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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6학년 애들을 데리고 현장 체험학습을 갔던 날이었어요. 에버랜드로 갔는데, 점심시간쯤 샘들이랑 모여 얘기하다 "수학여행 가는 배가 침몰했다더라."하는 말을 듣고 급히 네이버를 열어봤어요.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있어서인지 거의 다 구조됐고 무사하다는 기사만 보이더라구요. 아.. 다행이다 싶었죠. 그렇게 수습된줄만 알고 퇴근 길에 라디오를 틀었는데...아까완 다른 말을 하더라구요. 뭐지? 싶어 집에 도착한 뒤론 내내 뉴스만 봤네요. 이 날부터 정말 하루 종일 이 충격적인 뉴스로 가득했는데 그냥 보통 날도 아니고 어떻게 기억이 안난다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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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전 세월호 침몰뉴스를 봤고, 전원 구조였다는 뉴스를 본후에야 안심하고 외출을 했어요.그런데 저녁때 본 처참한 소식...왜 뉴스는 아침에 보였던 침몰직전의 화면만 보여주는지 이해도 안됬고....그날이후로 정말 생활이 힘들었어요...전 그날 뉴스를 정말 생생히 기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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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생 휴가나와서엄마랑 저랑 남동생이랑 캡틴아메리카 보러갔어요예매해놓고 가기 전 티비로 세월호 사건 어떻게 하면서 보다가 전원구출인가 했다고 기사 뜬거 보고 안도하고 나가서 밥먹고 영화보고 영화볼 때 꼭 핸드폰 끄고보는지라 영화끝나자마자 켜서 다 구출했겠지하고 기사 확인했는데 너무 놀란 기억이 납니다 분명 거의 구출하고 구출중이다 이렇게 알고 걱정없이 영화보고 나왔는데 갑자기 몇백명이 갖혀있다고 그러고 밤이면 몇명이라도 더 구출이 됐겠지 했는데 그냥 기다리고 에어포켓 얘기하고 인양한다고 하고 그것도 말뿐이네요 ㅋㅋ 그날 이후 군인신분이였던 남동생은 남은 휴가동안 기분이 안좋다고 그러고 저도 자꾸 바다에 잠기는 꿈꾸고 그랬던 기억이나네요 그런데 기억이 안난다니요 그날이 어떤 날인데 기억이 안난다는건 말이 안되는 것 같아요 일부 윗 분들 기억상실증 아닐까요 병원에 가보셔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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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나는 대학에 입학한 이후 처음으로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나 밥을 먹었습니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사진도 찍어 sns에 올린 후 근황을 나누다가 아침에 얼핏 본 여객선 사고를 언급하기도 하며 시간을 떼웠습니다. 고등학생을 갓 벗어나 새내기의 모습으로 같이 어색한 화장을 하고 사복도 입은 친구들을 보니 신기하다고 생각했던게 기억납니다. 지금 제 sns에는 그 때 동창들과 찍은 사진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해맑게 사진을 찍은 그 시간동안 나보다 불과 2살 어린 친구들이 차가운 바다속에서 죽어가고 있었다니 마음이 아파 그대로 둘 수 없었습니다. 희생된 친구들도 살아있았다면 16년에 새내기의 모습으로 어색한 화장을 하고 사복도 입으며 서로를 보고 신기하다며 웃었겠지요...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한 진상규명을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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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때와 다름없는 하루였다. 9시 쯤. 학교에 가기 위해 아마도 83번 버스를 탔을테지. 10 시 쯤 학교에 도착하여 지루한 오전 수업을 들었을 것이다.수업 내내 점심은 늘 가던 온달 비빔밥에 가서 비빔밥에 청국장을 곁들일 생각에 가득이었을테지.12시 쯤 남자친구랑 온달에 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그 때 남자친구는 어디서 배가 침몰했다고 하였다. 식당에 도착하여 비빔밥 두 개를 주문하고 물을 따르고 수저를 놓았다. 그제서야 티비를 보았다. 진도 앞 바다에서 수학여행 가는 학생들이 탄 배가 침몰했는데, 전원 구조 되었다는 속보였다. 아 그렇구나. 하고 맛있게 밥을 먹었다.그렇게 점심이 흘러갔다.2 시 쯤 오후 수업이 시작되기 전, 휴대폰으로 인터넷 뉴스를 검색해 보았다. 식당에서 본 그 소식이 사실이 아니었다. 아직 배 안에 사람들이 있단다. 수업이 끝날 때 까지 온통 그 배가 어떻게 되었을까, 배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생각으로 보냈다.5시 쯤에 아마 그 날의 수업은 모두 끝났을 것이다.