며설마 다 나오겠지, 배가 터진것도 아니고 .놓치는 사람없이 다 나오겠지 .사무실 언니랑 온 종일 뉴스보며 마음만 졸이고 있었어요
-
그날이 생각난다. 난 여의도에 위치한 고층건물 33층 회사에서 동료와 잠시 얘기중이었고.... 얘기하면서 무심코 누른 스마트폰에 나타난 뉴스속보....여객선 침몰 중...........깜짝놀라 얘기를 꺼내고 잠시 뒤에는전원구조라는 자막.........그럼 그렇지..한밤 중 에 아무도 안볼때 일어난 사고도 아니고 모두가 눈으로 목격한 침몰 중인 배..였고그냥 헤프닝으로 끝날것만 같았던 그날의 사고.그럴것 같았던 사고는 피눈물이 되어 가족들과 국민들의 가슴을 후벼팠다.별이되어 사라진 아이들과 탑승자들아직도 밝히지 못한 그날의 비밀 어이없게 죽은 귀한 목숨이 몇인데.일반인인 나도 기억하는 4월 16일......
-
그날 저는 한창 취업준비중인 대학생이었습니다. 집에서 한창 인적성검사를 준비하다가 tv를 봤는데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속보를 들었습니다어린 학생들이 갇혀있다는 뉴스였습니다모두 우왕좌왕 했고 저 역시 정확한 상황을 몰라 걱정만 하고 있었습니다 곧 전원구조라는 오보가 났고 안심하고 다른일에 집중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3백명이 갇혀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을때배가 저렇게 천천히 가라앉는데 왜 구하지 못하는지에 대해 충격을 받고 슬퍼했던 기억이 납니다국민적 트라우마.. 그 사건이 이제 밝혀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그날 회사 구내식당 티비가 오전에 드물게 켜져있었고 전원구조라는 문구를 보고 안도했습니다하지먀 머지않아 선수마저 잠겨버리는 영상과함께 배안에 아직 사람들이 남아있다는것과 대다수가 단원고 학생들이라는 뉴스가 나왔고 밥을 넘기지못했습니다.. 3일뒤 해외출장을가서도 계속 세월호뉴스만보고 울었습니다...아이들..아이들...내 아이가 아니라도 먹먹하고 괴로운 시간들이었습니다기억해야만 했고 또 잊는것조차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근데 왜 그날을 당신들만 모른다고 하는건가요?
-
택시타고 선 인터넷 뉴스보다가 큰일이 났구나 ..어쩌지...사람들은 구했으려나......하는 걱정으로 뉴스를 봤어요...그러다 조금 지나니 전원 구조라고...다행이다 생각하고 친구들 만나 이런일이 있었는데 전원구조했다고.....그런데 ...조금지나니....아니더라고요.........전원 구조라해서 너무 좋았는데....오보라는 얘기에 화도 안나고 멍............해지는.......기분요.그 날 어떻게 잊을수있나요....
