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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세월호가 나오면 그 안에서 공포에 떨고.. 차오르는 물에 공포심을 느꼈을 애들을 생각하면...가슴이 먹먹해지고 미어집니다...우리는 그 아이들을, 그 슬픔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고.. 차갑게 세상을 떠나갔던 아이들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고위 관료들은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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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안전점검일을 하는 사람입니다.그날도 다른날과 같이 수용가를 방문하여 점검하고 동료와 같이 식사를 하려 동태집에 들렀는데 뉴스에 세월호 사고가 방송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모두 구조되었다고 하기에 천만다행이다라고 식사를 하고 일을 하러 갔었는데 ...지금도 세월호 동영상이 나오면 볼수가 없습니다. 마치 내애가 그속에 있는것 같아 금새 눈앞이 흐려지는게 보기가 너무 가슴아픕니다.그렇게 허무하게 속수무책으로 어린 생명을 보낼수 밖에 없었는지...왜 사고가 발생했는지 그렇게 밖에 대처할수 없었는지 원인을 밝혀 어처구니 없게 가버린 생명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꼭 밝혀내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어떻게 잊을수 있나요 그날을 생때같은 애들이 그렇게 간날을...기억하지 않으려 해도 잊혀지지가 안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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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서 배가 가라앉았다고 하셨다. 그러나 빠른 대처로 전원이 구조되었고 모두 안전하다는 뉴스를 전해 주셨다. 그 때까지만해도 나는 남의 일 처럼 시큰둥했다. 아침부터 시작된 철학 수업에 도저히 집중을 할 수 없었고 전원 구조라는 희망적인 소식은 나를 안심시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제주도로 들어 온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기로 했던 옆 학교 친구들은 수학여행이 미뤄진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전원 구조라는 소식은 전부 오보였고 세월호 승객들은 모두 방치된 채 죽음을 맞았다. 정부 당국의 잘못된 상황 판단과 부족한 상황 대응력이 그들에게 죽음을 가져다 주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당시의 무능함은 승객들을 죽음을 야기했을 뿐 아니라 남은 유족들의 마음을 후벼파는 책임 회피로까지 이어졌다. 정부가 세월호 승객과 유족들의 반대편에 선다면 나는 기꺼이 유족들 옆에 서겠다. 나의 친구, 엄마 친구의 아들, 친구의 이모, 동생 친구의 형이 세월호에 탈 수도 있던 그 상황은 내가 아주 우연히 비극의 주인공이 되지않았음을 알려준다. 어떠한 방법으로도 유족들의 마음을 온전히 헤아릴 순 없겠지만, 세월호 안의 승객들을 나의 삼촌, 이모로 학생들을 나의 친구로 생각하고 슬픔에 동참하겠다. 우리는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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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이론 수업을 수강하고, 집으로 돌아와 김세은 교수님에 대한 감상을 썼었다. 그리고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일기를 적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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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아이도 내친척도 아닌 얼굴한번본적없는 아이들이었지만 셀수없는날들을 슬퍼하고 분노하고 무기력했음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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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침 느지막이 접한 TV 화면에서 나왔던 기울어진 배...하늘에 날아다니는 헬기, 물에 떠 있는 선박들, 바쁘게 움직이는 듯 보였던 사람들...곧, 모두가 살아 나올 것을 믿으며 가슴 졸이며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그날 아침...결국은 내가 보고 있던 TV 속의 바로 그 배 안, 바로 그 때, 아이들이 살아 숨쉬고, 두려운 마음을 움켜쥐고 재잘 거리고, 사랑한다고, 구조될거라고, 서로를 부둥켜 안고 떨고 있었다는 사실이...너무나 생생해서 지금도 기울어진 배만 보면 가슴이 울컥한데,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니...이런 천하에 쳐 죽일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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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 방송되면서 1분 1분 배가 가라 앉던 그 절박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참담함을 또렷히 기억하고 있습니다.배가 다 가라 앉도록 아무것도 못하던 많은 사람의 절망 어린 한숨소리와 눈물을 TV에서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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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페티예에서 카파도키아로 가는 야간버스에서 속보로 사고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 터키 고속버스에는 개인 모니터가 달려있는데 사고 소식이 속보로 전해졌고 핸드폰으로도 한국 난리났다는 문자가 쏟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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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그날을 생생히 기억합니다.