집에 오는 길 내내, 집에 와서 내내....그 배는.. 그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걱정에...중간고사 시험 공부하는 와중에도 휴대폰으로 기사를 찾아보고.. 공기 주입도 하지 않았다던 에어포켓에 희망을 걸어보고...나는 그 날의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전원구조.. 아 아무것도 아니구나... 라고 느꼈던 내 감정...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무사히 나오길 바랬던 그 초조함..... 또렷하게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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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준비를 위해 학원을 가던 길이었다. 강남역에서 계단을 걸어 올라와서 걸어가다 보니 평소에 잘 보지도 않던 대형 전광판에 낮선 화면이 떠 있었다.진도 앞바다에서 배가 침몰했다고 한다.나는 망망대해도 아니고 앞바다에서 침몰했는데 당연히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속으로 꼭 한명의 희생자도 없이 구조되기를 기원했었다.그리고 학원 수업이 시작되기 직전에 핸드폰을 끄기 전에 확인해보니 전원 구조라고 나왔었다.그리고는 핸드폰을 끄면서, 박근혜 정부 다른 일은 몰라도 이번 구조는 참 잘했네... 라고 생각하며 3시간여동안 수업에 집중했다.점심시간이 되어 다시 핸드폰을 켜보니,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그 이후로부터 몇일간, 대체 어떻게 태평양 한가운데도 아니고, 뻔히 육지가 보이는 곳에서 배가 침몰했는데 저렇게도 많은 사람이 죽어야 했는지 아무도 납득하지 못한채, 결국 아이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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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뉴스속보로 접한후 전원구조라는 오보까지 듣고 안심했지만 점점 대형참사로 번지고 있구나 싶었어요. 그날 야구장에 가기로 약속을 해놓은지라 저녁엔 야구장에 다녀왔고 야구장에서 친구들과 세월호에 대해 대화한 내용까지 똑똑히 기억해요. 야구장에선 이미 세월호 사고로 인해 응원도 중단한 상태였구요. 집에 돌아와 피곤한데도 걱정에 좀처럼 잠이 오지않아 티비를 켜놓고 누워서 뉴스보다가 밤을 샜습니다.수색작업에 어려움없게 물결이 더 거세지지말게 해달라고 제발 살아만 있으라고 기도하면서 밤새 한잠 못잤었네요. 일개 국민도 세월호 참사의 그날을 이렇게 상세히 기억하는데 대체 우리나라 대통령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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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학 후 여행 경비를 벌기 위해서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4월 16일.출근하자마자 컴퓨터를 키고 네이버 메인 페이지를 보다 무심히 클릭한 속보 속에 "단원고" 세 글자를 보고 손이 덜덜 떨렸던 4월 16일."뉴스봤냐" 고 물어오는 옆자리 동료에게 "헐, 여기 제가 졸업한 학교에요. 그래도 전원구조라니까 천만다행이네요." 라고 답했던 4월 16일.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직원식당 TV를 통해 전원구조가 오보임을 알았고, 휴대폰에는 고등학교 동창들의 단체 카톡이 끊임없이 울렸던 4월 16일.퇴근 후 온가족이 TV 앞에 모여 앉아 뉴스를 보다 "나는 아무것도 도와줄 수 있는게 없구나" 하는 자괴감에 엄마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울었던 4월 16일.그리고 결국 나의 은사님과 수 많은 후배들을 잃은 날이 되어버린, 4월 16일. 나는 그 날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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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해사다.그날 아침 부산항에 입항한 직후 사고소식을 전해들었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세월호가 전복되기 1년 전에도 그 인근에서 철부선이 전복된 사고가 있었거든. 그땐 전원 구조됐었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별 문제 없으리라 생각했다. 