-
박사 학위 과정 중이라서매일 집 실험실 집 실험실을 반복하던 나날들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은 기억난다누군가가 배에 애들이 남아있다는데라는 말을 할때만 하더라도설마금방 구할수 있겠지비가 오는날도 아닌데 금방 구할수 있겠지속으로 생각하며내 할일을 하고 있었다그런데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핸드폰 속 뉴스들은 점점 희망을 잃어가고 있었다그렇게 내 맘도 가라앉는 기분이었다믿기지 않는 일에무기력함을 느껴 남긴 일기를 다시 꺼내보며그날의 그 울컥하는 기분감정이입할 수 밖에 없던아이들의 마지막 문자들이 떠올라눈물이 앞을 가린다
-
아이 1학년 첫소풍날이라 애들 소풍보내고 오전에 엄마들끼리 모여서 반청소를 한다더군요. 직장맘이라 고민하다가 초반에 엄마들 친해져얄꺼 같아서 반차내고 동참했어요. 청소가 10시쯤 끝났는데 사고 소식듣고 놀랬다가 전원구조 보고 아 다행이네. 하고 출근하는데 회사에서 기사가 오보고 구조도 못하고 그 많은 학생들이 침몰하는 배에 있다는 거 듣고 진짜 무섭고 화나고 걱정했던 기억이 생생이 납니다
-
그날이 병사의 날이었나 회식날이었나 정확한 행사 이름까지는 기억이 안나는데아무튼 평소와 달리 저녁에 고기 구워먹을 수 있는 신나는 날이었더랬다당시 짬이 안돼서 나를 포함한 일병들은 먹을 거 다 먹고 설거지하는데 그때서야 누군가 여객선이 침몰했다는 얘기를 꺼냈다그냥 헐 그래? 하고 말았는데 생활관 돌아와보니 300명이 수장되어있더라무서웠다
-
아침에 눈을 뜨고 휴대폰을 봤는데 믿을 수 없는 기사가 떠있었습니다. 아직도 생생합니다. 기사를 보자마자 바로 티비를 켜고 그 현장 티비중계로 지켜보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양손을 꼭 잡고 기도를 했는데 이렇게 가슴아픈일이 되어버렸네요...영원히 잊지않고 기억하겠습니다
-
진료전 병원 대기실에 앉아 무심히 본 tv에서 빨간 속보 자막으로 나오던 소식들....순간 그 즈음 친정 부모님이 완도에서 제주도 가신다고 했던 기억이 있어서 잘 계시냐고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화면에서는 배가 뒤집어져 가라 앉는 걸 실시간 화면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아니 왜 구조를 못하고 있는지 병원 대기실에서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한탄을 하며 있었는데......하루종일 마음이 힘들었고, 무서워서 아이들 꼭 끌어안고 계속 속보를 보고 있었다.이렇게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날의 힘들었던 몸과 마음의 기억은 생생하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사건의 당사자들은 무엇을 위해서 숨기고 속이는지. 하느님이 있다면 아무 죄 없이 죽어간 아이들의 1000배보다 더한 고통을 주고 ,죽지도 못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고 싶다.아니 꼭 그러리라 믿는다.
-
정신없이 일 하다 들은 배의 침몰. 300명이 넘는 사람들, 그 중에 제주도 수학여행 가던 길의 학생들. 다 구조했다고 해서 마음을 놓았지만, 그건 잘못된 보도였고 모두 빠져나오지 못 해 배와 함께 가라앉았다는 소식...출근 전 밥 투정하던 아이들, 잘 다녀오라고 안아주고 뽀뽀해 주던 아이들이 떠 오르며, 내 아이는 내 집에서 날 기다리고 있지만, 물 아래에서 죽어간 아이들의 부모 마음은 어떻게 형용할 수 있을까 하고 내 가슴도 미어졌던 그 시간....다시 생각해도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
그날 출장 중이었지요.금성여고 정용기 선생님에게 사고소식을 들었습니다. 구조되었다고 하여 안심하였은데 오후에 엄청난 사고소식을 접해야 했지요. 선수만 남은 세월호 속에서 무참하게 희생된 학생들과 승객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무너진 느낌이었습니다. 그 기억이 선명해 아직도 팽목항을 찾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그후 터져나온 이 사회의 비리와 추태를 보며 학생들 대하기가 부끄러웠습니다..가신 이들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빌어봅니다. 어쩌다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시작된 우리 민족과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박근혜의 후안무치함에 분노하면서 해야 할이 무엇인지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특히 나부터 되새겨야 하겠습니다.
