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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중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그때 수학여행을 떠나는 버스 안에 있었다. 꽤 들떠 있었다. 기사님께서 틀어주신 영화가 끝나서 선생님이 뉴스를 보자고 했었다. 마침 세월호 침몰 속보가 보였다. 희생자들의 대부분은 수학여행을 간 고등학생들이었다 .우리반의 몇몇 아이들은 부모님이 전화를 해서 버스를 세우고 수학여행을 가지 않았다. 코스에 있던 바다는 아예 코스에서 빠졌다. 그럼에도 어렸기 때문일까, 난 별 생각이 없었다.엄마가 갑자기 전화를 하셨다. 어릴때 친하게 지냈다가 안산으로 이사를 간 언니가 명단에 있는 것 같다고. 이름이 특이해서 혹시나 했던 거다. 다음날 연락해 보니 다행히 그 언니는 아니였지만 나는 하루 종일 일년치 눈물을 다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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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수요일이었고 나는 21살, 대학교 2학년이었다. 오후 수업 밖에 없는 날이었기 때문에 늦잠을 자고 기숙사에서 기분 좋게 일어나 평소와 다름 없이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슥슥 넘기며 보고 있었다. 제주도로 가던 배가 전복 되었다는 뉴스가 타임라인을 온통 채우고 있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승객들이 무사히 구조 될 것이라는 생각에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배는 점점 가라앉고 있었고 구조에 진전이 없는 것 같았다.점심으로 기숙사 휴게실에서 컵라면을 먹으면서 네이버에 접속해 생중계를 보며 기사를 찾아 보며 배 안에 갇힌 학생들이 제발 무사히 구조 되기를 기도했다. 배가 완전히 침몰 했다는 보도를 보았을 때 충격을 받긴 했지만 배 안에 산소가 남아있을 수 있다는 뉴스 보도에 정말 기적처럼 모두 무사히 구조 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 침몰하는 배에서 승객들이 전원 구조 되길 바라는 것이 과연 기적을 바랐던 것일까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구명조끼를 입은 학생들은 배가 완전히 침몰하기 전에 충분히 탈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선장은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 했고, 언론은 전원 구조가 되었다는 최악의 오보를 했고, 구조대는 높으신 분께 보고하고 인사하느라 시간을 지체했다. 상식으로 이해 되지 않는 거짓말 같은 일들이 일어났고 그렇게 거짓말 처럼 세월호에 갇혀 침몰한 승객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2년이 흘러 나는 지금 23살, 휴학 중인 대학생이 되었고, 세월호 승객들의 시간은 여전히 팽목항의 2014년 4월 16일에 멈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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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관식당에서 식사중에 전원 구조라는 뉴느를 보고 쿨하고 시크한척 담담하게 식사를 마쳤다. 도서관에서 자격증 시험공부하다가 왠지 궁금해져서 다시 뉴스를 보고서는 < 아, 쒸...이러다 천안함때처럼 되는거 아녀?>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고, 집에 가서도 결국 도돌이표 같은 인터넷 뉴스만 보다가 밤을 꼴딱 샜다. 딱 내가 가르치는 또래 아이들이, 그것도 한학년이 다 돌아오지 못하다니...이럴줄 알았으면 맛있는거나 실컷 먹고 마음껏 놀기나 하지 뭐하러 길지도 못했던 인생 공부만 하고 고생만 하다 갔나 너무 불쌍하고 그리고 화가 났다. 가르치는 아이의 사촌오빠가 세월호에 타고 있었다고 눈이 퉁퉁 부어 얘기할때는 너무도 불쌍하고 나도 이나라를 이지경으로 만든 소위 기성세대의 한 일원이란 생각에 창피하고 열받고 정말 울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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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하던 국가시험이 있어 오전 일찍부터 카페에 앉아 있다가 동생의 문자로 사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 후로는 핸드폰을 붙잡고 메이져 포털을 번갈아 들락거리며 혹시라도 하는 마음에 기사를 찾아보면 울기만 울기만 계속 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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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16일에나는 합숙을하고 있었다.운동부합숙이였는데 다같이 티비를보다가 뉴스에서 속보가나와서 너무놀랐다 그때 사망자가나올때마다 너무 가슴졸였다. 