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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출근했다가 베스티즈 라는 커뮤니티에 게스트천국이라는 게시판에서 처음 기사를 봤어요. 친구들한테 단톡방에 링크 보내주면서 이거 어쩌냐 그랬는데 그때 기사에 나와있는게 살짝 기울어져있는 정도의 사진이라 그래도 저정도면 다 구할수있지않나, 먼 바다도 아니래, 해경들 다 출동했으니 구할수 있겠지. 괜찮았으면 좋겠다 그런 대화를 나눴죠. 그리고 좀있다가 다른 친구가 전원구출했다그랬어요. 이야 애들 수학여행가다가 큰일날뻔했네... 그러고 일하다가 인터넷을 봤는데 전원구출이 아니라그래서 이게 무슨소린가 그랬습니다. 그렇게 일하는 틈틈히 기사들 찾아보다가 이삼십분 일찍 퇴근했어요. 회사 맞은편에 있는 이비인후과를 갔는데 유난히 사람이 많았는데도 사람들이 조용히 앉아서 뉴스속보만 보고 있었고 겉이 속보를 보다가 나도모르게 울었고... 그때 봤습니다. 구명조끼를 입었다고 하는데 구출이 어렵습니까.... 그날 병원에는 일찍갔는데 기다리느라 대기시간이 늦어져서 야간진료 비용을 냈고 머리로는 부당하다고 생각했는데 뭐라고 말할 기운도 없었어요. 결제하고 진료받고 집에와서 혼자 앉아서 뉴스를 보다가 많이 울었습니다. 같은말을 반복하는 티비는 도저히 계속 보고 있을 자신이없어서 라디오를 틀었어요. 박지윤의 4월 16일이라는 노래가 나왔고 그렇게 새벽 두시 세시까지도 잠을 잘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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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저는 유학생이었습니다. 한국보다 8시간 느린 시간을 살고 있던 저는, 평소 같았으면 자고 있었을 그 시간에, 과제를 하느라 깨어 있었습니다. 과제를 하다가 지루해져 인터넷 창을 켰을 때, 믿을 수 없는 뉴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수백 명의 승객을 태운 배가 침몰했고, 구조 중이라는 소식이었습니다. 조금 더 살펴 보니, "전원 구조"라는 기사가 올라와 있길래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여 뉴스를 닫았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여 계속 한국 인터넷 창을 켰다가, 껐다가, 반복하였는데, 소식은 점점 참담해졌습니다. 새벽에서 오전으로 시간이 흐를 수록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졌고, 저는 어느 새 과제 따위는 제쳐 두고 새로운 뉴스가 뜨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나타난 때는 제가 있었던 곳 기준으로는 오전 9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습니다. 밤을 지새우며 불안해 했던 저와는 달리 대통령은 아무 것도 모르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같이 지내던 한국 사람들과 하루 종일 걱정스러운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분노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그 7시간 동안 저는 잠을 전혀 잘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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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침몰했으나 전원 구조했다는 소식을 학원생들에 제가 먼저 전했어요대부분 자식 키우는 엄마들이라 다행이라며 요즘에도 수학여행을 배타고 가냐며..제주도는 저가 항공으로 많이 가던데.. 하며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던 기억이 나네요만약 배가 아니라 비행기를 탔다면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요?처음엔 안됐다, 안타깝다.. 정도 였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은 슬픔이 느껴지네요그네들은 기억을 못하는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것도 아닐꺼에요그네들 한테는 마치 일어나지 않은 일처럼 그냥 모르는일일뿐..그냥 무관한 일일뿐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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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친구들이랑 밥을 먹는데 회사다니시는 엄마한테 전화가 왔었어요.수학여행 가던 학생들이 탄 배가 사고를 당했는데 다행이 전원 구조되었다고. 정말 다행이라고.바빠서 회사에서는 연락도 잘 못하는 엄마가 왜 전화를 했나 사실 좀 갸웃했어요.전원 구조인데도 전화를 한 이유는 뭘까.사실 좀 어리둥절 하기도 했어요.그러고 그냥 밥을 마저 먹었어요.애들이랑 "그랬대~"라고 몇마디 하고요.그냥사소한 사고인줄 알았던거죠.그렇게 학교 끝나고 학원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엄마 차에서 다시 그 얘기가 나왔어요.오보였다고, 애들이 구조됬단거 거짓말이었다고.처음엔 멍했어요.한두명, 몇명도 아니고 수백명의 사람들이 배안에서 잠겨 죽어갔다는 사실이, 열일곱의 저는 이해할 수 없었던것 같이요..엄마가 그날 굳이 전화를 걸어 전원 구조 소식을 전했던 이유.