뭣보다 당장 허리가 아파서 일을 그만두고 급히 배를 내려야 했으니까…병원 진료를 마친 뒤 운항관리자로 근무하던 절친과 연락한 뒤에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도대체 어떻게 상황이 저따위로 흐를수가 있는가… 승객들을 책임져야 할 선원들이 가장 먼저 도망쳤다는 소식이 가장 충격이었고, 350여명 이상의 구조 인원 집계가 어느 순간에 170명 미만으로 정정된 것은 구조 단계에서 뭔가 크게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방송에서는 반복적으로 침몰 당시의 스너프필름을 재생하고 있었으니 국민들의 충격은 어땠을까…해운업에 종사하는 실무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쏙 빼놓은 채 듣보잡 패널들을 출연시켜 이상한 이론들을 중구난방으로 쏟아내고 있었으니 말도 안되는 대각도 변침의 원인이나 읊어대고 있었지 아마…집에 돌아온 뒤 며칠동안은 충격이 가시지 않았고 그날 이후로 가끔 꿈을 꾼다. 세월호 사고와 비슷한 상황. 나는 그 배의 일항사. 꿈에서는 항상 해피엔딩. 그렇지만 현실은… 꿈에서 깨면 항상 기분이 더러워진다.사고와 관련된 주요 책임자들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고 현실이 개선되기 전까지는 아마 그 꿈을 계속 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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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전 컴퓨터실에서 정보실습을 하고 있었는데, 컴퓨터에서 이것저것 찾아보던 중 세월호 기사가 뜨기 시작했어요. 수학여행가던 배가 가라앉고 있다고.. 하지만 다행히 모두 구조되었다고.. 그리고 아무렇지않게 정보실습이 끝났습니다. 모든 정규수업이 4시40분쯤 끝나서 폰을 켰을 땐, 전원 구조가 오보였다며, 기사가 나오고 있었죠. 제 친구는 친한 친구를 잃었고, 그것을 뉴스로 먼저 확인해야 만 했습니다. 저랑 같은 나이의 친구들인데 살아있었다면 지금쯤 저랑 함께 대학생활을 즐기고 있었을 수도 있을수 있는 친구들입니다. 저는 2014년 4월 16일을 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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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입니다. 그 때도 학생이었지요.졸린 눈을 비벼가며 학교에 도착해서 교수님을 기다리며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도중. 한 친구가 사고 소식을 전했습니다. 너나 할것 없이 핸드폰을 켜 속보로 뜨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쉬는시간, "야! 다 구조됐데!"라는 소식을 다시 한 번 접하고는 그래? 다행이네. 라고 생각하며 쉬는시간을 보내고 다시금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수업이 끝난 후, 전혀 다른 상황. 전원 구조가 아니라는 뉴스 속보. 밥을 먹기 위해간 식당에서도, 다음 수업을 위해 강의실을 옮길 때도, 모든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갈 때도, 가고 나서도 끊임없이 들려오는 세월호 사고 소식. 줄어드는 것이 아닌 늘어나는 사망자 인원. 줄어드는 구조된 사람들....그 날을 잊을 수 있을리가 없는 그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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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후반의 평범한 가장입니다.저는 이른 아침 식사를 하고 있을 때 TV 속보를 보게 되었습니다. 여객선 침몰 사고 자체가 드문 일이어서 주의 깊게 보고 있었는데 내부에 아직 승객들이 남아 있다고 하더군요. 당연히 구출 상황을 생중계로 보게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식사를 다 마칠 때 까지도 구조가 지지 부진 하길래 무슨 문제라도 있나 싶었는데....기가 막히더군요....사람들을 구조하지 않고 있었습니다.TV화면을 통해 생중계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현장을 보고 있다는 깨달음에 소름이 끼쳤습니다. 등 줄기가 오싹해지고 함께 보던 아내가 울기 시작했어요....그 후로 근 두 달 여간 우리 부부는 매일 같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어요. 저희에게는 두 아들이 있고, 그 당시에 세월호 아이들과 또래였어요....아들들을 볼 때 마다, 길을 가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을 봐도, 일을 하다 노란색 리본을 봐도 울컥하고 눈물이 흘렀습니다. 2년 여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 상처는 아직도 그대로 입니다. 저희 부부는 리본을 만드는 공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노란색 리본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나눠 줬어요. 아무리 많이 제작하고 나누어도 가슴에 상처는 조금도 아물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저희들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겁니다. 이 아픔을 함께 안고 살아가는 것이 싫지는 않습니다. 