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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혹시 잊을까 스스로 두려웠는데그날 아픈 만큼 오늘도 아파할 수 있는 게 기억하는 것 뿐이라 미안해잊지않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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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연자실 가슴을 쓸어내리며 TV와 라디오에 집중했습니다. 행여 추가 생존자가 나오길 고대하면서요.. 부질없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선실에서 꼼짝 말고 구조를 기다리라던 선내방송이나, 배를 버리고 자기들만 살겠다고 내빼던 선장과 선원들 , 그리고 구조를 방해하고 혼선만 줬던 언론과 정부와 해경들은 모두 공범이었기에 희생된 고인들과 국민들의 기다림은 부질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바다 속에서 대한민국호에서 서서히 침몰하고 있었습니다. 속절없이 세월만 흘렀습니다. 하나씩 드러나는 의혹들은 단순하고 무능한 인재가 아니라 고의적인 침몰이었다는 가능성에 무게를 더합니다. 유족들에게 자행한 폭거와 세월호 조사위를 방해하고 인양조차 꼼수 부리는 것 자체가 고의적 침몰이라 국민들이 믿도록 합니다. 대통령의 7시간에 매달리는 언론과 정치인들이 안타깝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무능한 대통령이 사태의 핵심이 아니고 대대적으로 악랄하고 무자비하게 아이들을 수장시키며 얻고자 했던 사악한 집단의 음모와 야욕을 밝혀야 합니다.. 조직적으로 명령하고 방해하고 감추는 것도 모자라 유족들을 모함하고 종북몰이 했던 짐승같은 패륜의 진상을 낱낱이 파헤쳐야 합니다.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는 너무 약합니다. 연대하여 그 죄상을 반드시 처벌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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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라는 직업 특성상 늦은 오전 출근 준비를 하며 여느때처럼 평온한 시간을 보냈던 그 날...갑작스런 뉴스 속보에 놀랐지만 워낙 큰 배에 사고나자마자 방송에 나왔으니 구조도 무난히 이루어질 줄 알았다. 헬기도 뜨고 전원구조 소식도 들려서 큰 걱정하지 않았더랬다.그런데 그 후로 들려오는 이해할 수 없는 대응,피 말리는 안타까운 시간들...지옥은 그렇게 평범한 일상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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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7시간을 어찌잊을수있나요.세월호하면 눈물이 먼저 답합니다.우리는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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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자습을 하고 있을 때쯤, 수학여행을 간 아이들의 배가 뒤집어졌다는 소리를 들었고 저희는 너무 슬펐습니다.아직도 저는 그 날의 , 그 시각의 기억이 생생한데 어찌 정치인들은 기억이 나시지 않을까요?기업합니다. 201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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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빙벨이라는 다큐영화를 보셨나요???이런 쓰레기같은 나라에 산다는게 얼마나 부끄럽고 잔인한 일인지 느끼고 싶다면 꼭 보십시요.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대한민국.......ㅠㅠ너무나도 아픕니다. 노란색만 봐도 검은 바다만 봐도 가슴이 이렇게 미어지게 아픈데 ......어떻게 그날의 기억을 잊겠습니까? 기가막히고 코가막히는 ,재난 영화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나라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그날의 참사를 잊고 살아가겠습니까 ? 304개의 바람이 되어서, 오히려 우리를 위로해주는 우리 착한 아이들이 ,천국에서 편안하게 잠들수 있도록 우리모두 하루라도 빨리 그날의 진실을 밝혀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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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부활절이 얼마 남지 않아 일 하던 곳 전체 청소가 있었다. 내가 세월호뉴스를 본건 청소가 끝났을 때... 모두 모여 간식을 먹으면서 마무리를 지고 있던걸로 기억이 난다. 그 때 뉴스에서 이미 세월호를 볼 수가 없었다. 같이 있던 직장동료들도 탄식과 사고자들 걱정으로 마음이 아팠다.