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독일에 산다. 근무 중 점심 시간이어서 근처 식당에 갔는데, 식당에 거의 TV가 없음에도 그 곳은 커다란 TV가 있었다. 주문한 음식을 받아들고 자리를 잡고 앉아 무심히 TV모니터를 응시했는데, 한국 뉴스다. 큰 배가 이미 많이 기울어 바다에 잠겨 있었다. 놀라고 걱정은 되었지만, 삽시간에 일어난 충돌 사고도 아니고 엄청 큰 선박이 서서히 물에 가라앉으니, 대부분 잘 구조 되겠지... 생각하며, 사무실로 돌아와 일을 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접한 뉴스들은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당시 임신 중이었기에 뱃속에 아이에게 슬픔이 전해질까 일부러 뉴스를 피하려고 했던 기억도 뚜렸하다. 하지만 상식과는 너무도 다르게 전개되는 양상을 보며 회피하지 못하고 세월호 뉴스를 자꾸만 클릭하며, 그 소식들에 눈물흘리고 분노했던 기억 또한 뚜렷하다.그 때 뱃속에 있던 아이가 지금 두돌이 훨씬 넘었다. 시간이 이렇게 지나도록 이 사건이 제대로 조사되지 않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하루빨리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란다.대통령의 7시간은 꼭 밝혀져야 한다.
-
속보로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의 배가 가라앉고 있다는 뉴스를 사무실에서 보았지요. 잠시 뒤 전원 구출이라하여 참 다행이다 라며 가슴을 쓸어내렸었는데... 마음이 아프네요.
-
너무도 가슴아픈일입니다..저희 형은 음주운전 차량에 이제 4살된 쌍둥이 조카들을 두고 세상을떠났습니다...한가족을 파탄났는데 구속수사는 커녕 집행유해로 끝나더군요형이 잠들어있는곳에 세월호희생학생들이 있습니다. 그곳에 갈때마다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가족을 잃는다는건 너무도 가슴이 아픈일이에요..지겹다 그만하시라는분득 지금은 자기일이 아니라 고 생각하시기에 그렇게 말하시겠지만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현정권에 당신이 억울하게 가족을 잃었을때 위로가 아닌 거짓을 말하는 세상응 겪게될것입니다....절대 잊혀지면 안돼며 평생기억해야합니다..
-
저는 막학기를 두고 학교를 휴학을 했고, 휴학을 하고 일을 다니고 있었는데 어김없이 수많은 날 중에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그러나 일하다가 보게 된 뉴스, 처음에는 단순 사고이겠거니...전원구조의 기사를 보고 점심먹으러 갔었는데.. 들어와서 다시 보니 오보.. 잊지 못한 날입니다.
-
그날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가서 TV로 배가 침몰했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당시 탑승객 전원을 구조했다는 기자의 말을 듣고 다친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그리고 야근을 했는지 잘 기억이 안나는데 아마 8시가 지난 시간,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데도 학생들이 구조되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애초에 구조되었다는 말은 어디서 나왔으며, 왜 사람들이 배 속에 갇혀있어야 하는지. 제가 살던 곳은 세월호 합동분향소가 있는 안산 화랑유원지 근처입니다. 매일매일 무기력함과 슬픔을 느꼈습니다. 슬픔을 이겨보려 여러가지 노력을 했지만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당시의 제 감정. 제 어머니께서는 가방에 달린 노란 리본을 이젠 떼라고 하십니다. 전 그렇게 할수 없습니다.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하늘에서 행복하길 바라고, 지금이라도 진실이 밝혀져서 망자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저 역시 노력할 것입니다.
-
육군 모 부대에서 당직사관 근무를 서며 뉴스로 소식을 접했습니다..처음엔 웃으며 별탈없이 지나갈 줄 알았던 그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마음아픈 시간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
이번에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간가장 큰 이유는대통령과 최순실 일가 그리고 부역자들의국정농단 사태에 분노했기 때문도 있지만가장 큰 이유는 세월호 때문이었습니다.세월호 참사 이후에촛불들고 길거리로 나서지 못한거잊지 않겠다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잊어가는 것이항상 미안했고그 마음으로 광장으로 나갔습니다.세월호는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해요진상규명 될때까지 응원하겠습니다.오늘따라 더 생각나네요.2014년 4월 16일이........
-
수업중이었다. 열두시 수업이라 부랴부랴 준비해서 출석을 부르고 자리에 앉았다. 평소처럼 네이버에 들어가서 뉴스를 보는데 세월호 침몰 이라는 단어가 보였다. 친구한테 물으니 아침부터 그랬단다. 세상에.. 그때만해도 구조될 수 있을 줄 알았다. 수업 중간에 확인하니 전원구조 였다. 친구에게 뉴스를 보여주고 안도하며 수업을 마저 들었다. 수업이 끝나고 강의실을 나서는데 깜짝 놀랐다. 오보였다. 친구랑 헤어지고 그 뒤로 바로 집으로 돌아와 뉴스를 틀었다. 울고 또 울고 기도했다. 내가 할 수 있는게 기도밖에 없었다. 제발....