티비 모니터에서 제 모습이 비춰보인건 아닐까,.내 딸 같아서, 내 아들같아서 맘이 아팠던건 아닐까.그냥 그렇게 어렴풋이 느끼고 있어요.4월 16일 그날, 엄마와 함께 저는 그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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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선득해지곤 합니다.고 3이 된 후 첫 중간고사를 2주 앞둔 날이였습니다. 가요나 예능 프로그램 등을 보며 먹는 평상시의 점심시간과는 달리 모두들 뉴스 프로그램을 틀었습니다. 승객들을 태운 배에 사고가 났다는 소식이였습니다. 심각한 표정으로 뉴스를 보던 저와 친구들은 곧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모두 안전하게 구조되었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였습니다. 수학여행을 가려고 했는데 서바이벌 체험을 했다는니 이것도 추억이겠거니 하는 철딱서니 없는 대화를 주고받고는 저는 공부를 위해 자습실로 향했습니다. 비보를 접한 것은 한국사 수업을 마친 후였습니다. 한 친구가 새햐얀 얼굴을 하고 티비를 켜더군요. 걔들 배 안에 갖혔대 라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얘기하는 그 친구의 말을 저는 이해할 수 없었고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교실 안은 혼란으로 채워졌고 뉴스를 틀자 곧 침묵이 모든 것을 압도했습니다. 목에 뭐가 걸린 것마냥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빌고 또 빌었지만...그 때는 아무 말도 못했지만 이제는 말하겠습니다. 당신은 도대체 그 시간동안 뭘 한 겁니까? 왜 저보다 1살 어린 그 친구들을 차디찬 바닷물로 내몰았습니까? 뭐 때문에 그 친구들은 그렇게 되버려야 했으며 남은 가족들은 왜 가슴에 대못이 박힌 채로 그렇게 살아야 합니까? 7시간 동안 도대체 당신은 무엇을 했습니까?제가 남은 가족분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위로할 수 있다는 생각은 감히 할 수도 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날을 기억하고 또 진실을 기다리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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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해 친구들과 있는 카톡방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친구 중 한명이 "여객선 침몰했대"라고 해서 일을 하면서도 계속 새로고침을 누르며 인터넷 뉴스를 봤고, 구조중이라고 하여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이윽고 친구가 "전원 구조했대"라고 하여 "역시" 라고 생각했으나 이내 오보라는 말에 경악하고 안절부절하며 나머지 근무시간을 채웠습니다.퇴근 후 대통령의 말을 보며 분노했고, 이투데이의 "타이타닉" 운운하는 기사를 보며 분노가 치밀어 올라 글을 썼습니다.일면부지의 사람들이었지만, 그 죽음이 너무나 허망하고 불쌍하고 화가나서 하루종일 울컥울컥, 그러다 이내 여러번 눈물도 터져 흘렀고, 그 충격으로 한참을 힘들어했습니다.왜 그 사람들은 그렇게 죽었어야 했으며, 왜 그 사람들과 그 가족들은 그런 조롱을 당해야 했으며, 왜 그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밝혀진 것이 지금까지 없나요? 제발, 그만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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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배가 침몰했다는 뉴스와 함께 전원구조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 후에 뉴스를 보지않은채 친구들과 1시간 후에 있을 성인간호학 쪽지시험 준비를 했다. 나중에 전원구조가 오보라는 소식과 함께 같은반 친구의 동생이 아직도 그 배안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이후부터 모든것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고 핸드폰으로 뉴스만 찾아보던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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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그당시 저는 중1 이엿습니다 며칠 잇음 열리는 체육대회와 소풍 갈 기분에 들떠 즐거웟습니다 하지만,,,그날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엇습니다 배가 침몰햇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전 그때 모두 다 구조 될것이라고 믿엇고 우리나라가 대한민국 해경과 대통령이 배안에 잇는 사람들을 모두 구해줄것이라고 생각햇고 그러케 믿어ㅆ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하늘나라로 떠낫습니다 그때의 저의 생각은 지금과는 많이 다릅니다 무능력한 대총령때문에 모두 살수 있엇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목숨이 무능력한 대통령에 의해 빼앗겼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7시간 동안 뭘 햇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무능력한 대통령은 우리나라 역사책의 끄트머리에 참 부끄러운 역사를 만들어내가고 있습니다..