치유를 위해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지만, 그 부모의 마음을 천 분의 일이라도 나누고 싶은 이 마음은, 인간이라면 당연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난 주 토요일 5차 집회에서 만난 중 고교생들의 행진 앞에서 저희 부부는 또 다시 눈물을 흘렸습니다. 앳된 목소리들이 구호를 외치며 빠른 걸음으로 우리 앞을 지나갈 때... 하늘에 있을 아이들이 모두 여기 내려왔다는 걸 알았습니다. 나라와 정치에 대해 몰라도 되는 아이들은 죽음을 맞이 해서는 안될 아이들과 같습니다. 아이들의 어린 목소리는 아이들이 행복할 때 웃음으로만 들려야 하는 것인데.... 우리 어른들은 도대체 어느 만큼의 죄를 지게 된 걸까요... 주모자와 관련자들을 단죄 해도 이 사무침이 사라지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참회는 영원히 이 아이들을 잊지 않는 것 입니다. 피해 가족들과 아픔을 함께 하고 두 번 다시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짐하는 것 뿐 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다음 생에서는 남겨진 우리들 보다 몇 배는 더 행복한 삶을 끝까지 살게 되기를... 기도하는 것 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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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같은 97년생인 나는 그때 막 고등학교 2학년의 학기 초의 학교 생활에 적응 중이었다. 쉬는 시간에 본 휴대폰을 통해 세월호가 가라앉는 중이고 전원 구출했다는 뉴스를 보게되었고 "사고는 났지만 별거 아니네" 라는 생각을 하며 오히려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는 친구들을 부러워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 본 티비에서는 여전히 세월호는 가라앉는 중이었다. 세월호에 탑승한 인원이 정확히 파악도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고된 입시를 같이 견뎌낼 친구들은 정부의 무능력으로 인해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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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에 카톡에서 반아이들이 세월호이야기를 하며 큰일났다고한 기억이 나요뉴스를 봤는데 내용은 잘 기억안나지만 보고 엄청 울었어요배가 거의 가라앉은 모습을 보고 저 안에 사람이 있을건데 ...;;계속 그런 생각을 했어요아침에 뉴스봤을때만해도 금방 구조되겠구나 라고 느껴서 그렇게 많은 분들이 나오지 못한게 더 충격이었어요그렇게 누구에게나 잊을수없는 그날이었는데,시간이 많이 흐르고 유가족만이 그들을 가슴에 묻은거같아 안타까웠습니다.나는 그들이 살수있는 7시간동안 대통령이 무얼했는지 아직도 모르고, 유가족들은 울고있고, 아직 아무것도 밝혀지지않았는데, 나라는 너무 정상적으로 잘돌아갔어요. 그때도, 지금도 당신들의 시간은 멈추어있어요.무리한 요구를 하는게 아닙니다.우리는 지금쯤 대학에 가 미래를 꿈꾸고있을, 새로운 인연을 만났을, 어쩌면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었을 그 사람들을 살릴수있었던 시간의 진실을 알고싶습니다. 그 7시간을, 나는 포기하지않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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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날 늦은 아침을 먹으며 tv를 보던 중이었고아이들을 구한다는 뉴스를 접하며 조마조마 했고 완전 침몰햇다는 이야길 이후에 들은걸로 봐선 오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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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오빠의 모닝콜로 기분좋게 하루를 시작했는데 종일 멍하고 울컥하고 이상한 날이었어요. 입사한 지 일주일이 갓 지났을때라 너무 바빠서 오빠한테 연락할 수 있는 퇴근 후 저녁시간만 기다렸었는데.. 일하는내내 우리오빠 고대했던 수학여행인 만큼 학생들이랑 맛있는거 먹고 재밌게 보내길 기도했는데... 오빠 연락대신 세월호 얘기로 쏟아진 메시지와 부재중전화. 지금까지 몸도 마음도 너무 아픕니다.. 고맙다는 말도 마음속으로만 일기쓰듯 담아둔 말도 제대로 못했는데.. 누구보다 빛나고 훌륭한 오빠와 오빠가 너무나 소중히 여기고 예뻐했던 아이들 아프게만 했던 사람들. 어떤 이유든 이해가 안되고 원망스러워요. 많은분이 존재만으로도 기쁨이었고 자랑이었고 사랑이었던 그날 세월호 안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기억해 주시기를.. 그분들이 지금 우리 옆의 내 소중한 가족, 내 소중한친구와 같은 존재였음을 공감해 주시기를.. 