-
수업 중 뉴스를 속보를 봤다. 침몰한다라는 속보.구조했다라는 속보.그리고 모든게 오보라는 속보.나는 수업중이던 그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
회사에서 일하고 있던 그냥 평범한 그 어느날이었다부장님이 뉴스를 보시더니 애들 수학여행 가던 배가사고가 났는데 전원 구조에 성공했다며다행이라고 말씀하셔서 그런가보다 했었는데...그 때 들은 소식이 최악의 오보였을줄은 몰랐다그 이후로 침체기에 가라앉은 사회가 무서웠다이렇게 나같이 작은 사람도 세월호를 기억한다
-
2014년 4월 16일 사회생활에 첫 발을 내딛은 지 얼마 안됐었고1년차 답게 열심히 일하던 중이었다.병원 로비를 지나가는데 TV에서 속보가 떠있었다. 세월호가 침몰했고 학생들이 많이 타고 있었으나 전원구조했다고..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시간이 지나고 속보는 바뀌었다.많은 학생들을 비롯한 사람들이 아직 물 속이라고...아직도 그 날이 선명하게 기억이 납니다.미안해요 잊지않을게요.
-
2014년 4월 16일 오전 9시. 내시경을 하러 가시는 엄마를 따라 병원에 갔었어요. 접수를 하고 기다리는 동안 나오던 아침 뉴스에선 진도 여객선 사고를 보도하면서 전원 구조되었다고 했습니다. 다행이다, 별 일 아니었구나 하면서 진료를 마친 엄마와 함께 다시 뉴스를 봤을 때 우리가 별 일 아니라 생각했던 게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생존자 수보다 점점 늘어가는 사망자와 실종자 수를 보면서 무언가 잘못되도 단단히 잘못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
20살 대학교 방학이였고 늦게까지 잠을자고 있었는데 아빠가 뉴스소리를 높이더니 나를깨우면서 제주도가던 배가 침몰했다고했다비몽사몽으로 뉴스를 보기시작했고 쫌있으니 뉴스에서 단원고 학생들 모두 생사확인 구조라고 떠서 정말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잠을잤다...그런데 몇시간후 잠에서 깨서 뉴스를 보는데 사망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
지독하게 평범하고 단조로운 날이었다.곧 있을 취직 시험 때문에 책에 정신 팔려있던 그 날, 가족 중 누군가가 보고 있던 텔레비전에서는 수학 여행을 가던 학생들, 같이 우정 여행을 떠나시던 어른들, 각자의 설렘을 갖고 떠나던 많은 수의 사람들이 타던 배가 전복했다고 했다.그러고 나온 전원 구조라는 속보에 "다행이다."라고 생각하고 내 할 일에만 집중했다.공부를 끝낸 후 전원 구조가 오보였단 사실에 한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희생자라는 이름으로 대부분의 승객들이 발견 되었다는 소식이 너무 가슴 아팠다.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가장 소중한 내 가족이었던 그들이 아직 배 안에 있단 소식이 너무 가슴 아팠고 금방 구조가 되지 않았단 사실에 너무 슬펐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너무 분노했다.하늘에 별이 되어버린 그 분들께, 그 아이들에게 이야기 하고 싶다.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을 거라고. 꼭 이런 일이 반복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마지막스로 거기선 그런 아픔 없이 행복하게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
아침에 김포공항에 도착했을때 공항에 틀어져있던 뉴스에서 생생히 봤던 자막,세월호 침몰, 전원 구조자막을 흘끔 읽고 큰일이었네 하지만 전원 구조라니 다행이다~ 하면서 공항을 나섰던게 생생히 기억납니다그리고나서 집에 도착해서 뉴스를 보니 이게 왠걸.. 아까 전 전원 구조가 오보라는 소식..왜 못구하는거지 아직 배가 가라앉지 않았는데.. 발을 동동구르며 지켜봤는데결국 그대로 가라앉아버린 배..아무것도 할수없던 무기력함이 기억납니다..애들아.. 미안해..
