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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시간이였어요. 자유시간때 평소 하던거처럼 핸드폰으로 네이버기사를 읽고있었는데 속보가떴어요 세월호가 침몰됬다고 그때 당시에는 어느정도의 상황파악이 안된상황이라 친구들한테 배가 침몰됬데 이런 정도였는데...그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배드민턴을 치고 집에가니까 사람들이 많이 위험한상태였더라구요.저는 아직도 이렇게 생생한데 정말 기억이 안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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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이였던 나..학교에서 생방송으로 보았다. 전원구조되었다는 방송이 뜨자 다들 숨죽여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오보였다...그때서부터 한명..두명씩 울컥이기 시작하였고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같은 학년이고 같은 나이였던...어쩌면 현재 20살에 알고지냈을수도 있던 친구들..SNS에서는 세월호에 탑승한 친구들을 태그하며 "살아있지?" "살아서 돌아와" 란 게시글을 많이 보았다 보면서 제발 살아돌아오길... 부모님곁으로 가길... 염원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사망자수는 늘어났으며 아직까지 부모님곁으론 못간 친구들이 있다....평생 잊으면 안되는 #4월16일꼭 진실이 밝혀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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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저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습니다.그날은 중간고사 기간, 2교시 즈음이었나 자습을 하고 있었고 평소와 다름없이 아이패드를 이용해서 인터넷을 보던 중 단원고, 수학여행 중 배 침몰 "전원구조"라는 기사를 보았고 짝꿍와 다행이다. 하며자주하던 커뮤니티 사이트를 들어가는 순간 놀랐습니다.세월호 글들이 올라오는 글들 중 익명의 댓글로 "전원구조 아니야. 저거 오보야 학생들 구조 안하고 있어" 라는 댓글을 보았고설마 했던 생각은 한 시간 뒤 사실이 되어있었습니다.안산에 사는 동생이 생각나 허겁지겁 전화를 해보았지만 받지를 않았고, 그 동생에게선 친구들 다섯명이 연락이 되지않는다고 초조해하였습니다.결국 제 친한 동생의 친구들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녔습니다. 그 날의 기억, 절대 잊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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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거실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인터넷을 검색하던 언니가 수학여행 학생들을 태운 배가 침몰 중이라며 격앙된 목소리로 기사를 읽기 시작햤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구명정도 완비돼 있을테고, 왠만하면 다 구조하겠지~" "그래도 몇명 탈출 못하는 사람은 있을지도 몰라." 라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디. 곧이어 "전원구조" 했다는 기사를 읽어 주길래 그럼 그렇지. 하고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그것이 오보라는 것을 알고 난 다음부터 하루종일 인터넷을 검색하며 안절부절했다. 가족들과 밥을 먹으면서도 내내 어떻게 됐을까 걱정하다가...무능한 대통령을 뽑은 죄를 옴팍 아이들이 뒤집어 쓰게 되었다고 가슴 아파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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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사고가 많았습니다. 주변에서도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일이 일어났기에 굉장히 우울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그날도 우울한 마음으로 학교에 갔습니다. 대학교 2학년 1학기. 저에게 그날은 너무나 생생합니다. 네이버 어플을 켰습니다. 속보. 정말 보고싶지 않았던 속보. 2교시 수업이 시작하기 직전에 그 기사를 보았습니다. 교수님이 들어오시면서 수업이 시작할 분위기가 되어 옆에 앉은 동기에게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습니다.이번에 사람 또 죽으면 나 정말 미쳐버릴지도 모르겠다.하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이 희생당하고 말았습니다. 특히나 그 중 단원고 학생들은 제가 많이 가던 동네에 있던 단원고... 그곳이었습니다. 예전에 한번쯤은 그 학생들과 스쳐지나갔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억장이 무너졌습니다.믿고 싶었습니다. 살아있을거라고. 살아있어야만 한다고.그리고 2년이 더 지난 지금, 저는 이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부에 대한, 국가에 대한 신뢰는 이제 더 이상 남아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희생을 기억하며, 최소한 제가 할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해 보려고 합니다. 