나도 그랬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 또 이쪽 일이 어려워지겠구나. 내 코가 석자가 됬구나 라는 이기적인 생각도 했다.참 미련하고 ㅂㅅ같은 생각이었다. 그 날 그 장소에서 아파 했을 유가족들을 생각하면 난 정말 죄스러운 사람이다. 그날 나의 이기적인 생각이 정말 죄스럽고 일에 치어살아 잊고있던 것도 죄스럽다.6차 촛불집회 후 마음을 다시 다 잡고 그들을 기억하고 7시간 진실규명이 될 때 까지 아니 평생을 그들을 기억하고 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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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서 가장 잘했다고 칭찬받을 일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엄마가 된 것이라고 말하고싶다. 첫아이를 임신하고 보낸 10개월 동안 작은생명이 내 안에서 자라나고있음이 어찌나 신기하고 경이롭던지.. 출산 후 내품에 안긴 아이를 바라볼때마다 손가락 열개, 발가락 열개. 작은 솜털 하나까지도 예쁘고 사랑스러워 조심스레 쓰다듬고 만져보곤 했다. 그날.. 아기와 함께 라디오를 들으며 그 소식을 접했을 때.. 분명 전원 구조라고했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그 소식이.. 오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내가 떠올린 건. 그 아이들의 엄마들이였다. 아이를 안고 세상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었을.. 엄마들. 지금은 가장 처절하고 아픈 피울음을 울고있을 엄마들.. 그해 봄. 매일매일이 지독한 몸살을 앓는 것처럼 나는 마음이 아프고.. 힘겨웠다. 엄마여서.. 아주 조금 짐작해보는 그분들의 아픔. 눈물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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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고 첫아이 임신과 함께 전업주부가 되었다가 둘째아이가 4살이 된 2014년 4월 초 새롭게 일을 시작하였습니다..출근해서 함께 일하시는 분이 인터넷을 통해 사고 소식을 알려주어 함께 안타깝게 보다가, 전원구조라는 오보를 믿고 업무에 몰두하고 퇴근을 했습니다..집에 돌아와 아이들 돌보며 다시 뉴스를 보지 않고 있는데, 늦게 퇴근한 남편에게 전원구조가 오보였다는 말을 듣고 다급히 뉴스를 보게 되었습니다..이건 뭐가 잘못되었다는 생각, 대통령의 어이없는 질문..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나 하는 의문들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저도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이며 여전히 뻔뻔하며 사람이 아닌 정부와 여전히 따뜻한 사람들이 국민인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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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무실에서 수업 들어가기 전에 뉴스를 접했습니다~ "아~ 다행이다. 시간이 있고, 해경도 해군도 출동했다니 구조할 수 있겠구나."그렇게 수업을 마치고 나왔더니, 전원구조했다는 뉴스가 나오더군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놀란 학생들이 잘 돌아오길 바라면서 다음 수업을 다녀왔습니다.그런데, 오보였답니다. 그리고 배가 뒤집히고 가라앉는 장면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만~ 왜 못 구하는거야 하는 탄식만 흘러 나왔습니다.내가 인솔하는 교사였더라도 학생들에게 방송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하니 대기하고 있으라고 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들에게,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말 잘 듣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 제가 너무도 미웠고, 이땅의 모든 학생들에게 미안했습니다~여전히 미안함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그리고 그 진실이 밝혀질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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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것보다 "전원구조"라는 뉴스를 보고 한시름 놓았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 뒤로는 그저 슬픔과 분노, 무기력함을 느꼈고요. 