이런 대통령이 이끄는 나라 더 이상은 못살꺼 같애요 또 오늘은 희생자 이보미양의 생일입니다 모두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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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수요일, 저는 그 당시 대학원에서 수업을 받고 있었습니다. 뉴스에서 소식을 접한 뒤 지도 교수님과 저녁 늦게까지 얘기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설마 못 구하겠어?" "다 구하겠지?" 하면서 지도교수님과 얘기를 나누었죠. 수업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계속 뉴스를 보고 있었습니다. 지도교수님과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하지 못했습니다. 세월호에 가라앉았다는 사실에, 구조해내지 못한 정부에 대한 분노때문에 더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집으로 가는 순간에도 집에서도 말없이 뉴스만 보고 있었습니다. "설마 구하겠지" "무슨 대책은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지금도 그 날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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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잊지 못할 그날...난 태국방콕에서 산다.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하다 뉴스를 보고 너무 당황했고,믿을 수없는 뉴스를 인터넷으로 접했고, 그날 저녁에는 남편과 동영상뉴스를 계속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다음 날....아침일찍 콘도내 정원에서 영어교사를 오랫동안 하시고 은퇴하신 태국할머니께서 다가 오셔서내게 한 마디..."I"m sorry,pray for your country,Really heart...."난 고마움에 앞섰고 너무너무 창피했던 2016년4월을 절대로 잊을 수도 없고 잊지 않을 것이다!그리고 절대로 잊으면 안 된다!난 아직도 "세월호"란 말만 들어도 눈물부터 난다.먼 이 땅에서 노란리본으로 감히 그 날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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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서 병원 가느라 학교를 늦게 갔습니다접수처에서 기다리고 있을때 뉴스에서 수학여행을 가던 배가 침몰했고 전원구조되었다고 나왔습니다 전원구조되었다고 나와 다행이라고 여긴 후 학교에 갔습니다 그러나 점심시간과 쉬는시간에 뉴스를 보니 전원구조된 것은 오보였다고 나왔습니다 하루빨리 대통령의 7시간이 밝혀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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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름 없던 바쁜 오전 진료시간..치과의원 진료실에 근무하는 나는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환자 대기실에 켜있던 뉴스를 보며 놀람을 감출수 없었다.계속 뉴스를 보고 있을수 없는 상황에 뜨문뜨문 소식을 전해들으며 , 세상에 어떻게 이런일이 생길수 있나 싶으면서도 한편으로 ......그담주 배편으로 제주도 수학여행 계획이 잡혀있던 둘째 딸 을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 그순간.... 내딸이 아니어서 정말 다행 이다... 라는 정말 부끄럽기 짝이없는 잠깐의 옹졸함.....사고가 터지고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시간이 갈수록 슬픔이 커지고 분노도 커지고..지금도 세월호관련된 기사나 사진만봐도 눈물부터 쏟아진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마음을 다헤아리지는 못해도 , 자식을 키우는 부모입장에서 ...벌써 세번째 겨울을 맞이 하면서 아직까지 찾지못한 9명의 실종자들, 원인도 책임자처벌도 해결된것도 아무것도 없는 것이 화가나고 미안하고 부끄럽다.낼모래 오십을 바라보며 어제일도 가물가물 건망증에 실수 연발이지만.. 그날일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데....우리모두 잊지말고 기억해주면 지금 기억이 없다 쌩까는 사람들도 언젠간기억해 낼수 있겠지.. 난 그렇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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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시내 호텔에서 집에 갈 준비를 하며 짐을 정리하고 있던 아침, 갑자기 친구들 단톡방이 울렸습니다. ㅇ ㅇ 야 너 제주?? 뭐 타고 갔어 설마 배는 아니겠지?? 저는 ㅋㅋㅋㅋ 무슨 배야. 