그 죽음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요. 그 대답을 듣기 위해 저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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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16일 그날은 생일이 2일이지나고 전역이 4일이 남았을때였다 그때 전역이 얼마 안남아 전역자대기중이여서 티비를 보고있었다 갑자기속보가 떳딘 세월호가 넘어가고있다고 그기사를보다 후임들이와서 같이뉴스를보면서 전원구조라는 속보를보고 기뻐했다 그러나 점차 오보 오보 오보속에서 뉴스가 나오고있었다 점차점차 실종자와사망자가많아지고 있어서 당황했었다..... 이러면안돼는대 빨리구조를해야하는대 .......안타까웠고 절망했다....제발 제발구조하기를 기도했는대 지금도바다에 있는실종자분들이 꼭돌아왔으면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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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은 수요일이었다. 그 날은 내가 유일하게 2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요일까지 정확히 기억하는 그런 하루다. 세월호가 침몰하기 시작했을 때 아마 고등학교 3학년이었으므로 나는 아침시간에 학교에서 해 주는 영어듣기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어느 쉬는시간에 친구들이 어떤 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가다가 배가 침몰했다고 떴다며 어떡하냐는 소리를 들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걱정은 되면서도 당연히 요즘 세상에 금방 구조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그리고 점심시간, 나는 늘 항상 점심시간이되고 한 10분에서 15분이 지나야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그 날도 점심시간이되고 친구들이랑 조금 놀다가 인터넷 뉴스로 그 소식을 제대로 보았었다. "안산의 한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 이라는 걸 보았을 때 조금 심란했지만 설마 싶었다. 우리집과 어릴 때 부터 친했던 동생네 가족이 안산에 살고 있었고 그 동생은 나보다 한 살이 어린, 내 친동생의 친구였기 때문이었는데 그래도 안산에 많은 고등학교 중 그 곳이겠어?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았다. 막연한 불안감은 오후 4시 20분, 종례가 끝나고 수거해갔던 휴대폰을 받고 난 후에 크게 다가왔었다. 나는 늘 항상 종례가 끝나고 방과후 수업을 듣기 전에 SNS를 습관적으로 훑어봤었는데, 들어가자마자 내가 보았던 것은 그 동생의 언니가 올린 글이었다. 어릴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동생이 그 학교 학생으로, 그 배에 올랐다는 사실을 알게되자마자 나도모르게 친구들이 있는 곳에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 날 저녁, 멍때리며 자습하지 못하고 뉴스만 계속해서 보다가 교장선생님께 지적받은 것도 기억나고, 동생과우리 엄마아빠가 나한테 연락와서 저 학교 그아이 다니는 학교 아니냐고 물어봤을 때도 그래도 동생 걱정에 내가 어떻게 아냐며 모른다고 했던 것 조차 기억난다.그 아이는 결국 영영 볼 수가 없다. 내가 수능끝나면 찾아가야지 했던 생각도 이룰 수가 없게 되었다. 친하게 지냈던 그 아이네 언니에게도 , 그 집 부모님께도 힘이되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자칫 잘못하면 더 힘들어하실까봐 되려 연락도 못하고 살고 있다.아직도 그날만 떠올리면 우울하고 울컥하고 화가난다. 내가 친하게 지냈던 동생이 다니는 학교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금방 구조되겠지 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에게조차 너무 증오스럽다.나는 7시간이 아닌 그 날 하룻동안의 기억이. 그 날의 감정조차 아직도 생생한데 어떻게 기억이 안난다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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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중학교 2학년 학생입니다.2014년, 저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습니다. 평소와 다르지않게 학원을 마치고 학원셔틀에 올라타고 라디오 방송으로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때는 그냥 사소한 배사고인가보다 했지만 집에와서 뉴스를 보니 정말 참담한 사고현장이었습니다. 따뜻하고 편안한 학원에서 제가 공부를 하고있을동안 언니오빠들은 차디찬 4월의 바닷속에서 누군가를그리워하며, 세상을 그리워하며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이 정말 가슴이 찢어질것같지만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이 더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나에게는 일상이었던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절박하고 외로운 상황속에서 맞이하는 죽음의 시간이었을것이니 이루말할수없는 마음아픈 일이었던것 같습니다 하늘은 왜 세상을향해 아직 피지못한 꽃들을 데려가셨을까요. 