대통령은 그 7시간에 뭘했는지 밝혀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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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부대 체육대회가 있는 날이었다. 내가 소속된 소대가 좋은 경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체육대회 후, 수육 파티를 하던 우리에게 경찰서장께서 오셔서 말씀하셨다. 나라에 큰 안 좋은 일이 있으니, 너무 웃고 떠드는 것은 하지 말자고. 그리고 이것이 이렇게 큰 일이 될 줄은, 저녁을 먹던 이들 모두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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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근무하진 않지만 학생들을 온라인으로 팀을 꾸려 코칭하던 회사에 있었을 때다.. 오늘 뭐먹지 하다가 마땅한 메뉴가 없을땐 다들 좋아하던 식당인 고향집으로 가곤 했는데 그 날 역시 그런 여러날 중에 하루였다.. 소박한 밥집이다 보니 직장인들로 붐볐고 더디게 나오는 메뉴에 수다거리도 떨어져갈 즈음 티비에 나오는 침몰 소식에 모두들 신경이 쓰여 구조는 몇명이나 되어 가고 있는지 밥먹는 내내 높이 달린 티비를 흘끔 보며 식사를 마쳤다.. 전원구조에 괜한 걱정을 했다며 남자직원들은 담배한대 태우러 우리는 커피한잔 하러 나서던게 다인데.... 평소와 같은 패턴인게 다인데.... 오보라는 말에 그런 시간들 조차도 미안하고 마음이 탁 막히는게 먹먹해 다음날부터 눈에 띄게 우울한 동료도 있었다.. 며칠째 계속된 무기력에 찾은 병원에서는 "요즘 세월호때문에 이러는 분들 많아요..."라고....... 7시간만 그랬을까.... 아이들을 비교적 가까히 접하는 우리들은 정말 그 해 내내 모두가 먹먹했다.... 그리고 아직도 우리는 먹먹한 마음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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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뒤집혔다는데?! 어떡해.....""다 구조 됐데...!""아, 진짜 다행이다!"점심 먹으려고 식당에 앉아 숟가락 놓으며 주고받았던 대화에서.............................오보였다는 소식과 함께 배가 점점 더 뒤집어지고 사망자 수가 올라갔다. 세상에...!!! 도대체.........뭐지?! 왜 구조를 안 하는 거지?! 뭐가 문젠데?! 뭐냐고?!!!!!!!!!!!!!!!!!!!!!!그 때의 분노는 더욱 뭉쳐져 강철보다 더 단단해졌고 가슴에는 먹먹함이 자리 잡았다. 끝까지 갈 것이다. 어떠한 것도 진실을 막을 수 없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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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요 저는 중1이었고 중학교 첫 수련회 둘째날이었어요 버스 안에서 뉴스를 들었는데 배가 침몰했대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작은 어선이 침몰한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 날 저녁에 작은 어선이 아니었고 수학여행 가던 고등학생 언니 오빠들이 타고있다는걸 알았어요 그래서 장기자랑도 바베큐도 다 취소하고 우는 선생님도 계셨고 저희는 유스호스텔 홀에 모여서 많은 사람이 구조되길 기도했어요 자기전에 몰래 핸드폰으로 기사보면서 걱정했던 기억이 너무 생생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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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있었어요.배가 침몰했지만 잠시후 뉴스에서 전원 구조라는 소식을봤고 다행이라 여기며 안심했습니다.몇시간도 안되서 그뉴스가 오보라고 뜨기전까진요.골든타임이다 아직 희망이있다 하루 종일 뉴스기사만 찾아보며 한사람이라도 더 구조해내기를 기다렸던 시간들이었습니다.잊지않겠습니다-라고 말해놓고 사는게 바쁘다는 핑계로 잊어버려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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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 어느 봄의 중심 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따분한 수업에, 창가 자리에 앉은 나는 의미없는 손짓만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소리 없이 흔들리는 나무는 적적한 시간을 달래주는 유일한 볼거리였다. 지루한 수업이 끝이 보일 때 쯤이었을까, 화장실을 핑계로 빠져나온 갑갑한 교실 밖 나는 울고 있는 나의 친구를 보았다. 그리고 알게 된 충격적인 사건의 시작, 친구의 동생이 배에 갇혔고 그 배가 서서히 침몰하는 중이라는 울음 섞인 말과 포털사이트를 가득 메운 기사들. 불안에 떠는 동생의 목소리에 함께 떨리던 우리의 손. 나는 그 후로 줄곧 울었다. 처음, 이것이 비극의 시작인 줄도 몰랐던 때, 아이들이 걱정되어서 울었다. 