그리고 나 오늘 서울올라갈거야 ㅋㅋㅋ 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한 친구가 갑자기 급하다고 티비를 틀어보라고 하길래 뭐지? 하면서 켠 티비에는 믿을 수 없는 장면이 방영되고 있었습니다. 영화도 아닌 드라마도 아닌 실제상황.. 꽃 같은 아이들이 탑승한 배가 침몰하는 장면이 브라운관에 방영되고 있었습니다. 너무 놀라 숨도 쉬어지지 않아 체크아웃할 생각도 잊은채 울면서 티비에 집중했습니다. 전원 구조라는 자막이 뜹니다. 혼자 소리를 지르며 다행이다!! 쾌재를 불렀습니다. 친구들에게 전원 구조래!! 기쁜 소식을 알렸습니다. 그리고는 마음 놓고 호텔 체크아웃을 한채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동안은 인터넷을 볼 수 없었습니다. 집에가는 버스 안에서 침몰 사실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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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학교 tv로 채널을 돌리는 중에 뉴스 속보가 드면서 배가 침몰 하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요 대략9시 정도 같은데 배가 많이 기울어져 있는것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더라고요 그다음 교시가 긑난뒤 바로 다시 보니 그전 보다 더 심하게 기울여져 있길래 정말 큰일이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큰일은 안 나겠지 생각하고 마음 놓고 있었는데 5시 정도에 뉴스를 보니 정말 거의 다 가라 앉았더라고요...그래도 다친 사람은 없겠지 생각했는데 ...안타깝고 죄송하는 마음만 듭니다...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나는걸 보아하니 정말 쉽게 넘어갈 문제는 아니었다고 생각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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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침몰했다는 꿈을 꿨어요근데 모두구조해서 다행이다라고생각했죠알고보니 잠결에 뉴스를 들은것이었더라구요근데 오보라는 기사가나오고 그많은학생들의꿈이 사라졌었죠 차라리꿈이었다면 좋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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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기가 걸려 수업에 가지 못하고 동네 이비인후과에 가있었어요. 제 차례를 기다리며 티비를 보는데 여객선이 침몰한다는 뉴스가 나오더라고요. 병원에서 기다리는 모두가 보며 안타까워했어요. 옆에 계신 아주머니는 혀를 끌끌 차며 탄식을 내뱉으셨어요. 불과 몇개월 전에 바다에서 학생들이 무고하게 죽어나간 사건이 있었는데 또 이런 일이 생겼다니 참 슬펐죠. 그런데 다시 300여명 전원 구조라는 뉴스속보가 뜨더라고요.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어요. 그리고 전 제 차례가 되어 진료를 받고, 약을 타서 집에 왔어요. 전원 구조는 오보였대요. 학생들이 아직 물 속에 있대요. 그 때까지만해도 뭐 다들 구조되겠지라고 생각했었어요. 2년 반이 지난 지금, 이렇게 큰 일이 되어있을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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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근무를 마치고 아침 6시에 할머니 할아버지댁에 가서 뉴스로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 당시엔 이렇게 까지 사고가 커질거란 예상을 못했었죠. 분명 전원 구조가 될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구조가 되길 믿었는데... 너무도 한심하고 참담합니다. 아무것도 못하고 보고만 있어야 했던 내 자신이 용서가 안되고 너무나 죄송합니다. 도대체 구조를 위해 출동하려 했던 해군은 왜 막은겁니까?? 진실을 말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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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을 기억합니다. 저는 그때 일본에 있었고 일본호텔에서 일을 끝나고 오전에서 오후 넘어가는 시간에 그 기사를 접했습니다..... 네이버로 전원구조 라고 떠서 에이... 모야,,;,,,, 라고 무심코 넘겼고 호텔에서 저녁타임일 끝나고 기사를 보았을때는. 울고짖고있는 학생들의 부모님들과,,,, 뉴스를 인터넷으로 보았습니다. 왜. 그날이 그들일이 기억나지안을까요,,, 진실을 말해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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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때의 그 날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봄 내음이 나는 4월의 수요일이었다. 학교에서 방과후 수업을 듣는데, 쉬는 시간에 친구들이 몰려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경기도에서 수학여행을 간 학생들을 태운 배가 기울어 가라앉고 있다는...