진실을 밝히는 데 인내와 관심을 가져주시길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는 것- 생명은 무조건적으로 존중받고 소중히 여겨지는 대한민국.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한 초석입니다. 다시는 저와같은 슬픔을 겪는 분들이 없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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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가 일어나보니 이미 "전원구조""는 오보였으며 현재 구조중이라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는 세월호 얘기로 뒤덥혀있어 사태의 심각성을 즉각 인지하였습니다. 눈을 뜬 순간부터 하루종일 제 일은 뒷전으로 미뤄두고 인터넷 기사만 찾아봤습니다. 생존자수가 늘어날때 감사함에 한숨을 돌렸고 사망자수가 늘어날때마다 신을 원망하였습니다. 모순적이지만 신께 계속 기도하며 배 안에, 바다 안에 갇혀있으면서 두려움을 이겨내려 안간힘을 쓰고있을 사람들이 부디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7시간은 흘렀습니다. 세월호를 위해 기도하고 사망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것에 대해 신을 원망하며... 그저 한명의 시민에 불과한 저도 끊임없이 세월호만을 생각하고 걱정했는데 대통령은 무엇을 하였습니까? 무엇을 하였기에 당당히 밝히지 못하고 거짓뒤에 숨는것입니까? 진실은 꼭 인양되어야합니다. 억울하게 죽은 아이들과 피해자들 그리고 유가족들을 위해 진실은 꼭 밝혀져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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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당시 전 고2였어요 그날 전 중간고사를 쳐서 학교가 일찍끝난덕에 집에와서 게임을 했어요. 한판하고 티비를보니 뉴스속보가 나오더라고요. 보니까 저희랑 동갑인 애들이 탄 배가 뒤집히고있단 소식이었어요. 그당시 배가 완전히 가라앉은 것도 아니었고 조기에 발견됬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게임을 한판더했어요. 한판하고나니 속보로 전원구출이라고 하더군요. 엄마랑 다행이라고 했어요. 근데 밥먹고 내일있을 시험준비하다가 티비를 보니 갑자기 전원구출이 뻥이라네요? 뭔가 착오가있나 싶어서 금방 구출하겠지하고 그때도 전 심각성을 몰랐어요. 그날저녁이 되서야 어렸던 저는 뭔가 이상하던걸 느끼고 자고일어나면 다 구조되있겠지하며 잠들었어요. 끝맺음을 맺기 애매한데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하늘에서 모두 잘지내고있길바래. 내가 옛날 기억을 잘 기억하진 못하는편인데 왜인지 그날의기억은 잊혀지지않는구나. 그럼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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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날 학교에 있었습니다.오전 수업이 없는 날이라 평소 같으면 자고 있었을 시간이지만, 모의 토익이 있는 날이라 학교에서 시험을 보고 있었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나서야 세월호 침몰 기사를 보았고, 사실 처음에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모두 무사히 구조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거든요...그 날 하루종일 뉴스를 체크하며 구조자 수가 늘어나길 바랐습니다. 당장 어제도 뭘 했는지 기억이 뚜렷하지가 않은데2년도 더 지난 4월 16일 그 날을 저는 생생히 기억합니다.어떻게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정말 말도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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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방송작가입니다.. 그날 촬영 답사차 부산에 갔습니다. 출연자 집이 송도여서 가기전에 남포동 18번 완당집에서 식사를 하고 나와 출연자에게 줄 선물을 사려고 b&c빵집에 들러 빵을 샀습니다. 출연자 집에 들러서야 함께간 일행들과 방송보도를 제대로 볼수 있었습니다. 도착전만해도 전원구조였다고 했다가 구조중이라고 했다가.. 했는데 배가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직감했습니다. 아.. 이 촬영이 연기되겠구나. 당분간 물가. 바닷가에서의 촬영이 안되겠구나.. 그러고 당혹스러워 하며 부산을 떠났습니다. 해가지기전 한사람이라도 구조되길 바라면서.. 그 때 아무도 아무것고 하지 않는게 더 충격적이였던것도 기억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