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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관련 교육중이었습니다. 습관처럼 들여다본 스마트폰에서 세월호의 침몰 사실을 알았고 계속해서 새로고침을 하며 소식을 보다가 전원구조라는 뉴스에 주위동료들과 안심하며 계속 교육을 들었습니다. 점심식사를 위해 식당을 찾았는데 식당 내 티비모니터를 통해 바다 한가운데서 배의 대부분이 침몰되어있는 영상과 300명이상의 승객이 구조되지 못했다는 속보가 방송되고 있었습니다. 구조되길 살아있길 물살이 잠잠해지길 바랬지만 우리의 바램과는 다른 소식들에 모두들 아파하고 슬퍼했습니다. 그날을 2014년 4월16일을 잊을수가 없습니다. 이곳에 글을 쓰는 우리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국민들이 기억하고 있을겁니다. 그 사람도 기억하고있겠죠 그 날을 7시간을. 수많은 의혹에 안했다 부정만 하지말고 무엇을 했는지 유가족분들 앞에 진실을 말해주길 바랍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Remember 201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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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노력하면 꿈이 이루어 질거라 믿던 17설의 아이들과 들뜬 마음으로 여행을 떠났던 가족, 친구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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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기억에 나요 그날 정보시간이라 컴퓨터 쓰는데 네이버 실검에 여객선 사고 올랐죠 그거보고 애들끼리 사고낫대 했죠 근데 얼마안되서 전원구조 기사를 보고 에이 싱겁게 끝났다는 생각을 했죠 여러가지 사고 관련기사를 봐도 그런생각은 한적 이없엇는데 왜 그날만 그랬을까요 지금 도 미안해집니다 왜 난그때 큰일이 나길바랬을까요 정말 잊을수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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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쉬는시간이었다. 같은 반 남자애가 인터넷 기사를 보고 사고가 났다며 실시간으로 내용을 읽어주었다. 처음엔 다 빠졌다고 말했고,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아니라고 다 구했다고 나와있다고 한 후 모두 안심한 상태로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난 후 그게 아니었다고., 지금 구하고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 때부터 우리는 그 기사들을 직접 찾아보며 뉴스에 제대로 실종 인원과 구조인원, 사망인원수까지 나왔을 때서야 일이 커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 날, 그 7시간동안, 나와 친구들은 하늘로 먼저 간 그 친구들이 그토록 원했을 하루를, 그리고 학교 생활을 여느때와 같이 웃고 떠들고 다투고 공부하며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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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 핸드폰 안낸 친구가 기사를 보고 크게 외쳤다. 얘들아! 배가 침몰했데! 전원구조래! 그 말을 듣고 안심하고 평소처럼 시시콜콜한 아야기를 하며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고 뛰어 놀다가 집에 들어가서 뉴스를 보고 충격적이었다. 아무리 슬픈 영화를 봐도 울지 않던 내가 그 슬픈 현실에 눈물 흘렸다. 흘러가는 세월에도 세월을 잊으면 안된다. 7시간의 세월과 대통령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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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 살고 있는 나, 그날 서울에 친구 만나러 갔다. 동대문 역사공원역에서 내려 DDP 쪽으로 가는데 (아마 10시 조금 넘었을 듯) TV화면에서 전원구조라는 자막이 떠 있고, 시민들이 다행이라는 인터뷰 같은 게 나오고 있었다. 어휴~ 다행이다 라는 생각과 전에 예천비행장 대합실에서 성수대교 붕괴 장면을 보던 기억도 났다. 친구들과 산에 갔는데 점심 때가 지나고부터 카톡이 불을 뿜었다. 그리고 보게 된 실시간 수장 중계!!너무 힘들고 비참하고 불가해한 날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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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4교시 정보시간에 컴퓨터로 웹툰을 보려고 했어요. 실시간 검색어에 단원고가 떠 있었는데 그땐 이유를 몰랐었어요. 학교가 끝나고 영어학원에 가는중 sns에서 친구가 올린 피해자 분들을 걱정하는 글에 장난식으로 댓글을 달았다가 친구에게 한마디 들었던 것도 기억해요. 집에와서 세월호 사건에 대해 알게되었고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는것을 깨달았어요 . 저의 왼팔에는 아직 노란 팔찌가 있어요 저뿐만 아니라 제친구의 팔에도 있죠 . 평생의 상처를 입으신 피해자분들, 또 가족분들을 위해서라도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그날의 7시간의 진실에 의해 또 한번의 상처를 입으시지 않으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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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16일,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지요... 여객 조난 뉴스가 나왔고, 12시, 그 잘난 쌀밥을 목구멍에 처넣고 있는 순간, 그 순간은 이미 우리 어여쁜 아가들이 물속에 잠겨버린, 이미 세상과 작별을 한 시간, "전원구조"라는 YTN의 개드립을 보며, 그럼 그렇지 하며 꾸역꾸역 쌀밥을 처넣고 있었습니다...오전 10시20분에 이미 배는 완전침몰상태로, 선수만 덩그러니 주변의 도움을 애타게 찾고 있었으나, 아무런 구조선도 없는 외롭고 처량하고 황량한 상태였음에도...