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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어요. 옆에 팀장님께서 세월호 뉴스를 보고 알려주셨고 잠시 뒤 전원구조되었다고 해서 계속 근무했었는데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오후엔 말도 안되는 뉴스들을 접하면서 얼마나 어이없고 당황스러웠던지. 요즘도 여전히 말도 안되는 뉴스들을 접하면서 뭐라도 하고싶은데 답답하기만하네요. 지금까지와는 다른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나라가 되길, 또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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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항상 가슴에 기억하면서 살겠습니다. 뉴스에 나오던 그날의 오보들이 너무나 생생합니다. 구조가 다 되었다 해서 안심하고 일을 시작...몇 시간후의 참담함...그리고 지금까지.. 잊을 수도 잊어져서도 안되는 그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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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유난히 꽃이 일찍 피고 졌던 그날의 봄어김없이 회사에 출근했고 정신없이 오전을 보내고 있을 무렵믿을 수 없는 소식이 들려와잘 켜도 않던 회사 TV를 틀어모두 같이 하던 일을 멈추고속보에서 눈을 떼지 못한그날의 오전은믿을 수 없었고믿기지 않았고먹먹하고 답답했고미안했다시간은 흐르고 있지만우리는 잊지 않아야 할그들의 시간은 아직 거기 있다.그날의 진실....우리는 포기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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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전 대학생이였습니다.어수선한 학교 화장실안에서 지나가던 친구 하나가 배가 뒤집어졋다고 말하더군요.사람은 안다쳣나 물었더니 전원구조 되었다더라라고 친구가 답했습니다.그래서 전 괜찮은줄 알았습니다.수업을 모두 마치고 집에 돌아와 그것이 오보였단 사실을, 구명조끼도 채 입지 못한 채, 배 안에 아직 사람이 있다는 뉴스를 다시 보기 전까지는저는 정말 괜찮을줄 알았습니다.당연히 다 구조했으리라 생각했습니다.허나 그것은 착각이였고 정부는 무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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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구조되었다는 언론의 보도에 가슴을 쓸어내리기가 무섭게 받아들이게된 사고 소식은 정말 사실이라고 믿기 힘들었습니다 수학여행이나 단체 여행의 문제점에 선행해서 그 7시간동안 우리나라의 수장으로서 가장 소중한 생명을 뒤로한채 어떤 일을 했는지 진실규명은 반드시 되어야할 것입니다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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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오보를 믿었다.너나할것 없이 관련 부처에서 구조를 하고 있으리라 믿었고하지 않을 이유를 생각해보지 않았으니까. 시커먼 바다로 침잠해가는 뱃머리를 보며 아득한 절망감을 느꼈다. 일상이 시작되고 다들 말은 없었지만 투명하게 울고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 죄스러웠다. 교복입은 아이들만 봐도 나는 길을 비켜서서 비슬비슬 피했다. 이 나라를 이토록 저주한 날이 없었다. 모든게 붕괴되어 주저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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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고사를 얼마 안 남기고, 강의동 1층 로비에서 친구와 공부 중이었습니다. 로비에는 음소거된 텔레비전이 두개 있었습니다. 보통 때는 텔레비전을 등지고 앉아서 공부했는데, 그날은 텔레비전에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중간고사 공부가 급하다는 생각에 책에 눈을 두려 해봐도 눈물이 차올라서 다시 고개를 들어 구조 소식이 나오기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저녁식사를 해야해서 나오는데, 맨발로 슬리퍼를 신은지라 발이 너무 시려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날도 그다음날도 그다다음날도 온 몸이 시려울 학생들의 걱정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간절히 기다리던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2년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는 그날 자신들의 7시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돌아오지 못한 이유는 아직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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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제일 처음 본 뉴스는 세월호 좌초. 350명 학생 전원구조...그 뉴스를 보면서 다행이네... 쟤네들 평생한번 가보는 제주도 수학여행인데 뭐됐네... 욕 엄청하고 있겠네... 나중에 시간되면 친구들끼리 또 가라... 할수없지뭐...이러고서 수학여행이 무산된건 참 안타깝지만 한명도 죽지 않았음에, 단지 여행무산, 옷이젖고, 욕지거리를 하고 있을 평범한 고삐리들의 모습이 그려져서 그냥 낄낄대고 웃었던게 기억이 납니다.참으로 어이없는... 오보...그날의 모습들은 도대체 왜... 배안에서 뭐하고들있는거야... 라는 욕지거리와 함께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거야... 라는 혼란함만이 기억을 채우고 있습니다.