뉴스가 화면에 띄워져 있었다. 나도 같은 고등학생이었기에 기분 좋은 날 사고가 난 것에 대해 마음이 좋지 않았고 실종된 사람들은 없는지에 대해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전원 구조가 되었다는 기사가 떴고, 이내 안심한 채 그들이 아주 조금 운이 안 좋았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전원 구조가 되었다는 기사는 오보였다. 나는 분노했다. 그럼 내가 뉴스를 확인하고 저녁식사를 하고, 야자를 하고 집에 돌아오는 그 시간동안 여전히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버티고 있던 거였어? ...죄책감이 들었다. 나는 이렇게 잘 지내고 있었는데. 숨 쉬는 것조차 미안했다.내가 소비하는 산소가 몽땅 배 속의 그들에게 가도 모자랄 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모두의 기대와는 달리 구조작업은 갈수록 길어져 몇 날 며칠을 뉴스만 들여다보며 지냈다.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울적해하는 내 모습을 보고 엄마가 물었다. 요즘 안 좋은 일 있냐고. 나는 말했다. 엄마, 내 또래의 학생들이 지금... 바다에서 목숨을 걸고 살아남으려 하는데, 나는 지금 이렇게 방 안에 앉아있는 것 만으로도 죄스러워 죽겠어요. 정말 답답했다. 그리고 미안했다. 한 명씩 사망자가 생길 때마다, 그 날에 웃고 떠들던 내 스스로가 원망스러워서. 야속하게 흐르는 시간이 밉기도 했다. 고등학교에 올라와 즐거운 날을 보내야 하는데, 그 계절의 우리는 모두 슬픔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더 절망적인 봄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1년이 지나고, 나는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 4월이 찾아오면 아직도 덜 아문 것 같은 마음 한 켠이 아파오지만, 그 때보다는 덜한 것 같다. 그리고 지금 2016년 11월, 비상상황 속에서 그 누구보다 침착하게 대처하고 국민을 보살펴야 했을 사람들의 부끄러운 민낯이 온 대한민국에 드러났다. 특히나 그 날 7시간동안 행방을 알 수 없었던 대통령, 그녀는 대한민국 국민이 정당하게 위임한 권력을 정치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일개 민간인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그녀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었다. 최씨일가와 박근혜, 그리고 이들이 맺어온 수십년간의 관계를 눈감아주고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새누리당. 그들은 그 날 세월호 속의 사람들을, 그들의 가족을, 그리고 온 국민을 우롱한 것이다. 정치, 경제, 종교, 교육, 문화, 예술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곳간의 쥐마냥 야금야금, 아니 아주 대범하게 자신들의 배를 불리고 있었다. 나는 그 날처럼 또다시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지켜야하는 대표자는 그 때에 무얼 하고 있었나? 얼마나 떳떳하지 못하면 스무고개를 하듯 교묘히 빠져나가고 진실을 숨기는 것인가? 부끄럽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도대체 이런 사람이 국민을 대표하고 나라를 운영한다는 말인가? 박근혜정부는 모든 진실을 숨기지 말고 뱉어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온 국민이 단결하여 진실을 요구하는 것이다. 박근혜, 당신은 들리지 않는가? 두렵지도 않은가? 매주 백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내는 이 목소리가? 썩어 빠져 구멍이 날 대로 난 대한민국이지만, 나는 아직 이 사회에 일말의 정의가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국민이 지금처럼 정부에 맞서 단결할 때, 반드시 우리는 진실을 알아내고 정의를 되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세월호도 잊지 않았고, 작금의 사태도 잊지 않을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르고 떠난 그들을 생각하며, 더이상 죄책감이 아닌 의무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대신 싸워주겠다. 2014년 4월 16일, 우리는 모두 이 날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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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 안개처럼 미세 심한 아침평소 어지러움 때문에 치료차 한의원에가는길 ...지하철 모니터로 사고소식을접했고부평 지하상가 큰모니터로 전원구조속보를 봤다사람들이랑 박수치고다행이야 그치? 우리나라가 어떤 나란데!!다구했지! 안도하며 한의원에 들어섰고 그리고 침을맞으면서 한의사샘과 애들다 구조했다고 소식나누고기뻐했는데돌아오는 길에서 본 오보소식...에어포켓과 한명이라도 더...모든걸 기대하며 기도했던 그날의기억이 있네요머리좋은 분들은 왜 기억못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