그저 쌀밥을 처넣고 있었습니다.우리는 그렇게 처먹고 웃으며 살고 있었습니다.잊지 않겠습니다.아니, 잊혀지지가 않습니다.우리의 아들, 딸들을 수장시킨미필적 혹은 확정적 살인자들에 대한,정당하고 정의로운 처단이 있고난 후에라도,잊혀지지가 않을 것 같습니다.당연히 해야할 진실에 대한 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위해,이제 쌀밥을 꾸역꾸역 다시 처넣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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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암ytn옥외전광판이 보이는 곳에 직장이있었어요. 빨간글씨의 속보를 계속보고 있었어요 오후에는 지방출장을 갔는데 숙소에서도 tv뉴스만 봤던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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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이 사건이 3년이나 돼어가네요 세월호 사고가 일어났을 때에는 제가 중2 였습니다. 그 날에 저는 학교가 끝나고 과학경시대회를 치르고 나와서 핸드폰을 확인했을때 실시간 검색어 1위가 세월호 였습니다. 처음에 이게 뭔가 하고 학교 계단에 앉아 보다가 점점 이 사건에 심각성을 깨닫고 무서웠습니다. 세월호에 갇힌 누나 형들을 구할 골든타임은 존재 했으나 정부는 아무런 손도 못쓰고 그 귀한 생명을 놓아버렸습니다. 분명 저는 다 구조 될거라 믿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악화되고 너무 슬픈시간만이 흘러 갔네요 저는 기억합니다. 2014,4,16 Rem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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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이상하리 만큼 햇살이 좋았다.따뜻한 봄 햇살에 식당이 있는 후문까지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저 점심을 무엇을 먹을까 하는 그런 가벼운 고민과 배고픔에 식당에 앉았고 가벼운 대학생의 주머니를 위로하듯 저렴한 점심으로 배를 채울 생각있었다.식당에서 혼자 떠들듯 나오는 티비화면에 사고 소식에 흠칫 놀랐지만 "전원 구조"라는 문구에 밥숟가락 들듯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줄로만 알았다.뉴스에 나오듯 승객 전원이 전부 구조 된 줄, 구조가 순조롭게 진행 중인 줄 알고있었다.난 그날 그랬으면 안됐었다.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단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그 말을, 그 공간에서, 그렇게 넘겨 듣지 말았어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실을 마주한 순간, 햇살이 좋았던 그날을 햇살이 좋다고 기분좋았던, 그저 밥을 먹으며 흘려 듣고 있었던 내가 그렇게 부끄러울수 없었다.차디찬 바다속으로 힘없이 넘어가는 세월을 바라보며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린 그순간이 너무나 내자신을 부끄럽게 만들었다.그렇게 세월은 가라앉았고, 지나갔으며 그날은 내겐 잊을수 없는 날이 되었다.내기억속 그날은 이상하리 만큼 햇살이 좋은날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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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그날 전 필리핀에서 컴퓨터 수업을 받는도중 인터넷으로 사건 접했습니다. 전원구조 오보부터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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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당시 호치민에 살고있던 저는 자주 가던 돈까스 집에서 밥을 먹고있었습니다.식당의 TV에서 긴급속보라는 자막과 함께배가 기울었고 곧 침몰할 거라는 소식을 접했고먹던 수저를 잠시 내려놓았습니다.곧이어 전원구조라는 보도가 나와 다시 수저를 들었을 때, 말도 안되지만다시 전원구조가 아니라 사람들이 갇혀있고구조는 어렵게 진행되고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어느 끔찍한 재난영화에도 이런 시나리오는 없었습니다.대통령이라고 부르고싶지도 않은 박근혜의 7시간은, 대한민국을 침몰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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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오전 병실의 TV에서 나오는 뉴스를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세월호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아직은 배가 바다 위에 떠있고 날씨도 좋아서 별 일 있겠어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리가 부러진 환자를 수술 하러 들어갔습니다. 수술을 하고 나왔는데, 아직도 뉴스는 계속 나오고 있었습니다. 숫자가 오락가락해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도 무언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살아오면서 본 뉴스 중 가장 끔찍한 것을 보고 있었던 순간 이었습니다. 미국의 911테러 때 그 높은 빌딩에서 추락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고 무서움을 느꼈는데, 우리 나라에서 이보다 더 한 상황이 생겼다는 것을 시간이 지날 수록 더욱 처절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침몰하는 배 안에서 죽음을 기다렸을 그 많은 생명들.. 어떻게 그 많은 생명을.. 그 많은 아이들을 버릴 수 있었나요? 그 이후로 계속되는 뉴스와 트위터 상의 일인미디어 뉴스를 보면서 이런 비정상적인 국가와 지도자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박근혜와 그에게 동조하던 협조하던 정치인들과 공직자들..분명히 잘못이 있습니다. 