-
말도안되는 일이다 생각하면서그래도 당연히 구하겠지 생각하다가어처구니 없어서 멍해진 기억이 나네요
-
사고 소식을 접하기 전까지의 그날은 다른날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그냥 그런 날이였어요. 좀 바쁜 평범한 날이였죠.아침부터 오후까지 텔레비젼이나 컴퓨터, 카톡알림조차도 확인하지 않고 일을 했었기 때문에 바쁜날이였다는 걸로 기억해요일을 마치고 컴퓨터를 켰고 포털메인에 뜨는 사진과 글을 본 그 순간그날은 평범하지 않은 날이 되었습니다. 끔찍한 진실과 마주하게 되더라도진실을 알고싶습니다.
-
생중계를 보고 있던 나는 배가 지금 기울어져있는데 어떻게 전화연결이 되지~전화연결 되었으니 모두 살수있는거겠지해경들도 헬리콥터도 구조작업하러 가는거니 다 살아오겠지.몇시간 후 배가 뒤집혀 바다에 잠겼다배안에 사람이 많이있다단원고학생들이 대부분이다충격적인보도가 ,이어졌다분명 구조작업을 하러 해경 소방서 직원들이 총동원했다면 분명 살아돌아왔을 아이들그러나 정작 안내방송은 구명조끼를 입고있으라고 그런데 배밖으로 나오지말고 배안쪽에 있으라고 그게 더 안전하다고아ㅡ상식적으로 이해안되는 안내방송두번째 배가 거의 가라앉을때 해경들은 항해사를 포함한 6명만 구조해서 가버렸던것그때까지만해도 배가 다 가라앉지 않았으니 충분히 바다에 뛰어내리라고 했어야했는데 살인자같은 인간이라고 자기만 살겠다고 달아난 파렴치한놈 그놈들이 살인자라 생각됩니다처음 119구조에 요청한것도 단원고학생이었고생명을 존엄하게 생각하는 항해사조차 지목숨 중요하다고 지만 살겠다고 팬티만입고 달아나는모습이 역겨웠다귀신이 있으면 제발 그런놈들부터 데려가길그런데~~세월호 참사 터지고 7시간이나 지나 구조본부에 돌아와 한다는 대통령의 말구명조끼를 , 입었는데 아이들이 안보인단말입니까.??이게 말인지 ~바다속이 어둡고 배가 거꾸로 뒤집혀서 문도 닫힌상황에 어찌 아이들이 보인답니까ㅜ사고발생 시점에 나와서 할수있는 모든 걸 동원해서 구출을하라했어야했던건아닌지다들 손놓은 골드타임 2시간~아이들을 구할수있는상황이었는데한심하고 원망스 럽고 사고에 대처를 못하는 나라를 대통령을보고 이땅에사는게 부끄럽고아이들에겐 미안하고 도대체 7시간동안 무얼했는지, 왜아직도 밝히지않는지그런분이 대통령이라는게 부끄러우니이제그만 하야하시고세월호참사에 대해 조사를 명확히해서 진상을 규명하고 가슴에 자식을 품은 부모들에게 제자리로 돌아가길 간절히 바라고 바랍니다세월호참사의 목숨을 잃은 분들께삼가고인의 명복을빕니다7시간을 못밝히는 그분이제 제발 그만 억지피우시고 하야하십시요국민의 이름으로 용서치 않습니다
-
점심식사를 하다 속보 소식에 물끄러미 시청하던 기억이 납니다.설마,,,하며 당연히 많은 인원이 구출될 거라 생각했고, 업무에 집중하다, 더더욱 믿고 싶지 않은 끝없는 속보들로 가득하던 그 날이 기억납니다.직접 안산에 찾아가 추모꽃을 놓고, 도심 곳곳에서 펼쳐졌던 서명운동에 동참하며,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저 순간을 잊고싶지도 않고 잊을 수가 없습니다.