그날 아침 9시 30분쯤, 용인의 어느 병원 공사 건설현장...일을 하다가 잠깐 여유가 생겨서우연히 제 스마트폰으로포탈사이트를 검색하다가세월호 사고 소식을 알게 됐었습니다.하루 종일 틈만 나면 제 폰으로사건 상황을 검색했었습니다.저는 세월호 유가족도 아니고사고와 직접 관련된 사람도 아닙니다.그런 저도 그날 제가 어디서 무슨 일을했는지, 그날의 사고 소식의 충격과 함께지금까지도 또렷이 기억합니다.이날을 기억 못한다는 사람들....그건 정말 거짓말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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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때 전남대학교 공과대학 모 공학부의 한 연구실 제 자리에서 컴퓨터를 켠 상태였습니다. 포털에서 진도 여객선 침몰이라는 키워드가 떴고 연구실 선배 동료들도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전원 구조라는 속보가 떴을 때에는 불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게 오보라고 판명이 되었을 때에는 "그럼 그렇지 그러면 세월호에 탑승한 단원고 학생들은 어떻게 되었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세월호에 탑승한 승객들, 특히 단원고 학생들이 대부분 죽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자 너무 분통이 터졌고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지금도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잖아요. 가장 죄책감이 들었던 것이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날 완도에서 무슨 해조류박람회 같은 것을 계속하는데 가족 단위로 가자고 하는 거에요. 저는 끔찍한 세월호 참사가 터졌고 수색 중이고 시신 인양하는데 가지 말자고 했는데 끝내 가자고 한 게 지금도 자꾸 걸립니다. 이 와중에도 가족끼리 여행가고 미역이나 사겠다고 이러니...... 아무리 생계 걱정에 세월호 참사 이후 진도 완도 부근에서 채취한 미역이 잘 안 팔리게 될 것을 걱정한다 하더라고 이런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는 분위기를 살펴 자제하는 것이 좋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했습니다. 물론 끔찍하니까 세월호 현장에 가지 말자 이런 주장은 아닙니다. 지금도 분노할 시간에 실력이나 쌓아라 이런 식이니...... 앞으로 사는 게 참 걱정됩니다. 시간이 지나니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나도 여기에 일조했다 나도 잘못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윗분들 제발 기억이 없다고만 하지 마시고!!! 진실을 털어놓으시길 바랍니다!!! 세월호 7시간 진상규명 꼭 이루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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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대전에서 회의를 하다가 페북에서 처음 소식을 접했습니다. 마침 전남쪽에서 참석한 사람이 있어 큰 사고 났는데 아냐고 물어보니 다 구했다고 한다 걱정 안해도 된다는 이야길 듣고 안심 했는데... 잠시후 오보라는 어이없는 소식에 가슴이 무너졌던 그날의 기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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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틀후 시드니 가족여행을 갈 마음에 들떠있을때 아침에 세월호 뉴스를 보고 믿을수가 없었고 영어회화 수업을 들으러 가서 엄마들과 원어민선생님과 아이들 얘기를 하며 애태웠던 기억이 납니다.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여행을 포기해야하나도 생각했습니다.여행내내 한국소식만 봤던 기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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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2014년4월16일목요일제주에살던저는어느단체에서에코랜드로소풍을갔죠재밌게놀고있는데소식이들려오고잠시후전원구조라는소식에"당연히그러겠지..그렇게큰배가금방침몰하지는않을테니..."생각하고는오후시간도즐겁게보냈죠에코랜드에는육지에서온고교수학여행학생들이있었고바로그주간에제아들은제주에서인천쪽(강화도)으로수학여행갔습니다 배를타고간것은아니지만..소풍을마치고돌아와보니전원구조는오보였고...저녁시간에배속깊은곳에서올라오는눈물과탄식이결국제에게큰트라우마를만들었습니다그래서지그또세월호뉴스를듣는것이힘듭니다그날저녁에저는이틀뒤토요일에근처바닷가로낚시가기오했던지인들과의약속을취소한다는문자를보냅니다아직300명의아이들이잠겨있는그바다에서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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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남편과 함께 뉴스를 봤어요배가 가라 앉는데 다행히 다 구했다고... 정말 다행이라고 웃으며 남편과 얘기하고 있었어요잠시 후 다시 뉴스가 나왔어요거의 모든 승객이 배 안에 갇혔고 수학여행을 가던학생들, 제주에 새 삶을 기대하며 이사가던 단란한 가족 ...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숨이 막혔어요 배는 기울어져가는데 돕겠다는 어선은 못가게 막고 아무도 오지 않았어요 위에서 돌기만 하던 헬기 하나 그리고 승객들을 나오지 못하게 막고 자기들만 살겠다고 배에 오르던 선장과 선원들을 태우던 배한척. 그게 다였죠 기억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민간의 도움도 막고 그대로 수몰된 배의 모습을...혹시 살아있을지 모를 사람들을 포기한 체 구하고 있다며 cg로 거짓보도하던 방송국들. 저 그 뒤로 방송3사 뉴스 안봅니다 어차피 자기들 입 맛에 꾸며진 뉴스따위그배에 또다른 제가 타고 있었고미래의 제 아이들이 타고 있었습니다.누군가의 부작위로 그 수 많은 생명들이 차가운 물 속에서 죽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도 사과도 없이 그저 감추고 진실을 밝히려던 사람들을 억압했던 그날. 