철저하게 수사하고 밝혀내어 그 잘못을 처벌해야 합니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는 이 사람들은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합니다.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생명에 대한 따스함을 아는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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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그 날의 시간 정확히 기억납니다 이유는 제 주변에도 되지않는, 해서는 안되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죠. 수업을 듣고 있었고 우연히 접한 소식에 웅성웅성 시끄러워진 교실을 선생님은 한마디로 벙벙하게 만드셨습니다"너희 가족 타있는 거 아니면 조용히하고 공부해"기억납니다 정확히요. 그때 저는 그 곳에 있는 사람 모두가 제 가족이다 마음 먹었습니다. 저의 언니 오빠 저의 스승님 저의 부모님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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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일어나자마자 뉴스에서 세월호 뉴스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일하러 갔어요. 중간중간 뉴스를 보니 전원구조라더군요. 다행이다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자오보랍니다. 그리고 많은 아이들이 갇혀있었는데 어느 누구도 책임을 안지더군요.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될 사람들이요.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떠났습니다.그때나 지금이나 미안해요.미안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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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고 있을 때 였습니다. 뉴스 기사에 제주도로 가는 중인 배가 침몰중이라는 기사를 보고 너무 놀랐는데 . 얼마 후 전원 구출이라는 기사에 " 다행이다. 큰일난 줄 알았네" 라고 생각했죠. 근데 또 얼마 있으니 오보가 났다며 급박해졌지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렇게 큰 배 인데.. 금방 모두 구출해내겠지 " 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노력없이 세월호는 그렇게 침몰해버렸고 .. 저와 저희 가족은 그 후로 세월호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이 나고 마음이 아픕니다... 아직도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가족분들은 어떻겠습니까...... 이렇게 쓰며 또 눈물이납니다. 유가족분들 아픈 마음 모두 안아드리고 싶습니다. 아무것도 하지못해 죄송합니다. 계속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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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그 당시 저는 중학교 3학년 학생이었습니다. 미술 시간이었고 창작관련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다가 관련된 정보를 얻기 위해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인터넷을 트는 순간 뉴스와 실시간 검색어에는 "여객선,여객선 침몰, 단원고" 의 검색어가 있었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사고가 났고 전원 구조되었다는 소식에 다른 분들처럼 저 역시 안심하고 수업을 이어나갔습니다. 하지만 하교를 하고 휴대폰을 키니 전원구조는 사실이 아니었다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오보라는걸 알게 된 후 허탈하고 우울하고 힘들었던 기억, 그리고 한명의 생존자라도 더 구조할 수 있기를 기도했던 그 기억이 지금도 생생히 납니다. 그 다음날도 기억납니다. 아침에 YTN을 틀었고 유가족의 모습이 티비로 나올때, 유가족들이 오열하는 그 모습을 보며 순간적으로 눈물이 왈칵 쏟아졌던 기억 또한 생생합니다. 그때 기억을 불러오다보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눈가에 눈물이 맺칩니다..그런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지금쯤 평범한 대학생, 재수생,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었을 선배님들.. 여기서 못 다 이룬 꿈, 소망 모두 다 거기 계시는 곳에서는 이루셨으면 좋겠습니다.. 진실을 알기 전 까지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우리는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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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오전 9시 40분경. 전날 늦게 잠자리에 들었기에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어요. 그리고 습관처럼 휴대폰을 켰고. 뉴스 속보로 배가 침몰하고 학생들 전원 구조 성공했다는 뉴스를 보고 조금 더 자다가 11시쯤 일어났어요. 그날 날씨도 기억이 나는데 흐린날이어서 약속이 있던 친구에게 전화를 하며 뉴스를 켰습니다. 구조가 되었다는 속보는 오보였고 학생들이 벌벌 떨면서 뭍으로 올라오고 있는 상황이 방송되고 있어서 이게 무슨일인가 놀라서 계속 방송을 보고 인터넷을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친구랑 계속 어떻게 하느냐고 안타까워 할 수 밖에 없던 날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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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식당에서 점심 먹다가 보았습니다. 다 절 구조가 되었겠지 하며 수업에 들어갔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