-
하나가 되어야만 했던 그 때.그들은 하나가 되지 못했고,두려움 속에서도 하나가 되어 두 손 모아 기도했던 따뜻한 손들을 그들은 차갑게 외면했습니다.우리는 하나였지만 그들은 하나가 아니었고우리는 진실을 원했지만 그들은 아직도 거짓말만 하고 있습니다.당연한 걸 말했는데 왜..도대체 왜! 그들은 당연하지 않았을까요.. 정말 그 때의 그 시간들을 생각하면 너무 분통하고 가슴이 아픕니다..당연한 우리나라 평범한 우리나라가 되지 못한 그때. 그리고 요즘. 어쩌면 우리나라는 힘들고 병들어죽어가고 있는게 아닐까요..국민들을 잃으면 나라도 잃습니다.
-
2014년 4월 16일 평소처럼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전국연합학력평가가 시행되고 있었어요. 제 업무가 이 시험에 대한 처리였기 때문에 그날은 정말 바빴지요.그러다가 어느 선생님께서 수학여행을 가던 선박이 사고가 났다는 것입니다. 큰 사고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냥 사고났지만 전원 구조라는 보도가 바로 나와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때 제 옆에 같이 계시던 선생님과 제가 오죽하면 안산지역 고등학생들 자기 소개서에 저 에피소드 잘 살려서 쓰면 되겠다고 그런 농담까지 했었지요.그러면서 ㅠㅠㅠ 너무 이기적이지만 수학여행 가던 선박에서 사고 났으니 앞으로 수학여행갈때 이것 저것 제약을 많이 하겠다는 속편한 걱정만 했어요. 공문 처리할 것 보고 올릴 내용만 많아지겠다. 우린 아직 수학여행 안갔는데 답사 다시 꼼꼼하게 다녀오라고 하면 어쩌지? 그런 걱정이요 ㅠㅠㅠ그리고나서 점심때인가 좀 한가한 시간이 생겨서 인터넷 포털 뉴스를 봤는데 아침에 보던 전원 구조 뉴스와는전혀 다른 뉴스가 시시각각 변하면서 나오고 있었어요.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가고 믿을수도 없었지요.모의고사 다 끝나고 우리반에 종례하러 갔더니 아이들도 이미 다 알고 있더군요 ㅠ 그날부터 우리반 아이들 우리학교 아이들 얼굴만 봐도 울컥 울컥 눈물이 났습니다.그날 제가 뭐 했는지 날씨는 어땠는지 우리반 아이들은 뭐라고 제게 물어봤는지 전 이렇게 기억이 생생한데 왜 그분들은 그날의 행적이 기억에 없을까요, 진심으로 그분들께 묻고 싶어요.왜 아이들을 구하지 않았냐고...
-
입사한지 일주일 정도 된 그 날 아침.배가 침몰했다는 인터넷 뉴스를 접한 동료 직원의 목소리가 사무실에 울리고 뒤이어 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으로 타고 있다. 전원 구조 되었다 등등 으로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던 모습과 감정들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구조는 오보다 구조되지 못한 침몰하는 배의 영상 속 사람들이 TV에서 보여지고 발을 동동 굴렀던 그날, 그날의 긴 하루~그런데 그날이 기억나지 않은 사람들은 어떤 사연이 있길래 생각나질 않나요?정말 이해가 안갑니다.
-
저는 그 날 미국에 있었습니다. 낮밤이 반대인 곳이라 막 잠자리에 들려던 참이었습니다. 자기 전에 습관처럼 핸드폰을 보는데, 세월호 사고 소식이 막 들려온 참이었습니다. 그 때는 배가 완전히 바다 위에 떠있었고, 전원 구조라는 자막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구조하기 어렵지 않았나보다,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잠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눈을 떠보니, 완전히 다른 일이 일어나있었습니다. 그 날부터 삼 일 밤낮을 진도체육관 생중계와 뉴스 속보를 끄지 못하고 지냈습니다. 회사에서도, 침대 맡에서도 생중계와 뉴스를 켜두고 울며 지냈습니다. 다른 한국인 친구들은 만나는 외국인 친구들이 안아주고, 눈물을 흘리며 함께 희생자에 대한 애도를 표했다고 합니다. 먼 타지의 외국인들도 함께 슬퍼했던 기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