그 수많은 시간들... 잊을수 없죠 지켜주지 못해서... 그 일에 책임을 묻지 못하고 침묵하고 있던 한 사람의 어른으로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부끄럽지 않으세요? 잠은 잘 오시던가요?집에 애들 얼굴은 부끄러워서 어떻게 보세요?하긴 그런 양심이 있었다면 지금 그런 뻔뻔한 얼굴로 잘 먹고 잘 자면 웃고 있을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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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출근을 했을때 속보로 뜬 뉴스에 설마...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탑승객 전원이 모두 무사하기를 빌었다. 지금도 그 날 얘기만 나오면 눈물이 나도 모르게 흐른다. 우리는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하루 빨리 진실이 드러나기를... 그리고 지금 거짓을 말하는 그들은 처벌받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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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네살이 될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습니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선박사고가 있었으나 구조되었다는 속보에 그저 그렇게 심드렁하게 넘겼습니다 별일도 아닌데 속보까지 내고 그러나 싶었죠... 그런데얼마 후에 이어지는 화면을보고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전국민이 지켜보고 있는데 구하지 않은채 배안의 사람들이 그저 사라져가는모습이 너무 허망했습니다. 첫아이임신땐 후쿠시마 원전이 터지는것을 목격했는데 둘째땐 세월호. . . . 임신할때마다 감당키 어려운 재난이 발생하는건지....아이엄마가 되기위한 마음공부를 스스로할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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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 2014년 4월 16일일하는 가구공방이 이사하느라고 아침부터 정신이 없었다. 아침에 본격적으로 짐을 옮기기전 같이 일하던 누군가 수학여행 가던 배가 뒤집어졌는데 모두 구했다는 말을 스치 듯이 했다. 그말에 다행이다 하고 그냥 지나쳤다. 정신없이 물건 옮기고 정리했다. 그 난장판에서 보내기로 약속한 제품을 만들어야 된다는 말에 같이 일하던 사람들은 짜증을 냈고 정신 없이 하루를 쫓기듯이 보내고 나니까 저녁 7시였다. 그때까지 그냥 다 구했다는 말만 알고 있었다. 사장이 선심쓰듯이 이사 했으니까 저녁에 짜장면이라도 먹어야지 하면서 근처 중국집으로 갔다. 기다리면서 TV를 보는데 그제야 다 구했다는 말이 오보인걸 알았다. 화면엔 배가 거의 가라 앉아 있었고 구하는 중이라고 했다. 애들이 300명 넘게 아직 갖혀 있다고 . 수심이 40미터. 그래 40미터면 취미로 하는 다이빙으로도 들어가 봤던 깊이, 거기에 아무리 물살이 빨르고 시야가 없어도 ,가이드 줄 내리고 그런 일에 능숙한 프로들이 가서 일할텐데 그래도 절반은 구할 거라고 사람들한테 얘기 했다. 못구한 절반의 부모,가족들은 어떻하지 하면서. 그때 그런 걱정을 했다. 그래도 절반은 구할 줄 알았는데.,다 못구해도 절반은.......... 겨우 40미터 인데. 그래도 제대로 만 했으면 아니 할일만 했으면 다 구하지 못했더라도 지금 누군가는 살아있을었을텐데 이걸 어떻게 잊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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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아침, 온라인 외신 기자였던 저는 회사에 송고하고 출근할 트위터 기반 기사감을 서둘러 찾고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토픽거리 하나를 집어내 노트북으로 재빨리 번역-종합해서 막 보내려던 참이었습니다. 세월호가 침몰 중이라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수학여행 중인 고교생들이 수백 명 타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하찮은 송고를 보류했습니다. 점심 때 쯤 전원구조됐다는 속보가 나오더군요. 그걸 보고 "휴~ 다행이다" 하면서 비로소 토픽을 실었습니다. 오후에 참사를 확인하고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던 망실감에 울컥울컥 통곡이 나는 걸 삼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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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건너 미국에서 미국뉴스로 먼저 소식을 접한나는 처음엔 다른나라 얘긴줄 알았다. 여객선이 침몰했는데 아직까지 한명도 구하지 못했다고 하눈 방송을 보고 ..설마...설마....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 ......그럴리가 없다며...한명도 못 구해냈다니..그럴리가 없다고...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혼자서 얼마나우겨댔는지 모른다. 배가 완전히 잠기지도 않았는데 구조를 못할리가 없다며...며칠을 아이들 구조 소식을 기다리며 전화기를 놓치 못했고, 뉴스를 볼때마다...소중한 사람들을 애타게 부르는 가족들을 볼때면 같이 울고....모르는 아이들이지만 다 내 아들같고 내 딸 같아서..별이된 그 고운 아이들.....어둠은 빛을 이길수 없다.거짓은 참을 이길수 없다. 진실을 침몰하지 않는다.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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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보고, 뉴스보고...대체 한 국가의 컨트롤 타워가 어디서부터 문제엿는지조차 알수없엇던 그 시간 이엇습니다감투쓴 놈들는 생색내기 급급하고 그 똘마니들는 의전의전...사무실에서 일을하고 잇어도 눈과귀는 방송과 속보로만 향햇던 그때입니다.우리의 소중한 생명들께 미안하고 또 미안할 뿐 이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