아마 하늘에서 천사가 없었나봅니다. 하지만 그들은 왜 이런 생생한 7시간을 기억하지못하고있을까요? 그 7시간은 그들이 숨기려해도 절대 지울수없는 시간이고 우리는 그 7시간을 절대잊지않을것입니다 항상 가슴속에 깊이 기억하고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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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감기로 진료받으러 이비인후과에 갔다가 거기서 세월호 침몰사고 소식을 보고 들었습니다.. 아직도 그장면이 잊혀지질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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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 학기 초 동인천으로 소풍을 갔다 가서 티비도 없고 폰도 안하느라 몰랐는데 집에 가려고 집합을 하니 담임선생님께서 사고가 났다고 알려주셨다 전원 생존이라기에 그런줄 알고 있었지만 티비를 보고 쓰를 찾아보고 라디오를 듣고 충격에 빠져 나도 모르게 눈물이다 꼭 살아 돌아오기를 계속 빌었지만 살아 돌아온 생존자는 적었다 정부는 이 사실을 숨는 모습애 너무화 가났 너무 안타까웠다 얼마나 기대했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추웠을까 얼마나 살었을까 살고싶어 얼마나몸 부림쳤을까 라는ㅅ 생각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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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1~2교시 수업을 마치고 들어와 보니 참사 소식이 교무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설마, 설마...... 제발, 제발...... 하는 심정으로 다음 수업에 들어갔는데, 그 소식을 들은 이후부터 온 종일 멍한 정신으로 수업했었다. 그리고 교사로서 "움직이지 말라"고 동조한듯 가르쳐온 듯한 죄책감도 컸다.나 역시상식이 아닌 것에 대해 묻고 따지는 것을 가르치지 못했다는 데 대해 결과적으로 동조자가 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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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만큼 제 존재가 바스라지는 낙엽처럼 부질없을 때가 있을까요 . 컴퓨터수업시간에 스크린으로 속보를 전해 듣고 카카오톡, 페이스북 ,전화,문자 제가 할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이제는 우리마음에 응어리로만 남게된 친구들에게 , "괜찮은거지?? 어디 다친곳은 없지??"라고 연락했을때, 그 어떤일보다도 간절하게 답장이오기만을 바랬던순간 . 칼로 새긴듯 더이상 피는 나지않지만 흉터로 남아 여전히 아릿합니다. 이어지는 영어듣기시간에 항상 공부에 매달려살던 저였지만 더이상 스피커를통해 나오는 외인의 목소리가 그시간 속의 저에겐 의미없는 일이라 가냘픈 희망에 이 네모진 검은기계만을 붙잡고 울고 기대하고 빌었던 시간들 벌써959일이라는 적지않은시간이 흘렀지만 2014년4월16일 친구들의 차가운 7시간과 무력했던 우리가 보낸 두달간의 진혼곡 그리고 지금 이 순간까지 저는,그리고 우리는 이 악몽을 그저 꿈으로 잊혀지게 두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과 같은 어른이 되고싶지 않으니까. 아이로만 남을 그친구들도 분명 그럴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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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가 기억나진 않지만 자습시간에 돌아다니시며 말거시던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다.티비로 소식을 접했는지, 스마트폰을 보고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린 모두 분명 한 교실 안에 있었다.나는 히터는 뜨거워 패딩을 벗고 있었고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은 바다속에서 춥게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계속되는 정정 기사에 의아함을 가지며 그냥 그렇게 하루의 나머지 시간이 지나간 것으로 기억한다.그날의 그 기억은 통탄스럽게도 그렇게 지나갔다.다음날이 더욱 선명히 기억난다.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은 한명도 자고있지 않았고 수업시간에 한 선생님은 "나랏님은 무엇을 하고 계셨나", "나랏님이 처음부터 잘 들어섰어야 했는데" 라고 말씀하셨다. 나랏님, 아니 "모두들" 무엇을 하고 계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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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머리가아파 조퇴를한날..티비를틀어놓고 죽을먹던중 세월호 참사가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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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 일 매주 그렇듯 오전 10시반에 랩미팅이 있던 날. 그날도 어김없이 아침 여덟시반까지 연구실에가서 그 날 랩미팅을 위한 데이터를 정리했다 열시가 조금 넘어 랩미팅 직전에 속보를 보았다. 