생각하기도 싫은 그날의 기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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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를 하고있었습니다저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아이를 기다린 것입니다뉴스를 보았습니다단원고의 아이들이 올라오길 기다렸습니다차가운 물에서 올라와 따뜻한 담요를 두르며 무사히 구조되어 다행이라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기다렸습니다어린이집에 갔던 아이가 돌아와도 단원고의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지금도 미처 돌아오지 못 한 아이들을 기다립니다계속 기억하며 기다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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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속보로 세월호 전원 구조 오보를 봤어요.사고가 났고 승객들이 구조되었으니 되었다,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어요.그러고는 늘 그렇듯 친구와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했죠.밥을 먹으려고 대학교 앞에 국밥집을 갔는데 작은 모니터로 나오는 뉴스는 정말 믿기지 않았어요.세월호의 모습이 반도 채 보이지 않는 모습, 고무보트를 타고 세월호 주변에 있는 구조대. 정말 탁하고 가슴이 막혀 더이상 밥을 먹을 수가 없어서 그대로 가게를 나왔고공부가 손에 잡힐 거 같지 않아 집으로 돌아와 뉴스만 잡고 있었어요.세세히 다른 일들은 기억나지 않아도 그 허망함, 간절함은 너무나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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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우리나라가 저를 보호해 줄 수 있는 한 울타리인만큼 든든한 나라라고 생각해왔습니다. 또한 다른나라 못지않게 부족함 없이 살기 좋은 나라라고 자부해왔습니다. 최근들어 속속히 밝혀지는 끔찍한 일들과 수많은 거짓행동 그리고 차마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수치스러운 모습들.....저는 현재 고등학교를 재학중인 3학년생이며 수시정시를 끝마친 수험생입니다. 어제도 오늘도 전 남들보다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지독한 입시지옥에서 못 벗어나고 있습니다.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인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거라곤 이렇게 몇마디 끄적이는것. 이것밖에 못하는 제가 정말 한심스럽습니다. 한 나라의 가장 윗 분들께서 나라를 위해 국민들을 위해 하는 일이라곤 나라 뒤통수 치는 것. 그런데 그런 분들께서 생각합니다. 아직도 전 고등학교 1학년때 수업시간에 세월호사건을 잊지 못합니다. 정말 뻔뻔하시고 정말 더럽습니다.제 자신이 너무 무능력하며 이런 도덕도 없고 약아빠진 이 나라의 한 국민이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부끄럽습니다. 부디 바다에 잠들어있는 학생들에게 사죄하시고 엄격한 벌을 받으시길 빕니다.그날 뿐만이 아닌 모든 일들 저는 모두 기억합니다.하신 교육과정을 위해 저를 포함한 모든 학생들이 학창시절 대학을 위해 낭비하는 시간이 너무나도 아깝습니다. 불쌍하지도 않으십니까? 바다속에 잠들어 있는 불쌍한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듭니까? 국민들이 뽑아준 대통령이시면 국민들이 원하지 않을 때엔 내려오시는게 멋진 대통령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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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수업 전에 책을 훑어 보면서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하고 있었다.세월호 침몰 소식과 함께 반쯤 기울어진 배 사진을 인터넷에서 보았다. 놀란 마음에 인터넷을 뒤지다가 해경과 어선들이 구조를 하러 달려가는 중이라고 했다.기사 사진도 많이 있었고 해경과 어선, 그리도 헬기도 구조 예정이란 기사에 안심을 했다.그래도 2000년대인데 예전과 같은 참사는 일어나지 않겠지. 수많은 기사 사진과 기사을 보고 안심했다. 해경이 구조하러 간다는 기사를 보고 맘 편히 수업을 들었다.수업 중간마다 기사를 봤다. 그러다 전원 구조란 기사를 보고 더 이상 기사를 챙겨보지 않았다.남은 수업을 다 듣고 집에가서 확인해도 될거라 믿었다.그리고 집에와서 뉴스를 틀었을때 오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 순간 말문이 막혔다.내가 맘편히 수업을 듣던 그 시각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까 . 뒤늦게 자책이 되었다. 인터넷을 켜고 일분단위로 기사와 뉴스를 시청했다. 생존자들이 늘어나길 바랬다. 하지만 결국 수많은 사람들을 삼켜버리고 말았다.그 날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무슨 수업을 들었고 날씨가 어땠는지. 집에 가는 그 길. 오보라는 속보....잊을 수가 없다.그리고 절대로 잊지 않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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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으려 식당에 들어갔다. 무언가 분위기가 달랐다. 모두가 식당 텔레비전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무언가 이상하다 생각하며 흘끗 텔레비전을 보았는데, 배가 가라앉고 있었다. 구조 소식은 모두 오보이며 수백명이 실종 상태라고 했다. 수면에는 사람들이 가득한데 실종 상태라면 물 아래밖에 없다. 나는 점심을 먹으러 왔지만 먹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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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구조의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뻐 약속장소로 출발하려 던 차 아니라는 소식에. 