먼 곳에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내가 미안해서 울었다. 그다음, 답답해서 울었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귀에서 맴도는데, 나는 점심을 먹었고 물을 마셨음에 탄식하며 울었다. 그 다음, 억울해서 울었다. 구명조끼를 입었는데, 그게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라는 한 여인의 말에, 목을 놓아 울었다. 그래, 당신은 그런 사람이었지. 이 나라는 이런 세상이었지. 악에 받쳐 울음을 토해내듯 뱉었다. 더 좋은 세상이었다면, 아이들아, 너희는 다시 빛을 쬘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 다음, 표식없는 분노와 찢길 듯한 고통에 몸부림치듯 울었다. 그때가 딱, 하나 둘 서서히 희망이란 끈을 놓아가던 시간이었다.나는 7시간이 넘도록, 그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이 지날 때까지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우리는 모두 약속이라도 한 것 처럼 노란 리본을 들고 나타났다. 내가 그날을 잊을 수 있을까. 아니, 잊을 수 없다. 나는 기억한다. 내 또래의 아이들이 소리없이 울부짖던 그 소리를 기억한다. 그때의 상실감과 분노와 슬픔과 아픔을 기억한다.우리는 당신의 7시간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기억한다. 당신은 우리보다 먼저인 것이 있었다. 우리는 당신의 우선순위에서 철저히 배제되어있었다.당신은 기억하라.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다.국민을 잊은 당신은 이 나라를 대표하는 자리에 앉아있을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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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던 중 직장 동료가 진도 앞바다에 배가 침몰했대요 하는데 그날의 뉴스는 처음엔 어리둥절 하기만 했다. 내가 사는 곳은 목포고, 진도랑 가까운 곳이라 그 얕은 바다에서 침몰한것도 그렇고 포털사이트에 하루종일 실검에 있는것도 모두 당황스러운 느낌이었다. 점심시간에 사무용품을 사러 문구사에 갔다가 전원 구조했다는 뉴스를 보았고 다행이다 했는데 또 오보라는 말이 나왔다. 진득하게 뉴스를 본지 오래 되었는데 그 날은 오후 내내 세월호 기사만 찾아보고 퇴근후에도 뉴스만 계속 봤었다. 퇴근후에도 구조자 수는 여전히 그대로였고 잠들기전까지도 바뀌지 않았던것 같다. 수년간 냉담자였지만 많은 학생들과 일반인들이 모두 구조 되길 열심히 기도했던 하루였다. 나조차도 뉴스를 보고 한 순간을 놓치지 않았는데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7시간만에 나타나 구명조끼를 입고 있는데 발견하기 힘드냐는 헛소리만 해대었다. 그렇게 어안이 벙벙하고 안타깝고 슬프고 화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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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날 학교 체육대회 첫쨋날이였습니다.즐겁게 놀고 점심밥을 먹으러 가던 중 핸드폰으로 세월호 사건에 대해 보게되었습니다.. 그때만해도 전원 구조를 했다는 기사를 봤던게 정확하게 기억이납니다.진작 알지 못하고 아무 것 도 모른 채로 웃고 놀고만 있어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영원히 가슴 속에서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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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마치고 교무실에서 동료 선생님에게서 비보를 들었네요. 또 수업이 있어 다녀오니.. 전원 구조라고 다행이라고 그랬었는데..이후에 근무하던 학교 출근길에 안산 이정표가 보여서 퇴근하다가 추모현장에 다녀왔던 기억이 나네요. 만약 우리반 애들과 내가 저 배에 타고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며 여러 감정이 지나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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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갓 입학하는 대학교 신입생들이 리조트붕괴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크게 다쳤습니다.그로부터 두달 뒤인 4월에 세월호가 침몰되었지요...그 날 저는 어김없이 10시까지 출근을 하기위해 8시에 일어나서 8시 40분쯤 버스를 탔습니다. 그리고 sns를 통해 침몰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기사로는 아직 완전히 침몰되지 않았고 구조작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기에 "다행이다"라는 생각으로 출근했습니다. 