실시간으로 선체가 기울어져 가는 걸 보는 게, 뉴스만 틀면 나오는 세월호 소식이 너무 괴롭고 고통스러워서 오히려 진짜같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살아돌아올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세월호에 아직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도 여전히 세월호가 떠다니고 있습니다. 노란색만 봐도 울컥하고, 바다만 봐도 마음이 내려앉고, 가까운 곳으로 떠나는 일조차 두려워졌지만 어떻게 잊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마음놓고 웃을 수 있습니까. 잊지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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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합니다. 아픈 상처는 가릴수록 곪아 갈 것 입니다. 잘 열어서, 국민의 관심이라는 훈풍과진상 규명이라는 약을 발라잘 아물게 해야 합니다. 희생자 가족들의 멈추지 않는 눈물로이 상처를 짓무르게 그냥 두지 맙시다. 내 상처가 아닙니까?내 상처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마땅히 안전하다 믿고보호 받아야 할 내 삶의 곳곳이이름만 다른 세월호가 될 수 있습니다. 떠나지 않았어도 될 사람들을허망하게 보내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날의 허탈했던 심정을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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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당일,, 트윗을 통해 소식을 접하면서 모든 국민이 그랬던 것처럼 혼란스럽기만 했었다.. 그 무엇하나 정상적인 것이 없었기 때문. 3, 4일 후 일반 승객을 포함 배에서 탈출하지 못한 학생 모두가 이미 사망했을 즈음 jtbc의 분석을 접하며 "의도되고 계획된 사고"를 직감했다. 어찌 잠인들 제대로 잘 수 있었겠는가. 매일매일이 눈물의 연속이었다. 아니 통곡의 연속이었다. 그토록 통곡했던 이유는 비록 나 자신이 죽임을 당하진 않았지만, 왜 나는 한국인이어야 하는가? 왜 나는 이런 더러운 족속의 일원으로 태어나야 했는가? 그리고 저들은 또 왜 한국인으로 태어나 죽임을 당해야 하는가, 였다..모든 것을 체념해야만 했다. 그리고 베토벤의 운명을 듣는다. 몇 번을 듣고 또 들었는지 모른다. 운명 교향곡 그 자체가 희생자들의 죽음의 고통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고 그 고통이 끝난 후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천상의 세계도 펼쳐져 있었다. "이제 평안하시라, 이젠 편히 쉬시라" 음악에 실어 기도를 했다..내 평생에 쏟을 눈물을 다 쏟아냈다. 다시는 그토록 많은 눈물을 쏟는 일은 없을 듯하다.. 그러나 2년 하고도 8개월이 지난 2016. 12.. 15. 오늘,, 그 어느것 하나 밝혀진 진실이 없다. 아니, 학살자들은 여전히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모든 노력을 방해하고 있다. 희생당한 모든 분들의 원혼을 위하고 이 땅에 존속할 모든 이들을 위해서 진실은 밝혀져야만 하고 그와함께 처절한 복수도 행해져야 한다. 새로운 이 나라를 위해서.. #팃포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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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생일파티를 준비하면서 ㅠㅠ 아이가 2011년 4월 17일 생입니다사고소식을 접했지만 전원구조 자막을 확인한후 별일 아닌 줄알고 무심코넘겼습니다..사실을 확인하고 정말 슬픔과 울분을 참을수없었습니다ㅜㅜ 팩트티비와 고발뉴스의 실시간 중계를보면서 언론의 이중적인행태 그리고 대통령의 부재와 정부의 부재에 좌절했습니다그리고 또 세월이 흐르고 잊은듯 지냈기에..살아남아 아무것도 바꾸지못하고 썩은 정치 대한민국에서 무기력하게 지내는 모습에 미안한 요즘입니다잊지않겠습니다 먼저간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정말 미안할뿐입니다..정말 명명백히 밝히고 잘못한 자들이 응당한 벌을 받는 그날까지..그래도 죄없이 죽은 아이들에겐 여전히 미안하겠지요 ㅠㅠ 아무튼 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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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일어난 그 날은 국밥이 먹고 싶어 집앞 해장국집에서 해장국 한 그릇을 먹었습니다. 티비를 보니 세월호 사고가 보도되고 있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는 아무 희생자없이 해결될 줄만 알았던 제 생각도 기억이 납니다. 전원구출이라는 보도도 보았거든요. 학부모님들께서 사고지 근처로 모두 출발하셨다는 이야기도 보도되었던 게 기억납니다. 어머니와 사고에 관하여 통화도 했고 함께 걱정 했던 게 기억이 납니다. 저는 수업을 듣고 일상을 지내고 중간 중간 세월호에 대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 날의 상세한 일정들은 저도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흐릿한 일상 위에 삐죽삐죽 세월호 사고와 관련된 기억들이 서있고 그 위엔 그 날의 저의 감정들이 선명합니다. 