-
외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어요.그 날은 시험때문에 밤을 새며 공부하다, 한국 사전을 검색하려 모 포털 싸이트에 접속했어요.그리고는 정말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결국 밤 새 새로고침만 하다 제대로 공부도 하지 못한 채 학교로 향했죠.문을 열고 강의실에 들어서자마자 친구들이 묻더군요, 무슨 일인지, 한국 정부는 대체 왜 구조를 하지 않고 있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겠더라구요. "우리 정부를 믿는다, 그들은 모두 구조 될 것이다."이런 말 따위 나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냥 입을 다물고 대강 시험을 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그리고 밥을 먹고, 샤워를 하고, 영화를 보고, 낮잠도 잤습니다. 그리고 예습을 했어요.2014년 4월 16일. 그저 그렇게 똑같은 하루를 보냈습니다. 저는 살아 있었으니까요.그리고 내일을 위한 대비도 했어요, 저는 살았으니까요.사실은 아주 죄송했습니다. 이런 별 것 아닌 하루를 그들은 이제 영원히 누리지 못함을 아니까....
-
여느 수요일처럼 교생실에 모여 타 교과 교생들과 담소 나누던 아침이었습니다. 4월 중순답게 날은 선선했고 시험을 치르는 학교는 조용했습니다. 타과 교생 선생님이 놀란 얼굴로 기사를 보여줍니다. 수학여행길에 아이들이 사고를 당했다고요. 다들 충격에 휩싸이고 말았습니다. 그때 전; 그나마 이 중학교의 아이들은 시험 중이고 이 무섭도록 아픈 사실을 조금 늦게 알게 될 것임에 조금은 걱정을 덜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지 엄두도 안 났거든요.그렇게 가라앉은 배에 탔던 탑승객들을 걱정하는 중에 정말 천만다행의 표제를 걸고 기사 하나가 떴습니다. 전원구조했으니 걱정말라는.안심한 마음으로 퇴근한 우리는, 집에서 다시 끔찍하게 돌변한 기사들을 읽었습니다. 실종자의 수는 가늠할 수 없고 아이들은 아직 찬 바닷물에서 떨고 있다는 기사말입니다.무력하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서 그저 한 명이라도 더 무사하기만을 바랄 뿐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시계가 어찌 바뀌었는지 기억이 엉켜버렸습니다.
-
저는 그날 어느날과 같이 점심시간에 밥을먹고있었습니다. 분식집에서요그때 티비에서 세월호기 기울어지고있는 영상과 모두를 구했다는 뉴스가 들려왔습니다 . 그걸보며 저는 말했습니다 "다행이다. 다 구했네! "근데 앞에 앉은 언니가 말했습니다 "아닐수도있지!" 그래서 저는 "우리나라가 기술력이 얼만데 저 큰배를 못구하겠어?" 라고 말했는데 그 보도가 오보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 언니와 만나면 이 얘기를 하곤합니다. 정말 우연하게 그말이 맞아버린 이 상황을 보며 우리는 우울하곤 합니다. 저는 그 날의 진실이 궁금합니다.
-
혼자 엎드려 울었다.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부모님들의 통곡소리가 커질수록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가만히 눈감고 슬픔을 느끼다가아픔을 느끼다가또 한번 혼자 엎드려 울었다
-
아침 수업을 비몽사몽인채로 끝내고 난 기숙사로 돌아왔다. 가방을 던져두고 침대에 뛰어들어 비스듬히 누워 핸드폰으로 인터넷 포털에 접속했다. 이상한 소식이었다. 제주도로 가는 큰 배 하나가 침몰을 하고 있다고 했다. 책상에 앉아있던 룸메이트 언니에게 이 기사 보았냐고 했더니 언니는 태연했다. "응 봤어. 금방 다 구조 될거야."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댄데 금방 구조대가 올 것이고 다 안전히 빠져나올 것이라 생각했다.난 기사 화면을 끄고 sns를 한창 들여다 보다 잠이 들었다. 점심즈음이 다 지나 깨어났는데 구조가 마무리 되어간다는 소식을 보았다. 그럼 그렇지. 하고 다시 수업에 갔다. 해가 질 무렵, 난 다시 돌아왔다.친구들과 연락을 하다가 다시 접속한 포털 사이트에서 이상한 기사를 보았다.아까 기사는 오보였다.학창시절 이름만 알던 친구 하나가 구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얼굴만 알 뿐인 친구가 침몰하는 배 안에 있었다니 가슴이 철렁했다. 그 친구의 sns에는 그가 그 배를 탔다는 것을 알고 있던 친구들의 글이 가득했다. 이틀이 지나 그 친구는 자세한 정황을 썼다가 지웠다. 자꾸만 그 때 기억을 물어보는게 고통이라고 했던거 같다.결국 수많은 아이들이 죽았다.그 아이들은 나보다 한창 어린 동생들이었다.그들이 마지막 순간 보내온 문자나 정황들이 공개되기 시작했다. 난 그 때 기숙사 침대에 누워 서러워져 엉엉 울었다.