하지만 점심시간 이후 기사부터는 아침에 접했던 기사들과는 다르게 상황이 심각하게 악화되었고,퇴근 후에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기사들로 뒤덮였습니다. 그 날 동료들과 했던 대화도 분명하게 기억합니다. 올 해 초부터 왜이렇게 가슴아픈 일들만 터질까? 두 달 전 리조트붕괴도 그렇고...저는 그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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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은 뉴스를 꼬박꼬박 챙겨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어요. 폰으로 DMB를 켜고, 창가에서 안테나를 세워 반 친구들이 모두 뉴스를 봤던 기억이 나네요. 그렇게 쉬는시간마다 우리는 뉴스를 봤어요. 전원 구조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수업을 들었는데 그 수업이 끝나고 나니 그게 오보였다고 하더군요. 3백여명이 여전히 차가운 바다에 있다더라구요. 심장이 두근거렸어요. 어떻게 저런 오보를 내보낼 수 있지. 왜 저 아이들은 행복해야할 수학여행길에 저런 일을 겪어야했던거지.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고 손이 덜덜 떨렸어요. 그날 내내 우리의 이야기는 모두 그 아이들이 무사히 나오길 바라는 내용이었어요. 야자때 반장이 칠판에 적어놓았던 한줄의 소망이 아프게 다가왔던 , 고3때마주했던 그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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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회사에 있었다. 모니터링 업무를 위해서 포털 사이트를 켰고, 배가 가라앉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곧, 전원 구조라는 기사를 보았고, 안심했었다.하지만 아니었다. 다시 켠 포털 사이트에는 온통 구조가 진행 중이라는 소식이 도배되어있었고, 이어지는 보도들은 절망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발,을 되뇌이며 한 명이라도 더 구하기를 바라고 바라며 하루를 보냈다. 계속해서 새로고침을 누르고, 뉴스를 보고, 또 보았던 시간.2014년 4월 16일나의 7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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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시와 다름없이 출근을 해 컴퓨터를 키고 일 할 준비중있는데 한 직원이 세월호 이야기를 해 인터넷으로 검색을 했다. 배가 침몰중 -> 전원구조 ! 사무실의 모든 사람이 안도의 한숨과 기쁨을 표현하였다. 하지만 곧 뉴스에는 100여명 구조 200여명 실종으로 바뀌었고, 얼마뒤에는 300여명 실종으로 바뀌었다. 영상에는 세월호가 침몰되는 상황이 계속 나왔고 구조중이라는 이야기만 나올뿐 정작 구조하는 배는 한두대?? 뿐이였는걸로 기억한다.. 사무실 모든 사람들이 분개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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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인터넷만 봤습니다. 일하면서 보는데 당일은 배에 산소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승객들이 살아있을거라 믿었습니다. 공황장애가 올 정도였지요. 하루종일 초조해하면서 계속 인터넷을 확인했습니다. 뉴스는 10여년 이상 전혀 보지 않다가 그날 jtbc뉴스를 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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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디 평범했던 하루.내용도 기억나지 않는 강의를 들은 후언제나 그랬듯이 학식을 먹으러 왔었고,혼자 밥먹는게 민망해서TV쪽으로 돌린 몸.TV에서 들려온 소식은 뒤집혀있는 배와아직 구조되지 못했다는 학생들이었습니다.뒤집혀 있는 배의 모습이 충격적이어서눈을 뗄 수 없었어요. 한편으로는 아직 배가 완전히 가라앉은 것이 아니니 구할 수 있겠지, 아직 침몰 전이니까 이제 구조대가 학생들을 데려갈꺼야.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리고 곧 전원 구조 소식이 들렸고 안도하고 방으로 들어왔죠.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다 스마트폰을 보는데 구조된게 아니래요. 오보였다고 하더군요.그래서 휴게실에 가서 다시 TV를 켰어요. 모든 체널이 속보로 세월호 소식만을 알렸고 생중계되고 있었습니다. 기상이 안좋대요. 구조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에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그래도 그때까지도 구조가 될 줄 알았습니다.하지만 결국 제가 조그만 화면 속에서 보게 된 건 뱃머리만 남고 완전히 침몰해 버린 배 한척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