랩미팅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랩미팅이 끝나니 11시 반 핸드폰을 켜보니 별 변화없는 상황. 석사 4학기의 하루는 그날 역시 정신이 없었지만 연구실 내의 화제는 온통 세월호. 걱정이 되었지만 에이 설마 하는 마음만 들었다. 그날은 혹시나 누군가 구조되지않을까 기다리는 마음에 티비를 켜고 그 앞에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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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다른 장소로 이동하던 중 긴급 속보가 뜨더니 몇 백 명을 태운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날 수학여행을 가는 학생들도 타 있었다고 했죠. 처음에는 전원 구조했다는 소식을 듣고 큰 사고가 아닌가 보다 요즘 세상이 어느 세상인데 다 구조됐겠지 하는 생각도 잠시 시간 조금 흐른 후 이것은 오보였다 실종자가 300명이 넘는다.는 뉴스를 보고 하나둘 친구들에게로 부모님께서 전화를 걸어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 들었냐 너희들도 다치지 않게 조심해라 무슨 일이 있다면 전화해라 걱정을 하시기 시작했죠 저는. 부모님의 전화를 받으며 차디찬 배 안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부모님의 목소리조차 들을 수 없는 바다 한가운데서 얼마나 춥고 외롭게 있을까 무능력한 우리나라 조치 덕분에 몇백 명의 부모님들의 마음은 무너지는구나. 하며 실종자 모두가 살아 돌아와 걱정하는 가족들 품에 안기길 빌었죠.국민들에게 신속하고 정확하게 모든 사실을 알려 주세요.7시간.. 짧은 시간 아닙니다. 긴 시간이죠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우리는 기억합니다. 그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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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선생님들께서 사고 소식을 알렸었고, 전원 구조라는 사실까지 들은 이후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친구와 학원 가기 전에 편의점에서 불닭볶음면을 먹고 있었고 편의점에 달린 작은 tv에서 뉴스가 나왔다. 전원 구조 사실은 오보이며,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아직도 물에 빠져 있다고. 그 날 무슨 정신으로 밥을 끝까지 먹고 학원에 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뉴스를 들었을 때 친구와 눈시울이 붉어진 채 차가운 바다에서 떨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며 덩달아 손이 떨리던 기억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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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분들과 사무실 근처에서 칼국수를 먹고 있었죠. 전원 구출 이라는 뉴스에 어린학생들이 대피 매뉴얼이나 그런걸 잘 따라줬나 보구나. 기특하네. 라고 생각했어요. 외국엔 그런 일들이 종종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한 내가 어리석었다는 걸 깨닫는건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기특한 우리 학생들은 어른들의 말을 잘 따른 죄로......돌아오지 못했으니까요......진짜 제가 생각을 잘못한거죠. 여기는 외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인데...................대한민국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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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는 친구들과 학교수업을 마치고 카페에서 둘러앉아 이런저런 얘기와중에 세월호 뉴스를 접하였고 전원구출 이라는 대문짝만한 뉴스 속보에 그래도 다행이라고 전부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라는 말을 하며 계속 뉴스속보를 보고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전원구출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구하지 못한 아이들과 승객들의 숫자가 더 많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렸고 하루종일 핸드폰만 바라보며 살이있는 아이들의 이야기와 죽여도 시원찮을 선장의 도망 아직도 나오지 못한 아이들과 승객들의 소식에 하루종일 아파했던 그날의 기억이 요즘 자주 깜빡하는 저도 이날을 기억하자 하면 생생히 기억나는데 왜 그분께서는 기억이 나질않으신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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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점심 준비를 하며 들었던 라디오 디제가 세월호가 침몰했지만 전원 구조 되었다는 멘트를 듣고 다행이다 싶었는데직장에 다녀와 접한 저녁뉴스는 황당스러웠다..ㅠㅠ설마 그날 그엄청난 일을 파란지붕의 그들은 대수롭지않은 사고로 치부해버렸던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