다시 무너져내리는 슬픔에. 약속취소하고 뉴스에만 귀기울이며 한명이라도 더 구조되기를 간절히 눈물로 마음 졸이며 기다리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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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포털메인에서 속보를 보았습니다. 수학여행가는 학생들이 타고있는 대형 여객선이 침몰중이라고....깜짝 놀랐습니다. 어머니께 전화를 해서 소식을 알려드렸습니다. "저렇게 큰 배라면 모두 구조될거야. 너무 걱정말아라."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전화통화를 마치고 강의를 듣기위해 학교로 출발했고.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했습니다. 다행히 전원이 구조되었다는 뉴스도 보게되어 마음이 한결가벼워졌습니다,. 4시쯤 강의를 마치고 학교 문화관을 지나며 스마트폰을 본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 앉았습니다. 구조자보다 실종자가 더 많다는 기사.....카카오톡 단체방에 이 소식을 전했고 많은 대화를 했습니다..어머니께 전화가 왔고 충격적인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자취방에서도 하루종일 뉴스만 붙잡고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다 탈출해서 어느 섬에라도 숨어있길 바랄만큼 절실히 생존자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후 이틀동안 헛된 희망인줄 알면서도 에어포켓이 존재해 단 한명이라도 살아돌아오기를 바라면서 뉴스에서 눈을 뗄수가 없었습니다. 희망은 절망으로 바뀔만큼의 시간이 흐르고....... 일상에 치여 세월호에 대한 관심은 시들어갔고, 유족들이 열심히 싸우고 있을때 응원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생존자와 희생자여러분, 정말 죄송합니다. 외롭게 싸워오신 유가족 여러분, 정말 죄송합니다. 4월 16일의 그 간절한 마음을 잊을뻔했습니다. 다시는 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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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직원들과 뉴스만을 보며 하루종일 그 소식에 집중했습니다 전원구조라는 소식을 듣고 너무 다향이다 감사하다 해경 대단하다 했는데 잠시 후 오보라더군요 퇴근 후 집에 돌아가서도 하루종일 각자 보고 들은 뉴스 얘기만 했습니다 그 후 몇 주를 회사 근처 시내가 조용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회식도 자제하고 조용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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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컴퓨터를 하며 처음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시간 저는 회사에서 업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일이 바빠 제대로 기사를 클릭하지 못한 채 사고가 있었고 구조 중이니 막연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종종 사고 소식이 동료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이를통해 사건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집에 가서 ytn뉴스를 보며 계속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티비를 보며 우는데 남편이 퇴근을 했고 저녁식사 후 남편은 그날 운동을 하러 갔고 집에 홀로 남아 티비를 보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날을 똑똑하게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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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일도 손에 안 잡히고 근무시간 내내 핸드폰만 붙잡고 있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도 내내 핸드폰만... 티비 뉴스 (공중파, 종편..) 를 안보는 나는 포털사이트 뉴스며 자주가는 커뮤니티, SNS를 들락날락하며... 나는 물을 너무 무서워한다. 내가 물속에 갇혀 있는 느낌이었다. 그 날의 모든 일이 꿈이었으면 좋겠다. 세월호 희생자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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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해 미안해요...이런 비극을 만든것들 다 잡아 족치지 못해서 미안해요...아직 차가운 물속에 있을 그들을 가족품에 돌려주지 못해 미안해요...절대로 잊지않고 살겠습니다....그대들이 살았어야할 세상... 더 안전하고 행복한 세상으로 만들고자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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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은 수요일이었다. 그 날 나는 오후 2시쯤 호원대학교 화술 강의를 마치고 끔찍한 메데이아의 시 서울연극제 공연을 위해 대학로로 가는길이었고, 정확히는 올림픽대로에서 동호대교를 타는 중이었다. 라디오를 통해 여객선이 침몰중, 수학여행을 가던 고등학생 삼백여명이 그 배 안에 갖혀 있다는 뉴스를 들었다. 충격적인 일을 경험 했거나, 놀라운 소식을 들었을때 내가 그때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왜 하고 있었는지, 주어져있던 상황은 기억하려고 하지 않아도 감각적으로 정서적으로 몸에 남아있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