보통의 일상을 보낸 저도 세월호와 관련된 기억과 감정들은 흐릿하지 않은데 일상을 보냈을리가 없는, 그저그런 일상을 보내서도 안될 사람들의 기억이 흐릿할 수 없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유가족들의 슬픔을 조금 더 많이 공감해주지 못하여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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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다면 먼 미국 땅에서 눈물흘리며 기도하던 몇날 며칠을 기억 합니다. 아직 다 피지 못했던 그 어린 아이들.... 평생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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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기억. 한국보다 느린 이곳은, 진도 앞바다에 세월호가 포류하고 있을때 퇴근 중이었고. 퇴근이라 기뻤습니다. 봄 바람에 마음도 말랑했고, 날씨도 맑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 옷을 갈아 입고 한국에 있는 여동생과 문자를 하다 알게된 소식. 승객 약 450명을 태운 여객선이 침몰중에 있다는 소식. 솔직히 걱정은되었지만, 대수롭게 생각안했습니다. 정치 빼고는 다 잘하는 대한민국이기에, 침몰이 아무리 빨라도, 구조는 더 빨리 끝날거라는... 믿음? 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일이 되면 이 "사고"는 잘 마무리 될거라 생각하고 그날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제가 상상한 내일은 오지 않았고, 국가를 믿은 전 아주 나쁜 사람이 되었고, 믿어선 안됬던 정부를 믿은 아주 모자란 사람이 되었습니다.이젠 기억을 안하고 싶어고 그럴수 없습니다. 내 무관심에 들어선 정권이고, 그런 정권이 뽑은 이 낙하산 인사들로 인해 정부의 모든 권력은 썩었고, 병들었고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4.16은 어른들의 무능함, 정부의 더럽고 추악함, 청년들의 무관심, 사회에 깊이 박힌 이기주의로 인한 참담하고 가슴 먹먹한 우리 모두의 "살인"이었습니다.4.16이후 저에게 봄의 의미는 달라졌습니다. 새생명들이 다시금 아름답게 이땅을 아름답게 꾸며주던 그 봄은 2014년을 끝으로 더이상 만날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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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 날, 그 시간에 한 해 더 공부하겠다고 마음 먹은 학생이었습니다. 핸드폰도 뺏기고 인터넷도 못하는 저에게 그 날은 막연하고 막막하고 더러 이게 현실일까 정말 눈으로 봐야 믿겠다 하는 그런 안개와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에 저는 의미없는 세속적인 꿈을 좇아 책상에 앉아있고 시간은 흘렀습니다 저는 지금도 책상에 앉아 오는 시간을 흘려보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무력하게 앉아 있는 저에게도 결코 보낼 수 없는 ""그날의시간""이 우리에게 또 그들에게 있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밝혀내겠습니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에게 결코 굴복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그래도 이렇게 힘이 없지만 부끄러움을 아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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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신도시 건설현장 (주) 라인 에서 조경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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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저녁쯤이면 오전 한국뉴스를 볼수가 있어서 그날도 인터넷을 보려던 중이었어요.배가 침몰하고 사람들이 구조가 안되었다는 소식....전원구조했다는 소식...아수라장이었습니다.전원구조라는 말에 편하게 잠들었다가..아침에 일어나보니 현실은 달랐지요.설마했습니다. 그래도 하루이틀이면 사람들을 구하겠지라는 생각과 어떤 영화속의 배침몰하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현실과 영화가 구분이 안되었었어요. 세월호는 영화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진실은 꼭 밝혀져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